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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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체육(代替肉) 지면기사
육류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가 아니라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 창 刊)를 읽고 나서다. 새삼 독서의 위대함까지 깨우쳐 준 이 책의 저자는 닭, 돼지, 개 농장에서 노동하면서 동물이 식용고기가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적고 있다. 그 묘사가 너무 생생해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영화 '옥자'를 보았을 때처럼 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2주 정도는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선 육류, 특히 쇠고기의 과잉섭취로 인해 '풍요의 질병' 즉, 심장 발작, 암, 당뇨병 등에 걸려 죽고 있다"며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채식주의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전통적인 축산업이 환경파괴 논란을 낳고 있으며, 밀집 사육시설과 도축과정에서의 잔인함 등 동물복지를 문제 삼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채식주의를 선언해버리는 이들도 꽤 많다.전 세계 육류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연 매출 55조원의 다국적 기업 '타이슨 푸즈'가 지난해 5월 구멍가게 수준의 '퓨처미트 테크놀로지'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발표했다. 퓨처미트는 '실험실 고기'로 불리는 '배양 고기' 원천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회사다. 이 밖에도 타이슨 푸즈는 '비욘드 미트' 지분도 5% 인수했다. 이 회사 역시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효모, 섬유질 등과 배양해 고기의 풍미, 육즙, 식감을 구현한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회사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공룡 기업이 이런 대체육 제조회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슨 푸즈의 발 빠른 움직임에서 우리는 '축산업의 종말'을 읽는다.지금 미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식품 기업까지 대체 식량 개발에 한창이다. 고기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재현해 낸 대체육이 세계 식품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100% 식물성 단백질이면서도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을 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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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닥터-카' 달리다 지면기사
"자네 아버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았고 한국 사람처럼 죽었네."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벽안(碧眼)의 청년이 아버지의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응급구조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에선 길에서 허무하게 죽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택시로 병원에 이송됐는데 의사의 권유로 더 큰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택시 안에서 숨졌다. 이후 청년은 전 세계 각국을 돌다가 선진화한 미국 텍사스의 응급구조시스템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5인승 승합차부터 사들였다. 이어 목수, 철공 기술자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승합차를 구급차로 개조하는 일에 매달렸다. 대한민국 1호 구급차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때가 1993년이다. 사실 이전에도 구급차는 있었다. 1972년 전북 전주소방서를 시작으로 1973년 부산 동래소방서 등 일부 소방서에서 구급차를 운영했고 1982년 3월 서울소방본부에서 구급대를 창설하면서 119구급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8년 경성교통안전협회의 의뢰로 경성모터스주식회사가 제작한 구급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당시 백미 240가마를 살 수 있는 '거금'이 투입된 이 구급차는 중상자 2명이나 경상자 4명을 동시에 이송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들 구급차는 단지 환자를 이송하는 운송수단에 불과했다. 차 안에 의학 설비를 갖춰 응급처치가 가능토록 한 전문 앰뷸런스는 청년이 제작한 구급차가 최초다. 그 청년이 이제는 60대로 접어든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1895년 외조부가 선교를 위해 제물포 땅을 처음 밟은 것을 시작으로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가 뚱땅거리며 만든 구급차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며 구급차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응급구조시스템에서 볼 수 없었던 신개념의 구급차가 또 한번 선을 보였다. 가천대길병원이 지난 12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에 들어간 '닥터-카'다. 전문의와 간호사 등 전문 의료진이 응급구조사와 함께 탑승한다는 것이 응급구조사만 타는 기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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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백건우의 지방 연주회 지면기사
피아노의 귀재 '안톤 루빈시테인'은 앵글로 색슨의 콧대 높은 자존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인이 대문자로 쓰는 유일한 글자는 나(I)이다. 이것은 그들의 민족성을 가장 뚜렷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대계 러시아 출신인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연주여행을 하면서 영국인들이 지나치게 '아이'를 내세우는 게 싫어서 그랬는지, 영국인들의 그 '자만'이 부러워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쓰라린 역사를 떠올리며 선조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1960년대 서구로부터 가장 열렬한 환호와 칭송을 받은 대 피아니스트였다. 끊임없는 귀화 요구에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낳아주고 키워준 소비에트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71세였던 1986년 그는 자동차 한 대에 몸을 싣고 당시 레닌 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대륙을 횡단하며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을 찾아 순회연주회를 열었다. 시골성당의 낡고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도 그의 감동적인 연주를 막지 못했다. 이런 '마을연주회'가 100회를 넘었다. 언제는 스무 명 앞에서도 연주했다. 자신들을 찾아준 고마움과 그의 음악에 감동한 마을사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우리의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25년째 지방을 찾아가 연주회를 열고 있다. 거기에는 섬도 포함되어 있다. 2011년 9월 연평도에서 시작한 첫 섬 연주회는 관객들이 둘러앉거나 일어선 채 자유분방하게 대가의 공연을 관람해 신선함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악기 등 조건이 갖춰진 곳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음악은 청중에게 잘 전달됐다. 섬마을을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한국적인 속살을 찾고 싶었다."백건우가 지방 순회 연주회를 시작한다. 이젠 사통팔달 길이 뚫려 지방이라 하면 그곳 분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수원 인천을 제외하곤 거장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곳이라 이번 '백건우 & 쇼팽' 연주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16일 군포, 17일 여주, 19일 과천, 20일 광명, 30일 수원,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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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베네수엘라 지면기사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로 이어진 베네수엘라 좌파정권의 20년 사회주의 경제실험이 비극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차베스는 1999년 집권해 신자유주의 경제를 배격하는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펼친다. 석유산업을 재국유화해 거머쥔 오일머니로 빈민층에게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을 제공했다.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이다.차베스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좌파 선봉장을 자임했다. 국장(國章)에 그려진 백마가 오른쪽을 향한다고 왼쪽으로 틀어버렸을 정도였으니, 전세계 반미 사회주의 세력들의 추종은 당연했다. 국내에서도 진보성향 정당과 매체들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주목하고 열광했다. 하지만 오일머니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사회주의 경제실험은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파국에 직면했다.파국의 피해는 온전히 베네수엘라 국민의 몫이 됐다. 오일머니가 마르자 마구 찍어낸 화폐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지난해 0.8볼리바르였던 커피값이 최근에 2천800볼리바르로 3천500배가 올랐다. 80만%라는 인플레이션으로 수공예품 재료로 전락한 화폐는 종이 값에도 못미친다. 극심한 경제난을 피해 전체인구의 10%인 300만명 이상이 국외로 탈출해 구걸과 매춘으로 낯선 나라의 거리를 헤맨다. 콜럼비아 등 베네수엘라 접경국가들은 국경을 봉쇄하고 나섰다.급기야 최근엔 대정전 사태로 나라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 국가가 수력발전에 의존하다 발전소가 고장나자 블랙아웃에 휩싸였으니 이만한 미스터리가 없다. 한때 남미 최고의 부국이자 최대의 위스키 소비국이던 베네수엘라가 대정전으로 중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시민들은 냉장고에 아껴둔 비상식품을 꺼내먹는 지경에 처했다.나라는 거덜났는데 대통령은 두명이나 된다. 차베스의 뒤를 이은 좌파의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스스로 대통령을 선언한 우파정당 연합의 과이도 국회의장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를 지원하는 외세의 간섭은 노골화되고 좌파 기득권세력과 우파 정권교체세력으로 민심도 갈라졌다.대정전은 연극의 암전과 같다. 대정전의 암흑 속에서 베네수엘라의 파국의 무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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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야구에서 '1'의 의미 지면기사
선동열의 손은 손목에서 중지까지의 길이가 18㎝다. 손가락만 따지면 중지가 7.7㎝로 한국 성인 남자의 평균치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 에이스 정민철의 23㎝에 비하면 무려 5㎝나 짧다. 최전성기 시절에도 포크볼을 던지지 못한 것은 짧은 손가락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KBO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했다. 이런 위력 투구로 선수시절 내내 검지와 중지 사이를 째서 손가락 길이를 늘렸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야구에서 '1'의 의미는 매우 크다. 선동열의 손가락 길이가 실제 1㎝만 길었다면 한국야구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야구장 외야 펜스까지의 거리가 1m 길거나 짧다면 홈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야구공이 1㎜ 크거나, 작다면 야구 경기의 흐름도 바뀔까. 아마 그럴 것 같다. 2018년 프로야구는 뚜렷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보였다. 정규리그 702경기에서 터진 홈런은 1천756개로 프로야구 사상 최다였다. 40홈런 타자도 5명이 나왔다. 이유가 있었다. 공의 반발계수(공이 튀는 정도)가 원인이었다. 반발계수가 0.01 높아지면 평균 비거리는 2m 정도 늘어난다. 공 때문에 지난 시즌 게임마다 예기치 않은 홈런이 쏟아져 나와 재미보다는, 수준 이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야구의 묘미라는 '팽팽한 투수전'도 사라졌다.여론에 못 이긴 KBO가 올 시즌부터 공인구 둘레를 1㎜ 크게, 무게도 1g 정도 늘렸다. 특히 실밥 폭도 1㎜ 커졌다. 이 때문에 반발계수가 0.4034∼0.4234로 0.01 낮아졌다.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들에겐 희소식이다. 실밥이 커 '채는 맛'이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공을 끼어 던지는 포크볼 투수는 불리해졌다. 공이 커져 '꽉 죄는 맛'이 없어져서다. 직구 위주의 투수도 불리하다.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이 고작 1㎜ 1g 바뀐 공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미세한 변화에도 투수들은 그만큼 민감하다. 야구는 그런 경기다.내일부터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예전보다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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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회전문 인사 지면기사
'관직을 얻으려고 갖은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을 '엽관(獵官)'이라고 한다. 사냥 렵(獵)에 벼슬 관(官). 거칠게 직역하면 '관직을 사냥하는 것'으로 썩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엽관에 제도가 붙어 '엽관 제도'가 되면 '권력자나 정당이 관직을 독점하는 정치적 관행'이 된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마시 상원의원의 '전리품은 승리자에게 속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제도화 시켰다. 우리가 귀아프게 듣고 보았던 '회전문 인사'나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가 이 제도의 산물이다.주중대사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정되자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흠집을 내고 물러났다. 불과 얼마 전 고대 졸업식장에서 "나는 무지개를 쫓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4강 대사 중 하나인 주중대사에 임명되면서 청와대 인재풀에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회전문 인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퇴임 한 달 만에 UAE 외교 특별보좌관에,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실패로 물러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소득 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왔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 담당 행정관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에 다시 임용됐다.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꼽힌다. 신 교수는 생전에 '70%의 자리론'을 강조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신 교수는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된다고 우려했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면서도 높은 자리를 가고 싶어하는 세태를 꾸짖은 것이다.오늘중 개각이 있을 예정이다. 역량이 출중해 그 자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면 회전문이 아니라 회전목마 인사라 해도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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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미세먼지 소행성 지면기사
"잠든 봄은 흑백으로 오고/깨어있는 봄은 총천연색으로 오리라."'봄의 예언'(강효수)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의 표현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봄은 잠들어 있다. 국토가 온통 잿빛이라 총천연색하고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경칩(驚蟄)에 잠이 깬 개구리가 숨이 막혀 다시 땅굴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나 왕년에 올챙이 적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하면서. '미세먼지 가득한 소행성'이라는 제목으로 경인일보에 게재된 인천 송도의 모습(사진)은 이처럼 미세먼지에 갇힌 대한민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내 미세먼지에 큰 책임이 있는 중국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영 마뜩잖다.비유를 하나 들어본다. 한 아파트에 층간소음으로 악명높은 집이 있다. 그런데 아파트 부녀회장이 그 집만 빼고 아이가 있는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소음을 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중국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면서 자국민에게 차량 2부제나 독려하는 정부가 그 모양새다. '중국'을 적시하지 않고 '국외 미세먼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살인사건 현장에 투입된 경찰이 마피아 보스의 총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것은 애써 외면한 채 바닥에서 증거를 찾는 척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세먼지의 가장 큰 주범으로는 중국 동안지역에서 발생하는 산업스모그가 꼽힌다. 이 스모그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넘어오는 것이다. '스모그'를 얘기하니 그 악명높았던 '런던 스모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52년 12월 석탄 연소로 배출된 연기가 대기로 확산하지 못하고 지면에 정체하면서 1만2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환경 참사가 런던스모그 사건이다. 물론 67년 전의 런던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기에 단순한 비교는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기가 정체된 상황에서 국외에서 초미세먼지가 지속해서 유입됐고, 국내 발생 오염물질이 퍼지지 못하고 국내에 머물면서 고농도 현상이 이어졌다'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분석에서 뭔가 교집합의 빗금이 엿보인다. 정부는 이제라도 중국이라는 문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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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개구리도 놀랄 경칩(驚蟄) 지면기사
한국인의 보양식에 대한 집착은 참 유별나다. 몸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내 몸이 좋아진다면 남이야 뭐라 하든 말든 일단 잡아서 먹고 본다. 한때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고 하니까 마리당 무려 30만원에 거래된 적도 있었다. 개구리는 이들의 늘 1차 표적이다.2006년 출간된 박지성 선수의 자전에세이 '멈추지 않는 도전'에 수원공고 시절 자신의 작은 키를 걱정한 아버지가 보양식으로 해 준 '개구리 즙'을 먹고 큰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보도 후 실제 전국적으로 개구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산개구리 싹쓸이 현상마저 일어났었다. 청주지역 환경단체들이 2012년 경칩을 맞아 박 선수에게 개구리 보호활동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선수가 개구리 보호에 나서면 개구리가 보양식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야생 개구리 포획은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줄지 않는다. 정력 부족으로 기가 약하거나 폐가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적시한 '동의보감'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어느 연예인이 TV에 나와 실제 효과를 봤다고 개구리 즙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터무니 없었던 '박지성 효과'가 생각 나서다.개구리 즙이 건강에 좋다는 소문으로 산개구리들이 여전히 수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자연산 개구리 1㎏에 10만원을 호가한다는 말도 들린다. 인터넷에서 개구리 즙 판매광고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판매업자들은 양식 개구리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나 산란하러 이동하는 산개구리들을 대량으로 포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식용개구리 사육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탓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100년 후엔 개구리가 지구 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개구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양서류가 아주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오늘은 '경칩(驚蟄)'이다. 24절기 중 세 번째로, 땅속에서 동면하던 벌레가 봄기운에 놀라 나온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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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버닝썬'과 '경찰의 자존심' 지면기사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2015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재벌 수사를 방해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거칠게 내뱉은 대사다. 한 언론사의 2018년 설문조사 결과 경찰은 최고의 영화와 명대사로 베테랑과 서도철의 대사를 꼽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은 대개 무능하고 비리에 찌든 모습으로 소비된다. 공권력을 향한 사회적 불신이 반영된 결과지만, 진짜 경찰들에겐 불편한 일이다. 베테랑의 서도철은 주눅 든 경찰들의 '가오(자존심)'를 세워준 것이다. 작명(作名) 탓인가, 클럽 '버닝썬(Burning Sun)'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중들은 현실판 '베테랑'으로 버닝썬 사건의 전개에 집중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재벌2세 조태오(유아인 분)가 마약, 성범죄 등 온갖 퇴폐적 일탈 행위를 벌인 베테랑의 '강남 클럽'은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의 미장센에 불과했다. 하지만 버닝썬 사건으로 미장센은 현실이 됐다. '물게(외모가 출중한 여성손님)', '골뱅이(만취한 여성)', '물뽕(마약)' 등 클럽 버닝썬의 은어들은 화려한 조명의 그늘에 숨어있던 마약, 성범죄의 진한 흔적들이다.버닝썬의 불길은 경찰로 번졌다. 버닝썬의 무법적 운영의 배경에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있다는 의심은 이제 사실로 굳어가고 있다. 112 신고내역을 들여다 보니 버닝썬은 작년 2월 개장 이후 마약·성추행·납치감금·폭행 등 112건의 사건이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신고됐다. 하지만 버닝썬은 아무일 없는 듯 영업했다. 역삼지구대는 오히려 사건의 발단이 된 버닝썬 폭행 피해 청년에게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경찰은 4일 마약 투약 및 유통 혐의로 버닝썬 대표 등 10여명을 입건하고, 경찰 유착의혹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불똥이 검경 수사권조정과 자치경찰제로 튀었다. 이런 경찰에게 수사권과 지방치안을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명분을 얻고 있다.영화 '베테랑'은 서도철의 수사를 방해했던 동료 경찰이 어떻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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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시인 기형도 30주기 지면기사
86년 초 공적이지도 그렇다고 사적이지도 않은 자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함께 자리했던 내 친구이자 그의 초등학교 동창은 "저 머리 긴 애 있지. 기형도야. 너도 알지? 그 '안개'라는 시"라며 안개처럼 내 귀에 속삭였다. 기형도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1989년 3월, 신문지상에서 우울한 모습의 그를 다시 보았다. 종로의 한 허름한 극장. 숨이 막히는 어두운 공간에서 기형도는 잠 자듯 쓰러졌으며, 새벽 극장을 청소하는 아줌마가 이미 사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시신을 발견했고, 그의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라는 그날의 부고만큼 슬픈 기사를 본 적이 없었다.3·1절 날 광명에 있는 '기형도 문학관'에 다녀왔다. 안양에서 광명 방향으로 안양천을 지나는데 천변 위를 올라탄 거대한 도로와 천변을 따라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만 보일 뿐, 기형도의 시 '안개'에서 묘사됐던 그 슬픈 천변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전 단 한 권의 시집도 없이 유고시집 한 권만 남긴 시인치고 문학관은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기형도가 중앙일보에 첫 출근하던 날 입었다는 빛바랜 양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오는 7일은 기형도 30주기 되는 날이다. 그를 기리는 행사들이 그의 고향 광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제는 그가 잠들어 있는 천주교 안성 추모공원에서 '기형도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내일 광명시민회관에서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라는 이름으로 30주기 추모 콘서트가 열린다. 매년 그랬듯 가수 장사익이 찾아와 '엄마의 걱정'을 부를 것이다. 7일에는 그의 모교 연세대학교에서 '신화에서 역사로-기형도 시의 새로운 이해'라는 학술 심포지엄도 열린다.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첫 사랑도 모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형도의 열기는 식지 않고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기형도라는 나무의 뿌리는 더욱더 견고하고 잎사귀는 이제 하늘을 가릴 만큼 풍성하다. 지칠 법도 한데 유고시집 '잎 속의 검은 입'은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검은색은 줄기차게 내리쬐는 빛을 견디지 못해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