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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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기로에 선 'SNS 민주주의' 지면기사
트위터가 트럼프 영구 퇴출을 발표했을 때 커다란 논란이 일 것으로 짐작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의사당 점거 난동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우방은 경악했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은 조롱했다. 글로벌 SNS 기업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정의로운 심판처럼 보였다.이성은 늘 감성의 뒤를 따른다. 트럼프를 영구 퇴출한 트위터가 표적이 됐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SNS 기업들이 미국 대통령 입에 지퍼를 채운 초현실적인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나쁜 권력자라는 트럼프의 평판은 사실이지만 민간기업이 그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는 없다는 얘기다.인권은 표현의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지지한다. 법에 의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이 원칙에 반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트위터가 자유민주주의의 심장인 미국 한복판에서 전제 권력을 행사하자 자유진영의 정치인들이 뒤늦게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미국 시민의 자유발언이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티브 데인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의 탄식은 참담하다. 트럼프 변호가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경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계정 영구정치는 문제"라고 가세했다. 의회 점거 사태와 트위터의 트럼프 계정 폐지로 미국의 온·오프라인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추락했다.표현의 자유를 확장해 준 SNS가 이젠 저질 정치인들의 팬덤 정치 수단으로 변질한 건 사실이다. 트럼프가 증거다. '페북 정치'의 살벌한 대치로 합리적 대중을 소외시키는 우리 정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SNS 정치집단은 타인의 인권을 예사로 유린한다. 자유와 방종이 SNS 해방구에서 위험하게 동거 중이다. 그렇다고 SNS 기업의 개입을 허용할 수도 없다. 트럼프가 선례가 되면 여론에 의지한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검열을 인정하는 셈이다. 선출된 권력이 무력해지고 시민권력이 왜곡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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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통공역사: 공을 교통하고 일을 교역한다 지면기사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분류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는 그저 사농공상이라는 말로 직업을 구분하였다. '관자'에 보면 백성들을 사민(四民)으로 나누어 농사상공(農士商工)으로 이야기하였다. 역사적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그 성격에 따라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데 점점 고도화되는 면을 표현해주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4차 산업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이 가장 기본인데, 임금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고 백성을 이 '식(食)'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말처럼 '식(食)'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백성들에게 생존의 중요성이 더 절실했을 수 있다. 그래서 맹자는 늘 백성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인 항산(恒産)을 강조하였다.하지만 맹자는 먹고 사는 '식(食)'과 함께 건강한 인문환경을 만들기 위한 건전한 '심(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상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식(食)'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회적으로 건전한 '심(心)'을 형성하는 일도 말 그대로 일로 보았다. 사(事)가 각각의 중요한 분야의 관점에서 말하는 일을 뜻한다면 공(功)은 그 일을 통해 구현한 실제적 효과를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 하는 일과 그 일의 효과는, 다른 분야의 일과 그 일의 효과와 서로 교통하고 교역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다. 맹자 이전에 이미 관자는 "옛적의 왕들은 농부와 선비와 상인과 장인 네 직업의 백성이 각기 노력을 하여 그 결과물을 서로 바꾸게 해서 한 해가 끝났을 때 이익이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했다"고 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현대사회는 어느 때보다 교통과 교역을 통한 융합이 필수적인 사회이다. 합리적인 분업과 융합을 통한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이루는 것이 과제인 사회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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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조두순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며… 지면기사
조두순은 출소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맞춤형 급여를 신청했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데다가 신상정보마저 모두 알려져 일자리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보니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신청한 것으로 풀이된다.게다가 그는 올해 68세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기준 연령 65세를 넘어 근로 능력이 없는 노인으로 분류되고, 조씨의 배우자는 만 65세 이하이나 만성질환과 취업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고 있어 이들 부부는 일정 기준 이상의 재산이 없으면 무난히 복지급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금으로 매월 120만원 가량을 지원하는 셈이다.그러자 예상대로 청와대 게시판에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범죄자를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꼴이 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하지만 법이 그렇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범죄자에 대한 제한 규정은 따로 없기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도 죄와 기초생활보장법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그간 동서양의 역사에서도 죄와 사람을 구분해 왔다. 공자의 9대손인 공부(孔駙)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공총자(孔叢子)'에서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너무나 익숙한 문구가 기록돼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성경(마태복음 5장)에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라고 적혀 있다.다 옳고 맞는 말이다. 다만 조두순을 놓고 봤을 때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은 꽉 막힌다. 아마도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지만 12년밖에 죗값을 받지 않았고 또 이 기간에 간절히 죄를 뉘우쳤다는 느낌도 전혀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어찌됐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죗값을 받았고 재범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전 국민의 피와 땀이 섞인 세금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세금이 투입되기 전에 진정한 뉘우침의 눈물은 보고 싶다. 조두순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린다. /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장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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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뉴노멀에 의한 부동산대책으로의 전환 지면기사
소비자의 주거욕구 수준에 맞도록공급 기준 설정 '장기적 대책' 필요개인 파산은 금융기관의 위기 초래대출규모 상환능력 등 판단해 관리영구임대도 주거 취약계층에 집중정부에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24번의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부동산대책이라고 발표된 내용들을 보면 오래된 노무현 정부의 대책을 반복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반복된 대책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부동산가격상승과 전세시장의 불안을 가져왔다.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가격안정을 위하여 대출규제, 취득세 중과 등의 매수억제 대책을 실시하였고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하여 양도소득세, 종부세, 재산세 중과라는 세금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의 실효성에 대해서 각종 지표들이 부정적이다. 이러한 강력한 대책들이 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까?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경제 질서(올드 노멀)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뉴 노멀의 시대다. 올드 노멀은 세계 금융 위기 이전까지 꾸준하게 3% 이상의 성장을 해왔던 미국 등 선진국의 경제 질서를 말한다. 뉴 노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을 의미한다.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점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부동산정책도 급변하는 부동산시장, 소비자의 다양성 등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이제는 부동산정책의 뉴 노멀을 고민하여야 할 시점이다.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정책의 뉴 노멀 방향은 무엇일까?먼저 공급정책이다. 기존에는 주택보급률을 기준으로 공급의 필요성, 공급과잉 등을 판단했다. 뉴 노멀의 시대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곳에, 소비자의 주거 욕구 수준에 맞는 주택의 공급이라는 기준을 설정하여 공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단기적 공급 대책이 아닌 장기적 대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주거수준의 욕구도 높아진다. 따라서 수득 수준에 맞는 주택공급이 필요하다. 소득 수준에 맞는 주택의 공급계획, 가구원 수의 변화에 맞는 주택공급, 이주수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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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항공안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공포 '급변풍' 지면기사
예상치 않은 뒷바람, 양력 상실시켜 '사고'항공기상청, AMOS 탐지시스템 개발 운영활주로 바람강도 실시간 계산 급변풍 판정지난해부터 6개 군공항 포함 13곳서 가동중 항공기상청은 날씨로 인한 항공기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호우, 대설과 같은 '눈·비 현상'부터 저시정, 구름 고도와 같은 '시정현상'까지 항공기 운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상현상에 대해 경보를 발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예측과 탐지가 가장 까다로운 기상현상은 '바람 현상'이다. 바람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늘 높은 곳에서는 언제나 제트기류가 불고 있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그런 제트기류를 눈으로 볼 수 없다. 바람 현상 중에서 특히 위험한 기상현상이 바로 '급변풍(windshear)'이다.급변풍이란 공항·활주로상에서 위치에 따라 바람의 속도나 방향이 서로 다르게 부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테면 활주로의 앞쪽에서는 서풍이, 뒤쪽에서는 동풍이 불고 있다면 '급변풍이 발생했다'고 한다. 급변풍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항공기 운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항공기 전면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은 양력을 발생시켜 항공기를 뜨게 만들고, 뒷바람은 양력을 상쇄시켜 항공기를 가라앉게 한다. 맞바람을 예상하고 출력을 감소시켜 착륙하던 항공기가 예상치 못한 급변풍으로 갑자기 뒷바람을 받게 되면 양력을 급격히 상실하면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항공기상청은 급변풍을 탐지하기 위해 LLWAS(저층윈드시어경고장비·Low Level Windshear Alert System), TDWR(공항기상레이더·Terminal Doppler Weather Radar) 등의 첨단장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장비들은 고가의 대형장비로 설치 ·운영에 막대한 예산이 든다. 이같은 여건상 LLWAS는 급변풍이 많이 발생하는 인천·제주·양양 공항에만 설치됐고, TDWR은 인천공항에만 설치돼 있다.그 외에 10개 국내 공항(김포·무안·울산·여수·김해·청주·대구·광주·포항·사천)은 LLWAS도 TDWR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과거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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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달팽이 2021년 1월 13일자(이공명)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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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지방정부에 걸맞은 남북협력사업 구상해야 지면기사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뤄낸 가장 큰 합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 해역을 평화수역으로 정해 남북 공동어로와 수산물 교역을 진행하는 게 1차 목표였다. 최종목표는 인천과 개성·해주를 잇는 남북 경협벨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후 북한의 핵실험 재개와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이 없다가 11년 후인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을 통해 다시 순풍을 만났다. 두 달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는 서해평화협력시대 구상을 제1호 공약으로 내걸고 인천광역시장에 당선됐다. 자신을 정치의 길로 이끌었던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기도 했다.공약의 핵심은 서해평화협력청 설치, 강화 교동 평화산단 조성, 유엔 평화사무국 유치, 남북공동어로구역 조성과 해상파시 추진, 인천~해주~개성 서해평화도로 연결이었다. 하지만 서해평화도로 1단계 구간인 영종~신도 교량사업(길이 3.82㎞, 왕복 2차선)이 이달 첫 삽을 뜨게 됐을 뿐 나머지는 전부 감감무소식이다. 지방선거가 있던 그해 같은 당 송영길 의원이 발의한 '서해평화협력청' 설치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계류됐다가 폐기됐다. 교동 평화산단 조성 역시 현재로선 요원한 상태이고, 다른 사업들도 시작의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다. 박 시장으로선 국제정세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겠으나 엄밀하게 따지면 애초 중앙정부의 일과 지방정부의 일이 정치(精緻)하게 구분·설계되지 못한 탓이라고 보는 게 맞다.13년만에 인천시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신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구상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급변하는 남북관계와 국제환경 변화에 따라 보완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보완되는 구상안은 기존 계획 외에 나진·하산, 산둥·신의주 등 동북아 지역의 초국경 협력지대 사례도 분석해 실현 가능한 남북협력 사업의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다 좋은데 부디 지방정부의 현실과 실정에 맞는 안을 마련하길 당부한다. 남북협력사업을 국가나 중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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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학교 특수성 고려안한 중대재해처벌법 지면기사
학교장들이 1인 시위에 나설 태세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안(이하 중대재해처벌법)에 학교가 중대산업재해 대상에 포함된 것이 발단이다. 학교장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일면서 1인 시위까지 예고하기에 이른 것이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보도자료를 통해 "교육기관인 학교를 일반 기업, 사업장으로 취급해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유감"이라며 "이미 교육시설안전법 등에 책무와 처벌규정이 명시돼 있는 학교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교육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법안을 교육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처리한 것은 절차적으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교총은 중대재해처벌법상 학교·학교장 제외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법사위 방문과 공식 건의서 전달 등 전방위 활동을 펼친 바 있다. 그 결과 공중 이용시설·교통수단 등에 초점을 맞춘 '중대시민재해' 처벌 대상에서 학교는 일단 제외됐다. 그러나 '중대산업재해' 대상에서 학교·학교장을 제외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안전한 학교를 만들자는 법 제정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기존의 제도적 장치와 별도로 유사한 목적의 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 비효율과 혼선을 초래하는 제도의 남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학교의 경우, 교육시설안전법에 따라 학교장이 교육시설 안전사고의 책임을 지고 있다. 안전관리 및 유지관리, 안전점검 등도 책임져야 한다. 이에 따라 교육시설안전법, 산업안전보건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르기까지 안전, 보건 조치 의무와 처벌 규정이 산재돼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게 교총의 주장이다. 특히 학교장들은 기존 교육시설 안전법 등으로 처벌을 받는 상황에서 이중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주로 교육청 혹은 지역청에서 결정한 사항을 관리·감독하는 학교장 입장에서는, 사실상 '중간관리자'에 가까운 자신들이 사업주와 동일하게 법적용을 받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다.이같은 학교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법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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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만평 이공명 2021년 1월 13일자]소행성을 중심으로 돈다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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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의사들의 항변 지면기사
현직 관리와 왕실의 종친만이 응시했던 과거시험을 '등준시(登俊試)'라 한다. '등준시무과도상첩'은 영조 때 시행된 등준시 무과 합격자 18명의 초상을 모아 놓은 화첩이다. 그런데 이 중 세 명의 얼굴이 '곰보'다. 마마(천연두)를 앓은 자국이다. 역병은 양반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전염병이 있으니 당연히 방역행정도 있었고, 왕명으로 역병 관련 의서도 발간했다.허준이 지은 '신찬벽온방'엔 역병 예방을 위해 환자를 등지고 상대하고, 병자의 옷을 시루에 찌라고 했다. 현대판 거리두기와 소독의 개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몰랐던 시절이니 과학적 실증과는 거리가 먼 누적된 임상의 결과였을테다.현대 한의학은 허준 시대와 전혀 다르다. 한의대생들은 한의학과 양의학의 교과과정을 두루 섭렵하는 6년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한다. 국가는 자격시험을 통해 한의사 면허를 주고, 전국 시·군·구 보건소에 공중보건한의사를 배치한다. 한의사도 의사, 치과의사와 같이 국가가 질병 치료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한 의료인이다.코로나19 사태에서 한의사들이 단단히 뿔난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방역 일선 참전 의사를 밝혔다는데 정부가 미적거렸다고 한다. 검체채취, 역학조사와 같이 교육받은 일반인도 가능한 기초 방역에도 한의사 투입을 주저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역학조사관 80%가 공중보건한의사였고, 코로나 확진자 홈케어 시스템에도 한의사를 배치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단다. 하지만 경기도 사례일 뿐이다.양의학계는 바이러스가 한의학 영역 밖이라는 입장인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할 정부 입장은 이와 달랐어야 했다. 지난 1년, 한의사들을 검체채취, 역학조사, 경증환자 관리에 투입했다면 의료인력 대란도 막고 의미 있는 한의학적 임상 자료도 축적했을지 모른다. 중국은 양·한방 협진이 활발하다고 한다. 협진으로 사스 환자 사망률을 낮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정부가 코로나와의 방역 전쟁에서 양·한방을 구분하는 건 한가한 행정이다. 고양이 손발이라도 빌려 할 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