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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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육군참모총장 진정한 주임원사들 지면기사
명량해전 전야.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했다. "병법에 이르길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必死則生) 반드시 살려 하면 죽는다(必生則死) 하였다. 너희 각 제장들은 살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小有違令) 즉시 군율로 다스릴 것이다(卽當軍律)."명령은 지엄했지만 공포는 현실이었다. 해전 당일 삼백여척의 적선을 마주한 조선 수군은 겁에 질렸다. 이순신의 배가 적진을 향해 돌격했지만 부하 장수들은 전선 뒤에서 머뭇댔다. 장군은 깃발을 올려 집합 명령을 내렸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하자 일갈했다.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 하느냐." 뒤이어 도착한 중군장 김응함도 추상같이 질책했다. 정신이 번쩍 난 안위와 김응함은 그제서야 적진 한복판으로 돌격했다.죽음을 무릅쓰고 명령을 수행하는 조직이 군대다. 상관의 명령이 안먹히는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강한 군대와 유능한 지휘관들이 상명하복의 군기 유지에 애쓰는 이유다. 이순신은 군기 빠진 군관과 병졸들의 볼기를 쳤고, 탈영병의 목을 베어 군영에 효시했다. 군기 위반엔 인정을 두지 않은 덕분에 전장의 공포 한 가운데서 겁에 질린 부하를 적진에 돌격시킬 수 있었다.육군 부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남영신 총장은 지난 연말 육군 주임원사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느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문화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주임원사 몇 명이 총장 발언으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고 진정서를 작성했단다.참모총장이 직접 훈시에 나설 정도면 장교와 부사관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인 모양이다. 실제로 장교의 반말 지시를 무시하고, 장교에게 경례를 생략하는 부사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장교들이 부사관과 병사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군기 문란 사건도 속출했다. 물론 장교들도 베테랑 직업군인을 예우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예우와 존중이 상명하복의 군기를 깨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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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 지면기사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무허가 판잣집을 정리하기로 하고 광주군에 위성도시인 광주대단지를 조성해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철거민들에게 싼 가격에 토지를 분양해주고 세금을 면해주겠다고 했으나 이는 말뿐이었다. 주민 불만은 극에 달했고, 서울시장은 약속한 면담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주민들은 폭발했다. 1971년 8월10일 대단지 주민 5만여명이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세금 감면과 분양가 인하, 공장과 상업시설 설치, 취업센터 설치 등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경찰기동대 700명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분노한 주민들은 경찰을 제압하고 관리사무소와 파출소에 방화하는 등 대단지 전역을 초토화했다.지나던 승용차와 택시, 버스를 멈춰 세우고 승객들을 모조리 끌어내 운송 수단을 확보한 뒤 서울로 이동했다. 정부는 즉시 사과하고 이주민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등 화를 달랬다. 이틀 뒤 서울시장이 광주대단지를 성남시로 승격하고 주민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시위대는 자진 해산했다.이 사건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한 해방 후 최초의 시민 생존권 투쟁이었다. 일부 학자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한다. 반면 처음부터 지역을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는 견해가 맞선다.성남시가 '광주대단지사건 50주년'을 맞아 올바른 명칭 지정 등 기념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사업추진위를 구성해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대와 공동으로 학술토론회, 주민주도형 골목축제, 기획 공연 및 전시, 사적지 기념 동판 설치, 시민통합 토크쇼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대단지 사건은 전태일 분신사건과 함께 하위계층의 권익향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세제지원과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정부가 무력진압 대신 굴욕적인 협상을 택한 드문 사례다. 하지만 관련자 명예회복이나 보상은 여전히 미미하다.50주년을 맞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100만 성남시는 서울에서 쫓겨난 빈민들의 서러운 눈물과 한(恨)을 딛고 일어섰다. 그런데도 정부의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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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기로에 선 'SNS 민주주의' 지면기사
트위터가 트럼프 영구 퇴출을 발표했을 때 커다란 논란이 일 것으로 짐작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의사당 점거 난동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우방은 경악했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은 조롱했다. 글로벌 SNS 기업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정의로운 심판처럼 보였다.이성은 늘 감성의 뒤를 따른다. 트럼프를 영구 퇴출한 트위터가 표적이 됐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SNS 기업들이 미국 대통령 입에 지퍼를 채운 초현실적인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나쁜 권력자라는 트럼프의 평판은 사실이지만 민간기업이 그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는 없다는 얘기다.인권은 표현의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지지한다. 법에 의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트럼프 퇴출은 이 원칙에 반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트위터가 자유민주주의의 심장인 미국 한복판에서 전제 권력을 행사하자 자유진영의 정치인들이 뒤늦게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미국 시민의 자유발언이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티브 데인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의 탄식은 참담하다. 트럼프 변호가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경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계정 영구정치는 문제"라고 가세했다. 의회 점거 사태와 트위터의 트럼프 계정 폐지로 미국의 온·오프라인 민주주의가 한꺼번에 추락했다.표현의 자유를 확장해 준 SNS가 이젠 저질 정치인들의 팬덤 정치 수단으로 변질한 건 사실이다. 트럼프가 증거다. '페북 정치'의 살벌한 대치로 합리적 대중을 소외시키는 우리 정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SNS 정치집단은 타인의 인권을 예사로 유린한다. 자유와 방종이 SNS 해방구에서 위험하게 동거 중이다. 그렇다고 SNS 기업의 개입을 허용할 수도 없다. 트럼프가 선례가 되면 여론에 의지한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검열을 인정하는 셈이다. 선출된 권력이 무력해지고 시민권력이 왜곡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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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의사들의 항변 지면기사
현직 관리와 왕실의 종친만이 응시했던 과거시험을 '등준시(登俊試)'라 한다. '등준시무과도상첩'은 영조 때 시행된 등준시 무과 합격자 18명의 초상을 모아 놓은 화첩이다. 그런데 이 중 세 명의 얼굴이 '곰보'다. 마마(천연두)를 앓은 자국이다. 역병은 양반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전염병이 있으니 당연히 방역행정도 있었고, 왕명으로 역병 관련 의서도 발간했다.허준이 지은 '신찬벽온방'엔 역병 예방을 위해 환자를 등지고 상대하고, 병자의 옷을 시루에 찌라고 했다. 현대판 거리두기와 소독의 개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몰랐던 시절이니 과학적 실증과는 거리가 먼 누적된 임상의 결과였을테다.현대 한의학은 허준 시대와 전혀 다르다. 한의대생들은 한의학과 양의학의 교과과정을 두루 섭렵하는 6년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한다. 국가는 자격시험을 통해 한의사 면허를 주고, 전국 시·군·구 보건소에 공중보건한의사를 배치한다. 한의사도 의사, 치과의사와 같이 국가가 질병 치료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한 의료인이다.코로나19 사태에서 한의사들이 단단히 뿔난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방역 일선 참전 의사를 밝혔다는데 정부가 미적거렸다고 한다. 검체채취, 역학조사와 같이 교육받은 일반인도 가능한 기초 방역에도 한의사 투입을 주저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역학조사관 80%가 공중보건한의사였고, 코로나 확진자 홈케어 시스템에도 한의사를 배치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단다. 하지만 경기도 사례일 뿐이다.양의학계는 바이러스가 한의학 영역 밖이라는 입장인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할 정부 입장은 이와 달랐어야 했다. 지난 1년, 한의사들을 검체채취, 역학조사, 경증환자 관리에 투입했다면 의료인력 대란도 막고 의미 있는 한의학적 임상 자료도 축적했을지 모른다. 중국은 양·한방 협진이 활발하다고 한다. 협진으로 사스 환자 사망률을 낮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정부가 코로나와의 방역 전쟁에서 양·한방을 구분하는 건 한가한 행정이다. 고양이 손발이라도 빌려 할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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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기면성(大器免成) 지면기사
동트기 전, 어둑한 식당 앞에 사람들이 몰려와 줄을 선다. 추위에 떨며 서너 시간을 기다리다 오전 8시쯤 문이 열리면 차례대로 입장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되풀이되는 미국 텍사스주 '스노스(Snow's)' 바비큐 식당의 진풍경이다. 직원이 10여명 남짓한데 요리는 86세 '투치 토마네츠 아줌마'가 전담한다.경력 60년의 아줌마는 평일에는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잡역부로 일한다. 출근하면 청소하고 나무를 단장한다. 그의 바비큐는 주말 하루만 허락된다. 토요일 새벽 1시에 일어나 바비큐 요리를 준비한다. 전체 소요시간은 12~16시간이다. 소·돼지·닭·칠면조를 전통방식으로 구워낸다. 화력이 절정인 숯불을 삽으로 화로에 붓고, 화덕에 고기를 올려 열기와 연기로 익혀낸다.'천상의 맛'이라는 투치의 바비큐를 맛보기 위해 미국 전역과 유럽, 아시아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수백 미터 줄을 서야 먹을 자격을 얻지만, '괜한 고생을 했다'는 사람은 없다. 여든 중반이 넘은 노구에도 여전히 식자재 구매부터 요리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최고의 바비큐 장인은 여전히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한다.남편과 아들을 잃고 한동안 실의에 빠졌었다. 단골은 물론 먼 나라에서 온 식객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다시 힘을 냈다. 전에는 까칠했는데 손님들과 더 가까워졌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덕분에 '한 입 베어 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는 마법의 바비큐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80대 장인의 전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시리즈에 소개됐다. 어떤 시청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꼭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가 됐다'고 한다.노자의 도덕경에 '대방무격(大方無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구절이 있다. 큰 사각(四角)은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거다. 늦은 나이에 출세하거나 이름을 떨치게 된 인사를 일컫는다. 어떤 학자는 노자가 말한 건 대기만성이 아닌 대기면성(大器免成)이었다고 한다. 큰 그릇은 완성됨이 없이 계속 만들어질 뿐이라는 것. '큰 사각은 모서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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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벙커 정치'와 트럼프의 몰락 지면기사
자신이 선동한 폭도들이 의회의사당을 유린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광기의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국내 한 언론의 미 언론 보도 종합에 따르면 트럼프는 "거의 흥분 상태였고 완전히 괴물 같았다"고 한다. 의사당 폭도들을 "미국의 애국자"로 치켜세우면서, 자신의 부통령 펜스는 선거인단 개표를 막지 않는다며 배신자로 몰았다. 보도는 트럼프의 광증을 "현실을 직시할 수 없는" '벙커 멘탈리티'라 했다.'벙커 멘탈리티'는 고립무원의 비이성적인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조어로 보인다. 외부와 단절된 벙커에 갇히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해진다. 베를린 함락 직전 총통벙커에서 결사항전을 지휘한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가 그랬다. 그는 지하 10m 벙커 안에서 연합군에게 반격과 수비를 명령했지만, 이를 수행할 독일군은 궤멸했고, 2인자 헤르만 괴링은 대놓고 등을 돌렸다. 히틀러는 벙커 안의 가상현실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광기로 제국의 최후를 지휘했지만, 그렇다고 패전의 현실이 변할리 없었다. 그는 약혼녀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자살로 생을 마쳤다.임기 말 트럼프도 파국을 향하고 있다. 의사당 폭력 선동은 최악의 정치적 착란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반란 선동자로 규정하고 탄핵을 예고했다. 반란자를 단 하루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공화당도 변명할 엄두를 못 낸다. 백악관 참모들과 장관들은 정권에서 줄지어 하차했고, 대학들은 트럼프의 명예박사학위를 취소했다. SNS 대기업들이 결정적 한방, 벙커버스터를 투하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트럼프 계정을 영구정지하거나 폐쇄한 것이다. 트럼프는 벙커정치의 엑스칼리버를 압수당한 채 온라인 정치에서 삭제될 처지다.멘붕에 빠진 트럼프는 오락가락한다. 여론의 반전에 놀라 '질서있는 정권 이양'을 발표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엔 불참한단다. 강성 트럼프 지지자들은 연방의회, 주의회와 바이든 취임식을 겨냥한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의 상식은 트럼피즘의 비상식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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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함백산 추모공원 지면기사
2015년 화성시가 비봉면 함백산 자락에 화장시설을 짓겠다고 하자 인접한 수원 서부권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후보지와 칠보산을 사이에 둔 호매실동 주민들은 수차례 집회를 열고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지역 정치권은 찬·반 진영으로 갈렸고, 경기도지사가 나섰으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심의를 통과하고 나서도 여진은 계속됐다.수원시는 화장장 수요의 시급성이 낮고 인근 39·42번 구도의 상습정체, 생태보전지 훼손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일부 주민들은 다이옥신 발생에 따른 건강 문제를 우려했다. 화장 시설 때문에 국도가 시도 때도 없이 막힌다는 주장은 최대치를 가정해도 지나치다는 게 교통전문가들의 견해였다. 무색·무취·무연의 첨단 친환경 공법이라는 화성시의 설명은 먹혀들지 않았다.함백산 추모공원이 오는 6월 개장한다. 5개 지자체가 30만㎡에 사업비 1천212억원을 공동 부담해 화장로 13기, 봉안시설 2만6천514기, 자연장지 2만5천300기를 확보한 종합 장사시설이다. 장례식장 8실, 주차장, 공원 등 필수 시설과 편의·휴식 공간을 갖췄다. 장례에서 봉안까지 원스톱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운영시스템을 적용한다.화성시민은 물론 공동사업주인 광명·부천·안산·시흥·안양시민 360만명이 특별 혜택을 받는다. 이들 지자체 주민들은 화장비로 16만원(외지인 1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수도권에 교통이 편리해 봉안시설과 자연장지도 수요가 몰릴 전망이다. 장사시설이 부족해 애를 먹은 관련 지자체들은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게 됐다.추모공원은 2017년 준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집단민원에 따른 갈등 조정에 시간을 빼앗기면서 4년여 늦어지게 됐다. 과학적 근거가 아닌 부동산가격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단체행동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추가됐다. 지역 주민들은 지난 4년간 애먼 고생을 했다.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먼 길을 돌아야 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함백산 공원은 지자체가 뜻을 모은 대표적 협업 사례로 꼽힌다. 악성 민원인 혐오·기피 시설로 골치가 아픈 시·군들에 모범 답안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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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K방역 불복 시위 지면기사
목숨이 경각에 달린 민중의 세상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권력은 위험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선동가들의 가짜뉴스였다. 문제는 이 가짜뉴스가 민생에 무관심한 프랑스 왕실의 태도를 정확하게 짚었고 민중의 분노를 유발했다. 민중은 대혁명으로 왕정을 절단냈다. 조정이 지방관리들의 가렴주구를 방치하자 조선 농민들은 전국에서 봉기했다. 임술년(1862년) 농민봉기로 조선은 급속히 쇠락한다. 철종이 민생 현장을 외면한 탓이다.K-방역에 저항하는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의 방역조치로 생계가 끊어진 자영업자들이 전국에서 "왜 우리만"을 외치며 불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 헬스장 관장님들과 필라테스 원장님들이 영업금지에 반발해 업소 문을 여는 '오픈 시위'에 나섰고, 카페와 유흥업소 주인들도 동참했다. 코로나19 영업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청구하고 나섰다.자영업 영업제한 조치의 형평성을 지적하고 호소하는 언론과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결과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도 등록된 업종에 따라 매장 영업이 달라지고, 아래층 태권도장엔 기합소리가 우렁찬데 헬스장은 불을 꺼야 한다면 분통이 터지는 건 당연하다. 영업금지는 자영업자의 밥그릇을 깨는 조치다. 공정하지 않다면 살기 위해 저항하는 건 민주적 권리다. 책상머리에서 생계금지 업종을 선별한 정부의 용기가 대단하다.서울동부구치소 문제도 간단치 않다. 공권력으로 가둔 수감자들의 인권은 전적으로 공권력이 책임져야 했다. 마스크도 안주고,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한방에 몰아넣었단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수감자를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화장했다는 의혹은 차마 믿기 싫다. 교정시설 코로나방역을 홍보한 법무부 유튜브 동영상은 앙투아네트 케이크에 버금간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신천지교회와 세월호 사이에 머물며 정권을 괴롭힐 것 같다.문재인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정점을 지나 조금씩 억제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를 약속했다. 생계가 경각에 달린 자영업자들과 서울동부구치소 수감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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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우주의 기운' 지면기사
1990년 2월14일.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와 작별하기 직전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전송해왔다. 사진 속에서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했다. 이후 '창백한 푸른 점'은 지구의 별칭이 됐다. 이 촬영을 주도한 칼 세이건은 동명의 저서에서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오래전부터 인류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기운이 일정한 법칙과 규칙으로 인간의 삶에 관여한다는 운명론에 입각해 천체의 운행을 관찰해왔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하늘의 기운이 땅과 사람의 기운에 미치는 영향을 읽어내는 점성술이 성행했던 배경이다. 우주의 기운을 빌려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의는 그리스 신전에서 채화한 성화로 불을 밝히는 현대 올림픽에서도 면면히 이어진다. 우리 전국체전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한 성화를 밝힌다.우주의 기운, 천기(天氣) 읽는 일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점성술을 신봉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천둥을 두려워했고, 번개를 막기 위해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유교권의 황제나 군주들도 역병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자신이 하늘의 기운을 역행한 죄를 자백하고, 천기를 살펴 제사를 지냈다. 제갈량이 하늘에서 동남풍을 빌려 적벽대전에서 승리했듯,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우주의 기운'을 마다할 리 없기는 현세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일테다.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일 시무식에서 할리우드 영화 '토르'의 대사에 나오는 '우주의 기운'을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집중된 대전환의 시간이 우리 앞에 열리고 있다"고 밝혀 화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주의 기운인 천심(天心)이 작동하길 바라는 덕담일 것이다.하지만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유교 세계의 군주들은 민생을 통해 하늘의 기운을 보았다. 하늘은 백성들의 행·불행으로 군주의 정치를 심판한다 믿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정권의 사면이 더욱 간절한 처지이다. 민심을 읽지 못한 탓이다.지금 민생은 고단하고 민심은 흉흉하다.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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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낮술 금지령 지면기사
전날 저녁 늦게까지 과음한 속은 숙취로 거북하다. 잦은 설사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들끓는 속 쓰림에 자진 토를 한다.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정도라면 다행한 일이다. 아침·점심을 거르고 오후 서너 시쯤 반상 앞에 앉았으나 서너 숟가락에 그치고 만다. 위장이 다시 요동치면서 음식을 자꾸 밀어낸다. 20대 초반부터 40년 가까이 술과 함께 지냈으나 숙취로 인한 괴로움은 어찌해볼 방도를 찾지 못했다.아점 무렵, 쓰린 속을 달래볼 요량으로 찾아간 중화식당에서 어쩌다 해장술을 마주한 애주가를 보게 된다. 구석 자리에 똬리를 틀고 홀로 앉은 50대 사나이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 벌써 두 잔째를 들이켰다. 단무지와 춘장을 찍은 흰색 양파를 집어 든다. 드디어 자장면이 나오고, 사내는 두꺼비 한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웠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전남 순천시장이 전국 처음으로 낮술을 금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4일부터 17일까지 2주간 거리두기를 연장하면서다. 식당에서는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류판매를 할 수 없다. 주·야간 상시 점검반을 편성해 지도·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위반하면 무관용을 원칙으로 형사 고발과 강력한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한다.국민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더 커지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낮술 환영'은 언감생심이다. 반면 동감한다는 네티즌도 있다.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노력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거다. 이참에 낮부터 술에 취하는 잘못된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한다.'승무'와 '지조론'을 남긴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은 초인적인 애주가였다. 술과 관련된 숱한 일화를 남겼고, 김삿갓·황진이·변영로와 더불어 4대 호주가(豪酒家)로 꼽힌다. 시인은 술을 말하면서 외주(畏酒)를 낮은 단계로, 낙주(樂酒,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를 주성(酒聖)의 경지로 평했다.시인은 마흔여섯에 이승과 작별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