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기해년(己亥年)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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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기해년(己亥年)의 희망 지면기사

    육십간지는 음력을 기준 삼아야 당연하나 양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해마다 간지를 가불해 쓰는 관행은 이제 자리를 잡았다. 오늘 천간인 기(己))와 지간인 해(亥·돼지)가 만나는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올해의 띠 동물 돼지는 방목은 가능해도 유목은 힘든 동물이다. 유목민족에게는 거추장스럽지만 농경민족에게는 수고 없이 키울 수 있는 가축이다.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 복과 재물의 상징으로 받드는 돼지의 덕목은 다산(多産)이다. 남아메리카에 돼지 몇십 마리를 풀어놓고 귀국했다 몇년 뒤 다시 찾은 스페인 탐험가들은 수만 마리로 불어난 돼지떼에 경악했다고 한다.우리 조상은 자연스럽게 돼지의 다산 능력을 축재(蓄財)와 발복(發福)의 염원으로 동기화했다. 돼지 꿈은 횡재의 전조다. 영국과 미국 기원설이 아니더라도 저금통은 당연히 돼지저금통이었을 것이다. 돼지의 점지에 따라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고려가 개성에 도읍을 정했다는 설화도 수도 번영의 염원이 담긴 기복(祈福)의 발로일 것이다. 돼지와 관련된 지명이 전국적으로 2천여개에 이르는 것도 한국인의 돼지 사랑을 보여준다.돼지의 효용도 대단하다. 돼지 장기는 인간 장기와 흡사해 인체해부가 금지됐던 고대에는 인체의 신비를 풀어줄 중요한 해부학 재료였다. 지금은 사람의 심장 판막 수술에 돼지 판막을 이식한다. 돼지 장기를 이식용으로 확대하기 위해 무균돼지나, 인간의 면역시스템에 반응하지 않도록 조절된 유전자 돼지 연구가 한창이다.물론 가장 큰 용도는 식용이다. 머리부터 꼬리, 다리, 내장까지 우리 만큼 돼지를 알뜰하게 먹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2017년 국민 1인당 육류 섭취량 중 돼지고기가 24.5㎏으로 닭고기(13.6㎏), 쇠고기(11.5㎏)에 비해 압도적이다. 특히 삼겹살 소비는 유별나서 구제역이라도 발생하면 삼겹살이 금겹살이 되고, 정부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유대를 맺어 온 돼지, 그것도 황금돼지의 해가 밝았다. 황금돼지의 능력을 빌려서라도 새해 대한민국이 무탈하기를 기원해 본다. 올해 경제적 시련이 만

  • [참성단]아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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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아듀 2018 지면기사

    2018년 마지막 날이다. 올해도 영락없이 무수한 사건과 사고로 희로애락이 순환했다. 보태고 뺄 것 없이 '다사다난'이다. 연말이면 언론사 마다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하지만, 올해 만큼 10대 뉴스 간추리기가 힘든 해도 없지 않았나 싶다.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터진 미투(Me Too) 운동으로 영원한 노벨상 후보 고은 시인을 비롯해 이윤택, 오태석, 김기덕, 조재현, 안희정 등 각계 원로와 중진들이 추풍낙엽 신세가 됐다. 집권여당의 완승으로 끝난 6·13 지방선거는 민심의 허상이 아닌 실체임을 보여주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선거를 전후해 각종 의혹사건으로 1년 내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전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경제분야는 최악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각했다. 청년 실업은 중·장년으로 확대되고, 소상공인부터 제조기업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죽겠다는 하소연 속에 경제의 성장판은 굳어가고 있다.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화재폭발, KT 통신구 화재, 고양 지하온수관 파열, KTX 탈선 등 각종 안전사고와 대형 민간화재 사고는 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한 안전불감 사회를 드러냈다. 정권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야당과, 우월한 유전자를 자부하는 정권의 대치로 한국정치는 '정신병자'가 됐다.무엇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점으로 세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초유의 미북 정상회담, 김정은 연내 답방 무산으로 이어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급변이 2018년을 관통한 빅 뉴스였다. 상황은 진행중이고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단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내년 한해도 가장 큰 뉴스 토픽이 될 것이다.상처받은 국내의 한국인을 해외의 한국인이 위로했다.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감독은 진정한 리더십에 목말랐던 대중의 갈증을 풀어주었고, 방탄소년단의 활약은 우리 미래에 비친 서광이었다.오늘 자정 직후 서울 보신각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제야의 종을 타종하면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송구(送舊)의 아쉬움과 영신(迎新)의 희망이 엇갈릴 것이다. 33번의 타종엔

  • [참성단]'GP 철조망 액자'와 군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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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GP 철조망 액자'와 군인정신 지면기사

    선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에 휘둘리는 동안 이순신은 왜란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병선을 수리하고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채워놓았다. 거북선을 건조한 이튿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즉시 제해권을 장악해 일본 병참선을 두동강 냈다.7년 전쟁 동안 옥포해전부터 명량, 노량해전에 이르는 전승신화로 영해를 장악한 그가 없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달랐을 테고 역사는 더 참혹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그를 시기한 선조의 박해는 졸렬했으나, 성웅(聖雄)의 군인정신은 한결 같았고, 조선은 보전됐다.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크리스마스 지휘서신이 화제다. 성탄 명절에도 해외 전선을 지키는 장병들에게 "조지 워싱턴 장군이 1776년 델라웨어강을 크리스마스 때 건넌 이후 미군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휴일을 잊었다"며 "야전과 바다에서, 명절과 밤에도 눈을 부릅뜨라"고 명령했다. 국민을 대신해 장병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도 표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해고 통보를 받은 처지다. 미국 여론은 매티스 마저 잘라버리는 트럼프의 광증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정치와 상관없이 군인정신을 유지하라'는 매티스의 고별명령에 안도할 것이다.대한민국 육군이 얼마 전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파괴한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의 철조망으로 액자를 만들어 전방시찰에 나선 여당 의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GP 파괴는 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를 위한 정치적 합의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는 전선 경계전략에 차질이 발생한 비상상황이다. 파괴된 GP와 철거된 철조망을 경계근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종으로 여겼어야 했다. 정치가 긴장을 풀더라도 전선의 군인은 군인정신으로 꼿꼿해야 한다.'사단 전 장병은 한반도 평화수호를 다짐하며, ○사단을 방문하신 ○○○의원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액자 문구도 가관이다. 대한민국 군인의 수호 대상은 영토와 국민이지, 정치의 영역인 한반도 평화가 아니다. 장병들이 왜 국회의원을 기억

  • [참성단]'김정호' & '민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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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김정호' & '민경욱' 지면기사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과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집권세력과 보수야당의 내면을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각각 공항갑질과 유권자 모욕 논란을 일으킨 두 의원은 해명과정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력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김 의원은 신분증을 꺼내 달라는 공항 보안요원의 요구에 국회의원 신분을 밝히며 규정에 없는 갑질을 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해명이 가관이었다. 자신이 보안요원에게 갑질을 당했고, 시민을 대표해 항의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음모론으로 맞섰다. 김해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자신을, 시쳇말로 공항공사가 엿먹였다는 취지였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했다.문제의 보안요원은 스물네살의 공항공사 협력사 직원이다. 공항공사는 김 의원이 속한 국토교통위 산하기관이다. 감히 김 의원에게 갑질하고 엿먹일 입장이 아니다. 김 의원의 억지는 '나는 무조건 옳다'는 독선(獨善) 말고는 설명이 어렵다. "사찰 DNA가 없다"는 정권 성선설과 맥락이 같다. 결국 김 의원은 사과했다. 하지만 김 의원을 통해 권력 핵심의 독선을 짐작한 국민의 경계심은 커졌다.민 의원은 "잘 지내냐"는 인사말에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낸다"고 답한 여성 유권자에게 침을 뱉었다. '고맙다고 더 분발하겠다'고 정중하게 답해야 옳았다. 보수에 적대적인 현장민심의 사례로 당 지도부와 공유하고, 대변인이 한 유권자의 직설에 감사를 표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앞에서 뱉으면 모욕이고 뒤돌아 뱉으면 모욕이 아니다? 황당하다. "비염"은 뭐고 "부덕의 소치"는 뭔 소린가. 잘 지낸다는 유권자에게 왜 침을 뱉나. 상대가 남성이었다면 멱살잡이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민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보수혁신 의지에 침을 뱉은 셈이고, 모른 체 하는 당 지도부의 시계는 박근혜 탄핵에 머물러 있다.자신의 갑질을 힘 없는 청년의 갑질로 둔갑시키고 과대망상적 음모론으로 덮으려는 여당 의원. 머리 조아리고 고마워해도 모자랄 직언에 침을 뱉은 야당의원. 두 의원은 집

  • [참성단]웜비어 사망 배상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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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웜비어 사망 배상판결 지면기사

    2016년 2월 29일 한 미국 청년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울먹이며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미국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였다. 관광회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1월 2일 귀국 비행기 탑승 전에 억류된 지 두 달만에 범죄자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이다.북한 최고재판소는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절도했다는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검사는 무기를 구형했지만 "사회주의 복을 누려가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직접 보도록 하자"는 변호로 감형됐다는 것이 북한 매체의 보도였다. 하지만 웜비어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오래 보지 못했다. 사회주의 복도 웜비어만 비켜갔던 모양이다. 북한은 2017년 6월 12일 혼수상태로 웜비어를 석방했고, 그는 귀국한 지 엿새만에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경악하고 분노했다.멀쩡한 자식을 잃은 웜비어 부모는 진상규명을 위해 북한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지난 10월 북한을 상대로 11억달러 배상소송을 냈다. 미국 법원은 24일(현지시간) 북한이 5억113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외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웜비어 부모는 북한이 아들을 붙잡아 전체주의 국가의 볼모로 쓰는 잔혹한 경험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북한이 배상할리 없다. 미국내 압류할 북한 자산도 없다. 웜비어 사망에 대한 북한 책임을 기록에 남긴 상징적 판결이다. 웜비어 부모도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법적이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세계가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성명을 냈다.지금 북한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3명 등 6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최장 5년 이상 억류 중이다. 3명의 선교사는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았다. 기독교계가 이들의 구조를 요청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애매했다고 한다. 실제로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안됐다. 답답했는지 한 교회가 정부의 구조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이다.문재인 대통령이

  • [참성단]2018 성탄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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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2018 성탄절 풍경 지면기사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아기예수')" 시인 황금찬은 오직 사랑만이 예수 탄생의 의미임을 노래했다. 생전에 '시는 신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에겐 당연했던 성탄 찬송이다.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한국은 성탄절을 휴일로 지정한 국가다. 기독교는 전래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민초들과 함께 헤쳐왔다. 굴곡 많은 역사를 관통하는 고난 속에서 기독교는 대중에게 큰 의지가 됐다. 교세가 커지면서 교회세습 등의 적폐도 생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랑의 복음은 치유 능력이 여전하다. 이제 성탄절은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이 한해의 노고를 위로하고 덕담과 선물로 사랑을 나누는 연말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굳이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상업화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사회에나 잠시 쉬어갈 시간과 판타지는 필요하다.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할 성탄절 즈음해서 한국사회는 한 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니 참 공교롭고 난처하다. 과거정권 적폐청산, 사법농단 의혹, 최저임금 갈등, 유치원 비리 파동, 미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성탄절 풍경이 을씨년하다. 청년실업이 중장년층으로 번지고, 기업이 사라진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문제를 해결할 정치는 아집과 독선으로 중증이다.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버틴다. 그의 말에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연상할 이가 있을지 궁금하다.지금 국민의 심정을 유안진의 시를 빌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황량한 들녘/ 승냥이떼 울부짖는 야밤중 홀로 버려진 새끼짐승('내 가슴을 말구유로')"이라 말하면 과장일까. 2018년 성탄절 즈음 우리 사회는 이해인 수녀의 노래대로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안에 서('성탄 시')"있는 형국이다.성탄절이다. 황금찬의 기도가 이 땅의 갈등

  • [참성단]'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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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올해의 책' 지면기사

    우리도 '독서대국'인 적이 있었다. 한해 소설이 수백만 권이 나가고, 백 만권 넘게 팔린 시집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학자들이 나서서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지 연구할 정도다. 독서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1일 평균 독서시간은 6분, 성인 세명 중 한 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책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선진국이 됐는지, 아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도 왜 책을 읽지 않는지 세계인들은 궁금해하고 있다.올해도 언론사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국민들은 책도 읽지 않는데 책을 선정해 정성스럽게 편집해 소개하는 걸 보면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책 안에 한 해의 세태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언론이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독서를 권장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매체는 달라도 보는 눈은 같아서 같은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교보문고와 인터파크, 예스24 온라인 서점 '빅 3'도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올해의 책'을 발표했다.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가 세 군데 모두 1위에 올랐다. 하태완의 에세이 '모든 순간이 너였다'와 백세희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10위 목록에 들었다.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김수현의 '나는 혼자 살기로 했다' 등 자기계발서도 눈에 띄었다. 고단한 세상 탓인지 올해도 에세이의 판매가 두드러졌다. TV 등 미디어에 노출된 도서의 선호도가 높았다.국내 작가의 소설이나 시는 단 한 권도 진입하지 못한 것은 이제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국 아마존닷컴의 올해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톱 10'에 8권이 소설인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책에 대한 무관심 속에 '문학은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였다. 책이 더

  • [참성단]사찰(査察)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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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사찰(査察)의 역사 지면기사

    권력은 늘 사찰의 유혹을 느낀다. 사찰을 통한 통제와 감시만큼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 없어서다. 사찰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사상적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으로 되어 있다. 한국 정치사를 살짝 비틀면 '불법 정치 사찰의 역사'가 된다.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 사찰과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며 야당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중앙정보부가 정치 사찰을 담당하는 권력기관으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교수, 심지어 일반 국민까지 모두 사찰의 대상이었다.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자료는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이 기록이 만천하에 드러난 건 1990년 10월 4일.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탈영하면서 챙겨나온 컴퓨터 디스켓 덕분이었다. 그 안에는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자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른바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사건'으로 노태우 정부는 국방부 장관 등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보안사 서빙고분실을 폐쇄했다. 명칭도 국군기무사로 변경했다.'사직동 팀'도 있었다.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 기능을 담당한 청와대 직속 수사기관으로 정식명칭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였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안가에서 사찰 작업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 1999년 5월 '옷 로비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2000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해체됐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게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폐지됐다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부활했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무차별적인 사찰이 이뤄졌다. 2010년 언론에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면서 공직복무관리관실로 명칭이 바뀌었다.최근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 [참성단]권력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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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권력의 DNA 지면기사

    인간 유전자(DNA)가 가진 32억개의 염기서열을 규명하기 위한 '인간게놈프로젝트(HGP) 국제컨소시엄'이 임무완수를 선언한 때가 2003년이다.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인간 유전자 수가 단순한 동물과 별 차이가 없고,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 이상 같다는 사실이 그랬다. 2% 미만의 유전자 차이로 인간과 침팬지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니 얼마나 아슬아슬한가.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유전자는 인류 문명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주인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언했지만, 인간은 도구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게놈(한 생명의 유전자 전체)지도를 확보한 인류는 유전자를 문명 유지와 발전의 수단으로 활용중이다.최근 중국 허젠쿠이 교수가 인공수정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에이즈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저항성이 있는 여아 쌍둥이 출산에 성공했다고 밝혀 과학계의 비판에 직면했다. '유전자가위 악당'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국내에선 한 민간기업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받은 신생아가 30만명에 이르고, 일본에서는 유전자 적합도 검사로 짝을 이어주는 사업이 성업중이다. 콩, 옥수수 등 유전자 변형 농작물이 식탁을 지배한 지는 오래됐다. 유전자 개입을 멈추기에는 인간의 욕망 DNA가 윤리 DNA를 압도한다.엊그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권력 DNA의 속성에 어긋난 자신감이다. 인류 역사는 권력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폭주하는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 사례로 넘쳐난다.문재인 정권 또한 권력 부패의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권력에서 부패 DNA만 잘라낼 유전자 가위도 없다. 있었다면 부패로 상처받거나 무너진 숱한 권력들의 운명을 설명할 길이 없다. 김 대변인의 유전자 발언은 문재인 정부 권력의 순결을 강조한 취지였겠지만, 권력

  • [참성단]대학가 풍자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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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대학가 풍자 대자보 지면기사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학교 캠퍼스내에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학생이 쓴 이 대자보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안녕하지 못한 서글픈 현실을 사는 이들에게 '안녕한가'를 묻는 27세 대학생의 대자보 여파는 전 세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마치 들불 같았다. 그 후 우리 사회엔 '안녕들 열풍'이 불었다. 고교생까지 안녕 대자보 대열에 합류했다. 대자보는 잠시나마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됐다. 대자보의 역사는 길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벽보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조선시대에도 나라에서 붙이는 방문(榜文), 남을 비방하거나 민심을 선동하기 위해 붙이는 괘서(掛書) 등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파리코뮌과 러시아 혁명도 따지고 보면 길거리 벽보에서 시작됐다. 대자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50년대 중국의 여러 정치세력이 붙인 대중선전용에서 비롯됐다. 조직 내부 소식지나 성명서는 소자보,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벽보는 대자보라 칭했다.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이 대자보로 홍위병을 선동해 사실상 살육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나라 대자보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대학 대자보로 광주의 진상, 5공 권력층의 비리 등이 국민에게 알려졌다. 시대의 양심 대자보는 시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언론이 통제 당하면서 대자보가 민중저항 매체 노릇을 한 것이다. 대학마다 밤새도록 쓴 글을 사복형사에게 들킬까 봐 새벽에 몰래 붙이고, 또 떼어지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됐다. 대자보 내용은 학교 담을 넘어 순식간에 거리로 퍼져 나갔다. 12일 자 경인일보는 수도권 대학가를 중심으로 붙기 시작한 '문재인 왕 씨리즈' 대자보가 전국의 100여 개 대학교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자보는 문대통령을 경제왕, 고용왕, 태양왕, 기부왕, 외교왕 등으로 빗대면서 주요 정책을 반어법으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80년대 대자보의 '선언'과 '투쟁'을 벗고 '해학'과 '조롱'으로 무장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