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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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류인플루엔자와 '산안농장' 사태 지면기사
기자 출신 저술가 앤드루 니키포룩은 '바이러스 대습격'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를 "세계화의 산물"이라며 "간단하게 말해서 이 엄청난 닭 유행병의 원흉은 산업적 방식으로 생산된 싸구려 고기를 탐닉하는 걸신들린 인간의 식욕"이라고 단정했다. 저자가 2006년 이 책을 펴냈을 때 이미 세계는 2억마리 이상의 새를 땅에 묻었다. 물론 대부분 양계 닭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 양계업계의 거물은 "모진 인간이 있어야 부드러운 닭고기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AI가 공장형 양계산업이 초래한 후천적 전염병이란 인식은 확고해졌지만, 여전히 양계산업은 공장형을 지향한다. 전통적인 친환경 사육방식으로는 닭고기와 달걀 수요를 맞출 수 없어서다.지난 2016~2017년 겨울, 정부는 AI 방역을 위해 3천800만마리를 살처분했다. 공장 닭과 달걀 공급이 줄자 난리가 났다. 가격이 배 이상 오른 달걀은 1인 1판으로 판매가 제한됐고, 파리바게뜨는 달걀이 많이 들어가는 빵 출하를 정지하는 등 에그플레이션 소동이 발생했다. BBQ가 치킨값을 올렸다가 세무조사 압박에 꼬리를 내린 것도 이때였다. 2천만마리가 살처분 된 올 겨울에도 공장형 양계산업을 비판하는 인도적 인간과, '공장 닭'에 의존하는 인간의 시장과 식욕이 공존하는 모순은 반복되고 있다.하지만 양계농가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밀집 사육 대신 친환경 사육으로 건강한 닭을 길러 AI를 극복하려는 농가들이 생겨난 것이다. 최근 방역당국의 일방적인 살처분을 거부한 화성 '산안농장'과 같은 동물복지 농장들이다. 친환경 축산은 가축전염병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AI 발생 원점을 기준으로 한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규정은 행정편의적이자 '모진 인간'의 발상이다."친환경적으로 동물권을 존중해가며 농장을 운영하는데 아무런 이점이 없으면 억울하지 않겠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판단이 상식적이다. 도 차원의 기준을 만들어, 예방적 살처분 위주의 AI 방역행정이 바뀌길 기대해 본다.19세기 독일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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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왕자를 낳은 후궁' 지면기사
숙종의 아들인 경종은 희빈 장씨 소생이다. 영조는 경종의 이복동생으로, 후궁 숙빈 최씨 소생이다. 비운의 사도세자는 영조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조 역시 아버지 정조와 후궁의 소생이다. 조선 후기 왕들은 대체로 정실인 왕비가 아닌 후궁들의 자식이다.왕자를 낳은 후궁의 위세는 정실과 자리바꿈할 정도였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해 서인(庶人)으로 강등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립(冊立)했다. 이런 변고로 10년 넘게 이어진 서인의 권력이 남인으로 넘어갔다. 정실로 등극한 희빈은 분에 넘는 권세에 취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사약을 받고 스러졌다.왕자 씨를 낳은 후궁이라고 죄다 유세를 떤 건 아니다.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는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세자에 책봉돼 훗날 왕위에 오른 순조다. 정조의 총애에도 수빈은 현명하고 겸손했다. 원자를 낳은 후에도 왕비인 효의왕후를 극진히 섬겼고, 혜경궁 홍씨 등 윗분들에게 예의를 다했다. 궁 안팎에서 어진 현빈이라는 칭송을 들었고, 평온한 삶을 살다 남양주 휘경원(徽慶園)에 잠들었다.여의도 의사당에 뜬금없이 '조선의 후궁'이 소환됐다. 여야 여성의원들에 의해서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을 향해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고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점을 비꼰 것이다. 앞서 고 의원은 "광진을 주민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출마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의원과 여권은 물론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고 의원은 '광진구민들을 모욕하는 발언'이라며 모욕죄 혐의로 고소장을 냈다. 40명 넘는 민주당 의원들은 조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기자회견문을 돌렸다. '도를 넘는 막말이자 시대에 남을 망언'이라며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조 의원은 사과했으나 여진은 가라앉지 않는다. 21대 국회 들어 여의도의 입들이 더 사나워지는 양상이다. 어지간한 막말은 놀랍지도 않게 됐다. 얼마 전, 야당 원내대표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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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사과' 뒤에 남겨진 '현실' 지면기사
연초부터 여권발 사과(謝過)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주거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한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있다"던 2019년 국민과의 대화 발언은 무색해졌다. 하지만 송구하다는 대통령의 사과가 '낙심한 국민'들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무주택 서민들은 폭등한 전·월세 가격에 울고 청년들은 제집 갖기를 포기한 채 영혼을 끌어모아 주식시장에 열중하고 있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실체가 없었던 검찰의 계좌추적을 사실로 단정한 잘못에 대해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자아비판했다. 그러나 유 이사장이 계좌 사찰 당사자로 지목했던 한동훈 검사장은 아직도 '채널A 검·언 유착' 사건 피의자다. 중앙지검 수사팀이 한 검사장 무혐의 결재를 올렸지만 이성윤 지검장이 외면한다고 한다.국가인권위원회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문 의혹에 대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직권조사 결과를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의 사과가 폭주했다. 피해 여성을 '피해호소인'으로 격하한 남인순 의원은 "깊이 사과 드린다"고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낙연 당대표도 "피해자와 가족들께 깊이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청년 최고위원 박성민은 "2차 가해와 민주당의 부족한 대처로 상처받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 대통령의 사과는 부동산 대란에 표류하는 국민에겐 공허하다. 유시민의 사과는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의 대상이었던 윤석열과 한동훈을 비켜가는 바람에 화려한 수사만 남았다.민주당 지도부의 사과가 6개월 지연되는 동안 피해여성은 집단적인 2차 피해를 감수했고 '박원순 살인자'로 고발될 처지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사과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친문진영의 2차 가해엔 침묵한다. 남 의원의 육성 없는 사과문은 온몸으로 2차 가해를 견뎌 온 피해자에게 가혹할 정도로 건조하다.민주당은 정의당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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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SK 와이번스' 인수한 신세계 지면기사
신세계그룹과 SK텔레콤이 26일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를 1천352억원에 100% 인수하기로 매매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전날 깜짝 발표에 이은 전격적인 가계약 체결에 구단과 선수는 물론 연고지인 인천 야구팬들 모두 '멘붕'이다. 신세계그룹의 새 인천 프로야구단의 모기업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인천 연고를 유지하고 현 SK 구단 프런트와 선수단 전원을 고용 승계한다. 대신 모기업 정체성이 변한만큼 'SK 와이번스'라는 구단 명칭은 사라질 것이 확실하다.인천 프로야구는 이로써 6번째 주인이 바뀌게 됐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이후 1985년 청보 핀토스-1988년 태평양 돌핀스-1996년 현대 유니콘스-2000년 SK 와이번스를 거쳐 2021년 이마트 시대가 열렸다. 이중 재창단 형식이었던 SK 와이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구단 매각 방식이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6번 있었던 구단매각 중 4번이 인천에서 벌어진 것이다.연고 구단과 팀의 잦은 교체를 지켜본 인천 야구팬들의 연고팀을 향한 애증의 역사도 장강대하 같다. '삼·청·태(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시절엔 저조한 성적으로 연고지의 자존심을 구겼다.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18연패를 끊던 날 인천 팬들은 우승만큼이나 기뻐했다. 현대 유니콘스가 1998년 인천 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하자, 인천 팬들은 애정으로 만년 꼴찌의 역사를 응원해 온 세월을 보상받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현대가 2000년 연고지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사달이 났다. 현대가 빠진 자리에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로 팀을 꾸린 SK 와이번스가 연고팀으로 왔지만 팬덤은 분열됐다. 인천야구의 영혼이 '삼·청·태'를 이은 현대 유니콘스에 있다는 팬들과, 새 연고팀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들로 나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돼 사라졌고, SK 와이번스는 한국시리즈를 네 번 제패하면서 인천 야구의 자존심이 됐다.신세계그룹이 인수하는 SK 와이번스는 인천시와 시민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유서 깊은 문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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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러시아의 봄' 지면기사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지지자들의 시위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암살 위기에서 극적으로 회생한 나발니는 독일에서 독극물 중독 치료를 받고 지난 17일 귀국한 뒤 구금됐다. 시위는 지난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 지역에서 시작돼 러시아 주요 도시로 번지고 있다. 당국은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들어 집회를 불허하고 3천여명을 체포했으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시위대는 나발니 석방을 외치지만 푸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을 위한 호화 별장과 숨겨진 딸의 행적을 폭로했다. 흑해 연안 휴양도시인 겔렌지크에 건설된 '푸틴 궁전'은 모나코의 39배 크기다. 1층에는 온천과 영화관, 분수대가 있는 야외정원이 있다. 2층에는 카지노·영화관·공연장, 지하층에는 하키 링크와 교회, 비상 대피로가 갖춰졌다.푸틴이 내연녀와 사이에서 낳았다는 루이자(17)가 구찌 마스크를 쓰고 술을 마시는 장면도 공개됐다. 입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샤넬, 발렌티노 등 명품으로 치장했다. 영국 학교에 다니는 또래 친구와 춤추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유학 가능성이 제기됐다. 엄마는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크(45)라는 여성으로, 금융 주주사 지분과 여러 부동산을 소유한 1억 달러 자산가라고 한 매체가 주장했다.크렘린 궁은 이런 주장들을 부인했다. 그런데도 푸틴과 측근에 대한 의혹은 더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독극물 테러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한 나발니가 기사회생해 가해 의심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푸틴은 나발니를 철창에 가뒀으나 공수(攻守)가 바뀐 양상이다.푸틴은 48세(2000년)에 러시아 3대 대통령에 취임해 20년 넘게 재임 중이다. 3연임이 금지된 2008~20012년 대통령 자리에 바지사장(메드베데프)을 내세워 총리를 지낸 뒤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규정도 없앴다. 종신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하지만 새해 들어 푸틴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다. 그를 둘러싼 거악(巨惡)의 실체가 속속 까발려지고 있다. 나발니 석방으로는 성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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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유시민의 사과문 지면기사
"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해석해 입증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2일 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이다. 역시 유시민은 '말'보다 '글'이 낫다는 생각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사과문 약속' 이행 여부로 증명되겠지만 '사과문' 자체는 사과의 정석을 담은 명문이다.'대립하는 상대를 악마화했고', '정서적 적대감과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져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유시민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널A 기자 발언요지'를 올렸다. "눈 딱 감고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한마디만 해라.", "문 대통령 지지율은 끝없이 추락하고 다음 정권은 미래통합당이 잡게 된다." 하지만 검·언유착 수사와 재판에서 이같은 발언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정한 '검·언 유착 사건'에서 '검'의 실체가 희미해지는 상황이다. 최 의원은 '사과' 대신 '법정'을 택할 모양이고, 추 장관은 침묵한다.현직 부부장 검사 진혜원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 대한 적대감도 이해하기 힘들다. 진 검사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법원을 향해 "사법이 (나치) 돌격대 수준으로 전락한 징후"라고 했다. 또 '꽃뱀'과 '문란한 암컷'을 언급한 페이스북 글을 올렸는데, 누가 봐도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겨냥한 조롱이었다. 법원과 피해자를 향한 진 검사의 과도한 악마화와 정서적 적대는, 유시민의 사과문을 그대로 인용해도 사과가 가능할지 의문이다.'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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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바이든 시대 개막 지면기사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대목이다. 그는 무기력한 시대, 신임 대통령으로서 미국 국민의 분발을 촉구했다.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재선 취임연설문은 고작 135단어에 불과했다. 연설에 걸린 시간이 2분이 못됐다. 가장 긴 취임사는 1841년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의 8천445단어 분량 연설이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2시간이 넘도록 연설을 한 후유증인지 해리슨은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역사상 가장 긴 취임연설을 한 주인공이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게티즈버그 연설의 주인공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재선 취임연설은 역대 미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아무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선의 마음으로 의로운 편에 굳건히 서서 우리가 처해 있는 일을 끝내도록 노력합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도록 온 힘을 다합시다. 전투에서 쓰러진 사람과 미망인, 고아들을 돌보도록 애씁시다'라고 연설을 마쳤다. 분량은 짧았으나 남북전쟁으로 갈라진 미국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평이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미국은 시험을 받았고 우리는 더 강해졌다"며 "우리는 어제의 도전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을 복구하고 다시 한번 세계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고립주의적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힘이 아닌 동맹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재정립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축제의 장이 아닌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코로나19 등으로 관람석은 성조기로 채워졌고, 2만5천여명의 군인들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고별 연설에서 새 정부 출범을 축하한다면서도 바이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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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경기도 '배달특급' 실험 지면기사
2010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한 김봉진은 스마트폰 배달대행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배민)'을 출시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거한 전단지로 배달대행 음식점 네트워크를 만들어 키운 배민이 이젠 4조8천억원짜리 배달앱 최강자로 성장했다. 배달앱(요기요·배달통) 운영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민을 인수하겠다며 평가한 기업가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연말, 요기요와 배달통 매각을 조건으로 DH의 배민 인수합병을 승인했다. 천문학적인 현금과 경영 참여를 보장받은 김봉진은 우아하게 성공신화의 정상을 지르밟았다.창업자의 유니콘 '배민'. 하지만 음식자영업자와 배달노동자에겐 상전 중의 상전이다. 연초 눈 쌓인 도로 위에서 배달 라이더들은 오토바이 곡예를 벌였다. 비판 여론이 폭주하자 놀란 배달앱들은 일방적으로 배달을 셧다운 시켰다. 그러자 이번엔 코로나19 이후 배달에 목을 맨 많은 음식점들이 하루 장사를 접어야 했다. 배달앱에 종속된 배달 노동자와 음식자영업자의 구차한 현실이 폭설로 여지없이 드러났다.배달앱에서 음식점들이 벌이는 경쟁은 살벌하다. 배달 수수료와 광고비 부담은 필수고, 고객들이 지불해야 할 배달비를 떠안기도 한다. 비용이 늘어난 만큼 매출을 늘리기 위해 배달앱 광고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객 평점은 저승사자다. 악질 고객의 별 1개에 매출이 곤두박질친다. 음식에서 맛과 정서는 사라졌다. 시간 엄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배달 노동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자산이라곤 온라인 네트워크뿐인 배달앱만 비정규 노동과 영세 자본 위에서 환하게 웃는다. 배달앱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자본을 지배하는 미래를 보여준다.경기도 공공배달앱 '배달특급'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지난해 12월1일 오산, 화성, 파주시에서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배달특급'은 수수료 1%에 광고비도 없다. 지역 화폐 할인혜택도 있다. 자영업자와 소비자 상생 배달 플랫폼이다. 덧붙여 고객 갑질의 온상인 고객 평점 제도는 없었으면 한다.경기도는 배달특급 서비스를 올 3월까지 수원 등 6개 시·군으로, 연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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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로나 1년의 신세계 지면기사
1년 전 오늘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왔다. 국내 입국한 중국 여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확한 학명 없이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이 여성은 인천의료원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완치된 뒤 귀국했고, "한국 의료진은 나의 영웅"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코로나 청정국의 미담은 2월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악몽으로 변했다. 신천지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첫 확진자 발생 후 1차 대유행까지 채 한 달이 안 걸렸다.신천지교회, 사랑제일교회, 겨울철 등 세 차례 대유행을 거치면서 지난 1년 동안 7만3천115명이 확진됐고, 1만2천364명이 치료 중이며, 1천283명이 사망했다. 특히 수도권 겨울 집단감염인 3차 대유행이 정점이었다. 전체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올 겨울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민간인 사망 기록일 듯 하다. 물론 전 세계 코로나 환자가 1억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200만명을 넘어선데 비하면 선방한 것은 맞다. 하지만 비극은 절대적이라 상대평가가 불가능하다.코로나로 열린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인류는 이동을 멈추고 국경과 집안에 갇혔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비대면 세계의 확실한 지배자로 떠올랐다. 방역의 전권을 쥔 권력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민주주의, 인권 등 오프라인 시대의 핵심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노 마스크(No Mask)'를 고집하던 트럼프는 탄핵심판대에 올랐고, 존슨 영국 총리는 죽다 살아나고서야 마스크를 썼다. 스웨덴의 자연집단면역 실험은 대참사로 막을 내렸다.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를 쥐잡듯 잡았던 우리 정부를 향해 서울 동부구치소 재소자는 "살려달라"로 외쳤다.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표준을 만든 K-방역의 위세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뒤지면서 빛이 바랬다. 무엇보다 정부의 자의적인 방역기준에 저항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2월 마스크 없이 신촌상가를 방문해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다"고 농담을 건넨 정세균 국무총리는 1년 만인 지난 1월 국회에서 위기의 자영업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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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현실이 된 '벚꽃 엔딩' 지면기사
지난해 3월21일, 전국 처음으로 창원에 벚꽃이 피었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평년보다 8일가량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요 도시의 벚꽃 개화시기는 대구 3월22일, 부산 23일, 광주 27일, 대전 30일 서울 4월6일, 인천·춘천 4월8일이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국내 대학들 얘기다. 벚꽃이 일찍 피는 지역에 소재한 학교부터 폐교한다는 암울한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말대로라면 경상·전라 지역 대학들이 먼저 문을 닫고 다음은 충청, 강원, 수도권 순서가 될 것이다.2021학년도 정시모집 마감 결과 전국 주요대학들의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주요 8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4.73대1로, 서울대를 제외하고 모두 하락했다. 지방거점국립대학들도 하락 폭이 컸다. 전남대는 2.70대1에 머물렀고, 경북대 3.11대1, 전북대 3.17대1이었다. 수도권 대학은 평균 4.8대1로, 지난해 5.1대1보다 0.3 포인트 낮아졌다.정시모집에서 각 대학은 가·나·다 군(群)으로 나눠 학생들을 뽑는다. 응시생은 최대 3곳까지 대학을 지원할 수 있다. 이때문에 정시모집 경쟁률 3대1은 1대1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지방 소재 대학들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평균 2.7대1이었다. 상당수 학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입시 전문가들은 이른바 '벚꽃 엔딩'이 이제는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됐다고 진단한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지방대와 전문대에서 정원 미달에 따른 재정 악화로 폐교하는 학교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거다. 실제로 2024년에는 대입 가능 자원이 37만3천400여명에 그치면서 대학 정원의 25%를 채울 수 없는 것으로 예측됐다.학령인구가 급감하는데 대학 정원은 여전하다. 교육부는 대학 기본역량 평가를 통해 구조개혁을 유도하고 있으나 미미한 숫자다. 벚꽃이 이미 충청도를 지나 수도권 남부지역에도 개화했다고 아우성이다 비수도권은 대학마다 학생 충원에 비상이다. 장학금에 기숙사 확충은 대학 공통어가 됐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갈수록 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