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급발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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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급발진' 미스터리 지면기사

    올해 초 한 방송이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에 전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영상이다. 손자를 태우고 운행 중이던 60대 할머니의 차량이 굉음과 함께 600m를 급발진해 왕복 4차선 도로를 날아 넘어 지하통로로 추락했다. 손자는 사망하고 할머니는 중상을 입었다. 차량이 질주하자 "이게 왜 이래"라는 할머니의 음성이 반복된다. 이내 사고를 직감한 듯 손자의 이름만 연신 울부짖었다. 뒤늦게 손자의 사망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아들 내외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사고 처리는 급발진 의심 사고 처리 관행대로 진행됐다. 할머니는 사고의 가해자로 입건됐다. 졸지에 손자를 사망케 한 피의자가 된 것이다. 여론이 폭발했다.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을 운전자가 독박 쓰는 제도에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터진 것이다. 영상은 급발진을 의심하기에 충분했고, 시청자들은 가장 강력한 애착관계인 할머니와 손자의 비극을 자기 일처럼 공감했다.경찰이 17일 할머니를 무혐의 처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제동장치에 기계적 결함은 없고,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감정했다. 경찰은 실제 사고 차량의 오작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어서 할머니의 과실 증거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 경찰이 국과수 감정을 탄핵하는 거의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이 사건에 집중하는 여론을 의식한 조사 결과로 보인다.차량 급발진 사고는 세계적 미스터리다. 미국은 10여년 전 도요타 차량 급발진 사고 원인이 차량 전자제어장치(ECU) 오류라는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12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도요타는 벌금을 내면서도 급발진 책임은 부인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ECU를 급발진 원인으로 강력하게 의심하지만 제조사들은 한결 같이 부인한다. 첨단과학의 시대에 급발진 사고 규명이 힘드니 각종 음모론이 횡행한다. 미국처럼 급발진 책임규명을 제조사에게 지워야 한다. 강릉 사고를 계기로 관련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찬반 논란에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자동차

  • [참성단] 도토리와 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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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도토리와 칠게 지면기사

    요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토리와 밤 지키기 전쟁 중이다. 야산마다 도토리, 밤 불법 채취 단속을 경고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공무원들이 수시로 단속에 나선다. 다람쥐가 홍보대사다. 현수막엔 '다람쥐의 겨울양식'을 강조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도토리의 어원은 돼지의 옛말인 '돝'이다. 정작 도토리 마니아는 돼지이다.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는 맛 좋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다람쥐는 도토리 보다는 고소한 견과류나 귀뚜라미 같은 작은 곤충들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엔 사정이 다르다. 먹을 게 도토리뿐이다. 다람쥐와 야생동물에게 도토리와 밤은 구황작물이다. 이를 사람들이 생계와 재미로 다 거둬가면 숲 속의 생명들은 기아에 허덕인다.인간의 욕심에 무너지는 생태계는 숲뿐이 아니다. 세계 철새의 날(10월 둘째 주 토요일)인 지난 14일 인천 송도 갯벌에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갯벌에 묻힌 칠게잡이 어구를 제거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갯벌에 흔한 엄지 크기의 칠게는 달고 고소한 맛에 서민들의 식재료로 각광받았다. 튀김, 볶음, 조림 등 조리법도 다양하고 통째로 한입에 먹기도 쉽다.사람만 칠게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겨울 철새에게도 인기 메뉴다. 인천 갯벌은 전 세계에 6천여 마리뿐인 저어새의 고향이자, 멸종위기종 알락꼬리마도요를 비롯한 철새들의 휴게소다. 사람이 칠게를 다 잡아먹으면 저어새의 번식과 성장이 힘들고, 철새들은 푸드코트가 사라진 휴게소에서 배를 곯는다.사람들이 칠게 씨를 말리는 방식도 잔인하다. 가로로 절단한 PVC 파이프 양 끝에 바구니를 달아 갯벌에 묻는다. 옆걸음만 가능한 탓에 칠게는 파이프에 빠지면 스스로 통 속에 모여 수거된다. 기발하지만 불법 어구다. 인천 갯벌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권고하는 천혜의 자원이다. 칠게는 갯벌 정화의 주역이자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다. 갯벌의 도토리 칠게가 사라지면 갯벌 생태계가 무너지고 철새의 멸종도 빨라진다.사람이 도토리와 칠게를 독차지하면 숲과 갯벌 생태계가 무너진다. 다람쥐와 새들이 사라진 숲과

  • [참성단] 대원군과 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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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대원군과 흥원 지면기사

    대원군이란 왕의 아버지에게 붙이는 칭호이자 군호다. 적장자가 아니라 방계 혈통이 왕위를 잇게 되면 왕의 생부가 대원군이 되는 것이다. 조선 역사에서 대원군은 모두 4명이 있었으나 대원군 하면 바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1821∼1898)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근세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세도정치 혁파와 과감한 인재 등용 등의 정치개혁·쇄국정책·경복궁 중건·서원철폐 등 대원군의 정치와 치적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원군의 면모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대원군은 정치인이기 전에 빼어난 예술인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묵란의 대가로 그가 그린 난초 그림을 대원군의 호를 따서 '석파란(石坡蘭)'이라 했다. 난초 등의 문인화에서 일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우리 근대예술사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거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대원군을 따르던 최측근인 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를 '천하장안'이라고 했는데, 이 중에서 안필주의 아들이 국학자로 유명한 자산 안확이다. 안자산의 '조선문학사'·'조선문명사'·'조선무사영웅전' 등은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명저다.'가곡원류'로 유명한 박효관, 안민영은 대원군의 식객으로 흥선대원군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예인들이었다. 특히 박효관의 가곡창은 하준권과 하규일에 이어지며, 하규일의 음악은 한국 국악학자로 '한국음악사'와 '국악개론' 등을 남긴 장사훈 서울대 국악과 교수에게로 이어진다. 또 서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대원군의 석파란은 사제관계는 아닐지라도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인 차강 박기정, 무위당 장일순을 거쳐 시인 김지하에게까지 그 맥이 이어진다.흥선대원군의 묘소는 고양군 공덕리와 파주군 대덕리를 거쳐 남양주 창현리로 이장됐는데, 최근 경기도가 남양주 대원군 묘소인 '흥원'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다(10월13일자 2면 보도). 대원군은 권력자요, 정치인이기 이전에 빼어난 문화의식과 소양을 가진 예술인이었다. 현재 우리 정치 리더들 가운데서 대원군만큼의 문화

  • [참성단] 여성 징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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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여성 징병제 지면기사

    남자 아기는 죽이고 여자 아기만 살려 병사로 키웠다는 여성 전사 부족 아마존(Amazon)의 신화는 지금도 페미니즘의 역사적 서사로 진행 중이다. 아마존은 헤로도투스의 '역사'나 폼페이우스 원정 기록 등 그리스, 로마 역사서에 등장한다. 소규모 여성 부대와의 전투를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남미 정복 과정에서 여전사들과의 교전이 있었다 해서 남미 열대우림이 아마존이 됐다. 긴머리 원주민을 여성으로 착각했다는 설이 있다.원더우먼은 아마존 신화에서 탄생했다. 2차세계대전 즈음에 슈퍼맨의 여성 버전으로 탄생한 만화 주인공이, 1975년 TV 드라마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미인대회 출신 린다 카터는 여성 영웅보다는 섹시 심벌로서 남심을 사로잡았다. 원더우먼이 이스라엘 여배우 갤 가돗을 만나 2017년 개별적인 영웅 캐릭터로 독립하기까지 한 세대가 걸렸다.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터지자 갤 가돗의 군 경력이 화제가 됐다. 24개월 현역병 의무를 이행한 그녀는 국제사회에 이스라엘 지지를 호소했다. 병역자원이 부족한 이스라엘은 여성도 징병 대상이다. 하마스의 공격을 격퇴한 여성 예비군의 활약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처럼 여성 징병제 국가 중엔 북한도 있다. 2015년부터 7년 징병제를 실시 중이다. 노르웨이는 여성들의 남녀평등 주장으로 도입됐는데, 병역의 강도가 약하고 혜택이 크기 때문이란다.우리도 여성 징병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잠복해있다. 병역자원 부족이 곧 현실이 된다. 한국의 적정 상비군 숫자는 최소 50만 명이다. 인구절벽이 시작된 2002년생부터는 남성이 예외 없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구소멸이 시작된 2017년생이 군에 입대한 2037년부터는 병사 10만명 이상이 부족해 간부가 더 많아진다고 한다. 2025년 병장 월급 200만원 시대가 열리면 여성들의 병역 의무 이행 욕구도 확대될 수 있다.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찬반 논란이 첨예한 사안이다. 모병제 논란까지 덧붙이면 배가 산으로 갈 형국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병사가 없으면 전선에 구멍이 생기

  • [참성단] 신개념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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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신개념 전쟁 지면기사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군비와 병력, 첨단무기, 핵무장 등 전통적인 지표로 나라 간의 군사와 국방력의 우열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세계 최강의 핵무장 국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국제사회가 기껏해야 이슬람 무장 단체로 깔보는 하마스가 비공식 핵보유국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납치했다.신개념 전쟁의 주역은 드론과 SNS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드론이 맹활약 중이다. 재래식 포격과 첨단 미사일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는 단 며칠 만에 작전을 끝낼 것이라 호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러시아 전차 부대의 진군을 막았고, 적진을 정찰해 프리고진의 용병들을 사살했다. 우크라이나의 SNS 선전전에 러시아 병사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했고, 용병들은 모스크바로 총부리를 돌렸다. 전선은 정체됐다.하마스는 드론으로 이스라엘의 통신과 기관총 기지를 파괴한 뒤 수제 로켓과 구식 로켓 수천 발을 쏟아부었다.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은 무력했다. 그 사이 하마스 특공대원들이 패러글라이더와 승용트럭을 타고 침투했다. 치고 빠지기가 전광석화 같았다. 분노에 찬 이스라엘은 30만 병력으로 하마스 절멸 작전에 돌입했다. 하마스는 SNS로 거짓과 진실이 혼재된 정보로 선전선동전을 펼치고 있다.드론이 전쟁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드론 군사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정찰, 공격, 자폭은 물론 안면 인식이 가능한 AI를 탑재한 소형 드론이 요인 암살을 위해 적진 상공을 하염없이 배회할 수도 있다. 대형 폭격기가 폭탄 대신 수천 대의 지능형 드론을 낙하할지도 모른다. SNS는 딥페이크와 거짓 정보로 적진을 분열시키고 공포에 가둘 수 있다. 정치적 내분이 심각한 나라는 거짓 선동이 핵폭탄보다 위협적이다.북한은 핵무장국이다. 짝퉁이지만 미국의 정찰 및 폭격 드론을 복제했다. 정찰 드론은 용산까지 다녀갔다. 다양한 용도의 드론을 개발 중일 테다. 하루가 멀다 하고 SNS 게시물로 사회가 뒤집어지는 대한민국이다.북한의 비대칭 전력이 핵에서 드론과 SNS로 확대일로다. 드론 몇 대와

  • [참성단] 김남조, 그리고 박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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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김남조, 그리고 박종환 지면기사

    1927년 생 김남조 시인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시단의 원로는 96세까지 장수하면서 사랑을 노래했다. 그의 부고 기사를 게재한 언론들은 '사랑의 시인'으로 추앙했다. 경인일보 오피니언 필진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김남조의 시 세계를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 모두가 선생의 시 전반에 걸친 탐구의 대상"이라고 해설했다. '편지'의 첫 구절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은 본 일이 없다"는 오래오래 회자됐다.앞서 박종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7일 별세했다. 호적엔 1938년생인데 실제론 1936년생이란다.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성장한 무명의 축구 지도자가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 국민영웅이 됐다. '붉은 악마'를 탄생시킨 박종환의 지도 방식은 폭력적이었다. 뺨을 때리고 단체기합을 주고 살인적으로 훈련시켰다. 지금이면 '폭력 감독'으로 퇴출되고 법적 처벌을 받았을 테지만, 언론은 '독사'라는 별명으로 명암을 흐렸다. 독사 감독의 독기 서린 지도에 붉은 유니폼의 선수들은 악마처럼 뛰었다.사랑의 시인 김남조와 독사 박종환은 청년과 소년으로 식민과 전쟁의 시대를 관통했다. 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해방되자마자 전쟁터 한가운데 팽개쳐졌다. 가난과 죽음이 일상인 비인간적인 시대를 살아가려면 김남조처럼 사랑으로 버티든지, 박종환 같이 독사의 독기로 투쟁해야 했을 테다.식민과 전쟁의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85세 이상 인구가 2021년 기준으로 약 99만명 정도다. 이중 90세 이상 초고령 인구는 29만6천여명이다. 지난해 사망자가 37만2천800명인데 70대 이상 고령 사망자가 대부분이니, 암울한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는 10년 내에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세대는 사라지는데 시대는 여전히 현재에서 강력하다. 식민과 전쟁의 긴 그림자에서 갈등이 솟구치고 반목하는 시선은 서늘하다. 그러는 사이 순환하는 세계사가 대한민국에 불온해졌다. 유럽과 중동 전쟁이 신냉전의 최전선인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한다. 혼탁한 과거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혼돈

  • [참성단] 방화수류정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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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방화수류정의 연꽃 지면기사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의 백미다. '동북각루'란 원이름대로 방화수류정은 군사 지휘시설이자 휴식 공간인 정자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독특한 건축 구조와 지붕의 형태로 인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3월 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됐다. 방화수류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빼어난 건축미와 경관을 자랑하지만, 그 주변의 화홍문과 용연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난다. 평일은 물론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거리는 인기 만점의 명소다.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란 당호(堂號)는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논다"는 뜻인데, 송나라 때 시인 정명도의 작품 한 구절을 따서 붙인 멋진 이름이다. 정조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이며, 적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했거니와, 방화수류정·화홍문·서북공심돈·서장대 등은 가히 조선 후기 건축 기술의 절정이라 할만하다. 이 중에서도 방화수류정은 당시 사찰 건축의 일인자였던 굉흠 스님 등 당대 최고의 장인과 대목장들이 힘을 합쳐 탄생시킨 명품 중의 명품이다. 수원 팔경 중에서 '화홍문의 수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華虹觀漲)'와 '용연에서 달 뜨길 기다린다'는 '용지대월(龍池待月)' 등 2경이 방화수류정 주변에 있다. 여름날 방화수류정에 앉아 수원 시내 야경과 달빛을 바라보며 화홍문을 관통하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은 도심 한복판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그만큼 수원천과 용연과 방화수류정은 최고의 조합이며, 특히 용연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따라 조성된 인공 연못이다. 그리고 이 용연에서 바라보는 방화수류정과 용연의 수면에 어리는 방화수류정은 마치 한 송이 연꽃 같다. 그야말로 눈맛이 최고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용연에 심어둔 연꽃으로 인해 이 천혜의 경관이 방해받고 있다. 수면 위로 비치던 방화수류정을 볼 수도 없거니와, 무성한 연잎들로 인해 연못의 고즈넉한 정취가 사라지고 말았다. 문화재는 손대지 말고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상책이다. 비단에

  • [참성단] '몽클라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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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몽클라르의 길' 지면기사

    국가보훈부는 정전 70주년인 올해에 '유엔참전국 자전거 동맹길' 행사를 진행 중이다. 6·25전쟁 참전 동맹국들의 전적지를 자전거로 순례하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다. 지난 4월에 용인 김량장리 자전거도로를 '튀르키예의 길'로, 5월엔 가평군 일대 자전거도로를 '가평전투의 길'로 명명하고 튀르키예와 영연방 4개국 대표들이 우리 국민과 함께 자전거로 질주했다.한글날인 9일엔 '몽클라르의 길'로 명명된 양평군 지평리 남한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프랑스의 참전을 기렸다. 랄프 몽클라르는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의 전쟁영웅이다. 6·25전쟁 때 프랑스는 식민지인 베트남을 되찾으려 인도차이나 전쟁에 병력을 집중했다. 유엔군 참여를 선언했지만 전투부대 파병은 주저했다.몽클라르 중장은 대대급 부대 파병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직접 부대를 지휘하려 별을 떼고 중령으로 명예 강등을 자청했다. 미 육군 2사단의 연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는 1951년 '지평리전투(2월 13~15일)'에서 중공군 격퇴의 선봉에 섰다.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한 덕분에 3월 14일 서울 재탈환이 가능했고, 휴전선을 38선 이북으로 밀어올릴 수 있었다. 몽클라르 장군은 한국을 구하고 조국 프랑스의 국제적 체면을 지켰다.수도권은 6·25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전쟁 초기에 낙동강과 압록강 사이를 출렁였던 전선이 휴전 때까지 중부전선에 정체한 탓이다. 필리핀, 벨기에·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프랑스, 튀르키예,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영연방4개국, 그리스 등 대다수 국가들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가 경기도에 집중된 배경이다. 유엔군과 북한군이 최초로 교전한 유엔군초전기념비(오산시),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파주시), 국가등록문화재인 유엔군 화장장(연천군) 등 전쟁 유산과 유적들도 즐비하다.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며 정율성 기념비와 동상이 들어섰다. 전쟁으로 소멸될 뻔 했던 나라의 관용으로는 선을 넘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이어 중동 화약고가 터졌다. 전쟁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자전거 동맹길

  • [참성단] 스마일 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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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스마일 점퍼 지면기사

    '스마일 점퍼',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딱 맞는 별명이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높이뛰기 결선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우상혁(27·용인시청) 얘기다. 그의 경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생소한 모습에 적응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압박감이 엄청날 텐데 어떻게 저렇게 시종일관 상큼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부터 갖게 된다. 도약에서부터 바(bar)를 뛰어넘기까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될진대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점퍼는 매회 조금씩 올라가는 바를 넘을 때마다 관중들도 덩달아 미소를 짓게 하는 마력을 뿜어낸다. 바가 바닥에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다.우상혁이 긍정마인드의 소유자로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건 2021년 도쿄 올림픽 때다. 결선에 나서면서 카메라를 향해 "이제 시작이다"라며 유쾌하게 말을 건네더니 최종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을 때도 밝게 웃으면서 "괜찮아"라고 소리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꿋꿋하게 거수경례하며 경기를 마무리할 때는 그야말로 운동선수가 가져야 하는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상혁은 특유의 유쾌함으로 관중을 홀렸다. 4일 열린 결선에서 우상혁은 경기 전부터 경기 도중, 이후까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압권은 2m23을 시도할 때다. 그가 두 팔을 번쩍 들어 박수를 치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자 관객들도 이에 부응, 일제히 일어나 같은 모습으로 화답했다. 진정한 축제다.24시간 웃음기를 머금을 것 같은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그는 8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뒤 후유증으로 인해 양발의 크기가 다르다. 왼발보다 오른발이 15㎜ 정도 더 작은 탓에 다른 선수들보다 균형감을 잡는 훈련을 많이 해야 했다. 육상계 인사들로부터 '짝발로는 안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결국 치명적인 핸디캡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한 셈인데 그가 내뿜는 긍정 에너지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죄인인양 굳은 표정으로 입국장을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은메달,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

  • [참성단] 미국 최초의 하원의장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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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미국 최초의 하원의장 해임 지면기사

    미국 하원이 지난 3일(현지 시간) 케빈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을 가결했다.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공화당내 극우 계파인 프리덤 코커스 계열 의원 8명이 민주당과 합심해 자당 출신 의장을 끌어내린 것이다. 미국 권력서열 3위로 대통령 유고시 승계 2순위자인 정치 거물이 당내 소수 반란에 당한 치욕이다.미국 하원의장은 관례상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맡는다. 2015년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매카시의 하원의장 선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입이 망쳤다. 하원 벵가지 사태 특별조사위원회가 민주당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저격용이라고 실토한 인터뷰로 대선 정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선거 여론이 악화되자 하원의장 경선을 포기했다.지난 1월 10석 차이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기회가 다시 왔다. 그때도 프리덤 코커스가 발목을 잡았다. 지지의 대가로 지역구 이익을 왕창 챙길 작정으로 과반 지지를 열네번이나 무산시켰다. 매카시는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의장을 해임할 수 있도록 불신임투표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시켜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자르라는 제안으로 강경파를 설득한 끝에 15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당선됐다. 하원 의사봉을 쥐기까지 겪은 우여곡절과 수모의 기록들도 하나같이 역대급이다.매카시는 열렬한 트럼프 추종자로 프리덤 코커스 못지 않게 강경 보수였다. 하지만 하원의장에 취임 이후엔 정파를 초월한 행보를 보였다. 백악관과 민주당과 대화로 부채한도협상을 타결하고 연방정부 셧다운을 지연시켰다. 지도자급 정치인들이 정파를 초월해 타협하는 미국의 정치문화를 지켰다.이를 야합이라며 공화당 강경파 의원 1명이 의회 규정에 따라 공개적으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반란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매카시는 결과에 승복했다. 의회는 혼란에 빠졌지만, 누구도 혼란의 당사자를 지목하지 않는다. 절차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고, 표결하고, 승복하고, 책임질 뿐이다. 혼란은 새로 시작하면 해소된다.당 대표 체포동의안 찬성 의원을 색출하는 한국 정치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국 정치의 위엄이다. 의회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