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아편쟁이
    참성단

    아편쟁이 지면기사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그의 존재 가치를 토머스 칼라일은 ‘(식민지) 인도를 포기할지언정 셰익스피어 없는 영국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셰익스피어가 아편쟁이였다면 영국인 자존심이 뭐가 될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터스랜드(Witwatersland)대학, 넬슨 만델라가 법대를 나온 그 최고 명문 대학의 프랜시스 세카레 교수가 지난달 출간된 권위 있는 남아공 학술지에 ‘셰익스피어의 명작, 그 창조의 근원은 대마였다’고 밝혔다. 2001년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잉글랜드 중부 스트랫퍼드 아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의 생가 정원 발굴 결과 파이프의 잔존물로 보이는 니코틴과 대마 성분이 확인됐다고 보고한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반론은 거셌다. 셰익스피어 생존 시기인 16~17세기 당시는 다양한 식물 잎을 도제(陶製) 파이프에 담아 흡인하는 게 관례였다고.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날의 마약 대륙은 단연 아메리카 하고도 중남미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Escobar)는 마약 재벌이고 멕시코 최대 마약조직은 시나로아 카르델이 꼽힌다. 그런데 지난 7월 탈옥한 그 조직의 두목 중 하나인 알프레도 구즈만(Guzman)의 조작된 얼굴 화상이 트위터에 떠 세상을 한껏 조롱했다. 게다가 ‘여기 있다는 게 대만족! 그 누구와 함께 있는지 아는가’라는 조롱 문구까지 덧붙인 것이다. 마취약, 마비약이 마약이다. 신경과 정신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블랙아웃 시켜 버리는 게 아편이다. ‘아편 침 두 대에 황소 떨어지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 마약을 네덜란드는 개인의 기호(嗜好)로 치부하고 이탈리아는 1993년 국민투표로 합법화했다. 1994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마리화나, 해시시 소량은 죄를 묻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에선 거의가 사형이고 싱가포르도 중죄로 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사위가 아편쟁이로 밝혀졌는데도 처벌이 가벼워 논란이 분분하지만 법도 상식선이다. 보편타당성이 못되면 진리가 아니고 사이비 진실조차 못 된다. 스

  • 두 얼굴의 수원
    참성단

    두 얼굴의 수원 지면기사

    뒤주 속에 들어가는 28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모습을 보던 정조의 나이는 불과 열한 살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아버지를 사모하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왕이 된 후 1789년 아버지의 묘를 화산으로 옮겼다. 윤선도가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자리’라고 했던 그 곳이다. 수원 화성은 그렇게 탄생했다. 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한평생 정치개혁과 아버지에 대한 회한으로 살았던 정조로 인해, 수원은 효(孝)의 도시가 됐다. 화성(華城)은 장자 ‘천지편’에 나오는 ‘화인축성(華人祝聖)’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화성이라는 이름에서 정조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왕실의 장수와 부귀와 번창을 기원하는 도시, 왕의 입장에서는 요(堯)임금같이 덕을 펴는 도시라는 두가지 였다. 정조의 꿈은 수원 화성 주민들이 ‘집집마다 부유하고 사람마다 화락’(戶戶富實 人人和樂)하는 낙원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화성을 축조하면서 내린 교서는 “민심을 즐겁게 하고 민력을 가볍게 하는데 힘쓰라. 혹시라도 백성을 병들게 한다면, 비록 공사가 빨리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였다. 정조는 공사에 참여한 70여만명 인부들의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해 반나절까지 계산해 품삯을 지급했다. 한양도성이 남향인 반면, 화성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양의 경복궁과 창덕궁 정문이 남쪽을 향해 서 있지만, 화성의 행궁(行宮)은 팔달산 아래에 동쪽을 바라보도록 건축됐다. 그래서 화성의 간선도로는 동서가 아닌 남북 방향으로 났다. 도성이 방어에 초점을 맞춘 폐쇄적인 형태였다면, 화성은 소통을 중시하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한성과 충청도·전라도를 잇는 곳에 위치한 화성 신도시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발전을 거듭했다.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시전이 생겨나는 등 상업이 흥했다. 수원이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가 된 이유다. 그런 수원이 전국에서 성범죄자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신상정보가 공개된 성범죄자 4천489명 중 92명이 수원에 살고 있다니 모골이 송연하다. 오원춘·박춘봉은 강력 범죄의 대명사가 됐

  • 양심적인 일본인
    참성단

    양심적인 일본인 지면기사

    썩 괜찮은, 양심적인 일본인도 많다. 정치인만 봐도 1993년 고노(河野洋平) 관방장관은 정부를 대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사죄했고 1995년 무라야마(村山富市) 총리는 식민지 한국 역사를 통렬히 반성, 사죄한다고 했다. 나카소네(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지난달 잡지(文藝春秋) 기고문에서 ‘일본은 과거를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고 썼고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전 총리, 그는 괜찮다 못해 얼마나 멋진가. 지난달 서대문형무소 앞에 무릎 꿇고 식민지 역사를 사죄했는가 하면 화환 등 자신을 위해 쓴 비용(봉투)까지 내밀었다. 일본 지식인은 어떤가. 작년 3월 고노 담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서명한 학자가 1천300명이었고 2012년 9월 독도와 센카쿠(尖閣)열도 분쟁에도 일본은 반성해야 한다며 서명한 학자와 지식인도 노벨문학상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 1천270명이었다. 반성 정도가 아니라 홋카이도(北海道) 교직원 단체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자료를 배포한 건 2009년 12월이었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하라’는 변호사도 있었다. 2012년 2월 아다치(足立修一)라는 변호사가 그랬다. 그런데 드디어 아주 멋진 여성 판사가 등장, 부상(浮上)했다. 오카베 기요코(岡部喜代子)라는 도쿄 최고재판소(대법원) 재판장! 그녀는 8일 그곳 제3법정에서 ‘일본인이 아닌 재외 원폭 피폭자가 국외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치료비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던 오사카 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최종 확정판결했다. 1945년 8월 원폭 피해 70년만이다. 그래서 히로시마(廣島) 원폭 피해로 태내(胎內) 피폭자가 됐던 이홍현(李洪鉉·69)씨 등 소송인 2명을 비롯해 한국인 3천여 명의 재외 피폭자가 의료비를 지급받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후생성(보건복지부) 자료의 재외 피폭자는 지난 3월 말 현재 4천284명이었다. 그런 멋지고 양심적인 일본인 축에 끼지 못하는 정치꾼 대표가 바로 아베 총리다. 그런데도 3선 총리라니, 3류 코미디가 아닌가. 콧수염을 단 ‘히틀러 아베’ 사진과 함께 ‘타도 아베정권’ 시위가 연일 시

  • 낚시꾼
    참성단

    낚시꾼 지면기사

    낚시꾼이라면 강태공(姜太公)부터 떠올릴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낚시광(狂)은 성(聖) 베드로였고 러시아 작가 체호프도 낚시에 미친 사람이었다. 체호프는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도 아내를 물고기에, 자신을 낚시꾼에 비유했고 편지 끝말은 늘 ‘당신을 낚는 어부 체호프’였다. 미국에선 헤밍웨이뿐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등 32, 34, 35대 대통령도 낚시광이었고…. 그럼 낚시의 시조는 누구일까. 아담의 셋째 아들 세드(Seth)가 아들들에게 가르쳐 준 게 낚시였다니까 낚시질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였다. 중국에선 강태공뿐 아니라 공자님도 낚시를 즐겼던 것 같다. 그의 유명한 말이 ‘조이불망 조이주어(釣而不網 釣而主魚)’―‘낚시를 하되 그물은 쓰지 않고 낚시를 해도 물고기 주인은 되지 않는다’였기 때문이다. 그럼 낚시질은 왜 했나?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 거진 화진포 별장을 자주 찾은 것도 낚시가 목적이었고 자유당 때 국회부의장 이재학도 즐겨 찾은 저수지마다 별칭이 ‘이재학 못(池)’이었다. 그런데 ‘낚싯줄 끝엔 물고기가 매달려 있지만 그 반대 끝엔 바보가 매달려 있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할 일 없이 한가한 인간으로 비치기 쉽다. 게다가 호수와 바다 등 쓰레기 오염의 주범들로 눈총을 받는 게 낚시꾼 아닌가. 게다가 ‘낚시질’이라는 비유어도 안 좋다. 큰 이권이 걸린 미끼를 은밀히 던져놓고 덜컥 물기만을 기다리는 비열한 짓이기 때문이고 ‘낚시걸이’라는 말도 조금 주고 많이 얻으려는 꼼수다. 중국어의 ‘조어(釣魚)정책’ 역시 투자 등을 유인하기 위한 책략을 뜻한다. 특히 요즘의 낚시꾼에 대한 혐오감은 심하다. 왜? 속칭 보이스피싱(voice fishing)―‘목소리 낚시꾼’이 암약하는 시체(時體)→세상 아닌가.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해 일본에 빼앗긴 섬도 조어도(釣魚島:땨오위댜오), 즉 낚시섬이고 낚시대(釣魚台)다. 낚싯배 돌고래호 침몰사고로 TV가 연일 시끄럽다. 침몰사고야 안타깝지만 매일 같이 시끄러운 TV 보도가 몹시 거북하고 불쾌한 이유는 뭘까. 아직도 가슴팍에 노란 리본

  • 여초 사회
    참성단

    여초 사회 지면기사

    여자 인구가 남자보다 많다는 걸 언론에서 ‘여초(女超)사회’라고 했지만 ‘女超’는 없는 말이다. 超는 ‘뛰어넘을 초’자다. 뛰어넘긴, 여자가 뭘 뛰어넘나? ‘女超’보다는 여자가 많다는 ‘여다(女多)’라는 말이 어떨까 싶지만 역시 없는 말이다. 두 단어가 모두 없는 까닭은 뭘까. ‘남녀 인구야 내 소관이니라. 어느 쪽이 많고 적고에 신경 쓸 거 없다. 주제넘고 무엄하도다’라는 창조주―신의 뜻이 아닐까. 6일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를 보면 올해 6월말 현재 여성 인구는 2천571만5천796명으로 남성 인구 2천571만5천304명보다 492명이 많아 1968년 주민등록 인구통계 시작 이래 처음으로 여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남녀 인구 차이가 2천571만5천 단위까지 같고 겨우 492명만 여자가 많다는 건가. 이건 거의 같은 거나 다름없는 기적에 가깝다. 아들딸 선호 사상이 희박해진 사회의 남녀 성비(性比)가 거의 같다는 게 얼마나 외경(畏敬)스러운 신의 섭리인가? 아들 선호사상은 한자 사용 유교문화권에서 심했다. 현 일본 왕실만 봐도 아키히토(明仁)왕의 부인은 미치코(美智子), 며느리는 마사코(雅子), 손녀딸은 ‘아이코(愛子)’로 ‘아들 子’자가 내리붙었듯이 아직도 일본인 여자 이름엔 ‘아들 子’자가 흔히 붙는다. 일본 지명(地名)조차 하치요지(八王子), 코요시(子吉), 코야스(子安), 코모치(子持), 코우라(子浦) 등 子자가 다수다. 중국엔 子씨라는 성씨가 다 있는가 하면 딸을 얻는 기쁨은 반쪽(半喜:빤시)에 불과하니 다음엔 꼭 아들을 낳으라는 뜻으로 여자를 ‘女子子’로도 불렀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들을 무시하듯이 ‘子’자가 단어의 접미사로 마구 쓰인다. 사자(獅子)에만 子자가 붙는 게 아니라 토끼(兎子)에도, 원숭이에도 붙고 심지어 입(口子)에도, 코(鼻子)에도 붙는다. ‘코아들’이 아니라 그냥 ‘코’라는 뜻이 ‘鼻子’다. 남존(男尊)과 남비(男卑)의 희극적인 혼재(混在)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남녀 성비가 1990년의 116.5대100에서 거의 같아졌다는 건 고무적인 일

  • 유럽행 난민
    참성단

    유럽행 난민 지면기사

    ‘Syria’는 아시리아(Assyria)어로 ‘빛, 일출’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시리아 땅엔 빛도 없고 해도 뜨지 않는다. 전쟁과 난민 탈출(exodus)의 암흑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2011년 이래 내전으로 인구 2천300만명 중 25만명이 사망, 100여만 명이 부상했고 인구의 절반인 1천100여만 명이 난민 신세다. 왜 그렇게 됐을까. 미치광이 젊은(50)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al-Assad)의 장기집권 야욕 탓이고 그의 폭정에 항거, 봉기한 반군과 민중을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쿠르디 군의 익사한 시신이 터키 해안에 떠오르자 전 세계, 특히 유럽이 충격에 빠졌고 그 충격파를 중국과 일본 언론은 똑같은 글자의 ‘震감(진감)→전한, 신칸’으로 표현했다. ‘몹시 흔들렸다’는 거다. 그런 난민은 시리아뿐이 아니다. 어제 낮 중국 CCTV는 ‘유럽이 2차대전 이래 최대 난민의 밀물을 만났다(歐州遭遇 2戰以來最大難民潮)’고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는 ‘중동, 아프리카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유럽을 향하는 난민과 이민이 작년에 21만9천명이었고 올해는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동서 유럽이 갈렸다. 독, 불, 영, 오스트리아는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동유럽은 거부했다. 그러자 투스크(Tusk) EU대통령이 나섰다. “유럽 내 난민 10만명을 가맹국들이 공평하게 받아들이라”고. 이 참에 스타로 뜬 대학 여교수도 있다. 아이슬란드의 브린디스 뵤르그빈스도티르(Bjőrgvinsdottir) 교수가 난민수용 촉진 운동을 벌이면서 자기 집부터 시리아 난민 5명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했고 결국 정부의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난민은 가자(Gaza strip)지구에만도 10만명이다. 이스라엘 대(對) 팔레스티나 자치구를 실효 지배하는 이슬람조직 하마스 간엔 작년 여름 휴전에 합의했지만 그 정도다. 동유럽→서유럽 난민도 많다. 작년 독일로의 이민만 무려 55만이었고 그 대부분이 동유럽 난민들이다. 그럼 아

  • 김현 25주기
    참성단

    김현 25주기 지면기사

    모두가 시인이고, 누구나 소설지망생이었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문학을 토론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1970·80년대 , 우리는 그런 시대를 ‘문학의 시대’라 부른다. 시집 초판 1천권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는 것은 물론, 문학평론집이 서점 서가에 꽂혀있던 그때, 그 중심에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었다. 해방 이후 우리 글로 교육받은 한글세대, 비평을 창작의 경지로 끌어 올렸고, 자신의 비평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가미시켰던 독보적인 평론가. 올해는 그의 25주기가 되는 해이다. “내 육체의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 18세에 멈춰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이렇듯 김현은 4·19 혁명으로 부터 세례를 받은 평론가였다. 불과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집은 100권을 팔기 어렵고, 문학평론집은 입을 맞춘 듯 서점의 서가에서 사라져 버렸다. 미디어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그 흔해 빠진 자기소개서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단언컨대 ‘독서의 부재’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쓸 수 없는 것이고, 상상력이 고갈됐으니 미래도 그릴 수 없다. 포털 사이트에 ‘김 현’ 두 글자를 치면 국회의원 김현이 메인으로 뜨는 것도 지금이 문학의 시대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불행하게도 신은 재능이 철철 끓어 넘치던 김현을 불과 그의 나이 48세 되는 해 데려갔다. 그의 25주기를 맞아 김현 문학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이름에서 가져 온 ‘김현문학패’가 제정돼 제1회 수상자로 시인 성기완(48)씨와 소설가 한유주(33)씨가 선정됐다. 김현의 제자와 후배들이 세운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현 비평의 역동성’을 주제로 한 포럼도 갖는다. 모두 그가 그리워서다. 무명 시인의 하찮은 시도 밤새워 꼼꼼히 읽고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 주었던 김현이다. 지금 그가 너무도 그리운 것은, 이번

  • 중국의 굴기(굴起)
    참성단

    중국의 굴기(굴起) 지면기사

    중국의 굴기가 무섭다. ‘굴起’의 굴은 ‘우뚝 솟을 굴’자로 중국어 ‘쥐에치(굴起)’는 산봉우리가 우뚝 솟구친다는 뜻이다. 그것도 산중의 산이 아니라 평지의 산, 지평상(地平上)에 치솟는 산이다. 즉 도약, 비약, 눈부신 발전을 뜻하는 말이 굴기다. 그런데 오늘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벌어질 9·3항전승리70주년 기념대회야말로 중국의 굴기를 유감없이 뽐낼 참이다. 1만2천여 명이 벌이는 열병식 군사퍼레이드엔 신예 탄극(坦克:탄커)→탱크를 비롯해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드는 사거리 1만1천200~1만4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 등 첨단무기를 과시한다. 톈안먼 상공은 ‘공중 사닥다리 부대(空中梯隊)’→제트기 비행편대가 뒤덮고 개막 오성기(五星旗) 게양에만 200명, 합창단원만 1천명이다. 뭣보다 지난 6월부터 혹독하게 연습한 열병식 의장대 대오(隊伍)야말로 한 치(약 3㎝)가 아니라 1㎝의 오차도 없다. 중국의 비약적인 굴기에 네티즌들은 ‘민족 자호감(自豪感)을 누를 길 없다’고 했다. 스스로 긍지를 느낀다는 말이 ‘쯔하오(自豪)’다. 중국인이 어느새 그렇게 늘씬한 체격의 키다리들이 됐는지, 그 점 또한 쯔하오를 뽐낼지도 모른다. 남자 의장대는 평균 190㎝, 모델 출신들로 편성됐다는 여자 의장대 역시 평균 키가 178㎝다. 그녀들은 의장대의 꽃이다. 오늘의 그 9·3 항전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중국인들은 친근한 가족 호칭인 ‘퍄오졔졔(朴姐姐)’와 ‘퍄오마마(朴마마)’로 부른다고 했다. 姐姐는 누나 또는 언니, 마마는 엄마다. 어쨌든 우리에겐 중국의 무서운 굴기가 축하할 일이다. 왜? 먹고 사는 경제 문제에도 중국이 절대적이지만 북한 문제, 한반도 통일에도 중국의 북한 억제력 등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 또한 그렇다. 한·일 공존과 상호 협력, 공동 굴기라야 동북아 평화가 보장된다는 걸 모르는가. 선진국이 쩨쩨하게 한·중 친화에 질시의 눈길을 보낼 게 아니다. 하긴 오늘의 중국 전승절 기념일 명칭부터 ‘항전(抗日)’이니

  • 산케이신문 망언
    참성단

    산케이신문 망언 지면기사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또 망언 망발을 했다. 작년 세월호 사고 때는 임진왜란의 왜장(倭將)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를 연상케 하는 카토 타쓰야(加藤達也)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침몰 당일의 ‘공백의 7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남자관계 의혹을 제기하더니 이번엔 또 뭔가. 인간 생체실험을 자행한 극악무도한 731세균부대의 세균 실험에 의학적 기초를 제공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를 떠올리게 하는 산케이신문 군사전문위원 노구치(野口裕之)의 칼럼이 또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을 깔보는 망발을 했다. ①한국외교애사(哀史)는 청(중국), 러시아, 미국 등 사대주의로 일관했다 ②(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9·3 전승 기념일 행사 참가를 지칭) 중국은 6·25 침략자건만 완전히 도착(倒錯)된 거 아닌가 ③(명성황후를 가리켜) 이씨조선(조선)에도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지만 암살당했다 ④한국의 사대주의를 비웃는 게 북한 주체사상인가 등. ‘미·중 두 갈래, 한국이 단절하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米中二股 韓國が斷ち切れぬ 民族の惡い遺産)’이라는 그의 칼럼 제목부터 불쾌하다. ‘두 갈래’라는 ‘후타마타(二股)’의 股자는 ‘허벅지 고’자다. 그러니까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두 허벅지 사이에 끼여 있다는 거다. 장문의 칼럼 조목조목 내용에도 비위가 뒤집힌다. ‘민비 암살’로 비하한 명성황후 시해만 해도 백배사죄에 앞장서야 하는 게 양심적인 정론 언론인 아닐까. 1895년 10월 8일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시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는 후지가쓰 아키(藤勝顯)였다. 1994년 8월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崔書勉) 원장이 일본 큐슈(九州)의 한 신사(神社)에서 발견한 길이 1m20㎝의 그 일본도 칼집엔 ‘일순 섬광살 노호(一瞬閃光殺 老狐)’라는 문구가 시해범의 아호인 ‘몽암(夢庵)’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늙은 여우(老狐)’ 지칭이 바로 명성황후였다. 박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한 건 무엄하고도 발칙한 저주다. 일본의 미국 사대주의에 대해서도 궁색한 변명을 달았다. 한국에 비하면 낫다

  • 김정은 제1서기
    참성단

    김정은 제1서기 지면기사

    ‘제1서기’라는 직함, 호칭이 흥미롭다. 제2, 제3서기도 없는데 제1서기라니! ‘書記’ 하면 우리 공무원 직책 중 가장 낮은 자리 또는 ‘회의 때 기록을 맡은 사람’부터 떠오른다. 조선시대 육의전 하공원(下公員)의 하나도 ‘서기’로 불렀다. 다음으로 꽤 높은 자리인 ‘서기관’은 부이사관 아래, 사무관 위의 공무원이다. 구한국 때 관아 벼슬에도 서기관이 있었고 다윗 왕 이후 히브리 궁정에서 왕에게 조언하던 자리의 고관 역시 서기관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자리의 힘센 사람은 공산당 사무국의 서기~서기장(書記長)이다.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 이전의 체르넨코(Chernenko)까지도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중국에선 ‘주석(主席→주인 자리)’이고 김구 선생도 1944년 임시정부 주석이었다. 김정은도 ‘주석’이 어떨까? 아무튼 김정은 제1서기가 큰 상을 받는다. ‘세계에서 뛰어난 지도자’ 상이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교육재단은 지난 7월 31일 올해의 수카르노 상을 북한의 김정은 제1서기에게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수카르노 상은 옛 종주국인 네덜란드와의 독립투쟁을 이끈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상으로 김일성과 베트남의 호치민(胡志明)도 받았다. 수카르노 재단의 아리아 웨다카르나 이사장이 김정은에게 상을 주는 이유를 밝혔다. “김씨가 문제가 많은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전향적으로 고려하면 북한은 1955년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에서 제기됐던 제국주의와 싸운 철학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사가 이중 삼중으로 겹친 셈이다. 조부에 이은 대상(大賞) 영광에다가 ‘북남’ 문제까지 화해 무드가 고조되고 있지 않은가. 세계 언론들도 ‘김정은이 남북 합의를 화해와 신뢰의 계기로 삼자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그 첫 반응이 오는 7일의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 제의에 대한 즉답 아닐까. 부디 ‘뛰어난 지도자 상(賞)’에 걸맞은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건 남북 간 화해와 신뢰 하고도 특히 신뢰다. 절대로 대남 도발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신뢰를 증명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