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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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삐라'의 추억 지면기사
놀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그나마 유일한 소일거리는 인근 산으로 칡 캐러 가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산에 칡이 제법 많았다. 칡을 찾다가 뱀과 마주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뱀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다.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였다. 삐라를 발견하면 모두 얼굴이 굳어졌고, 주변에 무장 공비가 있는지 좌우를 살펴보았다. 호기심에 삐라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올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역사의 격동기를 살았던 50, 60대에게 이런 '삐라의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총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교란시키는 데 삐라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삐라는 적군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마침내 적진을 붕괴시킨다. 그래서 삐라를 '벌거벗은 심리전의 첨병' '종이 폭탄'이라고 부른다. 삐라는 영어의 bill에서 나왔다. 일본인들은 이를 '삐라'로 읽었고 그대로 우리에게 건너왔다. 전쟁사에선 2차대전 말 연합군이 항복을 앞둔 무솔리니에게 215만장을 뿌린 것을 삐라의 원조로 삼는다. 그러나 절정은 6·25전쟁때 였다. 38선을 가운데 두고 지루한 진지전(陣地戰)을 펼치자 삐라는 상대를 교란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수단이었다. 이 당시 유엔군은 25억장, 북한군은 3억장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북이 서로 삐라를 보냈다. 연 270일 북에서 남으로 바람이 불어 북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경제력이 뒤바뀌면서 북한의 조잡한 인쇄의 삐라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6월 12일 남북 군사 회담에서 삐라 살포를 포함한 심리전을 중단키로 합의해 주었다. 하지만 탈북단체가 계속 삐라를 보내면서 북한은 큰 타격을 입었다. 북한은 시간만 나면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해 왔다. 통일부가 대북확성기 철거에 이어 대북 관련 단체에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했다. 살포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질 경우, 신변안전 차원에서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강행할 태세다. 평화가 온다면 삐라 살포는 당연히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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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일자리 없는 근로자의 날 지면기사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노동단체는 노동절로 부른다. 1889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 8만여명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유혈 충돌이 벌어진 헤이마켓 사건으로 비화된다. 그해 7월 세계 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 기념일로 결정하니 소위 메이데이다. 우리는 해방후 잠시 노동절로 기념하다, 1963년 법률로 근로자의 날을 확정해 지금에 이른다.최근 무산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개헌안이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괄 수정해 주목을 받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근로자'가 노사의 대등한 관계를 표현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노동계의 여론을 수용했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이익에 부합한 단어로, 박정희 시절의 용어라는 심리적 저항이 깔려있다. 반면에 노동을 몸 쓰는 일로 인식해 근로를 단어에 호감을 보이는 여론도 상당하다.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니, '근로'와 '노동'의 대치 결과가 주목된다.국제적인 기념일이지만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노동절을 더욱 각별하게 기념한다. 냉전시대 소련은 적군의 화려한 열병식으로 이날을 기념했고, 북한에서도 '국제 로동절'은 7대명절에 포함된다. 중국은 올해 노동절 연휴(4월29일~5월1일)에만 1억4천900만명의 유커(遊客)가 중국 각지를 여행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여행수익이 880억 위안(14조8천869억원)이라니 대단하다.아쉬운 건 '근로자의 날'을 만끽하기엔 근로 대기자가 넘쳐나는 우리 현실이다. 올해 들어 지난 3월 실업률이 4.5%로 17년 만에 최고다. 125만명이 실업자다. 청년실업률은 더욱 심각해 2017년 10%에 달한다. 보조지표인 체감청년실업률은 23%로 2000년 이후 최악이었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메아리인 에코붐 세대가 취업시장에 쏟아져 나오니 설상가상이다. 조선과 자동차 등 3차산업현장의 일자리가 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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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표준시의 정치학 지면기사
1884년 10월 25개국의 외교관 41명이 워싱턴에서 국제 자오선회의를 갖고 '하루의 길이'와 '하루의 시작'을 정했다. 그러기 위해선 표준시가 필요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기준으로 정해졌다.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을 동경과 서경으로 나눌 때 그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동쪽에 있는 서울은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쓴다. 영토가 넓은 나라들은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한다. 미국은 동부, 중부, 산악지대, 태평양 등 4개의 표준시가 있다. 우리 만큼 표준시가 많이 바뀐 나라도 없다. 모두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는 1908년 4월 1일부터 동경 127.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며 서양식 시간대를 처음 도입했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1912년 1월 1일 우리의 표준시를 일본 표준시인 동경 135도 기준으로 정했다. 해방후 이승만 정부는 1954년 3월 21일 표준시를 동경 127.5도로 바꿨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1961년 8월 10일부터 다시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쓰고 있다.북한은 지난 2015년 8월 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표준시를 이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127.5도)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일제 잔재 청산'이 그 이유였다. 그후 부터 30분 '시차신경전'이 있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이 확성기방송을 시작하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고 8월25일 낮 12시를 기해 방송 중단과 준전시 상태를 해제키로 합의를 봤다. 우리 군은 낮 12시에 확성기를 껐지만 북한은 12시 30분에 준전시 상태를 풀었다. 당시 협상 역시 자정을 조금 넘겨 타결되는 바람에 같은 합의를 두고 우리는 '8·25 합의', 북한은 '8·24 합의'로 불렀다.북한이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판문점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화의 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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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협상의 전략 지면기사
우리는 매일 협상하며 산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협상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협상술은 큰 관심거리였다. 유대인들이 돈보다 지혜를 중시했던 것은 오랜 방랑을 통해 재산은 빼앗길 수 있어도 지혜는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협상에도 능하다. '상대방 정보를 많이 입수하고, 협상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라. 반드시 명심할 것은 서두르는 협상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유대인의 협상술/작은 씨앗 간)는 유대인들의 몸에 밴 협상 철학이다.외교에서 협상술은 절대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협상술 중 하나가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 )'이다. 북한이 핵을 앞세워 자주 쓰던 수법이다. 막다른 상황에서 초강수를 띄워 위기에서 탈출하는 전술이다. 상대방을 겁먹게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으로 '공갈 전술'이라고도 한다. '니블링(nibbling)'이라는 것도 있다.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작은 것 하나를 더 양보받아내는 기술이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큰 물건을 사면서 싼 물건이나 작은 물건 하나를 덤으로 요구하는 경우다. 하지만 상대방이 더 노련한 협상가일 경우 곤란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쪽에서 '카운터 니블링'으로 맞대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줄테니 하나 더 사가라"는 식이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이 이용된다면 '살라미(Salami) 전술'은 협상 과정에서 의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술이다.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드라이 소시지에서 따온 말로, 하나의 과제를 두고 이를 부분별로 쟁점화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 전술이다. 목적을 단숨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그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상대방은 속이 터지는 협상이지만 승률은 매우 높다. 오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 어렵게 만든 자린데 사진이나 찍고, 만찬이나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분명하다. 비핵화다.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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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남북정상회담 만찬메뉴 지면기사
만주족 왕조인 청나라의 강희제는 만한전석에 민족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 만주족의 식탁과 한족의 식탁을 합쳤다.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한 식탁에 모아 하루 두번씩 사흘에 걸쳐 나누어 먹여 한 식구(食口)의 연대를 확인토록 한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는 왕의 배식 실패로 공자를 잃었다. 조국인 노나라를 등질 구실이 마땅치 않았던 공자에게 제사고기 분배를 깜박했고, 공자는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봇짐을 꾸렸다. 조조는 자신의 개국대업을 반대하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텅빈 도시락의 의미를 모를리 없는 순욱은 자결한다.권력자의 식탁과 음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정상만찬 때 올랐던 독도새우를 놓고 일본이 시비를 걸었다. 독도가 한일간의 갈등 현안인 걸 뻔히 알면서 독도새우가 웬말이냐는 요지의 시비였다. 우리 입장에선 택도 없는 투정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의도적 영토선언 메뉴로 여긴 것이다.곧 이어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혼밥외교라는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이 혼밥을 먹을 정도로 중국의 홀대를 받았다는 여론이었다. 청와대는 오바마의 베트남 혼밥에 견주어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을 변명했지만,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의전은 분명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결정되자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정의용 특사를 극진히 모시더니, 북중정상회담 만찬에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게 2억원 짜리 명품 마오타이를 대접했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중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정상만찬은 확 달라질게 분명하다.청와대가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바다에서 잡은 민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쌀,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서산농장 한우, 문 대통령의 고향생선 달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올린단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남측 주역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메뉴가 하나씩 식탁에 오를 때 마다 대화가 이어지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다만 윤이상의 고향 통영문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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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로스쿨 서열화 지면기사
말이 '소년등과(少年登科)'지 조선시대에 20세 이전 대과 통과는 불가능했다. 세조 3년 16세에 급제한 남이(南怡)는 무과라 가능했다. '신동'이었던 율곡 이이는 13세에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29세에, 퇴계 이황도 31세에 등과했다. 이유가 있었다. 대과를 통과하려면 진사나 생원이 되기 위한 소과에 먼저 합격해야 한다. 소과에 통과해야 성균관 입학 자격이, 성균관에 300일 이상 출석해야 대과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소과 시험엔 1만명이 넘는 유생들이 응시해 200여명이 합격하고 대과 통과 인원은 불과 33명이었다.옛날로 치면 과거 급제와 같은 게 사법시험이었다. 개인 능력으로 사시만 통과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신분 상승 사다리였다. 대학 주변에 고시촌이 생겨나고, 용이 되기 위해 나이를 잊고 매진하는 '고시 낭인(浪人)'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됐다. 지난해엔 아예 사법시험을 없애 버렸다. '고려 광종 이래 1천년 넘게 순전히 시험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던 전통의 종말'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베일에 가려진 전국 25개 로스쿨의 '제 1∼7회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22일 공개됐다. 대한변협이 낸 정보공개 소송이 승소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서울대가 78.65%의 최고 합격률을 보인 반면 원광대는 24.63%에 그쳐 합격률이 3배가 넘는 극심한 편차를 보였다. 정원 50명에 불과한 수원 아주대는 지방대임에도 누적 합격률 91.9%를 기록해 4위, 올해 치러진 7회 시험도 68.12%로 4위에 올랐다. 교수진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을 일대일 개별 지도한 덕이다.합격률 공개로 로스쿨이 '변호사 시험학원'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도한 경쟁도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그래서 '사시부활론'의 목소리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사시 낭인'이 '변시 낭인'으로 명칭만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쟁률 공개가 옳았는지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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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양호 회장의 '완행 사과' 지면기사
아무래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시련이 쉽사리 진정되긴 힘들어 보인다. 조 회장이 '물벼락 갑질' 파문에 대해 22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게도 구럭도 다 놓친 형국은 그대로다. 장녀 조현아의 '땅콩'에 이어 차녀 조현민의 '물컵'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가문과 그룹경영이 위기에 처한 현실이 어이없고 기막혀서였을까, 조 회장의 한참 늦은 사과를 이해하기 힘들다. 폭주하는 분노의 속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느렸던 완행 사과는 미스터리다.대한항공은 내년이면 창업 50주년을 맞는 국적항공기업이자 재벌그룹으로 소비자의 평판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모를리 없다. 당연히 조현민의 악다구니가 담긴 육성이 공개되자마자 대한항공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했다. 특히 일반 임직원이 아닌 오너 일가가 저지른 오너리스크 아닌가. 조 회장과 당사자인 조현민이 즉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며 저두평신(低頭平身), 납작 엎드렸어야 옳았다. 조 회장 일가가 망설이면 임원들이 종용해야 맞았다. 완행 사과의 이유가 조 회장 일가의 눈치만 살핀 임원들의 침묵이었다면, 대한항공은 정말 위기다.두 자매의 '땅콩'과 '물컵'에서 비롯된 나비효과가 조 회장 가문과 대한항공을 넘어 사회전체로 확산되면서 전례없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 수백명이 '단톡방'을 개설해 회장 일가의 비리를 수집해 경찰에 넘기고 있다. 골리앗의 갑질에 다윗들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 셈인데, 재벌기업들이 새로운 경영리스크 사례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사실 '갑'들이 너무 높은데 있어 몰랐던 모양인데, '을'들이 만능에 가까운 스마트폰으로 모든 콘텐츠를 순식간에 유통시키고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무장한지 오래다. 산업화 시대의 갑질을 부리다가는 정보통신 시대의 을들에게 판판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조 회장은 몰라도 딸들은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충분히 알만한 연배인데 연달아 사고를 쳤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을 함께 한 조 회장과 삼남매의 환한 미소가 기억난다. 그 미소로 사람과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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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천상병 예술제 지면기사
1987년 12월 3일. 기자는 그날 의정부 장암동 수락산 아래 있었다. 허름한 슬레이트집에 사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때 기사 한 토막. '집에 들어서니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문을 여니 한평 남짓한 방에 시인이 누워 있었다. 배는 임신부처럼 불룩했다. 간이 안좋은 모양이었다. 밥상 겸 책상에 예쁜 어린애 사진이 있어 누구냐고 했더니 잡지책에 하도 예쁜 아이 사진이 있어 오려서 액자에 끼워 두었다며 웃었다. 그때 함께 사는 장모가 한약을 방안으로 들이밀었고,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입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인 천상병은 지금 몹시 아프다.'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시인은 "돈 좀 줘! "라며 손을 내밀었다. 익히 들었던 행동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만원 오천원 천원을 꺼내 내밀었더니 천원 한장을 달랑 집으면서 "이거면 돼"라고 말했다. 그때 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천상병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교도소에서 3개월 치욕스러운 심문을 받은 후 풀려났다.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갈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아이도 낳을 수 없게 되었다. 문단에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인의 일화 한 토막. '그가 죽고 난 뒤 몇 백만원인가 하는 조의금이 들어왔다. 시인의 가족으로는 처음 만져보는 큰 돈이었다. 시인의 장모는 그걸 사람들 손이 타지 않는 곳에 감춘다고 한 것이 하필이면 아궁이 속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인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시인이 하늘로 돌아가던 1993년 4월 28일, 의정부시립병원 영안실 밖으로는 추적추적 봄비가 꽤 내렸다고 한다.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예술제가 의정부시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올해는 시인이 소풍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의 버려야 할 버릇 중 하나가 생전에 홀대하다 죽은 후 부산을 떠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예술가들에게는 없는 게 많다. 부(富),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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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강화도 '갱징이 풀' 지면기사
칠면초(七面草)는 칠면조의 얼굴처럼 붉게 변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도 토박이 노인들은 칠면초를 '갱징이 풀'이라고 부른다. 꽃인지 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풀은 밀물에 묻히면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기자 초년병 때 만난 갑곶 노인들은 소나 말도 이 풀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갱징이 풀'이고, 소나 말이 그 풀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이야기는 병자호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대군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월곶 성동 나루터에는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강을 건너게 해 줄 배가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가마가 도착했다.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을 받은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의 어머니와 아내가 탄 가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나 발버둥을 치는 피난민들은 외면한 채 두 여인과 식솔,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만 싣고 강을 건너갔다.그리고 곧 오랑캐가 나루터에 들이닥쳤다. 후대는 그 모습을 "순식간에 거의 다 채고 밟히고 혹은 끌려가고 혹은 바다에 빠져 죽고 하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았으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 펄에서 죽어가면서, 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경징아! 경징아! "부르며 저주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원한의 피가 붉은 펄 꽃으로 피었다는 것이다. 그게 말과 소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갱징이 풀'이다.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해안선 길이 99㎞로 세계적인 갯벌과 천연기념물 205-1호 저어새가 서식하는 곳. 매화마름, 갱징이 풀 등 56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강화도를 소개한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 지오그래피'(작가정신 刊) 두 권의 책이 동시 출간됐다. 강화도가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했고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른 탓이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보다 더 아름답고, 서러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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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혁명의 교훈 지면기사
"너무도 험악한 정세와 너무도 강하고 엄청난 어둠 속이라 겁많은 사람일지라도 굳은 각오를 하게 되고, 또 아무리 대담한 사람일지라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올빼미의 시선을 빌려 1832년 6월혁명 전야의 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혁명은 규범 대 규범의 충돌이고, 현재를 지키려는 세력과 전복하려는 세력의 격돌은 자비롭지 않다. 위고의 서사는 전환의 역사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군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혁명의 동력은 악의적인 구체제의 전복을 희망하는 대중이다. 역사적 대중은 혁명이 혁명을 부르고 소멸하는 반복과 순환의 동력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의 쿠데타-왕정복고-1848년 2월혁명-1871년 파리코뮌에 이르는 1세기 동안 민중혁명과 왕정복귀 쿠데타를 거쳐 선거혁명으로 마무리됐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은 이제 '실패'라는 낙인이 찍혀 역사에서 폐기됐다.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연쇄 혁명 '아랍의 봄'은 내전과 종파간의 대립 등 혁명의 여진이 '아랍의 겨울'을 불렀다.오늘로 1960년 4·19혁명이 58주년을 맞았다. 해방공간을 꽉 채운 이념적 대립과 계층간의 이해(利害) 충돌로 극심한 정치혼란기의 대한민국은 4·19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독재복고의 진통속에 혁명세대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으로 나뉘었지만, 덕분에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4·19혁명, 두번의 쿠데타,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여진이 남긴 이념의 골이 너무 깊어 대한민국은 아프다.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킨 촛불시위는 모든 혁명은 모든 권력의 경종이라는 교훈을 일깨운 사건이다. 시대정신에서 홀로 이탈한 권력은 언제든 혁명적 상황에 직면한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격상시켜 혁명의 면류관을 쓴 문재인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