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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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롬니의 한 표 지면기사
미국은 개신교의 나라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면서 성경에 손을 얹고, 달러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만큼 종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던 존 F. 케네디가 대선에 뛰어들며 했던 가장 큰 고민도 종교 문제였다. "나는 가톨릭을 대표하여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종교와 정치의 선을 그은 것도 그래서다.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모르몬교도다. 선거를 앞둔 각종 여론조사에서 "모르몬 교인 대통령 후보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할 정도로 종교는 그에게 큰 족쇄였다. '롬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 국민이 '모르몬 교도'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2008년 공화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나는 어떠한 교회의 독트린도 결코 대통령의 직무와 법의 권위 위에 놓지 않겠다"며 정·교 분리 선언을 했다. 주류사회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이번 트럼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롬니가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롬니는 미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찬성표를 던진 여당 상원의원으로 기록됐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롬니 의원은 공화당에서 외로운 목소리를 냄으로써 역사에 자신의 발자국을 뚜렷이 남겼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도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탄핵소추안에서 배심원 격인 우리 상원의원들이 헌법의 의무에 등을 돌린다면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며, 양심의 가책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표결 전 롬니가 울먹이며 했던 연설도 회자하고 있다.롬니를 보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지난해 말 더불어 민주당과 친여 군소정당들이 밀실협상을 통해 선거법에 이어 공수처법안을 강행처리 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졌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 대표 협상이라는 국회법상 대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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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매카시즘 70년 지면기사
1950년 2월 9일, 공화당 여성당원대회가 열리는 미 웨스트버지니아 휠링시. 미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서류 뭉치를 흔들어 대며 "여기에는 국무성 안에서 암약하는 205명의 간첩 명단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매카시의 이 폭탄선언은 미국 사회를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 문화계 특히 할리우드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미국인들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매카시즘은 이렇게 시작됐다.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324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일자리를 잃었다. 찰리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났고, 공산당원 출신의 거장 엘리아 카잔은 좌절과 고독, 회한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극작가 아서 밀러, 시나리오 작가 달톤 트럼보도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고통을 당했다.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매카시즘이 극에 달했던 당시, 언론이 어떻게 이에 대처하는지 다룬 영화다. 2005년 작. 흑백영화다. 배우로서 최정점에 오른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당시 미국 CBS 방송 뉴스 앵커로 명성을 날린 에드워드 머로가 진행한 뉴스 다큐멘터리 쇼의 은유적인 클로징 멘트다.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론을 굽히지 않았던 머로와 제작팀의 갈등과 고뇌를 그렸다.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빨갱이'로 몰릴까 감히 매카시에 대항하지 못하던 시절, 머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연하게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이었다. 흑백영화로 제작한 것은 희고 검은 두 색을 대비함으로써, 두 갈래로 나뉘어 이념전쟁을 벌였던 당시 아픈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클루니 감독의 경고로 읽힌다. 이렇게 매카시의 광풍은 무려 4년이나 지속됐다.하지만 기막힌 반전도 있다.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기밀문서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당시 매카시가 지목했던 미 고위관리들 일부가 진짜 소련 간첩으로 확인된 것이다. 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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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윤석열 현상 지면기사
우리 주변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와 브라질의 '라바 자투'가 그런 경우다.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풀리테'는 1992년 이탈리아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벌인 '부정부패 척결작업'이다. 전체 국회의원의 25%인 177명이 조사를 받았고 4명의 전직 총리를 포함해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경제인 등 2천993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우리의 작업은 단순히 더러운 손을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 투명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조혁명"이라며 수사를 주도한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이탈리아 국민의 영웅이 됐다.차량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 내는 분사기처럼, 뇌물·돈세탁 등 불법으로 얼룩진 브라질의 썩은 정치를 뿌리 뽑겠다는 '라바 자투(Lava Jato·고압 분사기)' 일명 '세차작전'은 '국민 판사' 세르지우 모루가 주도했다. 브라질 파라나주 연방 판사였던 그는 '마니 풀리테'를 모델로 삼아 금융범죄관련 지식으로 무장한 검사와 경찰, 국세청 직원으로 '드림팀'을 꾸렸다. 그들의 표적은 한때 90%의 국민 지지를 받았던 룰라 전 대통령. 결국, 룰라는 불법 자금 및 자산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국민은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던 이 열혈 판사에 열광했다. 현재 법무부 장관인 그는 2022년 브라질 대선의 유력한 대권 주자 후보다.물론 이들의 수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예비검속제' 폐지안으로 저항하자 검사 등 수사진과 판사들은 총사직을 내걸고 반대투쟁을 벌였고, 국민이 힘을 실어줬다. 덕분에 중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로 바뀌고, 비례대표제가 폐지됐다. 룰라 역시 호세프 대통령이 면책특권을 위해 장관직을 주려고 했지만, 사법부와 국민 저항에 부딪혀 이 역시 무산됐다. 모든 게 한 편의 영화처럼 전개됐다.한 신문사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10.8%로 2위에 올랐다. 뜬금없는 조사와 발표에 국민과 정치권이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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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팬데믹 지면기사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확진 환자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사망자도 400명을 넘었다. 이렇게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팬데믹(pandemic)이다.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황'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부터 6단계로 나누었는데 이중 최종 6단계를 말한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사람을 뜻하는 'demic'의 합성어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팬데믹은 1346년에 유럽 동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353년까지 유럽 전역에 급격하게 확산하며 유럽 인구 30%의 생명을 앗아간 흑사병이다. 처음엔 죽어가는 이유도 알 수 없었고, 마침내 원인을 알았을 때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모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2천만~5천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100만명이 사망한 아시아 독감, 1968년 80만명이 사망한 홍콩 독감도 팬데믹이다. 하지만 WHO가 공식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2009년 6월 인플루엔자 A(H1N1)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했을 때 딱 한 번뿐이었다.최근 넷플릭스가 '팬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6부작을 방영하면서 '팬데믹'이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달 22일 첫 방영이 공교롭게 중국발 신종 코로나의 확산이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리면서 SNS를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춰 방영한 넷플릭스의 기획력이 놀랍지만, 넷플릭스 측은 "최근 감염병 사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은 아니다"라며 펄쩍 뛴다.이 다큐멘터리는 치명적인 감염병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의료인, 자원봉사자들이 힘겨운 전쟁을 벌이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종 바이러스의 주요 발병지역으로 중국을, 감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박쥐를 지목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재래식 축산업이 인간의 생명 위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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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시험대 오른 시진핑 주석 지면기사
중국은 201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열어 '국가주석 2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전인대 직후 중국 관영언론들은 시 주석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당시 인민일보가 보도한 시진핑 총서기의 '금구(金句)', 즉 시 주석의 '금쪽 같은 어록'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중국 사회주의라는 큰 건물에서 당은 전체 뼈대이고 당 중앙은 대들보다." 전인대 폐막식에서는 시 주석을 "국가의 조타수"라는 찬양도 나왔다. 마오쩌둥을 지칭하는 별칭이었던 '국가의 조타수'는 개인숭배 금지와 함께 사라졌던 용어다.하지만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출범을 선포한 '국가의 조타수' 시진핑의 행보는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미국은 작심하고 무역전쟁을 선포해 중국 견제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의 금과옥조인 '하나의 중국' 정책은 홍콩 시민들의 봉기로 '송환법'을 포기하는 좌절을 맛봤다. 홍콩 시위에 자극받은 대만에선 인기가 급락했던 반중파 차잉잉원 총통이 재선에 성공했다.설상가상인가. 후베이성 우한 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2003년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의 감염정보를 은폐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던 중국은 이번에도 신종 코로나 발생 초기 상황을 축소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첫 환자가 발생했지만 우한시를 봉쇄한 건 50일 가까이 지난 1월 23일이었다. 우한 시민 500만명이 중국 전역과 세계 곳곳으로 탈출한 뒤였다.70여개 국가들이 중국인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중국의 신종 코로나 대응에 대한 세계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시 주석의 1인 독재를 신종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한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칼럼을 주목할 만 하다. "시 주석이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시 주석의 명령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중국 방역행정을 꼬집었다. 시 주석은 신종 코로나를 "악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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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농민 대통령' 지면기사
농협중앙회장은 250만 농민을 대표한다. 임기 4년 단임제의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400조원 규모의 자산, 30개에 달하는 계열사 대표와 8만명 임직원의 실질 인사권을 행사하고 예산편성 및 집행, 감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1천118개의 농·축협조합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농협중앙회장을 '농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농협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농협은 올해 초 한 기업 평가사에서 발표한 국내 대기업집단 공정자산 순위에서 61조3천억원으로 10위를 차지했다. 신세계, KT, 한진, CJ 보다도 앞선다.농협중앙회는 임명제로 회장을 선출하다 1988년 지역조합장들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를 도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7년 12월 선거 때부터 간선제로 바뀌었다. 겉으론 비용을 절감하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지만, 결과적으론 이 전 대통령의 고교 후배가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이명박 후광'이라는 구설에 오르는 등 농협중앙회장 자리는 늘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간선제로 치러지는 깜깜이 선거 탓에 직면한 농업 현안보다 지역 구도에 따른 판세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그동안 경기지역에서는 역대 단 한 번도 회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영·호남이 권력을 나눠 갖는 정치구조와 대의원의 지역분포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장 선거 대의원 수는 292명이다. 권역별로는 영남권이 90명, 호남권은 63명, 경기지역은 서울·인천까지 포함해도 겨우 54명이다. 영·호남에 비해 늘 열세였다. 최근까지 영·호남 출신이 각각 회장 자리에 올랐었다. 이번 24대 선거에 '호남 재집권론 vs 중부권 통합론'이란 말이 나온 것은 특정 지역이 자리를 독점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농협중앙회가 경기도 출신 '농민 대통령'을 맞게 됐다. 지난달 31일 치른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서 이성희 전 성남 낙생농협 조합장이 당선됐다. 이 회장 개인적으로는 지난 선거의 아쉬운 패배를 딛고 일궈낸 값진 승리다. 이제 농협에 적지 않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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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쩐의 전쟁' 슈퍼볼 지면기사
미국에선 미식축구(NFL)와 아이스하키(NHL), 농구(NBA), 야구(MLB)를 '4대 프로 스포츠'라 부른다. 이 중 미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종목은 단연 미식축구다. 상대 진영을 휘저으며 터치다운을 하는 경기방식이 미국의 개척자 정신과 잘 맞아 떨어지는 까닭이다. 게임 수가 적은 것도 NFL 인기의 또 다른 이유다. 미 프로야구가 연간 162게임, 프로 농구가 82게임인데 비해 미식축구는 1개 팀이 고작 16게임을 치른다. 그래서 입장권도 비싸고, 표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구단 가치만 봐도 미식축구팀이 단연 최고다. 지난 22일 포브스가 공개한 '2019년 가치 있는 프로스포츠 구단'을 보면 NFL 댈러스 카우보이가 50억 달러로 1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38억 달러)가 7위, 뉴욕 자이언츠(33억 달러) 10위 등 26개 구단이 5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중계료도 NFL이 연간 49억5천만 달러로 MLB 15억 달러, NBA 9억5천만 달러, NHL 2억 달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슈퍼볼은 NFL 두 개 리그의 우승팀이 단판으로 최종 승자를 가린다. 올해 결승전은 내달 2일(미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하드록스타디움에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대결로 펼쳐진다. 천문학적인 방송 광고 때문에 슈퍼볼이 열리는 날을 '슈퍼 선데이'라 부른다. 올해 슈퍼볼 광고 단가는 30초에 500만∼560만 달러(58억~65억 원)에 이른다. 초당 2억원. '세계 최대의 광고판'이란 말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올해 슈퍼볼 광고엔 20개사가 참여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으로 기아차와 현대차가 포함됐다. 뒤늦게 2020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 대열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슈퍼볼 경기의 60초의 광고를 1천만 달러에 구매했다고 해서 화제다. 출마 선언 이후 8주 동안 벌써 2천900억 원을 광고에 쏟아 부은 그다. 60조 원 재산가인 블룸버그는 정치기부금이 아닌 개인 돈으로 모든 비용을 지급했다. 블룸버그 측은 광고 집행을 "단지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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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중국 국민 입국금지 논란 지면기사
질병을 관리하는 권력의 방식은 시대와 권력의 형태에 따라 변화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시민권력이 부재하던 시대에는 감염성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철저하게 격리했다. 신도 외면한 문둥병(나병) 감염자들은 거주지에서 추방해 그들만의 소굴에 가둔 것이다. 13세기 기독교 세계 전체에 나병환자 격리장소가 1만9천개에 달했다는 사료는 권력이 나병환자 격리에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준다.중세말기 유럽 전제군주들은 질병에 걸린 백성들을 격리하는 대신 도시에 가둔 채 통제하고 감시하는 방식으로 전염병에 대처했다고 한다. 도시를 떠받치는 산업노동력을 무작정 격리할 수 없어서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왕들은 도시의 백성들 명단을 만들어 매일 이들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시신을 태우고, 감염자를 자택에 가두는 등 촘촘한 행정권을 발동했다.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쥔 전제군주들은 세원인 백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거나, 모아 놓고 철저히 통제하는 전제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이다.하지만 시민권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제적 질병관리가 가능하지 않다. 우선 과거엔 하루 2㎞ 정도였던 전염병 전파속도가 지금은 수천㎞에 달한다.('바이러스 대습격' 발췌)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민들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정보 수집과 판단이 가능해졌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지인 우한시를 봉쇄했지만 이미 500만명의 시민은 중국 전역과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우한 봉쇄를 결정한 중국과 단박에 국경폐쇄를 선언한 북한은 공산당의 전제적 성향을 보여준다.지금 국내에서도 국경 봉쇄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국민청원에 서명한 국민이 29일 60만명에 육박했다. 상당수 국민들이 우한 폐렴 방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이 중국 국민에 대한 국경봉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대표가 이를 '혐오' 논리로 반박하고 나섰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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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신종(新種) 바이러스 지면기사
인플루엔자 보균자가 대도시에 잠입한다. 호흡기로 전파되며 감염 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 전에 볼 수 없었던 신종 바이러스로 사망자가 속출한다.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발령, 급기야 도시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피할 새도 없이 격리된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대 재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 건 사투가 시작된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는 신종 전염병 공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재난영화다. 당시 의학 전문가들은 영화적 상상력의 소산으로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18년 여름, 프랑스 주둔 미군 병영에서 독감 환자가 발생했다. 처음엔 감기와 증상이 비슷해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미군들이 속속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감염자가 급속하게 확산해 미국에서만 무려 50여만명이 사망했다. 물론 유럽 대륙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다. 영국에선 25만명, 프랑스에선 40만명이 숨졌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유럽의 유명 화가들도 피하지 못하고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신종 바이러스가 4개월 후 아시아를 덮쳤는데 식민지 치하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독부 연감을 보면 당시 인구 1천678만 명의 절반에 가까운 740여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사망했다. 이른바 1918년 '무오년 독감'이다. 하지만 이는 추정치에 불과하다. 당시의 허술한 통계를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12월 3일자 매일신보의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서산군에만 8만명의 독감 환자가 있고, 예산·홍성서도 야단이다. 감기로 사망한 사람이 2천명이나 된다'.지금까지 한 세기 동안 서너 번씩 신종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200만명이 사망한 1957년 아시아 독감, 100만명이 사망한 1968년 홍콩 독감, 1979년 에볼라 바이러스, 2000년대 사스, 메르스가 그런 경우다. 이것들이 무서운 건 신종(新種)이라 치료 약을 늘 앞서서 나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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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비자의 망징 지면기사
중국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진시황이 탐냈던 인물이다. 진시황의 5대조인 진효공은 법가사상가인 상앙을 발탁해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시해, 진나라를 전국7웅 중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천하통일을 앞둔 진시황이 법치의 대가인 한비자를 모시려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비자는 망하기 일보직전인 조국 한(韓)나라를 법치로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진시황은 그를 얻기 위해 일부러 한나라와 전쟁을 선포했고, 다급해진 한나라는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진시황에게 보내고 말았다.한비자는 망국을 향해 치닫는 한나라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저서 '한비자'에 망징(亡徵)편을 남겼는데, 나라가 망할 47가지의 징조를 열거해놓았다. 예를 들어 "전쟁과 방어는 하찮게 여기면서 어짊과 의로움으로 자신을 꾸미는 데 힘쓰면 망하게 된다"라는 식인데, 망해가는 왕조에서 벌어지는 온갖 통치비리를 망라했다. 현대의 정치지도자들도 꼭 새겨야 할 경고들로 가득하다.한비자가 법가의 입장에서 밝힌 나라가 망할 징조는 이렇다. "군주가 꾀를 부려 법을 왜곡하고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수시로 어지럽히며 법령과 금령을 쉽게 바꿔 명령을 자주 내리면, 망하게 된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검찰, 정확하게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벌이는 전대미문의 법적 공방이 한창인 요즘, 귀에 쏙 박히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두 번의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를 강행한 윤 총장을 향한 정권의 비난은 법치의 영역을 벗어났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날치기 기소"라는 정치언어로 윤 총장을 압박했다. 일개 비서관인 최 비서관은 "기소 쿠데타"라며 자신을 정권의 최고통치자로 격상시키는 지경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고 당부했다. 법치의 원칙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윤 총장은 지금 손발이 다 잘린 채 감찰대상이 됐다. 상앙은 저자거리에 말뚝을 세워놓고 옮기는 자에게 상을 준다는 약속을 지킴으로써 법치의 기초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