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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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백두칭송위원회 지면기사
백두칭송위원회라니 거창하다. 지난 7일 결성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 단체다. 지난 18일 광화문 집회로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집회는 먼저 회원들이 나서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연설회와 시낭송 등으로 구성된 '꽃물결'이라는 공연으로 구성됐다.대학생 회원들이 주도하는 연설회는 단체 명칭 그대로 김 위원장 칭송 일색이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추진력과 대범함을 갖춘 지도자', '세계 패권국 미국을 제압한 지도자', '천리안의 소유자'이다. 이런 지도자가 성조기와 태극기 부대의 위협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서울을 방문하니 '만세' 부르며 '환영'하자는 논리다. 꽃물결 공연에서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시 '백두칭송'을 낭독했다. 시는 백두산을 칭송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사들이 백두혈통인 김정은을 칭송하는 맥락과 연결하면 백두산이 무엇을 은유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백두칭송위원회의 집회에 분노한 보수단체들은 앙앙불락이지만, 위원회의 염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칭송'이라는 단체명 부터 '지도자'니 '천리안'이니 하는 칭송의 내용이 시대착오적이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평양의 꽃물결이 광화문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낮다. 외국 국가원수 방한 때 마다 환영인파를 만들어냈던 시절을 졸업한지 한세대가 넘은 대한민국이다.법원은 2016년 황 전 부대변인의 북한 찬양·고무·선전 혐의와 이적표현물 게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거니와 상식적인 국민이 넘어갈리도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100여명의 백두칭송위원회가 전국 순회 집회에 나서도, 우리 체제의 주역들이 이들의 비상식과 시대착오를 압도하면 된다.그래서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최근 여권 인사로 부터 평양 재방문 요청을 받은 대기업들이 불편한 표정이다. '가도 되나' 싶은 표정인데 침묵으로 심경을 대신한다. 리선권 냉면발언 사태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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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仁川 떠난 힐만 지면기사
트레이 힐만. 이젠 그에 대한 호칭을 SK 와이번스 '전' 감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천을 떠났으니까. 2년간의 짧은 감독 생활, 힐만은 SK 와이번스에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만 남긴 게 아니다. 2년 동안 힐만은 인천시민과 한국 야구 팬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남겼다. 힐만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힐만은 인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우승은 덤이었을 정도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팬들에게 음식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고, 의리의 배우 김보성 분장으로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소통했다. 일부러 머리를 길러 소아암으로 고통을 받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5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의 학교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 어린이가 한국 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PO 5차전 시구를 맡았던 김진욱 군이다.지난 16일 힐만 감독의 이임식장은 활기에 넘쳤다. '이별의 슬픔'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최항과 정의윤을 불러내 "의리! 의리! 의리!"도 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향해 "오늘부터는 동료가 아닌 우린 친구"라고 말했다. 힐만은 그런 감독이었다. 한·미·일·베네수엘라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힐만은 2년 전 SK 와이번스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야구하는 것보다 선수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선수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힐만은 이렇게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친해졌다. 상대 선발투수를 분석해 타순을 정하는 '데이터 야구' 로 SK를 홈런 군단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화끈한 홈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포스트 시즌 5차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투아웃에서 나온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 한동민의 결승 홈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힐만은 겸손한 감독이었다. 외국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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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박두진 문학관 지면기사
1992년 프랑스에서 로마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이 빗발쳤다. 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르뎅 드 뇌프 드무아젤(아홉아씨 공원)'을 만들어 세계 9개 도시로부터 시인 1명씩 추천받아 9년 동안 모두 81개의 시비를 설치키로 했다.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시인 추천도시로 선정된 안성시는 시인 박두진을 추천해 2001년 6월 21일 시비제막식을 가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 시 '해'의 첫 구절을 한글로, 뒷면에는 불어로 새겨 넣었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두진의 시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라는 시풍을 보여줬다. 청록파로서 순수미와 인간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염원했다. 자연은 청록파 시 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했다고 청록파 시인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박두진의 '해'는 자연만 노래한 게 아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에서 '해'는 암울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시대 저항정신의 표현이다. 박두진의 시에는 어둠,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이를 초월한 희망을 노래했다. 박두진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과 전혀 다르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후기 시에 가서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다.오늘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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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학수학능력시험 지면기사
오늘 전국 1천190개 시험장에서 59만4천900여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시험문제 풀이로 대학입학 진로가 결정된다.한국사회에서 대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학력중심 사회구조는 대입에 목숨을 거는 교육과정을 잉태했다. 작금의 청소년 세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해 초·중·고 교육과정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대입전사로 봐도 무방하다. 운동장을 버리고 교실과 학원을 전전한 지난한 수련과정이 수능시험장에서 결판난다. 성년 통과의례로는 너무나 치열한 육박전이다.자녀와 공동운명체인 학부모의 심정도 비장하다. 아이가 걷자마자 자녀의 대입 병참기지를 꾸려 온 부모들이다. 대입 병참기지 최상의 조건은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병적인 대입 경쟁을 풍자하는 자조적 농담? 아니다. 누구나 열망하는 환상적인 조건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입수능의 여파는 국민 전체에 미친다.병적인 대입경쟁이 사회의 건강과 연대를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됐다. 역대 정권 모두 이를 고친다고 대입 시험제도와 입학전형에 손대고 고쳐 온게 수십년이다. 하지만 제도를 신설하고 전형을 이리저리 꼬아대도 소용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기민한 대응과 학부모의 호주머니는 언제나 정부의 정책을 압도했다. 최근에는 입시개혁의 근간이던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잇따른 학생부 조작사건, 숙명여고 교무부장 사건의 여파로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정부의 무능한 정책, 사교육 시장의 권위, 부모의 열렬한 후원이 만들어 낸 대입제도의 병리현상 한복판에서 오늘 미래의 동량들이 대입수능 시험지를 풀고 있다. 시험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수험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특히 고사장 주변 소음, 소란은 절대 안된다. 전국의 수험생이 가진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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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하늘 위 주유소 지면기사
최신예 전투기라 해도 원거리 공격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료 보급이다. 적진을 공습하거나 공중전을 벌일 때 최소 한두 곳의 경유지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이동해야 한다. 우방국이 있다면 그곳의 기지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하늘 위 주유소'라 불리는 공중급유기다. 최초의 공중 급유는 1923년 6월로 미 육군 항공단 소속 DH-4B 복엽기가 연료탱크에 호스를 장착해 비행 중인 다른 항공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후에는 9차례의 공중급유 끝에 무려 37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고속 비행하면서 기름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공중 급유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우주 비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필요했다. 급유 중엔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기름을 공급하는 붐(Boom)과 수유구가 붙어 있는 상태로 5분가량 비행을 해야 한다. 급유기와 전투기 사이 거리와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작 사용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B-29 폭격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공중급유기 80대를 전력화하면서 '항공전의 혁명'을 불러왔다. 2005년 7월, 1조4천881억원 규모의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 사업 기종으로 모두 미국 보잉사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동안 우리 공군이 미군 급유기로 공중급유 훈련을 해왔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군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에어버스사가 선정됐다. 그동안 전투기를 구매할 때 내세운 '한미 동맹'이 무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북한도 공중급유기 도입 결정에 대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잉사를 제치고 선정된 유럽 에어버스 D&S사의 'A330 MRTT'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3대가 더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공중급유기가 도착하는 날, 중동부전선 철원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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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방탄소년단의 역습 지면기사
일본 방송사들의 방탄소년단(BTS) 방송출연 취소 사태가 국제적인 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TV아사이가 BTS 멤버 지민이 2년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한데 이어 NHK, 후지TV도 출연검토를 보류하자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 문화 사회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를 거론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일본 방송이 원자폭탄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출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CNN은 '일본의 점령으로 수백만의 한국인이 고통을 겪은 사실'을, BBC는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전범국 일본의 과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이다.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팬클럽 아미(ARMY)의 방탄 활약도 대단하다. 이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Why BTS'를 열심히 검색하고 퍼나르고 있다. 일본 방송이 BTS 출연 취소 결정 이유를 확인하는 검색어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Why did japan invaded korea?)'라는 연관 검색어로 번지면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BTS 방송출연 금지 배후에는 일본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나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결정에 적나라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매체 및 단체가 의심된다. 하지만 과녁 설정에 실패했다. 제2의 비틀즈로 떠오른 BTS의 글로벌 위상을 너무 쉽게 봤다.BTS에 열광하는 일본 열도의 열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아홉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페이크러브)'는 일본 오리콤 차트 1위를 질주 중이고 13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순회하는 돔 투어 공연은 38만장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 주요 도시에 불어닥칠 BTS 열기는 방송도, 극우세력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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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슬픈 고시원 지면기사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 거기였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 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신경숙 이름 석 자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소설 '외딴방'에 묘사된 '벌집촌' 풍경이다. 70년대 부평과 구로동 산업단지 주변의 여공들이 살던 주거 공간으로 '벌 방' '쪽방'이라고도 불렸다. 작가 조세희가 "'난쏘공'이 시작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이다.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10대 누이들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그나마 휴식을 취하던 이런 '슬픈 공간'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격한 도시개발로 일시에 사라진 탓이다. 대신 고시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이젠 고시원은 고시 준비생이 아닌 가난한 이들이 저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쪽방 특유의 고립된 환경 탓에 정신건강이 악화된 채 방치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나 요양시설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최후 거주지'인 셈이다.'소방의 날'이었던 지난 9일 새벽,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참사다. 고시원은 지어진 지 35년 된 건물. 2층에 24개, 3층에 29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이 방에서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가 각자 고단한 일상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옆 방에 누가 사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 고시원은 '외딴 방' 하나하나가 나름 하나의 고립된 '섬'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불이 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있다 한들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좁아 비상 시 대피가 어려운 '쪽방' 같은 구조에서 효과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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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KBS '콘서트 7080' 지면기사
김대중 대통령은 KBS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다. 이 프로를 보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낸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못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팬이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 하니까요" 라고 말한 게 당시 화제가 됐다. KBS 최장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69년이었다. BBC, NGC, NHK 등의 수입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우리말을 더빙해 방영했다. 종영과 부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4년 가을 개편에 '동물의 왕국'을 KBS1로 부활시키며 내세운 것이 '공영성 강화'였다. 그 후 '동물의 왕국'은 시청률은 낮지만 KBS가 공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KBS가 이번 가을 개편에 장수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했다. 그나마 '동물의 왕국'은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2004년 시작해 중장년층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콘서트 7080', 성우 박기량의 코믹 해설이 일품이던 'VJ 특공대'도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폐지 이유였다.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70, 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콘서트 7080' 폐지에 시청자 실망이 크다. '콘서트 7080'은 당시의 인기곡을 오리지널 가수가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청률은 낮지만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개되는 노래마다 우리 시대 추억이 알알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공개방송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진행자 배철수도 몰랐을 정도로 프로그램 폐지는 전격적이었다.올 KBS 예산은 총 1조5천152억원으로 이중 수신료수입이 6천542억원을 차지한다. 모바일로 TV를 시청하는 20대보다 시청료의 상당 부분을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장년층의 유일한 위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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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지면기사
최근 한국 영화팬들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영국 록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미풍에서 태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70, 80년대 퀸의 전성기를 겪었던 장노년층은 다시보기는 물론이고 싱어롱 상영관을 찾아 떼창을 한다.영화의 미덕은 퀸의 흥망성쇠와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역정 보다는 그들의 명반, 명곡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데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20분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자선공연 장면으로 꽉 채운 엔딩장면이 압권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스'까지,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완전체 퀸의 내한 라이브 공연처럼 즐기고 있다.전성기 시절 퀸은 국내에서 인기 상한가였다.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1984년 방한해 잠실체육관에서 내한공연을 한다는 설이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내에선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내용이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 분명한 이유는 모른다. '권총'과 '발포'에 대한 당시 정권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려니 짐작해본다. 여하튼 퀸에게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공연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89년 해금됐고, 2014년 퀸의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한 뒤였다.한국의 50, 60대는 프레디 머큐리의 퀸과 늘 함께였다. 70, 80년 대 가난했던 청춘 시절에는 청계천에서 빽판(불법복제음반)을 구해 친구들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와 프레디의 고음에 심취하며 해방감을 맛봤다. 그들이 소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퀸의 음악은 광고와 다양한 문화현장의 배경음으로 모든 세대에게 전파됐다.우울한 시대와 경제적 전성기를 거쳐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한국의 7080세대는 시대의 우여곡절로 인해 갈라지고 찢어진 세대다. 그들이 모처럼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세대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동시대의 공감각을 체험 중이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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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仁川 야구 지면기사
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됐으나 야구 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 멈춰 서 있다. 명승부를 넘어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였던 탓이다. 평생 이런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야구라고 다 야구가 아니었다. 정규시즌 야구와 포스트 시즌 야구는 분명히 달랐다. 전국 TV 시청률이 무려 8.9%를 기록했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그날의 야구를 보았다면 채널을 돌리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연장 10회 말, SK의 공격. 첫 타자는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김강민은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예고편.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이 때린 백구(白球)가 가을 밤하늘을 가르며 백스크린 앞에 떨어졌다. 끝내기 홈런. 환호와 탄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코리안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한화전에서 연장 10회 초 김경기가 날린 홈런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으로 각본을 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경기에서 인천야구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는 짧다. 그러나 인천 야구 역사는 길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60년대 인천은 구도(球都)였다. 부산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인천고와 동산고를 앞세워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적수가 없었다. 야구는 인천 토박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에 들어와 살던 실향민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야구는 인천사람에게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위안거리였다. '인천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다'. 70년대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선수부족으로 비록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인천 야구'는 늘 터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인천이 술렁이고 있다. 5년 만에 체험하는 코리안시리즈 때문이다. 1차전 가을의 사나이 박정권의 불같은 타격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두산을 7대3으로 격파했다. 2차전은 비록 졌지만, 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