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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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우리회사 양진호' 지면기사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악행이 직장 갑질 미투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각종 매체들은 한 시민단체가 자체 수집해 발표한 직장 갑질 사례를 '우리회사 양진호'로 번안해 보도하고 있다. 퇴직 직원에 대한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원본을 보면 정말 치가 떨린다. 폭행당한 청년의 처지를 내 가족과 친구의 경우로 바꾸어 상상하면 적개심이 끓어 오를 지경이다. 대학교수 폭행, 직원 학대 등 드러난 악행은 '사과문'으로 마무리 할 수준이 아니다.IT(정보기술)분야 기업들의 사내 문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분방과 상호존중이다. 창의와 협업이 생명인 산업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적 기업문화를 가진 IT기업들이 많다고 한다. 사업의 비전과 기술을 창업자에게 의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창업 초기에 'I'm CEO, Bitch'를 새긴 명함을 뿌렸다. "내가 최고경영자다. 떫냐" 정도로 해석되는데, 그를 페이스북 제국의 나폴레옹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사례다.양 회장도 웹하드 업계의 대부라 한다. 주로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유통시키는 웹하드 업체는 음란물을 포함한 불법 동영상 유포의 핵심 통로로 의심받았다. 특히 양 회장은 불법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통하는 웹하드 사업과 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불법 동영상 유통 수익과 피해자의 고통을 지워주는 대가를 동시에 챙겼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모델이다. 자신만의 독점적 사업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다 보니 세상의 상식과 법을 초월한 존재로 착각했던 모양이다.양 회장은 사과문에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초호화 방탄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 등 드러난 죄가 명백하고, 음란물 유포 등 밝혀야 할 혐의가 적지 않다. 꼼꼼하게 수사해 엄정하게 법적 처리를 해야 마땅하다. 또한 양진호 갑질의 근원을 제도적으로 도려내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직장 갑질을 방지할 근로기준법 개정은 물론이고, 불법 동영상 유포로 돈을 버는 사업구조도 뿌리를 뽑아야 마땅하다. '우리회사 양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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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申星一 지면기사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957년 당대 최고 감독 신상옥은 신필름을 설립하고 배우 모집에 들어갔다. 26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강영일. 하지만 신 감독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에게 신필름의 '신', 한국 영화계의 새별이 되라는 의미의 '성', 일등 배우가 되라는 뜻의 '일',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대한민국 아니, 건국 이래 최고의 배우 신성일은 그렇게 탄생했다.50년대 말 한국 영화계는 신상옥 최은희의 신필름과 홍성기 김지미의 홍성기 프로덕션으로 양분돼 있었다. 소속 배우도 신 감독 측엔 김승호 김진규 등이, 홍 감독 측엔 최무룡 장동휘 남궁원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유명 배우만을 선호했다. 무명 배우가 출연하면 흥행이 신통치 않았다. 흥행 실패는 파산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두 영화사 모두 신인을 키우지 않았다. 신필름이 신성일을 뽑아놓고 미적거린 것도 흥행 실패의 두려움이 작용했다. 신성일이 스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컸다. 신성일은 1960년 신필름의 창립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지만, 그저 잘생긴 배우 정도의 이미지만을 남겼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침내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신성일은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고 '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한국 영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노래도 빅히트를 쳤다. 신성일은 거칠 게 없었다. 1964년부터 8년간 개봉한 1천194편의 작품 중 324편에 그가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제작된 한국영화 총 187편 중 신성일 출연 작품이 무려 51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두 번의 낙선 끝에 '강신성일'로 이름을 바꾼 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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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목구멍 지면기사
승정원은 조선의 왕명 출납기관이었다. 왕이 내리는 교지는 승지를 통해 해당 관청에 전달되었고, 상소문은 승지를 통해 왕에게 전달됐다. 정승이나 판서 등 신하가 왕을 면담하거나 중요 회의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이들 몫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기록문화의 꽃 '승정원일기'가 이들의 손에서 작성됐다.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인 6명의 승지가 있었다. 왕과 늘 가까이 있어 간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역사의 중심에 서곤 했다. 승지의 횡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터다. 임금의 '목구멍(喉)과 혀(舌)'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승정원을 가리켜 후설(喉舌)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디프 스로트(deep throat : 깊은 목구멍)'는 1972년 미국서 제작된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하는 것은 우선 미국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여서다. 그럼에도 22개 주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지만 폭풍 같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수완 좋은 제작자 제라드 다미아노는 돈벼락을 맞았다. 4만 5천 달러를 투자해 10년 동안 6억 달러를 회수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깊은 목구멍'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2년간 끈질기게 취재해 닉슨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내부조력자의 덕이 컸다. 기자에게 지속해서 제보했던 취재원은 익명을 요구했고, 두 기자는 그를 '깊은 목구멍'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부터 '깊은 목구멍'은 '은밀한 제보자' '내부 고발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깊은 목구멍'이 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진 건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요즘 '목구멍'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며 면박을 준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먹는 자리에서 '목구멍' 운운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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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연된 정의의 후폭풍 지면기사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일본과 조국의 법정을 전전하길 21년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받은 이춘식(94) 옹의 비감한 소회다. 배상소송을 함께 했던 징용피해 동료 3명이, 그것도 2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승소 법정에서 전해 들었다. 승소의 기쁨보다 상실의 비애가 앞섰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을 이처럼 실감하는 장면이 또 나올지 의문이다.고 여운택, 신천수 두 강제징용자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12월이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이들을 모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최종 상고를 기각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 고 김규식씨와 이 옹과 함께 2005년 2월 조국의 법원을 찾았다. 일본의 배상을 원했다기 보다는 조국의 법원이 강탈당한 강제징용자의 정의를 인정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놀라운 건 대한민국 지방, 고등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대법원이 바로잡았다. 2012년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며 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에 고법이 2013년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상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계추는 고법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는 수순만 남겨둔 채 5년간 멈추었다. 대법원의 잘못은 명백하다. 의혹대로 재판거래 탓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역사적 정의를 5년간 묻은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그 대가로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게 됐다. 수상부터 장관까지 일본의 반발은 전면적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국제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설이 나오고, 사드 분쟁 이후 중국과도 어색하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남측 정부의 진심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밥상머리 악담으로 모욕한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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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10월의 마지막 밤 지면기사
그때는 몰랐다. 10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란 걸. '뜀박질로 왔다가 뜀박질로 떠나는 것이 10월'이라는 이어령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올 10월은 특히 그랬다. 너무 빨랐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 하는 사이에 훅~하고 지나갔다. 조동진의 노래처럼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10월과 함께 상념도 깊어졌다. 모두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 어려운 경제, 답 없는 정치, 아니면 거리에 나 뒹구는 낙엽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 줄 알았다'고 쓴 사람은 송강 정철이었다. 외로운 유배지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비참한 심회(心懷)를 이제 알 것 같다.10월이면 이브몽땅의 샹송 '고엽(古葉)'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pt.2' 앨범에 수록된 '고엽'이 심금을 울린다. BTS는 노래한다. '저기 저 위태로워 보이는 낙엽은 우리를 보는 것 같아서/손이 닿으면 단숨에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그저 바라만 봤지/가을의 바람과 같이/…/오늘따라 훨씬 더 조용한 밤/가지 위에 달린 낙엽 한 장/부서지네 끝이란 게 보여, 말라가는 고엽/초연해진 마음속의 고요/제발 떨어지지 말아주오/떨어지지 말아줘 바스라지는 고엽'. 젊은이들에게도 10월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이효석은 낙엽을 '꿈의 껍질'이라고 했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우리의 꿈. 그 껍질은 무슨 색이었던가.지난 주말 가을비가 내렸다. 임어당(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서 '봄비는 책 읽기 좋고, 여름비는 바둑 두기에 좋고, 가을비는 오래된 가방이나 서랍을 뒤지기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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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방자치의 날 지면기사
30일 17개 시·도지사가 모여 '자치분권 경주선언'을 발표한다. 지방자치의 날인 29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의 주요 이벤트다. 박람회는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우수 자치행정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시·도지사가 일제히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중앙정부의 양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4대 지방선거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완전하게 부활했지만 제도 자체의 효용은 학계와 정치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자치분권의 역사적 기반이 뚜렷한 연방제 국가나 봉건제 역사의 국가에서는 지방자치가 활발하다. 중앙 통치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지 유지됐던 지방 자율의 역사가 자치제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앙집권 전통이 유구한 우리 지방자치는 중앙정부 종속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재임 시절 "지방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며 "지방자치는 2할의 자치"라고 권한과 예산 없는 지방자치를 혹평했다.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에 호의적이다. 지방분권을 연방제 국가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공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고치고 행정·입법·재정의 자치권을 명시한 개헌안을 내놓기도 했다. 개헌안은 무산됐지만 자치단체와 자치의회의 요구에 호의적이다. 자치단체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등 자치재정 확대를, 자치의회는 의회 인사권과 정책보좌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늘 지방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한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를 지켜보는 여론은 착잡하다. 늘어나는 권한과 재정만큼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독직과 비리가 커지고 지방자치의 고비용 저효율 규모가 더 커질까 해서다.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한 지방의원들의 보수는 대기업 임금 수준으로 늘었고, 외유성 해외출장은 관행이 됐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의 정책들을 폐기하는 매몰 비용이 엄청나고, 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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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불 꺼진 다다익선(多多益善) 지면기사
1985년 11월 15일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상량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나선형 공간을 계단을 타고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구조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겐하임을 모방했다" "독창성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꽤 시끄러웠다.결국 논의 끝에 그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88올림픽 개막과 함께 설치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름 7.5m 원형에 높이 18.5m,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속에는 서울의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 프로젝트의 영상을 탑재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나사형 공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꼭 우리의 전통 '탑돌이' 의식과 비슷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역시 백남준은 천재였다. 다다익선은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모두 브라운관인 탓에 그동안 중간중간 화면이 꺼져 2003년 전면 교체했다. 그 후에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20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그러다 올 2월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더는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어서다.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안과 철거 후 오마주작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 조율 중이나 결론을 내지 못해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있는 중이다.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다다익선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작품. 외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다다익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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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최종현 학술원 지면기사
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라고 보았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만큼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도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1974년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든 것도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유학생을 선발했다. 그 조건이란 '학비·생활비 무료'였다. 1인당 국민소득 560달러이던 시절, 유학생 1인에게 연간 학비 3천500달러, 생활비 4천달러를 지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 동안 747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한 것을 비롯해 3천7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1973년 후원사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놓인 TV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살린 것도 그였다. 최 선대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무조건 지원하겠다"며 아낌없이 후원했다. 덕분에 장학퀴즈는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장학퀴즈 500회 특집에서 "장학퀴즈로 벌어들인 돈이 7조원쯤 될 것이다. 기업 홍보 효과 1조~2조원,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한 효과가 5조~6조원"이라고 말했다.최 선대회장은 인재 양성에 대한 많은 어록도 남겼다. 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에 따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를 목표로 일등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고인의 뜻을 기린 '최종현 학술원'이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최태원 회장과 SK(주)의 출연 등 1천억원이 바탕이 됐다. 국가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던 최 선대회장의 애국심, 자나 깨나 인재 발굴에 골몰했던 뜨거운 열정을 고려한다면 '최종원 학술원' 출범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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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맥아더 동상 방화 지면기사
동상을 순례하면 그 나라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동상은 역사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민족적, 정치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갈등의 중심에 선 동상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잔다르크 동상부터 참수해버렸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제임스 쿡 선장 동상 훼손을 놓고 이주 국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위인이 피해 당사국과 민족에겐 침략의 상징이다.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일제 피해를 당한 동남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까지 진출한 소녀상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고발하는 표상이다. 지난 9월 일본 우익분자가 대만 타이난시의 위안부 동상을 발로 찼다. 국내 여론은 마치 우리 소녀상이 모욕당한 듯 분노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게 눈엣가시다.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시비는 업적과 과오가 너무 뚜렷해서다. 이념적, 정파적 시선이 한쪽만 본다. 지난해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재단은 기증받은 그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은 서울시가, 용산 전쟁기념관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지어진 박정희기념관 창고에 들어가 있다. 그의 과오에만 집중하는 세력이 대세인 탓이다. 딸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그의 동상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궁금하다.그런데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방화사건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맥아더의 업적은 객관적이다. 최근 인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조봉암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였다. '전향'을 빼고 '공산주의자'만 보는 시선이니 수많은 탈북 전향자를 국민으로 품은 현실과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반미단체 회원이라는 이 모 목사가 하필이면 방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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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음서(蔭敍) 지면기사
음서제가 도입된 건 997년 고려 목종 때였다. 관리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게 목적이었다. 초기엔 직위에 제약을 뒀다. 명문가가 아니어도 우국충정이 충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서제 출신들이 가문의 힘으로 요직을 차지했다.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심지어 5세 아이가 음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는 그러다 망했다.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진세력들이 음서제의 폐단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공신들과 왕 주변에 서성이던 최측근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서제 적용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 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한다'고 '경국대전'에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조선도 고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번 금수저는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영원한 금수저'였던 것이다. 이러고도 조선이 500년이 유지됐으니 '기적'이었다.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 의혹으로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음서제가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명 로펌의 경우 정치인, 고위관료 등 유력가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도 이미 오래된 관습이었다.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의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사망 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배우자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백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절벽' 앞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