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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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이상하지도 괴이하지도 않은 보통사람 퀴어 지면기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수습기자 교육을 하던 유월 어느 날, "지금 이 순간, 가장 기자를 필요로 할 사람을 찾아 취재해 와라"는 지시에서 시작됐다. 한 수습기자가 퀴어(queer)를 찾아왔다. "선배 그런데 이 분이 회사로 직접 찾아와서 말씀하시겠다는데 어쩌죠."'가장 기자를 필요로 할 사람'으로 꼽힌 성전환자는 회사를 찾았고 학생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서 상처받았고 또 왜 싸우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본인 얼굴을 찍어도 된다고 했고 다른 퀴어를 연결해 주겠다고도 했다. 수습기자와 함께 그분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삶이었고, '다름'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돼 왜 다른지를 설명해야 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가까이서 보는 건 단지 교육 이상의 것이고, 보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수습기자는 주말 시간을 할애해 대학생 퀴어를 만났고,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찾아갔고, 그들에게 최소한 울타리가 되어 줄 조례나 법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바로 그들이 가장 일반의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가장 보통의 퀴어' 기획기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들도 사랑할 사람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는 점에서 나 혹은 수습기자와 다르지 않았다. 친구와 모이길 원하고 일자리를 찾아 다니기에 그들과 우리는 동일했다. 하나 다른 것은 나 혹은 수습기자는 성적 지향과 가치관 혹은 삶의 방식을 굳이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은 늘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목소리 높여 자신을 자신이라고 외쳐야 겨우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 그거 하나가 달랐다.'가장 보통의 퀴어'를 나에게 알려준 수습기자의 이름은 유혜연이다. 수습은 바이라인을 달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에 비록 제 이름으로 기사를 올리진 못했지만, 나는 수습기자를 통해 또 하나를 배웠다. /신지영 사회교육부 차장 sjy@kyeongin.com신지영 사회교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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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청년은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 지면기사
보름 전, 청년 대표를 표방하며 당선된 한 의정부시의회 의원이 단식농성을 했다. '의회 정상화'를 외치며 풍찬노숙을 자청한 청년 정치인을 처음 맞닥뜨린 지역사회에서는 '신선하다', '의식 있는 의원의 등장을 환영한다'는 등의 기대 섞인 반응이 나왔다.그의 농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계속하면 징계하겠다는 정당의 엄포가 나오고, 동료의원들이 설득에 나서자 그는 이틀 만에 투쟁을 종료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열린 시의회 의장단 투표에서 그 청년 의원이 했던 행동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사전에 합의했던 내용과 달리 그와 같은 지역위원회에 속해있던 재선 의원이 의장이 됐기 때문이다.의장 선출 결과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단식투쟁이라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 동원되기 전에, 시의회 내 의사소통이 얼마나 민주적이었고 의원들이 그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짚고 싶다.건강한 사람도 3일 밥을 먹지 않으면 건강을 해친다. 단식투쟁은 그야말로 자신의 건강을 볼모로 요구사항을 관철하려는 극단적인 행위다. 때문에 대부분의 단식투쟁은 사회적으로 잃을 것이 없는 약자와 소수자들이 많이 한다. 중대한 사안에 있어 밀리고 밀리다 마지막으로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려면 내 말 들어'를 시전하는 것이다. 결국은 단식농성에 나섰던 청년 의원의 바람대로 본회의는 열렸고, 일각의 반발 속에 그가 바라던 대로 의장단이 꾸려졌다. 시의회는 이제 갈등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되돌아보면 청년 정치인의 단식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씁쓸함이 남는다. 개인적으론 청년이라면 응당 순수하고, 정의롭고, 창의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이제는 허구에 가까워진 것은 아닌가 반문이 드는 경험이었다. /김도란 지역자치부(의정부)차장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자치부(의정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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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과천 공공하수처리시설 지혜 모아야 지면기사
과천에서 환경사업소 공공하수처리시설 건립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신계용 과천시장은 민선 8기 1호 결재로 '환경사업소 입지 관련 민관 대책위 운영 계획'을 처리하면서 공공하수처리시설 건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과천시 공공하수처리시설은 노후화와 하수처리용량 한계로 이전·증설이 시급하다. 지난 1986년 준공한 뒤 내구연한인 30년을 넘겨 가동 중이다. 하루 3만t의 하수처리 시설로 설계됐지만 현재는 노후화로 하루 1만9천t을 처리하고 있다.공공하수처리시설 신설은 과천지구 개발과 재건축사업 등과도 맞물려 있기도 하다. 건립 사업은 약 1천400억원 가량이 소요되며 시는 하남에 있는 유니온파크처럼 하수처리시설을 지하화해 지상에는 주민편의시설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신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하남 유니온파크 운영 사례는 혐오시설로 인식될 수 있는 하수처리장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다만 공공하수처리시설 건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입지문제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천시는 원안, 국토부 중재안, LH 마스터 플랜안 등 하수처리시설 입지를 살피고 있다. 원안은 자연 유하가 가능하고 과천지구 하류에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울시 서초구와 가까워 서초구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됐고, 국토부 중재안이나 마스터 플랜안은 과천지구의 중심부가 될 선바위역 인근에 위치해 있어 토지 이용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지난 14일 과천동 노인회관에서 열린 주민간담회에서는 다양한 얘기들이 나왔다. 주민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과천시 환경사업소 측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해서 최적의 입지를 찾아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공공하수처리시설 건립이 공론화되고 있는 만큼, 관계기관들과 시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하수처리시설 건립에는 통상 6년이 걸린다. 올해 입지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오는 2028년 건립된다.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과천시민들의 충분하고 깊은 공감대 형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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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길고도 짧은 시간 지면기사
조용익 부천시장은 80만 시민의 선택으로 앞으로 4년간 부천의 미래를 설계할 역할을 부여받았다. 서울과 인천 등 거대도시의 틈바구니 속에, 또 김포와 시흥 등 신흥 대도시의 추격 속에 부천시민들의 자부심을 지켜야 할 책임감 또한 막중하게 주어졌다.조 시장은 이달 취임 후 1호 결재로 '시민 소통 열린 시장실 운영계획'에 서명했다. 시민과의 소통을 최우선 시정 목표로 정한 그가 실제로 시민과 머리를 맞대고 시정을 이끌어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5층에 위치했던 민선 7기 시장실은 청사 보안을 이유로 청원경찰이 배치돼 상시 출입을 통제, 일각에서 불통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조 시장은 이러한 시장실을 완전히 개방해 누구나 방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실현된다면, 시민과의 벽이 허물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민원상담센터 확대운영과 '시장 민원상담의 날' 지정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민원사항을 직접 귀담아 듣고 시민 고충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시 홈페이지에는 '시장과의 만남 신청' 코너를 개설하는 한편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소통 플랫폼도 운영한다고 한다.조 시장은 '다시 뛰는 부천, 시민과 함께'를 민선 8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4년 임기의 대장정에 돌입하는 취임식에서도 시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취임사를 통해 '시민'이라는 단어만 20차례 이상 언급하며 시민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최우선 목표와 주제가 '시민'임을 선포한 셈이다.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조 시장은 취임 직후 시민들로부터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부천시민들의 위대한 선택을 받은 그가 책임의 무게를 깊이 각인하고 맡겨진 소명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민들과의 첫 약속만 잘 지켜낼 수 있다면 분명히 전국 최고 단체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길고도 짧은 4년이 시작됐다. /이상훈 지역자치부(부천)차장 sh2018@kyeongin.com이상훈 지역자치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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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닙니다만…" 지면기사
10여 년 전 수습기자 시절의 일이다. 밤 늦은 시간 파출소에 있는데 사건 신고 접수에 관한 무전이 들렸다. 공교롭게도 사건 발생 장소는 당시 3개 파출소(지구대)의 경계 지점이었다. 이후의 대응이 흥미로웠다. 경찰관들은 정확한 주소를 재확인하기 위해 다시 연락을 취하는가 하면, 급기야 '우리 관할은 아닐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를 입증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했고 출동은 늦어졌다. 사건의 위중함보다 어느 관할인지를 먼저 따지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최근 폭우로 인해 용인 고기동에서 야산의 토사물이 쓸려 내려와 주택 한 채를 덮쳤고, 화재로 이어져 집이 통째로 타버린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거처를 잃은 집 주인의 상실감과 추가 피해를 걱정하는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은 실로 크다. 당시 산 중턱의 옹벽은 일부만 무너지다 말아 나머지 부분이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사고 당시의 악몽을 간접 체험한 주민들은 절박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다 만 옹벽을 바라보며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상 예보에서 우산 모양만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라 한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이들의 다급함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호소하며 구청에 전화하면 재난안전 부서로, 산림 부서로, 또 다른 부서로, 결국 다시 구청으로 전화만 계속 돌고 돈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도 '그 부분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부서별 업무 분장과 역할은 있겠지만 주민들의 생존과 재산권이 달린 문제보다 그게 더 앞설까. 정말 '뭣이 중헌지' 모르는가.이상일 용인시장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취임인터뷰에서 '공무원이 그 지역에 산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며 시민 입장에서의 행정을 강조했다. 옹벽 일부가 무너져 흙이 쏟아지다 만 야산 아래쪽에 공무원이 살고 있다면, 당장 또 비가 예보돼 있다면, 그때도 부서 소관 운운할 수 있을까. /황성규 지역자치부(용인)차장 homerun@k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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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제도 변경 논의 시작된 교육감 선거 지면기사
"교육감 선거는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인천시교육감 선거기간때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는 인천 주민 직선 교육감 선거 중 처음으로 보수 성향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했고, 첫 재선 교육감 도전에도 나섰으나 시민들은 큰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번 인천시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4만8천135표로 인천시장 선거 무효표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어떤 후보에도 투표하지 않거나 2명 이상의 후보에 투표할 경우 무효표가 된다. 현행 교육감 선거 제도는 2007년부터 도입됐다. 시·도 교육감은 1991년까지는 대통령이 임명했다. 1991년부터 2006년까지는 교육위원회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됐다. 간선제로 치르다 보니 지연·학연 등이 동원되는 조직선거로 바뀌는 부작용이 생겼고, 현행 제도가 시작되게 됐다. 2007년 이후 교육감을 뽑는 선거를 4번이나 치렀지만, 교육감 선거는 아직도 '낮은 투표율', '유권자의 무관심', '비효율적 선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교육감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현행 교육감 선거 제도의 대안으로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을 직접 지정해 선거를 치르는 '러닝메이트제'나 학부모나 교원 등 교육감 선거와 이해관계가 있는 유권자만 참여하는 '제한적 직선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도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 될 수 있거나 교육비용을 부담하는 모든 주민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단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교육감 선거 방식을 바꾸자는 여론이 15년간 선거를 치르며 계속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제도 변경을 논의하기 적절한 시기라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제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안들도 장단점이 뚜렷하다. 다음 선거까지 남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깜깜이 선거'라는 지적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주엽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차장 kjy86@kyeongin.com김주엽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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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을들의 전쟁 지면기사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 오른 시간당 9천620원으로 정해졌다. 어쨌든 결정은 됐는데 노동자도, 사용자도 불만이다. 당장 최저임금위원회에서마저 노동자위원도, 사용자위원도 모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민주노총은 지난 주말 최저임금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고, 편의점 가맹점주들도 실력행사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노동자는 물가가 이렇게 치솟은 와중에 이 정도 올리는 것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반응이고, 사용자는 안 그래도 원자재가 상승에 각종 부담이 커졌는데 최저임금까지 오르면 버티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렇게 결정된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건만 상대를 겨냥하며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최저임금이 시간당 9천160원인 지금도 시급 2천원은 더 줘야 아르바이트생 채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물가가 너무 올라, 아르바이트생들도 적어도 1만원 이상은 받아야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아르바이트생 채용을 포기한 채 업주 홀로 가게나 회사를 지키거나 키오스크 등을 설치해 무인화로 전환하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일자리 수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상승을 바라면서도 막상 인상 소식에 노동자들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편의점 업주도, 그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요즘이다. 감히 어느 쪽의 사정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늘 '을과 을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유독 이런 모습이 심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지며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신음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라는 최악을 넘어, 전쟁이라는 최최악의 사태 끝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내후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을들이 다투지 않길 바란다. /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kanggj@kyeongin.com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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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모든 인연은 보물 지면기사
'한 번 만난 인연은 보물이다 생각하고 살면 되는 거야'.최근 선배 기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지난 6·1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 당선인들의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 섬기던 참에 들은 말이라 죽비소리처럼 마음을 파고들었다.민선 8기 시장 취임 즈음이 되니 누가 어느 자리로 갈 것인가에 대한 풍문이 많아졌다. 선거운동기간 중 캠프에서 혹은 인수위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어떤 사람은 취재원으로 계속 만나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더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가름하는 나의 속내를 선배는 간파한 것 같았다.세상에 얼마나 많은 명언이, 경구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명언은 아무리 많아도 모든 명언이 마음을 울리지 않는다. 너무 많아서 대부분을 그냥 흘려 보내게 된다. 그런데 그 중 어떤 것은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도 한다. 귀에 꽂히는 때가 있다. 적재적소에 놓인 말, 의중을 꿰뚫는 말이 그렇다.인사로 한동안 공직사회가 술렁일 것이다. 내가 사는 오산은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게다가 12년 만에 시장이 바뀌었다. 그러니 변화의 폭이 클 것이고 변화에 대한 체감은 더욱 클 것이다. 인사가 단행되면 각 자리와 인물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선8기 과제가 하나씩 수행될 것이다. 그리고 4년마다 이러한 과정은 되풀이된다. 변화가 크든, 작든 항상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도 인연은 돌고 돈다.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누구나 들어서 아는 말이지만, 그래서 흘려듣기도 쉬운 말이다.명함지갑에 명함을 가득 채워넣었다. 당분간 새로 인사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음에 선배의 말을 새기려고 이 글을 쓴다. 모든 인연은 보물이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민정주 지역자치부(오산·화성)차장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자치부(오산·화성)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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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밥 먹었어?" 지면기사
"밥 먹었어?"한국인들에게 주로 이른 오후에 오가는 인사다. 점심나절에 별일 없는지 묻는 정도이지 진짜 밥을 먹었을지 궁금해서 건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 인사가 가식적이지는 않다. '나는 당신이 무탈하길 원한다'는 친근함이 전제돼야 이런 말도 오간다.비슷한 관습적 표현으로 "언제 밥 한번 해야지"가 있다.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일정을 잡으려 들면 상대방이 당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호의 표시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기에, 스마트폰 소통이 활발한 요즘은 "날짜 몇 개 주세요"정도가 모범답안처럼 사용된다.밥을 소재로 한 이 같은 대화에서 한국인 대부분은 쌀밥을 연상한다. 한국인들에게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한때 부의 직접적인 척도였고, 본격적인 시장 개방을 앞둔 1980년대에는 국가 주권이었으며, 국민 개개인에게는 수천 년 전부터 정서적으로 깊이 작용해 왔다. 우리 일상의 수많은 갈등도 따져보면 밥그릇에서 시작된다.없어서도 안 되고 빼앗겨서도 안 될 것으로 여겨지던 쌀밥이 풍족해도 너무 풍족해졌다. 쌀이 남아도는데 소비는 늘지 않는다. 식당가에서는 쌀밥이 메인요리의 사이드로 밀려난 광경이 적잖이 목격된다. 소비자들은 빵과 면 요리의 고급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쌀 요리의 고급화는 어색해 한다.한 손으로 들기 어려운 묵직한 쌀 한 포대가 지금 라면값보다 형편없다. 농협 저장고마다 재고가 쌓이기 훨씬 전부터 쌀값은 쌌다. 고품질 쌀을 생산하고 싶어도 소비자가격에서 재배비용을 건지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다. 쌀값 추락사태가 장기화하면 농사를 포기하는 농업인이 속출할 수밖에 없고, 우리 쌀을 못 먹는 날이 오지 말란 법 없다.급격한 도시화와 가족구성의 변화, 대체 식품의 개발 등 쌀 소비 위축요인은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쌀값은 당연히 싸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우선 절실하다. /김우성 지역자치부(김포) 차장 wskim@kyeongin.com김우성 지역자치부(김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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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민선 8기 의왕시의회 의정 '공부' 필요할때 지면기사
지난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의왕시의회는 재선의원 2명과 초선의원 5명 등 총 7명의 의왕시의원이 선출됐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이들은 현재 당선인 신분으로 의왕시의회에서 한 차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이들을 만난 공무원에게 기자가 "당선인들 괜찮아요?"라고 질문하자 모두 즉답을 하지 않았다. 김학기·서창수 당선인의 경우 이미 의정 경험이 있다지만, 나머지는 대학생부터 체육인까지 직·간접적으로 시의회 운영에 많은 경험이 없다는 의미의 무응답인 것으로 여겨졌다.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당선인들 역시 시의회 운영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이해, 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민선 8기 임시회가 열리기 전까지 의왕시 집행부에서 통과돼 시의회 의결을 받아야 하는 각종 규정 또는 조례 제·개정안의 리스트를 확인한 뒤 각 현안들의 의미를 빠르게 분석해야 한다. 7명의 의원이 상임위원회 구분도 없이 정치·사회·경제·환경·교육·문화·체육 등의 분야를 한꺼번에 다뤄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부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특히 민선 8기 첫 임시회 본회의에서는 '정책보좌관 도입'을 골자로 한 조례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의회 내에 정책보좌관을 둠으로써 의회의 핵심기능인 예·결산안 심의 등 활동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게다가 김성제 의왕시장 당선인에 대한 견제도 필수적이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그에 대해 '도시개발 전문가'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인데, 시 집행부가 4년 동안 진행하려는 현안 사업을 놓고 의회는 시민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환경은 보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세번째 지휘봉을 잡는 김성제표 시정을 의회가 따라가는 것조차 못한다면 민선 9기 공천은 다른 후배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송수은 지역자치부(의왕) 차장 sueun2@kyeongin.com송수은 지역자치부(의왕)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