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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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영화배우 양 모 씨 지면기사
지난 12일은 양 씨 성을 가진 대한민국 영화배우들이 곤욕을 치른 날이었다. 한 뉴스 전문 채널에서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보도는 한술 더 떠 "경찰 조사 결과 양 씨는 간이 마약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에 강남경찰서는 양 씨의 마약 정밀 검사를 의뢰하고 마약 구매 통로와 동반 투약자 등을 조사 중"이라며 "최근 유명 영화와 지상파 인기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라고 추가 보도했다. 이러자 인터넷 포털 실시간검색에는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한동안 상위에 올랐다. '익명보도 원칙'에 따라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씨 배우'라고만 알려지자 많은 네티즌이 해당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양 씨 배우'를 찾기 위해 양 씨 성을 가진 배우들의 실명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 씨 성을 가진 배우 4~5명의 이름이 순식간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다. 양 씨 배우들은 소속사를 통해 의혹을 반박하는 등 일대 혼잡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양 씨 배우는 단역 배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보도 원칙'은 범죄 사실을 보도할 때, 특정인이나 특정 직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호칭 사용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다.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한글,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여 김 모 씨, K 씨 등으로 표기해야 하나 이니셜로 주변 정황에 의해 누구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때는 실명과 전혀 관계없는 A씨, B씨 등으로 사용하고, 그 이니셜이 실명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야 한다. 가령 실명이 '이몽룡'일 경우 엉뚱한 이름인 '변학도'라 하고 '가명'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최근 마약 관련 기사의 홍수 속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마약 관련 기사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그럼에도 최근 부쩍 '팩트 체크'없는 무책임한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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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내부자 거래 지면기사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브뤼셀 인근에서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국가의 운명을 건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른바 '워털루 전투'. 결과를 지켜보는 런던 증권가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정보원을 통해 프랑스의 패배를 확신한 로스차일드는 영국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금융계 큰 손의 국채 매도에 놀란 개미투자가들은 영국의 패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투매에 가담했다. 국채는 순식간에 휴지가 됐다. 이때, 다시 국채를 매입한 로스차일드는 엄청난 차익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이 행위를 내부자 거래의 효시로 보고 있다.영국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들은 주식 내부자거래를 '정보의 절도'로 보고 엄격히 금지한다. 미국은 정치인과 정부 고위공직자가 주식 내부거래를 하다 적발될 경우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한다. 미 의회도 증권거래법과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국회의원과 보좌관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할 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의 성실 의무(fiduciary duty)를 진다'는 조항을 추가해 내부자거래를 막고 있다.2017년 8월 민변 출신 이유정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올랐다가 주식 거래가 문제가 됐다. '백수오 파문'을 일으킨 '내츄럴엔도텍'주식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5억원 넘는 차익을 남긴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내부자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이 변호사에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같다 해서 '유정 버핏'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 변호사는 지명 20일 만에 자진사퇴했다.'주식 부자' 이미선 헌법 재판관 후보자가 이유정 변호사의 뒤를 그대로 걷고 있다. 42억여 원의 재산 중 83%인 35억여 원을 주식에 투자됐고, 이 중 24억여 원이 재판 관련 특정 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밝혀지며 내부자거래란 의혹을 받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이 후보자를 향해 '제2의 이유정'.'미선 소로스'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4조는 미공개 중요정보의 이용행위, 즉 '내부자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직무 때문에 알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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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벽안(碧眼)의 독립운동가 지면기사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정부에 맞서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독립 전쟁을 일으킨 때가 1919년 1월 21일이다. 그로부터 40여일 후인 1919년 3월 1일 식민지 조선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들인데, 뭔가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아일랜드 독립전쟁 후에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리된 것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두 나라에 걸쳐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이 눈길을 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임시정부를 지원한 비밀조직과 인물들의 기록을 담은 책자를 발간한다고 한다. 항일투쟁을 하다 일본 법원에서 재판받은 기록(판결문)을 분석해 임시정부가 국내에서 펼친 활동과 임시정부를 지원한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 책자는 추후 누리집(http://www.archives.go.kr)에도 게재될 예정이다.이같은 내용으로 국가기록원이 낸 보도자료를 훑다 보니 색다른 이름이 눈에 띈다. 李東輝, 朴容萬 등 한자로 표기된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유일하게 일본어로 쓰인 이름이다.임시정부 의정원 및 대한청년단 등을 조직하고 군자금, 군수품 등을 모집한 혐의로 구속된 독립운동가 16명에 대한 판결문(고등법원, 1924.3.12)에서다. 'ジㅡ. エル. シヨウ'(G.L.쇼). 그가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다. 자료에는 '쇼가 만주에서 경영한 무역회사 이륭양행(怡隆洋行)이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연락거점으로 활용됐다'는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다. 곧 발간될 책자에 소개되겠지만 쇼는 '이륭양행'의 건물을 임시정부에 제공한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상하이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겐 회사 소유의 배를 내주기도 했다. 백범 김구도 이륭양행의 배를 타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일제에 맞선 대가로 그는 4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 세계의 대세를 보라.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의 독립 역시 가까이에 존재한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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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낙태죄 위헌 판결 지면기사
미국은 2015년 6월 연방대법원 판결 5대4로 동성결혼 국가가 됐다. 103쪽에 이르는 합법 판결의 다수 의견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했다. 가톨릭에서 동성애는 허용하지 않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헌법이 가치와 법적 질서 사이에서 불일치가 나타날 때 자유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으며 동성혼은 이들이 중대한 헌신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썼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판결을 철저하게 구분한 것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신인 테미스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건 심판을 함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칭은 공정성을 의미한다. 신들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는 테미스의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회 질서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법과 정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정성에 의해서 구현된다. 판사가 법정에서 입는 법복이 검은색인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쉽게 침범 당하지 않으며 오염되지도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법복은 '공정함'과 '권위' 그리고 '책임'의 엄격함을 상징한다.2012년 합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가 7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의 낙태 처벌 조항의 위헌성 여부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낙태 행위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청구인 쪽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지만, 법무부는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로 낙태의 증가를 막기 위해 낙태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일반인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주장과 낙태죄 폐지가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재판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이런 상황에서 새로 구성된 6기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분석하며 판결에 영향을 미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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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고(故) 조양호 회장' 지면기사
2013년 4월 18일 로이터 통신은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의 부고 기사를 타전했다. "약탈적 방법으로 막대한 성공을 거둔 자본가이자 투자가로,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 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수년간 비판한 조지 소로스가 00세로 00일 숨졌다." 미리 작성해 둔 부고 기사가 실수로 출고된 오보였다. 알렉산드라 페트리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의 부고 기사 촌평이 의미심장했다. "스크루지 영감 처럼 자신을 돌아 볼 좋은 기회다. 기사에서 묘사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면 아직 새 삶을 살 기회가 남아있다."지금 89세의 소로스가 새 삶을 살고 있는지, 로이터가 부고 기사를 대폭 수정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나, 알프레드 노벨은 부고 기사 오보로 사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 자신의 부고 기사에 충격을 받아 노벨상을 제정한 것이다.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제목 아래 "알프레드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오보를 통해 사후 평판을 미리 알게 된 노벨은 '죽음의 상인' 대신 '노벨 상'을 택할 수 있었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했다. 최근 수년 간 조 회장 집안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일으킨 갑질 스캔들로 인해 '적폐 가문'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4년 장녀의 '땅콩 회항' 사건을 간신히 수습했지만, 2018년 차녀의 물컵 갑질 사건과 배우자의 '갑질 동영상' 파문으로 침몰했다. 조 회장은 지난 달 27일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최초로 적용돼 대한항공 경영권까지 상실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의 과(過)에도 불구하고 항공산업계에 남긴 조 회장의 공(功)은 뚜렷하다. 부친과 함께 대한항공을 글로벌 국적항공사로 키워 낸 경제적 성취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사훈과 어울린다.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평창올림픽 유치에 애썼고, 프랑스와의 민간외교에 남긴 족적도 크다. 인천의 향토기업인으로서 교육분야에 남긴 흔적도 깊다. 전경련과 경총의 추모 분위기는 정중하다.조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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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무너진 마약 청정국 지면기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리나라 영화 팬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은 60대 중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해서였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등장하는 '판초'차림의 건 맨 조(Joe). 눈을 지그시 감은 무표정한 모습,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쏘는 속사포에 추풍에 낙엽 지듯 쓰러지는 악당들. 유령의 울음처럼 울려 퍼지는 음산한 휘파람 소리와 엔리오 모리꼬네의 황량한 주제음악. 이런 것들은 속도 느린 서부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에겐 전율에 가까운 신선한 충격이었다.일약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에서 냉혈 형사 캘러핸 역을 맡아 미국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10인'중 한 명으로 뽑혔다. 반전운동이 전성기를 맞던 시대에 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더티 해리'시리즈를 4편이나 더 찍은 그는 자타가 공인한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전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라스트 미션 (원제·the mule(마약 운반책 ))'을 보았다. 1930년생으로 이제 그의 나이도 90이다. 연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구부정한 그의 어깨 위엔 수없이 떨어진 연륜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스크린 위엔 조각 같은 얼굴 캘러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늙은 마약 운반책 얼 스톤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2011년 전 세계 최고령 마약 운반책으로 붙잡힌 '레오 사프'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영화는 절묘하게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으로 온통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에 개봉됐다. 흔히 '농익었다'는 말이 무색한 노배우의 연기보다 마약 이야기라서 더 관심을 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제 우편, 특송화물로 들어오는 마약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마약 구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운반 방법은 고전적 수법이 돼버린 셈이다. 운반책과 판매책이 누군지도 모른 채 암호 화폐로 거래되면서 단속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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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5G 지면기사
1973년 4월 3일은 세계통신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모토로라의 통신 책임자인 마틴 쿠퍼와 경쟁사인 AT&T 벨연구소 책임자 조엘 엥겔간에 세계 최초의 무선 전화 통화가 실현된 날이기 때문이다. 한참 후발주자인 우리는 1984년 5월 첫 무선전화인 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단말기 가격은 대당 300만원, 설치비에 채권료까지 410만원을 줘야 카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400만원인 승용차 포니2보다 비쌌다. 그래서 당시 차 꽁무니의 긴 안테나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카폰에 이은 실질적인 첫 휴대폰 서비스는 서울 올림픽을 두 달 앞둔 1988년 7월 1일 시작했다. 한국산 단말기가 없어 모토롤라의 '다이나택'이 사용됐다. 무게만 1.3 ㎏으로, 벽돌같다 해서 '벽돌폰'이라 불렸다. 10시간 충전하면 30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단말기 가격 400만원에 가입비 60만원으로 500만원이던 승용차 포니 액셀과 맞먹었다. 이어 무선 호출기 '삐삐'와 시티폰, PCS가 출시되면서 휴대폰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단말기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좋아졌으며 가격도 저렴해졌다. 하지만 단말기의 변화를 주도한 건 통신기술의 진화였다. 기술이 돼야 그에 걸맞은 단말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기술은 1996년 2세대(CDMA), 2003년 3세대(WCDMA)를 거쳐 2011년 4세대(LTE)로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황창규 KT 회장이 '5G, 새로운 미래를 앞당기다'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5세대 통신을 세상에 알렸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랬다.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 3대 특성으로 하는 5G가 산업 전반을 통째로 바꿀 4차 혁명을 주도하게 될 것." 황 회장에게 '5G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공교롭게도 마틴 쿠퍼가 조엘 엥겔과 첫 무선 전화통화를 한 날로부터 꼭 46년이 지난 2019년 4월 3일 오후 11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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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월미도 디아스포라 지면기사
1950년 9월13일 새벽 5시, 월미도 상공에 굉음과 함께 유엔군의 공군기 1개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하늘에서 기름통과 네이팜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떤 이는 새벽잠에 빠져 있다가 고스란히 타죽었고 잠에서 깬 이들은 속옷 차림으로 도망갈 곳을 찾았다. 비행기가 사람만 보이면 기총사격을 해대는 통에 갯벌에서 펄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숨죽여 있기도 했다. 간신히 인천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폭격이 잦아든 틈을 타 월미도와 인천을 연결한 다리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숨진 가족과 이웃의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에겐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틀 뒤인 15일 인천상륙작전이 본격 전개됐고 함포사격을 피해 다시 고향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고향을 잃은 사연은 한국전쟁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처럼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것도 아닌데 고향은 꿈속에나 남아있다. 물리적 공간으로 보면 고향에 머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삶은 타지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디아스포라'와 비슷하다.사실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었고 그들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 다리 앞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가 철수하면 고향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역대 인천시장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향수병을 달랬다. 하지만 그 약속은 '희망고문'이었다. 미군은 철수했지만 대신 국군 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했다. 이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공원이 들어섰다. 결국, 휴전 후 한국을 지배하던 안보논리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들의 귀향은 번번이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소식이 전해졌다.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인천시의회에서 가결된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통을 돌아보기까지 69년이 걸린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하니 십수년 전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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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골란고원 와인 지면기사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골란고원 이스라엘 주권인정' 포고문 서명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이스라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이은 트럼프의 이런 배려에 5선 도전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가 크게 감동했던 모양이다. 선포식이 끝나자 네타냐후는 "골란고원에서 최상품의 와인을 한 상자 가져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대신 백악관 직원에게 주고 싶다"며 호기를 부렸다.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골란고원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한 건 '포도나무 심기'였다. 1천m 이상 고도, 화산토와 선선한 기후는 포도 재배의 최적지였다. 그때 심은 묘목이 적당하게 자라나자 1983년 '골란고원 와이너리'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곳 와인은 '야르덴' '감라' '골란'이란 상표를 붙여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와인은 최근 국제시장에서 호주 와인과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직 프랑스나 칠레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포도주 제조기법에 최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와인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중이다.하지만 지난 2015년 11월 EU(유럽연합)는 이스라엘 와인에 대해 생산지 라벨 부착을 의무화했다. 무력으로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므로 이 지역 생산 와인을 EU에서 판매할 경우 '메이드인 이스라엘' 대신 해당 정착촌을 산지 라벨로 부착하라는 것이다.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베를린의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이스라엘 와인을 철수시키자 네타냐후까지 나서서 항의하는 등 외교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지금 튀니지에서는 제30차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아랍 정상들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주권을 강조하면서 미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이스라엘 우호 정책을 비난하는 데 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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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도마뱀의 꼬리자르기 지면기사
자절(自切)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한 동물이 몸의 일부를 스스로 절단해 생명을 유지하려는 현상인데, 척추동물로는 도마뱀이 대표적이다. 도마뱀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꼬리를 잘라내주고 줄행랑 친다. 도마뱀이라면 명칭도 꼬리를 도막 도막내고 도망치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마뱀 꼬리에는 절단될 자리인 탈리절이 있고, 탈리절에는 격막이 있어 절단 후에도 출혈을 막아준다. 절단된 꼬리는 약 3분간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빼앗고 그 사이 도마뱀 본체는 안전하게 피신한다. 상처가 아물면 1~2주 후 부터 꼬리가 재생된다니 위험회피를 위한 특별한 진화가 신비하다.문제는 도마뱀의 꼬리자르기가 보통 일이 아닌데 있다. 일부 도마뱀은 꼬리에 영양분을 저장하는데 이를 잘라내는 일은 목숨을 건 일이다. 또 꼬리는 재생되지만 뼈는 그렇지 않다. 재생된 꼬리의 형상도 처음과는 다른 이형(異形)이거나 심지어 두개의 꼬리가 생기는 기형(奇形)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꼬리자르기는 단 한번만 가능하다. 도마뱀에게 꼬리자르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한번 결단해야 할 절박한 선택인 셈이다. 함부로 도마뱀을 위협해 꼬리를 자르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최근에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관용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버닝썬 사건에서도 회자되더니, 장관 후보자 2명의 낙마와 관련해 야당의 청와대 비판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하거나 범죄의 몸통을 숨기려 조무래기 희생양을 내세우는 행태를 조롱하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는 도마뱀 꼬리자르기 행태가 너무 빈번해 각 분야에서 정상적인 꼬리 대신 이형과 기형의 재생 꼬리를 가진 도마뱀들이 너무 많아졌다. 일생에 딱한번 목숨걸고 꼬리를 잘라내는 진짜 도마뱀이 억울할 지경이다.도마뱀은 꼬리 뿐 아니라 망가진 심장도 재생한다고 한다. 과학계가 이 신비를 풀어 인간 심장치료에 응용하려 한창 연구중이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관용구를 '도마뱀 심장바꾸기'라는 관용구로 대체하면 어떨까 싶다. 일이 벌어지면 도마뱀 꼬리자르는 사회 보다는 심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