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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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유리창 대선정국 지면기사
문재인 대통령은 SNS 신년 메시지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다"며 '국민 일상의 회복'을 약속했다. 2일 현충원 방명록에도 '국민의 일상을 되찾고 선도국가로 도약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달아오른 여야 대권 경쟁으로 대통령이 코로나 방역에만 전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년사에 선전포고를 담았다. "잘못된 정치의 근본을 바꿔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살 수 있다"며 국민의힘이 "국민 공감 수권정당으로 우뚝 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본격화될 대선정국을 염두에 둔 출사의 변이다.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긴 어둠도 새벽의 기운을 이길 수 없다"며 불퇴전의 의지를 과시했다. 야당은 이미 선거현장에 가 있다.여당의 간판 대권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신년사도 관심을 끌었다. 이 대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각계의 협력과 참여를 얻겠다"고 문학적 서사로 대권포부를 밝혔다. 반면 이 지사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경제적 기본권 확대, 공정 세상 실현, 복지 확대, 균형발전과 평화정착을 내세웠다. 대선 슬로건과 정책으로 손색이 없다. 이미 당내 경쟁은 시작됐다. 이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으로 중도층을 겨냥한 통합 행보를 시작했고, 이 지사는 '나까지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전략적 침묵으로 대응했다.하지만 여론의 가장 큰 관심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신년사에서 "국민의 검찰이란 오로지 그 권한의 원천인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가, 사회의 집단적 이익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핵심 가치"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그의 신년사를 법과 정치 사이에 두고 어디에 가까운지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여권은 친문(親文)진영 대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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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송구영신(送舊迎新) 지면기사
삼백예순의 나날들/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홀가분이 섞여 있다/ 우리 함께 했기에 좋았던 한 해/ 설레이며 새해를 맞이하라(서윤덕 시인의 '송년').2020 경자년(庚子年)은 전염병의 창궐로 일상이 무너진 참담한 한 해였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살기 위해 흩어져야 했다. 상투적으로 건네는 '건강하시죠'란 인사말이 진심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가 됐다. 인적마저 끊긴 세모(歲暮)의 밤거리, 칼바람이 매섭다. 너도 답답하고, 나도 우울하다. 시인도 지난 삼백예순의 나날들이 '좋았던' 건 아닐 듯하다.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황금찬 시인의 '나의 소망' 중에서).2021 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동해안 정동진이 갇히고, 한남정맥 광교산을 둘러막아도 해는 솟아오른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희망이 있고, 설레는 마음에 즐거움이 넘친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둘러보는 여유로움이 충만하고,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한 마음을 가져본다. 수천 도(度) 열기를 응축한 시뻘건 해를 보면서 작은 소망 하나 축원(祝願)한다. 새해를 마중한 시인은 사랑과 소망을 노래했다.역술로 보면 신축년은 절기상 12월로, 새벽 1시 언저리다. 칠흑 같은 어둠과 꽁꽁 언 대지를 가리킨다.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 한 역술인은 천재지변과 홍수, 지진 등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 창궐을 예지해 유명세를 떨친 14살 인도 소년 아비냐 아난드의 예언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천재지변은 물론 전쟁과 이변으로 세계 경제가 붕괴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디난 일 애다디 말오 오는 날 힘써서라/ 나도 힘 아니 써 이리곰 애다노라/ 내일란 바라디 말오 오늘 나를 앗겨서라'(매암 이숙량(1519~1592). 오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건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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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2020년' 지면기사
2020년이 오늘 하루를 끝으로 저문다. 올해도 늘 그렇듯 음력 경자년(庚子年)을 가불해 상서로운 기대로 양력 첫 날을 열었다. 경자년 흰 쥐가 다산과 재물을 상징한다며 풍요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2020년 자영업자 주머니는 탈탈 털렸고, 나라 곳간엔 빚 문서만 쌓였다. 출산율은 역대 최악 기록을 갱신했다. 경자년 코로나19 대란에서 무사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모든 일이 틀린 점괘 탓이라면 40여일 남은 경자년을 뭉텅 잘라내고 싶을 정도다.2020년은 인류 전체가 문명을 전환한 '코로나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사회의 비대면 문화가 확산일로다.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손익계산을 따져보며 화상회의를 정착시킬 태세다. 배달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수많은 식당들이 온라인 배달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온라인 산업혁명을 재촉하는 형국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간소해지고 송년모임은 사라졌다. 익숙해지면 문화가 된다. 코로나가 끝나도 코로나가 남긴 변화는 이어질 것이다.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 서로 따뜻한 정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 살벌하게 서로 맞선 한해였다. 정치 탓이다. 코로나 때문에 광장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간 정쟁은 서로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연초 대통령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탄생하는" 상생의 탈피를 다짐했지만, 나비는 날지 않았다."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무산 조오현 '죄와 벌')" 정권의 누군가가 선승( 禪僧)의 깨달음을 흉내만 냈더라도 정치가 이리 망가졌을까 싶다. 벼락 맞을 정치가가 없으니 국민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 신세가 됐다. 아시타비(我是他非) 지옥을 2020년에 실어 보내긴 힘들 모양이다."어서 잊을 건 잊고 용서할 건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이해인 '송년의 시')" 그래도 연말이다. 한 해의 희로애락을 정리 정돈할 인연들이 그립고 보고픈 건 어쩔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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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동부구치소 팬데믹 지면기사
법무부는 지난 28일 초유의 구치소 수감자 소개작전을 벌였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 345명을 청송교도소로 이송한 것이다. 이송 버스는 히터도 잠근 채 운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전파될까 그랬단다. 청송교도소 교도관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7개 조가 돌아가며 2박3일 근무한 뒤 14일 동안 외부와 격리된다. 수감자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동부구치소가 한숨 돌린 것도 아니다. 이날 하루 230여명의 확진가가 추가로 쏟아져 나왔다.코로나 사태 초기 세계 각국에서 교도소 탈옥과 폭동사건이 속출했다. 브라질, 베네수엘라, 칠레 등 중남미 국가는 물론 이란, 스리랑카 교도소에서 코로나19 예방조치에 반발하거나 감염 공포에 휩싸인 재소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집단탈옥을 감행했다. 미국은 교도소 감염과 폭동을 우려해 경범죄자들의 조기 석방을 단행했다. 이를 노리고 코로나에 걸리려 물컵을 돌려쓰다가 적발된 재소자들도 있었다.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은 상식적으로 예상 가능한 참사였다. 교정시설 수용규정에 따르면 혼거실의 1인당 배정면적은 2.58㎡, 1평도 안 된다. 외부와 격리된 채 혼거실에 수용된 수감자들은 전염병의 손쉬운 표적이고, 일단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속수무책이다. 지난 20일 동부구치소의 한 수감자가 창틀에 매달려 옷가지를 흔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한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고, 어제도 한 수감자의 절박한 '창문 SOS'가 포착됐다. 수감자들의 감염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힘들다.교정시설 코로나19 대책은 이미 실행중이었어야 맞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법무부의 해명이 걸작이다.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를 매일 지급했다면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을 것"이란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는 형사 피의자 인권보호를 목청 높여 외쳤다. 피의사실 공표도 안 되고 포토라인도 없앴다. 그런 법무부가 교정시설 수감자에겐 인권보다 국민여론을 앞세운다. 인권의 보루인 법무부의 인권의식이 선택적이라면 심각한 문제다.동부구치소 팬데믹 이후에야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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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취업 포기한 청년들 지면기사
'프리터(Free + Arbeit)족'은 직업이 아르바이트인 젊은 층을 말한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알바를 한다. '니트(NEET) 족'은 일하지 않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들이다. 15~34살 취업인구 중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도, 가사 일도 하지 않는다. 취업하겠다는 의욕도 없기에 의지가 충만한 프리터족과 구별된다.통계청은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다'는 응답자가 235만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중 4년제 대학을 나와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으며 그냥 쉰 20·30대 청년이 19만3천명이다. 지난해 11월 대졸 청년 백수는 13만7천명이었다. 1년 전보다 4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대졸 백수 중 20대는 10만6천명, 30대는 8만7천명이다.역시나 코로나19 탓이 크다. 기업 채용 규모가 확 줄어든 데다 주요 대면 업종의 부진이 심각하다. 숙박·음식점, 스포츠·예술, 여행·교육 서비스업 등 청년 고용 업종이 치명상을 입었다. 일자리를 찾다 지쳐 의욕을 잃은 청년세대가 늘어난 이유다.니트족은 소비 능력이 평균에 못 미친다. 이렇다 할 소득이 없으니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경제 활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불안을 유발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취급된다.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초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이 2009년 OECD 37개국 중 14위에서 2019년 28위로 14계단 크게 하락했다고 밝혔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대졸자 실업률은 2009년 6.1%에서 2019년 5.3%로 0.8%p 개선됐지만, 한국은 5.0%에서 5.7%로 0.7%p 악화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8%p(5.2%→2.4%), 일본은 2.1%p(4.7%→2.6%) 낮아졌다.새해에도 일자리 시장엔 먹구름이 짙다. 코로나 조기 종식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좀비 기업이 늘어나는 민간 경제도 불안하다. 불과 2개월 뒤면 다시 졸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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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로나 사망자를 위한 애도 지면기사
인종과 문화는 달라도 망자와 이별하는 상례(喪禮)는 엄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예법이 무너진다. 대규모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엔 스페인 독감 사망자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매장지가 도처에 산재한다. 실록에 1천400여건의 역병 기록을 남긴 조선 조정은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버려진 시신을 모아 매장하거나, 그것도 힘에 부치면 한데 모아 화장하기도 했다.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존엄한 죽음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계 누적 사망자가 174만여명인 상황에서 희생자에 대한 예의는 사라졌다. 발생 초기 중국에선 시신을 트럭에 한데 실어 처리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1등 국가인 미국에선 냉동 컨테이너에 시신을 보관하는 실정이다. 많은 국가에서 장례식은 생략됐고, 가족과 대면도 못한 채 화장됐다."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부고 소식을 알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상주 000."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받은 4건의 SNS 부고 내용이 한결같았다. 그 밑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이 빼곡하게 매달렸다. 부고를 알리는 상주나, 찾아가 애도하지 못하는 문상객들 모두 죄송하고 미안한 심경인 코로나19 장례식 풍경이 참담하다.일반 장례식 풍경이 이럴진대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들의 심경은 어떨지 상상하기 힘들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은 선 화장 후 장례가 원칙이다. 임종을 지켜보려면 의료진 수준의 방호복을 입어야 하지만, 고인과의 마지막 대면은 사실상 힘든 모양이다. 의료용 비닐백에 밀봉된 시신은 수의도 입지 못한 채 가능한한 당일 화장한다. 우리 장례문화에서 이런 식으로 부모와 혈육을 보내는 건 평생 한으로 남을 일이다.이렇게 시나브로 우리 곁을 떠난 코로나 사망자가 어제까지 808명이고, 12월 한 달에만 280여명이다. 요양병원에서 전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고령자도 적지 않다. 상례의 생략도 가슴 아프지만, 최선의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두고두고 유족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수십만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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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로나 크리스마스 지면기사
해외입국자 2주 격리 조치로 올해 산타클로스는 내년 1월9일에나 온다는 유머에 어른들은 웃지만, 어린이들은 정색한다. 지난달부터 세계 각국에서 산타의 썰매 운행과 선물 배송이 가능할지 묻는 어린이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절박한 민원에 어른들의 답변도 진지하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산타클로스는 국제 통행허가증을 갖고 있다"며 썰매 운행을 약속했고,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북극에 가서 산타에게 직접 백신 주사를 놓았다"며 선물 배송을 장담했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올해도 산타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분장한 산타와 어린이가 만나는 산타클로스 이벤트도 코로나19 버전으로 변형됐다. 오프라인 행사에선 산타는 마스크를 쓴 채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어린이와 만나야 한다. 이도 불안한 부모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에 산타를 초대한다니 코로나 이후에도 번창할 사업일 듯싶다. 모두 크리스마스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어른들의 눈물겨운 노력들이다.하지만 어른들의 크리스마스는 훈훈한 사연 한자락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삭막하다. 어제부터 시행된 수도권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으로 성탄절 거리들이 텅 비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부터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연말연시를 전후한 해넘이, 해돋이 명소들도 폐쇄됐다.한 해의 수고를 위로하며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던 인간관계들이 모두 분리된 채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혔다. 지난달부터 성탄 대목을 준비했던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폐업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산타는 올테지만 썰매에 선물을 실어야 할 부모들의 지갑은 썰렁하다.이번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 백신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풍족하게 확보한 국가들은 이미 국민들에게 속속 성탄절 백신 선물을 배달 중이다. 성탄절 만찬을 즐기는 행복한 가족들을 창밖에서 훔쳐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다.1년 내내 정부가 시키는 대로 코로나와 맞서 온 착한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을 정부는 K방역의 주역이라고 떠받들었다. 착한 순서로 따지면 산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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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미 육군대장의 백신 사과 지면기사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배송을 총괄하는 '초고속 작전(Warp Speed)'의 책임자는 구스타브 퍼나 육군대장이다. 퍼나 대장은 화이자 백신 공급 디데이 직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디데이는 2차 세계대전 종결의 시작이었다"며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백신 공급이 개시되자마자 14개 주에서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퍼나 대장은 지체 없이 국민을 향해 사과했다. "내 잘못이다. 백신 확보 계획에 실수가 있었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주지사들에게 "사과를 받아달라"고 했다. 백신만 기다리는 민심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즉각적이고 솔직한 사과로 막아냈다. 미국은 현재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 백신까지 순조롭게 공급 중이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백신 계약을 재촉하고 있다며 갑의 여유를 부렸다. 4천400만명 분의 백신이 확보됐다고도 했다. 대통령은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3차 대유행이 한창인 지금 백신은 없고 접종계획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급기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화이자, 모더나의 내년 4분의1분기 접종 불가를 시인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남는 백신을 이웃나라에 나눠준다는 마당에, 우리는 당분간 백신을 구걸해야 할 처지가 됐다.문재인 대통령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몇 번이나 강조한 백신 확보가 안 된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했다는 전언이다. 안민석 의원이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 했던 문 대통령이 화를 냈으니, 백신 문책 인사가 있을지 궁금해진다.안면마비 등 부작용을 들어 백신 안전성 검증이 먼저라며 '백신 백수(白手)' 현실을 강변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부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보다 안전성이 떨어져 생산허가가 지연되고 있다. 내년 1월 이 백신이 실제로 공급돼도 많은 국민이 접종을 망설일 수 있다. 김 원내대표는 솔선해서 접종을 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정치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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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중대재해기업처벌법' 지면기사
지난 한 해 전국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10만9천242명으로, 재해율은 0.58%다. 2018년도 10만2천305명보다 6천937명(6.7%) 늘어난 수치다. 근로현장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855명으로, 10만명 당 0.46명이었다. 원인별로는 추락 사고(떨어짐)가 40.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조업과 건설현장에서 주로 발생하는 끼임 사고(12.4%)와 부딪힘 사고(9.8%)가 뒤를 이었다.지난 20일 평택시의 한 물류센터 신축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골격이 무너져 내려 노동자 5명이 1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는 공사현장 6층 높이 자동차 진입 램프 구간에서 발생했다. 사상자는 모두 중국 국적의 노동자들이었다.지난 10월에는 광주시 곤지암읍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장 철공 위에서 작업하다 15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같은 달 5일에는 하남시 망월동 건축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중국 국적의 4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 올해 상반기 건설업 사망사고는 25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9명보다 25명(10.9%) 늘어났다. 이 가운데 추락 사고가 전체의 49%(126명)나 됐다.건설 현장에서 중대사고가 나 여럿이 죽거나 다쳐도 법인대표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정도에 그친다. 대체로 현장 책임자를 처벌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상례다. 때문에 노동계를 중심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다.국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 책임자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재해를 줄여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갈리고 사용자와 노동계가 맞서면서 찬반논란이 거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형벌이다'는 주장에 '해외는 상한 없는 무기징역'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경영계는 '누가 건설회사 사장 하겠느냐'는 볼멘소리다.죄와 벌은 균형추가 맞아야 한다. 다수의 인명을 앗아간 사고가 났는데 벌금 몇 푼으로 그치는 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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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아시타비'(我是他非) 지면기사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 해의 한국 사회상을 압축해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회의 길흉화복이 대체로 국정의 결과인 만큼, 정권을 향한 촌철살인에 대중은 무릎을 쳤다.'올해의 사자성어'는 집권 내내 박근혜 정권의 뼈를 때렸다. 집권 첫해인 2013년엔 '도행역시'(倒行逆施)로 아버지 박정희 시대와 단절하지 못한 인사와 정책을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이 터진 2014년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2015년은 연초부터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대응은 부실했다. 집권여당(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이 보수혁신 깃발을 들자,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는 한마디로 내쳤다. 그해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의 도리가 혼란해졌다는 얘기다.2016년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박근혜 정권이 국정농단 게이트로 분노한 민심에 엎어진 장면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박근혜가 '도행역시'나 '지록위마'쯤에서 정신 차렸다면 '군주민수' 만큼은 면했지 싶지만, 허망한 상상이다.전 정권에 실망한 교수들은 문재인 정권 첫해인 2017년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박근혜 정권 적폐 청산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2018년엔 격려에 경고를 담아,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했다. 정권은 지방권력을 싹 쓸어 담았지만, 일자리가 줄면서 민심을 건드렸다. 국민지지와 국정능력의 키 높이가 다른 상황을 경고하며, 분발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더니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지난해엔 '공명지조'(共命之鳥)라 했다. 서로 싸우다 모두 망한다는 뜻인데, 그래도 진보와 보수를 향한 양비론으로 애써 균형을 유지했다.그런데 올해는 출처도 없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그대로 한자로 옮겼다. 내로남불은 지난해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조적조(曺敵曺)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