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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성단]'원맨쇼 NO 1' 남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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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원맨쇼 NO 1' 남보원 지면기사

    '영겁이라는 저 무한대의 시간에 견줄 때 인간의 한평생이란 극히 찰나적 순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의 한평생을 마감하는 자리는 늘 슬프다. 특히 그가 삶 속에서 차지했던 자취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가 남긴 체취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가 존재했던 자리의 비어있음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 정규웅의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들의 초상'에 수록된 한 구절이다. 희극인 남보원의 부음을 듣고 이 글을 찾아 다시 읽었다. 6·25가 우리들의 정서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시기, 그 텅 빈 가슴들을 웃음으로 메워준 남보원이 마지막 웃음을 거뒀다. 본명 김덕용. 향년 84세. 그는 평안북도 순천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 1960년 데뷔했다.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 '원맨쇼'의 일인자가 됐다. 고(故) 백남봉과는 '투맨 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남보원은 실향민의 아픔을 희극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 특히 그의 성대모사는 독보적이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만이 알 수 있는 대포소리, 전투기 엔진소리, 뱃고동, 기적소리 등을 그는 진짜처럼 모사했다.남보원은 노래도 잘 불렀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불효자는 웁니다'를 수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떠돌이 생활의 한과 실향민의 한을 이 노래로 표출시켰다. 그의 노래는 기교보다는 애끓는 통곡과 애틋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었다. 실향민들은 그가 설과 추석 특집 무대에 오르면 처음엔 배꼽을 잡고 웃다가 끝에 그가 "어머니!"하고 외치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울었다. 그의 무대는 언제나 눈물바다였다. 그는 늘 사람을 울렸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그를 '웃기지만 슬픈 광대'라고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가 이 시대의 마지막 광대였다고 생각한다.희극인의 지존, 찰리 채플린은 '나의 자서전'에서 '사람의 행운, 불행 같은 것은 하늘의 뜬 구름과 같아서 바

  • [참성단]정보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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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정보 전염병 지면기사

    '염병(染病)'은 전염병의 준말로 장티푸스의 속된 표현이다. '염병하다'를 욕설로 사용한 것은 장티푸스가 가장 끔찍한 전염병으로 우리 조상들이 이를 그만큼 혐오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는 2012년 사우디에서 처음 확인된 뒤 중동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온 전염병이었다. 사우디를 비롯 요르단·카타르 등 중동지역에서 발생하면서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라고도 불렸다. 낮은 전염력에도 불구하고 치사율은 40%가 넘었다. 2003년 전 세계적으로 800명 이상이 사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치사율이 15% 정도인 점을 비교해도 꽤 높은 편이었다.2015년 5월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특히 우리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사태는 급속히 악화했다. 보건당국의 정보 통제로 스마트폰과 SNS 등을 통해 메르스 괴담만 급속도로 확산됐다. 무엇보다 국민은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했다. 감염자가 거치거나 확진됐던 병원 명의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던 보건당국이 뒤늦게 24개 병원의 명단을 공개해 비난을 자초했다.'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의 합성어인 '인포데믹스'는 'SNS를 통해 잘못된 정보나 소문이 확산하면서 대중의 두려움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무기력한 정부 대응을 비웃으며 당시 우리 사회는 인포데믹스 홍수를 이뤘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메르스 사태는 185명의 확진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217일 만에 종식됐다. 훗날 한국·WHO(세계보건기구) 합동평가단은 정부가 정보 공개를 늦추면서 초기 방역 정책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병한 전염병 '우한 폐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메르스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정보통제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익히 경험했다. 30억명이 이동한다는 춘절을 앞두고도 중국정부는 주변국과의 정보공유를 꺼리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

  • [참성단]검사 내전(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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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검사 내전(內戰) 지면기사

    1972년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한 리처드 닉슨. 하지만 1973년 재임 임기가 시작되자 마자 그에게 지옥문, 워터게이트가 열렸다. 대선 국면 묻혔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민주당 선거캠프 도청 의혹에서 대통령의 사건은폐 의혹으로 번지면서 초대형 정치스캔들로 변한 것이다. 상원특별위원회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닉슨에게 은폐의혹의 증거인 백악관 비밀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했고, 닉슨은 수사 주체인 콕스 특검 해임으로 맞대응한다. 이것이 민심 이반을 부른 결정적인 패착이었다.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은 닉슨의 콕스 해임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한다. 대노한 닉슨은 장관대행이 된 윌리엄 러클하우스 차관에게 다시 명령하지만, 그 또한 거부하고 사임했다. 결국 대행의 대행인 로버트 보크 차관보의 명령이행으로 콕스는 해임됐다. 10월 20일 단 하루에 이루어진 이날 사태를 미 언론은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보도했다. 이후에도 닉슨은 "대통령은 4년 동안은 루이 14세 같은 전제적 권한을 누리며, 따라서 그 어떤 사법절차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며 버텼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도 헌법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문제의 녹음테이프가 제출되고, 닉슨은 결국 1974년 8월 자진사퇴했다.야당이 '1.8 검찰대학살'로 비판한 새해 검찰인사의 후유증이 결국 상갓집에서 터지고 말았다. 최근 한 대검 간부의 장인상가에서 양석조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이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을 향해 "당신이 검사냐"고 고함친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부의 차장검사가 검사장을 들이받은 것이다. 심 부장은 앞서 조국 전 민정수석의 유재수 감찰무마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건의했다가 윤석열 총장에게 제지받은 사실이 알려졌고, 상가집 사단도 이 때문이었다.윤석열 검사들과 대통령·추미애 검사들의 내전(內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검사들을 잘라낸 인사가 부른 참극이다. 새로 임명된 심 부장이 조 전 수석의 무혐의를 주장한 것은 본격적인 검사내전의 서막일지 모른다. 물론 윤 총장이 불리하다. 그의 장관은 콕스

  • [참성단]맞춤형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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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맞춤형 여론조사 지면기사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관심을 끌었던 건 정치인의 사면으로, 이광재 전 강원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랜만에 이뤄진 정치인 사면이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그중 최대 이슈는 '노무현의 남자' 이광재 전 지사에게 정치적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언론은 이를 총선 출마에 맞춘 '맞춤형' 사면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맞춤형'이란 말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맞춤형 복지에서부터 맞춤형 여행, 맞춤형 교육, 맞춤형 고용. 맞춤형 통계에 이젠 맞춤형 사면까지. '맞춤'이란 말은 양복과 관련이 깊다. 양복점에서 옷감을 고르고 디자인을 정하고 치수를 잰 뒤 가봉을 거치면 멋진 양복이 완성된다. 비록 맞춤 양복은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멋쟁이들은 여전히 이 맞춤 방식을 고집한다. 개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니 제품이나 정책이 소비자와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이어야 상품성도 높을 것이다. 지난해 말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의 최근 보도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자기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보수 야당에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고약하다. 이 정도면 '맞춤형 문항'이요 '맞춤형 여론조사'다. 최고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포진한 조사기관의 설문지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다. 공정과 객관성이 생명인 여론조사기관이 '자기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야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건 스스로 공정성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만일 방송사와 조사기관이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춘 '가봉'의 절차를 거쳤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 KBS는 사과했지만, 자유한국당은 KBS를 검찰에 고발했다.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일이 터졌으니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여론조사기관이 1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총선이 가까울수록

  • [참성단]존엄사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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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존엄사 권리 지면기사

    중증환자에게는 '죽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잭 케보키언이란 의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죽음의 의사(Dr. Death)'로 불렀다. 1990년부터 98년까지 중증환자 130명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중엔 3~5년 더 연명할 수 있는 50대 알츠하이머 환자도 있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환자의 몸에 그는 기꺼이 약물을 투입했다. 하지만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의 안락사 장면을 CBS 대표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제공한 게 문제였다. 법원은 '2급 살인죄'로 그에게 10~25년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미국 내에서 안락사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고 이 덕분에 오리건, 몬태나, 워싱턴주가 존엄사를 합법화했다.소생 불가능한 중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 해야 하느냐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국내에서 존엄사 즉 '연명치료'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이다. 김 할머니는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됐다. 가족들은 병원 측에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희망이 없는 연명치료를 환자 측이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하지만 논의과정이 길어지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존엄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이보다 늦은 2018년 2월이었다. 이후 연명 의료를 거절한다는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지난해 말 53만667명에 달했고 이 중 8만3명이 자기결정권에 따라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맞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치료에 집착하기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그제 경인일보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최근 노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하는 불치병환자로 무의미한 치료를 하면서 가족에게 고통을 주느니 사리판단이 가능한 지금,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본인이 직접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록기관

  • [참성단]'배드 파더스'와 '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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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배드 파더스'와 '페인트' 지면기사

    양복을 입고 뒷짐을 지고 있는 한 남성을 배경으로 '양육비 미지급'이란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 '배드 파더스'의 초기 화면이다. 화면을 내리면 이른바 '나쁜 아빠'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등 신상정보가 줄줄이 뜬다.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이트 운영진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개인의 명예 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한 판결이다. 실제로 이 사이트로 인해 현재 113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국가에서 버려진 아이를 키워 주는 양육 공동체가 실현된 미래 사회가 소설의 배경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국가에서 설립한 'NC 센터'에서 19세까지 생활할 수 있다. 그 전에 입양을 원하는 부부가 나타나면 가정을 꾸릴 수 있는데, 아이들이 직접 부모를 선택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 제목인 '페인트'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기 위해 실시하는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소설 속 아이들의 은어다. 선택받은 부모는 각종 혜택을 받는 대신 제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주인공 '제누 301'의 페인트 과정을 통해 좋은 부모란, 나아가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질문하는 작품이다.이 소설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소설과 현실 사이에서 뭔가 교집합의 빗금이 읽히기 때문이다. 우선 소설 속에서 정부는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지자 국가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로 NC센터를 설립한다. 저출산에 부모의 자녀 방임, 학대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다. 또 이번 판결은 기본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부모의 도리마저 사회 시스템의 통제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시사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설에서도 아이를 육체적· 정서적으로 돌보고,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돌

  • [참성단]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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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출판기념회 지면기사

    우리 국민의 독서율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치고 너무 낮은 독서율에 외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그런 나라에서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책을 사고파느라 북새통을 벌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4·15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정치인 출판기념회 때문이다. 선거법상 총선 D-90일이 되는 16일부터는 국회의원과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 마지노선이다. 국회의원은 연간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의 수익은 후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횟수와 한도제한도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한 지 오래다. 출마자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이른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겐 출판기념회 초대장은 '청구서'나 다름없다. 유명 정치인의 경우 적게는 1억~2억원, 많게는 10억원이 넘게 책이 팔린다고 한다. 일반 서점과 다른 것은 정가 1만5천원의 책이 10만원에, 때로는 100만원에 팔린다는 점이다.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처음부터 책 읽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책이 엉성하다. 물론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함량 미달이다. 선거를 앞둔 출판기념회의 경우는 급조해서인지 특히 그렇다. 자화자찬 수필이 주류여서 읽는 것도 고역인 경우가 많다. 찾는 이들 역시 '얼굴도장 찍기'가 목적이라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방명록에 서명한 후 봉투를 전달하고 책을 한 권 받아들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허망한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정치인의 책은 보좌관이 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필 작가가 맡는다. 좀 알려진 작가는 한 건당 2천만원, 무명작가는 500만원 정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용도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고난을 이겨낸 인간승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희망과 비전을 첨가하면 '뚝딱' 한 권의

  • [참성단]'진중권 호루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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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진중권 호루라기' 지면기사

    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에 주체사상을 전파한 '강철서신'의 필자 김영환은 북한 대남방송과 일본에서 출간된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에 입문한 자생적 주사파였다.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권의 핵심이자 주사파 이론의 대부인 그는 두 번의 밀입북을 통해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관악산 1호'라는 암호명과 공작금을 받아와 민주민족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당을 조직한다.김영환은 북한 주체사상연구소 학자들과의 토론 끝에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감도 함께 가져왔다. '당과 수령의 오류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느냐'는 요지의 그의 질문에 북한 학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체사상 이념에 경도된 남한 청년이 주체사상의 성지에서 주체사상의 모순에 직면한 것이다. 주체사상의 무오류성에 환멸을 느낀 그는 결국 1997년 민혁당을 해산하고 북한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가로 전향한다.최근 정치권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조국 사태 이후 정권과 여당과 진보지식인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 중이다. 진중권은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기원하고 성공을 지지했던 진보진영의 '내부자'였다. 그런 진중권이 유시민의 조국 옹호를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 선동의 언어'라고 직격했다. 그에게 조국은 더 이상 친구 '국'이가 아니라 타락한 진보지식인의 전형이다. 서초동 조국기 부대를 네오 나치에 비유했다. 정의당을 탈당하고 당이 준 감사패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권의 검찰 학살을 비난하고, 윤석열을 지지한다. 그를 향해 진보진영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보수진영은 전향의 가능성을 엿본다.그러나 진중권은 뼛속까지 진보다. 그는 진보의 가치와 정의를 오염시키는 위선, 허위, 아류와 싸우는 것이지 진보의 가치는 소중하게 여긴다. 진중권은 이익을 위해 가치를 포기하는 진보를 가짜로 규정하고 내부에서 봉기한 것이다. 진짜가 배신할 이유가 없고, 보수 전향은 어불성설이다. 김영환은 토론 자체가 봉쇄된 주체사상의 전체주의에 절망해 전향했지만, 진중권은 진영내부의 토론을 원한다.진중권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궁핍해진 진보적

  • [참성단]적설량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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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적설량 '0' 지면기사

    누구에게나 '인생의 노래'라는 게 있다. 이른바 '18번'. 내겐 송창식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밤눈'이 그런 경우다. 송창식 작곡 최인호 작사.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기울이면/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아주 아주 오래전 눈 내리던 날 밤, 이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걷다가 지지대 고개를 넘어 군포사거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폭설로 바뀌면서 모든 교통편이 끊겨 그 먼 눈길을 다시 걸어 돌아와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다.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예전 동네 골목 입구엔 전파상과 음반가게가 흔하게 있었다. 눈이라도 내려달라고 애원하듯, 겨울이 오면 이곳의 낡은 스피커를 통해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다. 이 노래 덕분에 아다모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고, 세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우리나라 남녀가수들이 앞다퉈 번안해 불렀는데 특히 김추자의 노래가 일품이었다. '눈이 나리네/당신이 가버린 지금/눈이 나리네/외로워지는 내 마음/눈에 그리던 따듯한 미소가/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질 않네'.지난달 적설량이 역대 12월 중 최저였다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요 관측지점의 최심신적설 합계는 0.3㎝로 나타났다. 이는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가장 적은 12월 적설량이다. 최심신적설은 24시간 동안 새로 내려 쌓인 눈 중 가장 많이 쌓인 곳의 깊이를 뜻한다. 그동안 최저 기록은 1998년의 0.6㎝였다. 특히 인천을 포함해 전국 10곳의 적설량은 '0'이었다. 올겨울 들어 단 한 번도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이다.눈이 내리지 않는 대신 12월 강우량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같은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이상 기후 탓이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가 차지하고 있으니 눈과 관련된 노래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런 날씨라면 천하의 송창식이라도 '밤눈'같은 곡을 다시는 만

  • [참성단]디지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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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디지털 세 지면기사

    1662년 영국에는 '난로세'가 있었다. 집집이 설치된 벽난로에 1개당 2실링씩 부과했다. 하지만 반발이 크자 1689년 폐지됐다. 1698년 러시아에는 '수염세'가 있었다. 수염을 기르려면 부자들은 재산 정도에 따라 연간 30~100루블을 내야했다. 프랑스에서는 혁명 직후 신설된 '창문세'로 주택의 창문 개수에 따라 세율을 매겼다. 세금을 피하려면 창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세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현재 유럽에 불고 있는 '디지털 세' 역시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이탈리아가 지난 1일부터 '디지털 세' 시행에 들어갔다. 세계 연매출 7억5천만유로, 자국 내 연매출 550만유로(약 71억원) 이상의 IT 기업에 매출액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한다. 세율은 인터넷 거래액의 3%. 이 제도 도입으로 연간 7억유로(9천2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확보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도 오는 4월부터 전 세계 연 매출 5억파운드(약 7천638억원), 영국 내 연 매출이 2천500만파운드(약 382억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영국 내 매출의 2%를 '디지털 세'로 걷기로 했다. 모두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겨냥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공정 과세'를 외치며 '디지털 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마치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유럽국가들이 앞다퉈 '디지털 세'를 도입하는 것은 미국에 본사를 둔 IT 기업들이 돈은 자국에서 벌고 세금은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 선두에 미국과 '무역분쟁' 논쟁을 벌인 프랑스가 있었다. 지난해 1월부터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기업의 알파벳 앞글자를 딴 'GAFA 세'를 유럽에서 가장 먼저 거둬들인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연매출 7억5천만유로, 자국 내 2천만유로(약 324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거대 IT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총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고 있다.구글은 우리나라에서 유튜브와 구글 플레이로만 연간 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