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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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굴업도 수난사 지면기사
굴업도는 면적이 30만평 정도로 한강이 만든 여의도(약 88만평)보다 작은 섬이다. 해안 길이 12㎞에 가장 높은 덕물산의 해발고도는 122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상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굴압도(屈鴨島)라 했다. 섬의 형세가 물 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같다 해서다. 그러나 일제때 '屈業'을 거쳐 '掘業'으로 바뀌었으나 확실한 연유를 남긴 기록은 없다. 다만 일제 초기만 해도 대규모 민어 파시가 열려 수천명이 북적대던 시절, 노동의 의미가 오리의 형상을 대체한 것이 아닌가 싶다.파시가 쇠퇴하고 오랜 세월 뭍에서 잊혀졌던 굴업도는 1994년 이름 석자를 갑자기 세상에 내밀었다. 정부가 굴업도를 핵폐기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반대할 주민이 없던 굴업도 대신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굴업도 일대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정부가 주장하던 지질 안정성이 무너졌고, 1년도 못돼 지정은 취소됐다. 당시 굴업도를 눈 앞에 둔 서포리 해안에서 주민들이 벌였던 잔치마당에 참석했던 기억은 언제나 흐뭇하다.정부가 물러나자 이번엔 대기업이 굴업도를 세상에 소환했다. CJ그룹 씨앤아이(C&I)레저산업이 2005년 굴업도에 관광호텔·콘도, 골프장, 마리나를 갖춘 오션파크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CJ그룹은 섬 전체 면적의 98%를 사들였지만 역시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인천시는 섬 훼손을 우려해 골프장을 뺀 개발을 권고했고, CJ그룹은 2014년 골프장 건설 철회 방침을 밝혔다.CJ의 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진 요즘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개발에서 소외돼 지질학적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굴업도를 백패커들은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부른단다. 주말이면 배낭 하나 메고 굴업도를 찾아 캠핑을 즐기는 백패커가 200명 이상이란다. 그 탓에 굴업도의 목기미 해변, 개머리 초지, 연평산 일대는 해양 쓰레기뿐 아니라 캠핑 쓰레기 범벅이 됐다. 원시의 모습과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간직한 덕분에 쓰레기 세례를 받으니,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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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추억의 인천 미림 극장 지면기사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영화 관람은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고 일상을 피할 탈출구였다. 남녀노소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성춘향' '마부' '미워도 다시한번'같은 대박 영화가 나오면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1960년대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평균 5.5회였다. 2016년 4.2회와 비교하면 당시 영화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극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만원 사례(滿員謝禮)'가, 명절의 암표상이 추억이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극장사(史) 가 그대로 녹아든 곳이다.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의 전통을 이은 애관극장을 비롯해 문화, 동방, 미림, 오성, 인천, 현대극장 등이 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함께했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애관과 미림극장만 살아남았다.1957년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미림은 경영난으로 2004년 문을 닫았다가 지난 2013년 10월 실버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장료 2천원이면 어르신들은 옛날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영화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취미, 친목활동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지역공동체 친화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을 찾는 외지인에게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극장 하나쯤 있었으면…"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림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미림극장이 재정문제로 내년 4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천시로부터 매년 1억원 정도 받았던 사회적 기업 지원비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추억극장 미림'이 진짜 추억이 될 위기에 처했다.노년층은 여전히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버극장은 60, 70년대 고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던 유일한 문화 수단이다. 그 '유일함'이 고작 1억여 원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사라진다면 유서깊은 애관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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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동네 권력 '맘 카페' 지면기사
"우리 어린이집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지난 13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가 근무했던 김포 통진읍 소재 어린이집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A(37)씨는 지난 11일 어린이집 가을 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회원이 3만명이 넘는다는 지역 커뮤니티 '김포 맘들의 진짜 나눔' 카페에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아이를) 밀쳤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의 이모가 쓴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되면서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A씨 신상도 그대로 노출됐다. '신상털이'를 당한 것이다. 수백 개의 댓글과 동조 글이 붙었다. 시민이 고발했다며 경찰까지 찾아왔다. 더구나 아이의 이모가 찾아와 교사 A씨의 무릎을 꿇게 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네카시즘'은 '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을 말한다. 네티즌의 일방적인 여론몰이, 마녀사냥과 동의어다. 매카시즘은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에 따라 어이없는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요즘 동네 권력이라는 '맘 카페' 회원들의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매카시즘과 너무 유사하다. 익명 속에 숨어 쏘아대는 포화에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숨을 곳도 없다. 확인도 안 된 "그렇다더라"에 마음 약한 사람은 견디다 못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역별로 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맘 카페는 원래 지역 소비자운동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교육·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어마한 '동네 권력'이 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지역 상권에서 맘 카페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한다. 심지어 "찍히면 죽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끔찍한 마녀사냥도 자행된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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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이재명 지사의 'SNS 족쇄론' 지면기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한 방송에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한때 저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족쇄"라며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 대선 당내경선 토론 과정을 회고하며 "싸가지가 없었다"고 자책했다. 지난달 초 "페이스북은 저의 가장 큰 방패이자 무기"라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당시 그는 5천명의 '페친'을 향해 악성 조작 왜곡글에 반박 댓글이라도 써주는 '실천하는 동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페이스북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지사의 핵심 홍보수단이었고, 충성스러운 팔로어들은 그의 표현대로 정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현재 그를 곤경에 빠트린 진앙 또한 페이스북이다. 김부선씨와는 '가짜 총각'과 '대마 발언'이 증폭돼 자진 신체검증에 이르렀다. '형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혜경궁 김씨' 논란은 경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선 경선과정은 친문세력과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에 이 모든 논란의 기원이 기록돼 있다. 해명과 부인과 규명은 가능할지라도 '사실'만큼은 지울 수 없다.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재생하고 의도적인 재해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SNS의 이중성은 너무 극단적이다. 강남스타일을 세계에 퍼트려 싸이를 국내파에서 국제파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구하라는 리벤지 포르노가 SNS에 퍼질까봐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과거 트위터에서 강조했던 권력의 정당성과 상충되는 외유성 출장이 드러나 정치역정에 오점을 남겼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부인을 잃은 애통한 심정을 게시해 폭풍 공감을 받았다. 잘 쓰면 축복이고,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다.SNS는 'CIA가 꿈에 그리던 일'이라는 풍자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하고 있는 활동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서란다. 더 이상 풍자가 아니다. 모골이 송연한 경고다.정치하는 사람들은 'SNS가 족쇄가 됐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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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가을 야구 지면기사
프로 야구는 종종 농사와 비유된다. 이듬해 농사를 위해 겨우내 준비하는 농부처럼 야구도 정규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꼼꼼한 준비를 한다. 가뭄, 장마, 폭염을 거쳐 마침내 가을 수확에서 한해 농사가 결판나듯, 야구도 정규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에 따라 1년 농사 성패가 좌우된다. 이처럼 144게임을 치러야 하는 프로 야구만큼 계절을 타는 스포츠도 없다. 프로야구의 정규시즌이 마감됐다. 한해 농사가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끝난 게 아니다. 포스트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시즌은 깊은 가을이 왔음을 의미한다. 야구의 종주국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최종 우승을 가리는 월드시리즈를 '가을의 고전(Fall Classic)' 또는 '10월의 고전(October Classic)'이라고 부른다. 무르익은 가을, 10월(October)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월을 빗댄 조어도 많다. 가령 플레이오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타자를 Mr October라 부른다. 2007년 와일드카드로 거침없는 7연승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던 현재 오승환 소속팀 콜로라도 로키스는 Rocktober(Rockies+October)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개 팀 중 상위 5개 팀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팬들은 정규시즌 내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달라는 절실한 바람을 하나의 문구에 함축시켰다. 역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여름에도 구장마다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이 말. '가을에도 야구하자'가 그것이다. 8자에 불과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뛰는 경기를 한 게임이라도 더 보고 싶은 팬들의 간절함이 함축되어 있다. 이후 '가을 야구'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2018년 가을 야구는 두산 SK 한화 넥센 기아 5팀만 초청받았다. 로맥과 한동민으로 대표되는 명실상부한 '홈런 군단'이자 '두산의 대항마' 인천 SK 와이번즈는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해 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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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하나의 전쟁과 두개의 시선 지면기사
제임스 쿡 선장은 영국에게는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이지만 뉴질랜드와 호주 원주민에게는 침략자이자 학살자이다. 그는 1769년 뉴질랜드에 상륙하고 1770년 호주 해안을 탐사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내년은 뉴질랜드 발견 250주년이고, 내후년은 호주 정부가 기리는 '영토발견의 해' 250주년이 된다. 하지만 쿡 선장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기념 분위기가 바래고 있다. 쿡 선장을 향한 양국 원주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고, 그의 동상은 곳곳에서 훼손되고 철거되는 실정이다.전쟁, 특히 일방적인 침략전쟁의 경우 가해의 역사는 퇴색하는 반면, 피해의 역사는 선명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시선이 달라서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이 대표적이다. 가해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내 극우보수 세력이 가해를 인정하는 양심세력을 압도한다. 그럴수록 피해 당사국들의 피해의식은 더욱 또렷해진다.지난 11~12일 인천시와 경인일보가 주최한 '인천의 전쟁과 세계평화 포럼'에서도 하나의 전쟁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역력히 드러났다. 1871년의 한국은 미국의 침략으로 규정한 신미양요를, 미국 발표자는 '원정(遠征)'이라 주장했다. 러-일 전쟁에 대한 논란은 더 뜨거웠다. 러시아 발표자는 "러일 전쟁의 직접적인 전범은 일본"이라고 주장한 반면 일본 발표자는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약간의 교전"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중국 학자는 "러일 전쟁으로 당시 무고한 중국인들이 물적·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남의 집(랴오닝과 제물포) 피해는 언급하지 않는데 항의했다.이번 포럼은 현재 진행중인 남북 평화협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분단 이후 남북 분쟁사에서 주로 피해 당사자는 남측이었다. 6·25전쟁, 무장간첩 침투, 아웅산 폭파사건,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현존하고 피해의식은 엄존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협상 진전을 우려하는 여론의 배경이다. 북한의 대남 침략 역사를 향한 우리 내부의 피해의식 해소가 남북협상 국면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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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흰 지팡이의 날 지면기사
오늘은 '흰 지팡이의 날'이다. 그동안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무관심 탓이다. 제정된 지도 올해로 벌써 39년째가 됐다. 그런데도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눈' 역할을 하는 그 지팡이다. 1946년 미국 육군병원 안과의사 후버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했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쉽게 식별하고 길을 양보하거나 운전자가 서행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0년 헬렌 켈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10월 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공식 제정해 전 세계에 선포했다. 선언문엔 '흰 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흰 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48조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유아가 보호자 없이 걷고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딱 '거기 까지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심은 여전히 거대한 정글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흰 지팡이를 의지해 도심에서 50m를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더 끔찍하다. 비장애인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겁날 정도로 '우선멈춤'을 지키는 차는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들에겐 비장애인의 '배려'가 꼭 필요하다.누군가 흰 지팡이를 든 사람이 있다면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그들에게 '배려'할 준비를 해야 한다. 흰 지팡이의 날을 제정한 것도 비장애인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려'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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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교황, 카스트로 그리고 김정은 지면기사
2015년 9월 20일.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쿠바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며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는 쿠바 인민을 위한다면서 개인숭배에 빠진 카스트로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4일을 머무르는 동안 포용과 사랑으로 쿠바의 변화를 독려했다. 쿠바 국민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쿠바방문 때보다 프란치스코를 더욱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이 54년 만의 미국·쿠바 국교정상화에 막후 중재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교황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만났다. 카스트로는 늘 그랬듯 세 줄이 있는 파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체제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스트로의 고교 은사이자 예수회 신부인 아만도 요렌테의 설교집을 선물했다. 거기엔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은사인 요렌테 신부를 추방했다. 요렌테 신부는 고국 쿠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생을 마쳤다. 신부의 설교집 전달은 카스트로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교황의 간곡한 뜻이 포함돼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된 얘기라 단정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교황 방문을 간곡히 원하는 것과 문 대통령이 교황의 평양방문을 희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전 세계에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교황이 방문을 수락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수락해도 쿠바와 평양은 너무 다른 나라다. 쿠바국민의 60%가 가톨릭 신자지만 평양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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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스리랑카 노동자의 풍등 지면기사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일하던 공사현장에 떨어져 있던 풍등에 다시 불을 붙여 날렸다. 심심파적이었을 것이다. 경찰이 이 노동자가 날린 풍등을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폭발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 특정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동정론이 우세한 가운데 처벌을 주장하는 소수의견도 있다.논란에 앞서 이 스리랑카 노동자를 덮친 나비효과는 비극적이다. 애초에 풍등을 날린 곳은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한 초등학교였다. 학부모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지난 8년간 해마다 날렸다고 한다. 그 수많은 풍등 중 하나가 하필 3년전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타고 저유소를 향했다. 휘발유 탱크는 폭발했고, 스리랑카 노동자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이 노동자에 대한 동정여론에 공감이 간다. 무심하게 날린 풍등이 저유소 폭발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증폭된 원인 규명이 중요했다. 풍등의 불씨가 떨어져 저유탱크 잔디밭을 18분이나 태우는 장면이 저유소 모니터가 생중계했지만 이를 지켜본 송유관공사 직원은 없었다. 저유탱크 주변의 화재를 알려줄 시스템도 없었다. 작년말에 풍등을 관리할 소방법 개정이 있었지만, 풍등을 날리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아니다.재미삼아 재활용한 풍등 하나가 저유소 폭발로 증폭된데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방재시스템, 관련 법규의 모호함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를 화재의 주범으로 단정하는 순간 화재 원인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이 소실된다. 대형 저유시설의 화재 가능성을 증폭시켜 온 우리 내부의 문제를 주목하기 보다, 서둘러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여론은 이성적이다.풍등은 불로 데워진 공기의 팽창력을 동력으로 솟아오른다. 불이 꺼지고 공기가 식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저유소 잔디밭에 착륙한 문제의 풍등은 불씨를 안고 있었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화재의 책임을 미루고 넘어간다면 국가 방재시스템에 화근을 남기게 될테고, 국가중요시설을 향한 풍등의 습격은 계속될 것이다. 검찰이 10일 저유소 화재 피의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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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요즘 무슨 책 읽어? 지면기사
얼마 전 길에서 옛 은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은사님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요즈음 무슨 책 읽나?"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을 최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지금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어?" 라는 말은 수없이 하면서도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사는 것이다.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설악산 단풍 소식은 책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정부가 25년 만에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다. 매달 책과 연관된 행사들이 지난 3월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끊이지 않고 열린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세종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제 한글날, 언론들은 세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가장 으뜸으로 '한글'을 꼽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건 백성이 쉽게 글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밝혔듯 왕은 혼자만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백성들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책 읽는 재미를 백성 모두가 공유하길 왕은 진정으로 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지만 한글창제 572돌을 맞는 지금, 우리의 독서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2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출판량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OECD 최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였다. 2017년엔 60%로 더 떨어져 성인 10명 중 4명이 일 년 동안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왕의 깊은 뜻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