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남경필의 정계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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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남경필의 정계 은퇴 선언 지면기사

    1985년 4월은 당시 연세대학교 김동길 교수가 발표한 칼럼 '3金 낚시론'으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김 교수 글은 국민의 단일화 염원을 무시하고 대권 욕심에 빠져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에게 던지는 충언으로 요지는 "3김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60대 말 미 대학 최초로 학내에 경찰을 불러 행정관을 점령한 반전 시위대를 진압한 후 "나의 시대는 지났다"는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기고 임기 전 물러 난 하버드대 퓨지 총장을 예로 들었다.김 교수는 이 글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썼다. 3김은 은퇴하고 낚시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낚시하기 좋은 낚시터를 소개해 줄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글이 문제가 되자 유신 시대에도 절필하지 않던 김 교수는 붓을 꺾어야 했다. 그 후 김영삼은 대통령이 됐고 김대중도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곧 복귀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3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역사가들은 나를 쓸 때 첫머리에 '워터게이트사건을 일으킨 대통령'이라고 기술할 것이다"고 불안해했던 닉슨은 정계를 은퇴한 후 고향에서 집필작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놀라운 혜안으로 현역들보다 더 좋은 글을 쓴다'는 평을 듣던 그는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 전기작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이제 그를 떠올릴 때 '사임을 할 때 눈물을 흘린 정치가'라고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가장 멋지게 정계를 떠난 정치인으로는 프랑스의 드골이 꼽힌다. "나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정지하네. 오늘 정오부터 발효야"라며 고향 콜롱베에서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은퇴를 선언한 69년의 드골은 '떠날 때를 알고 있던 정치가'였다.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제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쳤던 정치를 떠난다"며 "깨끗하고 투명하게 벌어,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좋은 일 하며 살겠다"고 적었다. 5선 의원으로 늘 '보수개혁의 리더'로 불렸던 그는 정치적 나이로도

  • [참성단]국민연금(國民年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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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국민연금(國民年金) 지면기사

    국민연금이 관리하는 연기금(年基金) 규모는 약 637조원으로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위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국채를 비롯해 여러 곳에 다양하게 투자한다. 미 월스트리트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고객이다. 물론 국내 주식도 포함된다. 그 액수가 100조원이 넘는다. 이른바 4대 시중 은행인 국민은행, 신한은행, KEB 하나은행의 최대주주도 국민연금이다. 은행장 선임이 정부 입김에 좌우된다는 '관치금융'논란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국가재정과 국민의 삶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다. 그래서 변동성이 큰 위험 주식엔 투자하지 않는다. 단기간 수익이 크지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즉 50년, 100년 이상 살아남을 기업에 투자한다. 국민 노후자금인 만큼 실패는 절대 금물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10%를 비롯해 KT(12.9%) 포스코(10.72%) 네이버 (9.48%) 현대차(8.27%) 등 우량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업만도 294개다. 그래서 주식 고수들은 초보자에게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하라"고 조언한다. 국민연금이 버티고 있으니 기업이 망할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서다.한때 국민연금은 경영진에 힘을 보태는 '백기사' 역할을 한 적이 있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인수하려 할 때 신한·하나·산업은행을 앞세워서 이를 방어해 줘 "역시! 국민연금"이란 소리를 들었다. 국민연금은 또 외국인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하락하면 매입에 나서 주가를 안정시키기도 한다. 금융위기를 호되게 겪은 영국이 2010년 '스튜어드 십 코드'를 도입한 것도 주가가 폭락할 때 이를 막아주는 등 기업의 재산을 '집사'처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이 제도를 도입해 지분 보유기업의 임원 선임·해임 등에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27일 대한항공 2대 주주 (11.7%)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 조양호 회장의 대표직을 박탈했다. 기업에 늘 '백기사'였던 국민연금의 변화

  • [참성단]책 읽는 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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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책 읽는 부평 지면기사

    1998년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사서인 낸시 펄(Nancy Pearl)은 다소 엉뚱한(?) 상상을 했다. "만약 시애틀의 모든 사람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 한 도시의 시민들이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은 이처럼 한 사서의 상상에서 출발했다.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지구촌에 알린 소설은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다. 2011년 시카고 시민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계를 자극한 것이다. 이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잇따르더니 이제는 대표적인 독서운동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낸시 펄의 상상을 담은 '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이란 문장은 독서운동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각 도시 이름에 맞게 응용되고 있다.이 운동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2003년이다.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시범도시로 충남 서산시가 선정돼 황선미 동화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시민들이 돌려 읽은 게 최초다. 인천에서는 부평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부평구와 부평구문화재단은 2012년 '만약에 53만 명의 부평구민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책 읽는 부평'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의 대표도서는 인문학 도서인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김육훈 외)였다. 이어 지난해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정주진)에 이르기까지 모두 7권의 대표도서가 선정됐다. 매년 대표도서를 선정하고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물론 모든 부평구민이 그해의 대표도서를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 읽는 부평' 사업이 독서와 토론문화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는 분명하다. 다만 예산 문제로 올해 독후감 공모전 등 일부 사업의 추진이

  • [참성단]슈퍼 주총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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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슈퍼 주총 데이 지면기사

    기업들이 한날 한시에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이젠 관행이 됐다. 특정일에 주주총회가 몰리는 날을 뜻하는 '슈퍼주총데이(super 株總day)'라는 용어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지난 2016년 3월 25일엔 무려 818개 기업이 주주총회를 열어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세웠다. '슈퍼주총데이'로 주주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비난이 비등하자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날 한시에 주총이 몰려 있다. 12월 결산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천67개사 중 오늘 328개사가, 29일에는 537개사가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렇게 주총을 여는 것은 소액주주의 참여를 막기 위해서다. 한 날에 열리니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개미투자가들도 기업 한 곳만 정해서 참석할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만 해도 주총은 축제일 같았다. 기업마다 주총을 찾은 소액 투자가들에게 우산, 필기구 등 비록 작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박용진 민주당의원은 기업들의 이런 속 보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슈퍼 주총 데이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분산해서 주총을 하면 주주들의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취지에서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 20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소액주주 수천 명이 몰리며 입장이 지연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주총장에 들어서려는 대기 줄이 인근 도로까지 이어지는 등 진풍경도 연출했다.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액주주 친화 정책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 주주총회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미 올해 SK하이닉스, 포스코,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재계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세계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전자투표제 도입에 따른 부담감도 없지 않다. 대면 없이 온라인상에서 하는 회사 현안에 대한

  • [참성단]안중근과 동양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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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안중근과 동양평화론 지면기사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이다.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수감 중이던 뤼순(旅順)감옥에서 일제의 사형집행으로 순국했다. 1909년 10월 26일 일제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하얼빈 의거를 일으킨 지 5개월 만이다.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으로써 일제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조차지(租借地)로 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던 일본, 러시아, 영국이 이 사건을 주목했다. 한국과 청나라에 대한 식민 침략을 아시아의 연대로 선전해 온 일본 입장에선 큰 낭패였다.이토 사살 이후 안 의사의 항일투쟁은 재판정으로 이어졌다. "이토 공작(伊藤 公爵)을 적대시"한 이유를 묻는 재판부를 향해 안 의사는 이토의 죄목 15개를 나열했다. 명성황후 시해와 을사늑약 강제 등 대한제국의 국권 침탈 죄목을 빠짐없이 나열했다. 또한 안 의사는 이토를 동양평화 교란범으로 지목했다. 일제는 러일전쟁(1904∼1905년)의 명분으로 동양평화유지를 내세웠지만, 한국의 국권침탈로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안 의사는 유작인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을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하느냐"고 말했다. 동양의 강대국 일본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란을 이용해 대한제국과 청나라를 점거한 악행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르빈에서 개전하고 담판하는 자리를 여순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동양평화를 빌미로 한·중 두 나라의 국권을 침탈하는 일본의 위선적인 정략에 대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토와 같은 일제의 정략가들로 인해 독립국가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동양평화가 깨진 사유를 밝힌 역사적 안목은 지금 봐도 예사롭지 않다.사형집행이 당겨지는 바람에 동양평화론은 미완에 그쳤다. 한·일 양국이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는 역사를 써왔다면 관계가

  • [참성단]황혼 이혼, 황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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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황혼 이혼, 황혼 결혼 지면기사

    조선시대 때부터 결혼 60주년이 되면 회혼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평균수명이 50세가 채 안 됐기 때문에 회혼례의 가치는 그만큼 컸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회혼례를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 때문이다. 황혼 이혼은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황혼 이혼이 급증한 이유는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남은 삶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여성이 많이 늘어나서다. 국민의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었고, 고령층의 체력이 과거보다 향상되고 건강해지면서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진 점도 한몫 했다. 남자가 퇴직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이후, 오랜 세월 쌓인 불만이 폭발한 여성이 이혼 서류를 내미는 경우가 더 많다.졸혼(卒婚)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결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졸업했다'는 졸혼은 "유명 연예인 OOO도 했다더라"라는 말까지 돌면서 황혼기 부부들이 들썩였다.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살면서 자유롭게 각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며 무용담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늘어났다. 졸혼은 당장 이혼을 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눈곱만치의 애정도 없이 사실은 그동안 자식들 때문에 살았다'는 '커밍아웃' 부부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황혼이혼' 건수가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해 전체 이혼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 이혼의 급증은 황혼 결혼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60세가 넘어 황혼 결혼한 남성은 6천126명, 여성은 3천604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통계를 처음 집계한 1990년과 비교하면 남성은 3.9배, 여성은 9.1배나 늘어난 수치다. 75세 이상 결혼도 남성은 같은 기간 128명에서 660명으로 5.1배, 여성은 9명서 264명으로 29.3배나 많아졌다. 결혼생활은 여섯 가지 이유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는 사랑, 나머지 다섯은 신뢰라는 것이다. 1975년 9월호부터 월간지 샘터에 소설

  • [참성단]서해 수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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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서해 수호의 날 지면기사

    '명예훈장(Medal of Honor)'은 미국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훈장이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유훈장'과 함께 '명예훈장' 시상식을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 그래서인지 검증작업도 매우 까다롭다.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걸프전 복무 중 사망한 여자 조종사에게 사상 최초로 여군 명예훈장을 추서하기 위한 조사단의 검증 과정을 그렸다.'명예훈장'은 1862년 남북전쟁에서 처음 수여된 이래 지금까지 3천400여 명의 군인에게만 수여됐다. 이 중에는 1871년 '신미양요'에 참여한 미군 15명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146명도 포함돼 있다. 훈장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받으며 이 과정은 미 전역에 생중계된다. 훈장 수훈자는 대통령부터 장군, 의원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다. 이들 자녀에겐 조건만 되면 추천이나 입학 정원에 상관없이 미국 사관학교 입학이 주어지는 등 14가지의 큰 혜택을 준다. 미국은 이런 예우를 해줌으로써 국민 간 결속을 다진다. 이는 미 국민의 군인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게 몸에 밴 이유이기도 하다.우리의 군인 예우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지난해 7월 17일 포항에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도중 추락해 5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와 시신 등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처리는 어이가 없었다. 사고 현장을 즉시 공개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뜬금없는 발표로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대통령의 애도 역시 사고 3일 후에야 나왔다. "유족들이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 같다"는 국방부 장관의 실언에 유족은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오늘은 4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2016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과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사는 천안함이 폭침(2010년 3월 26일)된 3월 넷째 주 금요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다. 1회엔 박근혜

  • [참성단]안 들리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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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안 들리는 능력 지면기사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지. 너는 축복받은 거야." 청각 장애인인 10대 소녀는 인공와우 수술을 앞두고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은 작가의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소설 중 한 대목이다.안 들리는 게 능력이고 축복이라고? 뜬금 없는 소리 같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나서 소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말은 욕이었다. 구화(口話)를 배운 뒤 비밀 욕 수첩을 만들고, 소설책에서 생전 처음 보는 욕들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가 옥상에 혼자 있을 때 꺼내어 소리 나게 읽어보며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습한 결과였다. 소녀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표현대로라면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소리가 온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방향감각도 이상해져서 종종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소녀는 말보다 오히려 수화(手語)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던 듯 싶다. 구화를 배우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기 전, 수화가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이었던 소녀의 독백이다.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듯이." 수화를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문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자기반성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청각 장애인도 아니면서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다.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나팔로 청각을 일시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거나 시도한 철없는 젊은이들이다.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차 안에서 나팔을 귀에 대고 1~2시간 동안 인상 찌푸리며 고막을

  • [참성단]돌아온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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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돌아온 반기문 지면기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별명은 '기름 장어'다. 민감한 질문이나 난처한 상황을 매끄럽게 잘 피해간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줬다. 본인도 이 별명을 능숙한 외교관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여겨 싫어하지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 취임 전 기자들에게 스스로 별명의 유래와 의미를 홍보했다. 미국의 한 방송 사회자가 질문마다 모호한 대답을 하는 그에게 "한국에서 당신을 왜 미끄러운 장어라 하는지 알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반 전 총장이 대권 도전 움직임을 보이자 비판적인 언론으로부터 '기회주의자'로 집중 공격당하는 등 별명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하지만 반 전 총장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는 당시 유엔 내에서도 유명했다. 재임 중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프리카 연합 혼성 평화유지군 파견'이라는 공로를 세웠다. 특히 반 전 총장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도 10년 재임 기간 기후변화 분야의 성과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의 노력의 결실은 2015년 12월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이 협약엔 무려 195개국이 동참했다. 그는 이 협약을 위해 전 세계를 직접 뛰어다니며 세계 각국 정상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반기문이 '미세먼지 해결사'로 돌아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직을 그가 수락했다. 그의 등장으로 대중국 외교력 및 국제사회 영향력으로 인해 미세먼지를 둘러싼 한·중 외교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하지만 중국의 오만한 태도로 인해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도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온 국무총리실 미세먼지특별위원회보다는 외교 전문가로서, 중국 등 주변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하고 중재할 능력을 갖춘 반 전 총장의 능력이 더 돋보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반 전 총장은 UN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기후변화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해 3월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에 선출됐는

  • [참성단]서울외신기자클럽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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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서울외신기자클럽 성명 지면기사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며 언론의 자유가 국가나 정부에 앞서는 가치임을 단언했다. 물론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와 정부도 있다. 파시즘의 이탈리아, 나치즘의 독일,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 국가나 정부가 그렇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를 박탈한 이런 국가나 정부는 혁명의 대상이지, 애국의 대상이 아니다.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서 왕정(王政)을 비판해 온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 주재 총영사관저에서 살해했다. 터키 수사당국은 암살단이 그의 손가락을 자르고 참수하는 현장의 녹음을 확보했다. 왕실 편에 있다가 왕정을 반대하는 언론인으로 변신한 카슈끄지를 사우디 왕실은 배신자로 규정해 처단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랍이 가장 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그의 유고를 게재해 사우디 왕실에 항의했다.언제고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언론인, 언론사는 남다른 연대감을 갖는다. 국내 언론이 탄압받던 시절 수많은 외신들이 한국의 진실을 알렸다. 독일 공영방송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목숨 걸고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자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항의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진실을 외신을 통해 마주했다.서울외신기자클럽이 16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언론 통제의 한 형태이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3일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블룸버그 통신의 기자 실명을 밝히고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항의이다. 이 기자는 지난해 9월 문제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기사를 작성한 장본인이다. 이 기자는 이 대변인의 지목으로 비난의 '표적'이 돼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라고 한다.민주화의 주역을 자초하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의 DNA에 언론탄압은 없다고 자부해도 토를 달기 힘들다. 그런 민주당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