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어벤져스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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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어벤져스가 뭐길래 지면기사

    영화관이 1년에 73일 이상 한국영화를 반드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제'는 늘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폐지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한국영화 붕괴를 우려한 영화인들이 길거리로 나서 삭발투쟁을 벌였다. 한국 최고의 감독 봉준호도 한때 스크린 쿼터 폐지를 반대하며 1인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괴물(1천300만)'과 '설국열차(935만)'로 스크린을 독점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한국영화 발전에 스크린 쿼터제는 큰 도움이 됐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편의 영화에 무려 2천500만명의 관객을 부른 2012년 7~9월, 한국영화 좌석 점유율은 70.4%였다. 물론 이 때문에 아픔도 있었다. 매년 평균 100편의 한국 영화가 제작되지만, 흥행작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개봉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등장한 게 '스크린 상한제'다. 우리나라처럼 특정 영화의 상영 점유율이 90%를 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전국 3천58개 스크린의 95.7%인 2천927개를 독점했다. 덕분에 개봉 첫날 134만873명의 관객을 동원해 오프닝 기록도 세웠다. 스크린 부족으로 1개 스크린에 4개 영화가 '시간 나눠먹기'를 벌였다. 이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군함도' '명량' '신과 함께' 등 천만 관객영화가 나올 때마다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그때는 넘어갔었다.하지만 이번엔 예사롭지가 않다. 찬반논란이 뜨겁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2일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스크린 상한제를 위한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한 후, "정부가 '어벤져스 규제'로 인기 영화 상영을 제한하려 한다"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서다. 이미 국회에는 스크린 상한제를 제도화한 4개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다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마치 '고양이 목 방울 달기'와 같다.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영화 한 편이 전체 스크린의

  • [참성단]진보 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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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진보 대연합 지면기사

    1990년 2월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이 탄생했다. 두 글자로 줄이면 '民自', 한글로 쓰면 '민자', 그래서 밋밋하고 '개성 없음'을 꼬집는 '민짜'로 발음되기 쉬우므로 당명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꽤 많았다.당시 3당을 '보수 대연합'으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보수·중도합당'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도 분분했다. 정치학자들조차 뭐라 부를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원래는 1당만으로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하는 당이 없을 때, 내각책임제의 경우는 복수의 당이 합쳐서 정권을 만드는 경우를 '연립' 또는 '연합정권'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제1당과 제2당이 합쳐서 정권을 탄생시키면 '대연립' 또는 '대연합', 제1당이 제3당과 합치면 '소연립' 또는 '소연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2당인 평민당이 빠졌으니 '대연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당시 언론은 3당 합당을 '보수 대연합'이라고 불러주었다. 진보성향의 강력한 제1야당인 평화 민주당이 빠졌지만, 보수와 중도가 모두 모였으니 '보수 대연합'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4당이 선거제도 개편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3개 안건'에 합의함으로써 정국은 1여 4야에서, 순식간에 4여 1야로 바뀐 느낌이다. 일부에선 90년 '보수 대연합'을 빗대어 '진보 대연합' '한지붕 네 가족당'이란 소리도 들린다. 이게 꼭 틀렸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신속처리 절차에 돌입하면 최장 330일이 걸려 이 기간에 4개 당은 최대 쟁점 현안에서 협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라면 여·야 5당이 합쳐 1당이 된들 탓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상황도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려는 '진보 대연합'이 국민 다수로부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밥값 못한다"며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자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밥그

  • [참성단]슬픈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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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슬픈 결혼식 지면기사

    인현동 화재 참사가 발생하고 5일 후인 1999년 11월 4일 이른 아침, 인천 길병원 영안실에서 정명환 당시 남구청장이 주례사를 읽어 내려갔다. 목멘 주례사가 이어지는 사이 탄식과 흐느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두 젊은 영혼이 지금 영정으로 만나지만, 이 모순되고 부도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함께 스러져간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 그날 함께 떠난 넋들을 하객으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남아있는 부모와 어른들을 증인으로 삼아 그대들이 영혼으로 맺어진 천생배필임을 확인하나이다."주례의 결혼 선포로 사돈이 된 두 아버지는 서로 아들과 딸을 대신해 흑장미와 순백의 국화를 교환했다.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던 두 어머니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자식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부모들의 눈물겨운 배려에 두 영혼은 이렇게 백년가약을 맺었다. 열일곱,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였다. "신랑은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다 변을 당했고, 신부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모범생이었어요." 아이들을 추억하던 참석자들은 이들이 저승에서라도 서로를 보듬으며 해로하기를 기도했다.어느덧 20년 전의 일이다. 영혼결혼식이 열린 길병원 영안실은 개인적으로 가장 슬펐던 취재현장이었다.인현동 화재 참사 20주년을 맞는 올해, 인천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현동화재참사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인현동화재참사 20주기 추모준비위원회'가 인현동 화재 참사를 인천의 '공적 기억'으로 복원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고통받은 유족과 지인의 사회적 치유와 희생자의 명예를 복원하여 인천시민에게 도시의 공공성을 확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의 공적 책임과 시스템 점검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인현동 화재 참사는 아픈 기억이다. 상당수 유족은 마치 손에 박힌 가시와도 같은 '아픈 기억'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 [참성단]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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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지면기사

    1977년까지 난지도는 '난초(蘭)와 영지(芝)가 자라던 섬'이었다. 조선 시대 김정호의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꽃 섬'이라는 의미를 담은 '중초도'(中草島),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오리섬'(압도·鴨島)이라고도 표기했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그윽한 풍경은 1978년 난지도가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이 되면서 모두 사라졌다.1993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폐쇄로 새로 조성된 곳이 인천 서구의 수도권 쓰레기매립지다. 정부가 동아건설로부터 부지를 양도받아 1991년부터 조성했다.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당시 부지 선정을 두고 갈등이 컸다. 이곳은 1960년대 빈민구제사업으로 조성한 해안간척지로 80년대 들어서면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지금은 전국의 40%에 달하는 수도권 3개 지자체의 쓰레기가 묻힌다. 제1 매립장은 2000년, 제2 매립장은 2013년 총 폐기물 1억4천257만t이 묻히며 매립장의 역할을 사실상 다했다. 하지만 대체 매립지가 없다는 이유로 논란 끝에 사용 기한을 한시적으로 연장했다. 지난해 9월 매립을 시작한 제3-1 매립장은 2025년 8월까지만 사용하는 것으로 지자체들이 합의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민들의 반발로 더는 대체 매립지를 발표하지 못하자 공모를 통해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를 선정하기로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합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가 않다.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NIMBY) 현상이 작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뒷마당에는 절대 안 돼! (Not in my backyard!)"라고 반발하는 주민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그런데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너무 많은 쓰레기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가 모두 그렇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할 뿐이다. 쓰레기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지방자치단체 간 긴밀한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총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에

  • [참성단]김대중 - 김홍일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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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김대중 - 김홍일 부자 지면기사

    아들에게 아버지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 엮인 숙명적 관계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3대의 부친살해를 통해 창세의 혼돈을 정리하고 신들의 세계를 정립한다.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뒤 결국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세상과 절연한다. 피를 나눈 부자지간의 비극은 신들이 설계한 운명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다.혈연을 중시하는 동양문화에서도 아버지의 업과 운명은 자식에게 미친다. 정치분야는 특히 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버지 시중쉰이 문화대혁명으로 숙청당하자 15살 나이에 산시성 촌구석으로 하방당해 토굴 속에서 7년을 보내야 했다.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은 과거시험에서 조부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해 급제했으나, 뒤늦게 조부임을 알고 평생을 방랑했다. 비정한 정치판에서 부자의 운명은 연좌를 피하기 어렵다.지난 20일 작고한 김홍일 전 의원이 부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길을 함께 한 것도 숙명이었을 것이다. 군부독재의 박해에 시달리는 부친을 두고 다른 길을 모색한다? 언감생심이었을 터이다. 신군부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두 부자를 함께 감옥에 가두었다. 아들은 투옥 전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었다. 휠체어 없이 거동을 못했고 언어장애도 심했다.아버지 김대중은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뼛속까지 아팠다"는 심경을 자서전에 남겼다. 박지원 의원의 전언대로면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니, 그 정경이 참담하다. 아들이 인사청탁 수뢰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아버지는 "홍일이가 유죄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현금 3천만원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니, 아들에 대한 부채의식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김 전 의원은 오늘 발인을 마치고 광주 5·18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조문객의 바람대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담을 마음껏 나누기 기원한다. 엄혹했던 역사에 휘말린 정치적 동지로서가 아니라 그저

  • [참성단]임진강 상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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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임진강 상괭이 지면기사

    태종실록 1405년 11월 20일에 이런 기사가 실려있다. '큰 고기 여섯 마리가 바다에서 조수(潮水)를 타고 양천포(陽川浦)로 들어왔다. 포(浦) 옆의 백성들이 잡으니, 그 소리가 소(牛)가 우는 것 같았다. 비늘이 없고, 색깔이 까맣고, 입은 눈(目)가에 있고, 코는 목(項) 위에 있었다'. 양천포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잡혔다는 6마리의 고기는 '상괭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갑자년(1564년)에 한강에 큰 물고기가 나타났다. 크기는 돼지만 하고 색상은 희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머리 뒤에 구멍이 있었다'고 적혀 있는데 이 역시 상괭이로 추정된다. 상괭이는 최대 크기가 약 1.5~2m로 회색 몸통에 주둥이가 짧고 등지느러미가 없다. 이빨 고래류 중 덩치가 가장 작다. 예로부터 바다와 강에서 흔히 발견되다 보니 지역에 따라 '쌔에기' '슈우기' '무라치'로 불렸다. 순조 14년인 1814년 흑산도에 유배 중이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상괭이를 '상광어(尙光魚)'와 '해돈어(海豚魚)'라 적었다. 얼굴 모양이 사람이 웃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웃는 돌고래', '형사인(形似人)' 즉, 사람을 닮은 물고기 '인어'라고도 불린다.상괭이는 남·서해안에 주로 서식하지만, 옛날에는 통진(김포) 부근에 특히 많았다. 다른 돌고래와 달리 염분이 적은 물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강에 사는 돌고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보토'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분홍돌고래', 라오스의 '이와라디 돌고래'도 메콩 강에 서식한다. 이들의 특징은 개발과 수질 오염,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적인 희귀동물이라는 점이다. 사람같이 여러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모두 인어 전설쯤 하나씩 가진 것도 공통점이다. 인천 장봉도의 인어 전설도 상괭이에서 연유한다.지난 17일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상괭이 한 마리가 파평읍 율곡리 임진강 변에서 발견됐다. 최근엔 지난 2015년 4월, 5월 두 차례 한강 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적은

  • [참성단]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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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반값 등록금 지면기사

    대학을 가리키는 말도 세태에 따라 변했다. '신성한 학문, 진리의 전당'을 가리키는 '상아탑(象牙塔)'은 대학생에게 '듣보잡'이 된 지 오래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란 의미의 '우골탑(牛骨塔)'도 대학가에선 아주 낯선 용어다.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부모의 등골이 휜다는 '인골탑(人骨塔)'에 이어 '늙으신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여 자녀 학비를 댄다'는 '모골탑(母骨塔)'이란 신조어가 요즘 대세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음을 뜻한다.2017년 사립대 등록금은 평균 742만원이다. 10년째 동결이라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지난 30여년간 한웃값은 6배 올랐으나 대학등록금은 85배 뛰었다. 지난해 송아지 한 마리가 350만원 안팎으로, 1년 등록금을 위해서는 송아지 2마리를 팔아야 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이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록금 대출을 받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취업 즉시 대출금 상환을 해야 하는데, 취업 역시 하늘의 별 따기다. 이래저래 등록금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다.대학등록금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정부가 '등록금 상한제'까지 만들어 인상의 고삐를 바짝 죄는 것도 그래서다. 현행 고등교육법엔 등록금 인상률과 관련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학이 원하는 대로 등록금을 인상해 줄 경우 표밭인 20대들로부터 역풍을 맞는다는 걸 정치권도 잘 알고 있다. 대학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등록금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등록금 인상 시 국가장학금·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반값 등록금'은 정치권의 매혹적인 어젠다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문제는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다. 안산시가 먼저 움직였다. 지자체 중 최초로 관내 모든 대학생에게 등록금의 50%를 지원키로

  • [참성단]망언정치언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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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망언정치언어상 지면기사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김훈 작가가 얼마 전 산문집('연필로 쓰기')을 내면서 '알림'이란 제목으로 서두에 쓴 글이다. 역시 글쓰기의 대가 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 더 나아가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만이 갖출 수 있는 자신감이 단어 하나 하나에 흠뻑 배어있는 듯하다. '알림'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선언문' 같은 중량감이 느껴지는 것은 연필 끝에 가해지는 내공의 무게 때문이리라.외람되지만 이 글을 한 번 뒤집어 본다. '나는 여론을 일으키고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의 글은 무엇인가를 도모하며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린다'. 뒤집고 보니 좀 섬뜩하다. 일부 정치인들의 글쓰기(또는 인용하기) 행태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치인의 글쓰기와 관련해, 일종의 강령을 압축해 놓은듯한 느낌도 든다.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SNS에 쓰거나 인용한 세월호 망언에도 '편을 끌어모으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던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월호 유가족을 겨냥해 "징하게 해 처먹는다"거나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식의 자극적인 표현(문장)을 불특정다수가 보는 SNS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정치인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길거리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음식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이 나오기만 해도, 아이와 함께 걷던 길에 접어들기만 해도 아이 얼굴부터 떠오르는 걸 어떡합니까." 예전에 접했던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의 호소다. 세월호 유가족의 5년 세월도 이랬을 터인데 일부 정치인들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이 와중에 망언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국회의원이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 시상식에서 품격언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품격이란

  • [참성단]불탄 노트르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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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불탄 노트르담 대성당 지면기사

    지금은 우리 모두 할리우드 영화에 푹 빠져 있지만, 한때는 '프랑스 영화'로 몸살을 앓았다. 지금은 극장 문을 나서면 내용을 금세 잊지만, 프랑스 영화에 응축된 깊은 예술성에 영화를 보고 난 후 감흥은 꽤 오래갔다. 여기에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도 프랑스 영화였다.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누벨 바그'라는 영화운동이 나올 만큼 프랑스 영화는 예술 영화의 상징이었다. 르네 클레망은 예술로서의 프랑스영화를 완성 시킨,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흠모하는 감독이다. '태양은 가득히' '금지된 장난' '목로주점'에서 그는 독자적인 영화 사실주의를 개척했다.1966년 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클레망은 실사화면을 중간중간에 넣어 영화의 사실주의를 극대화 시키려고 했다.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알랭 드롱, 장 폴 벨몽드, 샤를르 부아이에, 커크 더글러스, 글렌 포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단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기꺼이 영화에 동참했다. 영화는 파리에서 철수하는 나치스 군에게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예술을 사랑한 점령군 사령관이 히틀러 명령에 복종할 것인지, 예술의 도시 파리를 지켜야 할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고뇌를 다뤘다. 항복한 사령관이 놓친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히틀러의 절규는 이 영화의 백미다.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휩싸인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영화의 엔딩신 때문이다. 연합군의 파리 입성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소리였다. 클레망도 이를 꽤 비중 있게 다뤘다. 종 치는 장면과 파리로 들어오는 연합군, 개선문을 향하는 드골 장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교차 편집해 노트르담의 종소리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처럼 노트르담 대 성당은 프랑스인의 꿈이자 희망이며 자긍심이었다.프랑스의 '심장'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로 프랑스인이 받을 정신적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아플 것이다. 우리도 2

  • [참성단]백두산 분화(噴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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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백두산 분화(噴火) 지면기사

    동해 바닷물이 마를 일도 없고 백두산이 닳아 없어질 일도 없다. 애국가 1절은 동해와 백두산을 담보로 대한민국의 영원한 존속을 장담한다. 그런데 동해는 몰라도 백두산은 닳아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어제 국회에서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는데, 발표자들의 걱정이 예사롭지 않다.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잦은 지진이 발생했던 백두산이 잠시 안정됐다가 지난해 부터 다시 지진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수 포항공대 교수는 "946년 백두산 분화 당시 방출된 화산에너지는 약 840경(1京=1兆의 만 배) 주울(J)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에너지의 16만배, 동일본대지진의 4배"라고 밝혔다.국제 공동연구팀은 2017년 천지 부근에서 발견된 낙엽송 화석의 나이테를 정밀 분석한 결과 백두산 대분화의 시점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특정했다. 이전에는 대충 서기 1천년 안팎 쯤으로 추측해 학계에서는 백두산 '천년 분화'로 불러왔다. 백두산 천년 분화 정도의 화산 폭발은 1만년 동안 네 번 뿐이었단다. 100㎦ (1천억㎥)의 화산재가 일본 홋카이도를 덮치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그린란드의 빙하에도 쌓였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은 터무니 없이 천년 분화를 고대 한국인 멸종설, 발해 멸망설의 근거로 주장할 정도다.백두산이 천년 전의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재앙의 규모는 당시 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천지 아래 마그마가 솟구쳐 20억㎥에 달하는 천지 물을 만나면서 엄청난 수증기와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덮쳐 지구환경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 국가지진국이 천지화산관측소를 설치해 백두산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우리 학자들은 지금이라도 남북을 포함해 백두산 화산을 감시할 국제공동연구를 주장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도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는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 모양이다. 백두산이 화산폭발로 닳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염원하지만, 남북이 공동 대응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북한의 호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