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푸틴-김정은 회동'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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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푸틴-김정은 회동'과 대한민국 지면기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에 제대로 튀었다. 러시아-북한 정상회담이 부싯돌이다.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했다. 실탄이 떨어진 푸틴이 김정은에게 재래무기 지원을 구걸하는 회동이다.대한민국에게 '2023 푸틴-김정은 회동'은 '1950 스탈린-김일성 회담' 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김일성은 1950년 4월 모스크바로 달려가 스탈린에게 남침 승인을 간청했다. 미국이 참전할 틈도 없이 3일이면 한반도 적화가 끝난다고 장담했다. 스탈린이 중국 마오쩌둥의 동의를 전제로 승인하자, 김일성은 5월 베이징을 찾아 마오와 입을 맞추고 6·25 남침을 실행했다.푸틴은 사면초가다. 무기고가 비었다. 프리고진 숙청으로 용병이 흩어져 병력도 모자란다. 김정은에게 재래식 무기는 물론 병력 지원도 요청할 태세다. 김정은의 비용 청구서를 거부할 입장이 아니다. 대한민국과 자유진영은 '김정은 청구서'에 긴장한다. 정찰위성, 핵탄두 소형화, 핵잠수함, 대륙간탄도탄(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이 거론된다. 하나같이 핵무장 고도화 기술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 식량 지원은 빠지지 않을 테다.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북핵 고도화 기술 이전에 합의하면 사실상 러시아의 북한 핵무장 승인이자, 핵무장 강화 지원이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북한 핵무장을 부정한 형식적인 안보리 결의와 제재마저 와해된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 사용을 러시아가 막을 명분도 없어진다. 중국마저 푸틴-김정은 회담을 경계하는 배경이다.국력의 먹이사슬 안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국제질서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푸틴-김정은 회동은 대한민국 안보환경의 급변을 예고한다. 러시아 기술로 북한 핵무장이 고도화되면 대한민국 또한 특별한 결단을 고민해야 한다. 핵무장의 가장 확실한 이유는 핵 말고는 자위수단이 없을 때다. 정부는 푸틴과 김정은이 대한민국의 인내의 인계점을 넘지 말 것을 경고해야 한다.핵폭탄 발명으로 인류는 공포의 균형으로 연명하는 지구 최

  • [참성단] 노란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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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노란 버스 지면기사

    같은 거리에서 보더라도 실제보다 가까이 있는 느낌을 주는 색을 '진출색'이라고 한다. 따뜻한 느낌을 주거나,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 유채색 등이다. 대표적인 진출색 중 하나가 노란색이다. 사실 빨간색이 노란색보다 눈에 잘 띄는 진출색이다. 하지만 빨간색은 어두운 곳에서 취약하다. 사람의 눈이 빨간색보다 노란색을 발견할 확률이 1.2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노란색이 주의를 끄는 데 더 적합하다. 노란색은 또 망막 위에서 넓게 퍼지는 성질이 있어 다른 색채보다 크게 보인다. 어린이 보호차량이 노란색인 이유다. 통학버스가 처음 노란색으로 표준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1939년 통학버스의 색상, 길이, 통로 너비 등을 정하기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는데 페인트 전문가들 사이에서 '색깔론'(?)이 난무한 끝에 노란색이 채택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에 도입돼 '어린이=노란색'이란 공식이 탄생했다.이런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어린이 하면 떠오르는 색은 노란색이다. 노란색 옷을 입은 어린이는 영락없는 노란 병아리다. 계절 중에서도 '개나리 노오란' 봄은 동심과 가장 닮았다. 그런데 이 노란 버스 때문에 동심이 멍들고 있다고 한다. 법제처가 지난해 10월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된 차량(노란 버스)만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의 이동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후, 노란 버스를 구하지 못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2학기에 계획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인천의 경우, 전체 전세버스 950여대 중 어린이 통학버스 규정에 맞게 신고된 차량은 30대에 불과하다고 하니 품귀현상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코로나 19에 이어, 밖에서 뛰어놀고 싶은 동심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복병이 출현한 셈이다. 잔뜩 들떠있다가 시무룩해진 자녀를 보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이런 가운데 인천시교육청이 과감히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반기'를 들어 주목된다. 시교육청은 최근 각 유치원과 학교에 "어린이 통학버스가 아닌 일반 전세버스로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 [참성단] 송편과 장바구니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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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송편과 장바구니 물가 지면기사

    떡은 우리 고유의 곡물 요리로 명절과 잔치 등의 각종 의례 때 쓰인다. 떡이 등장하는 고대 문헌으로 '삼국사기'가 있다. 유리왕 원년(298) 석탈해와 유리가 왕위를 놓고 서로 사양하다가 병을 깨물어 생긴 잇자국의 숫자가 유리가 더 많아 그가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이로 미루어 떡은 농경사회인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시작된 음식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농경사회답게 우리에게는 다양한 떡이 있다. 초하루 중화절의 송편(노비송편)을 비롯해서 삼짇날의 진달래 화전, 단오의 쑥절편과 인절미, 칠월 칠석의 개 찰떡, 추석의 송편, 구구절의 국화전, 동지 팥죽과 섣달그믐의 시루떡 등을 꼽을 수 있다.기록상 송편이 명절 음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알려진 이문건(1494~1567)의 일기에서다. 송편은 멥쌀을 기본으로 콩 · 깨 등 다양한 곡물을 소로 사용한다. 송편(松 ), 송병(松餠)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솔잎이 들어가며, 만두처럼 반원 형태로 만든다. 이는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화하는 달의 모양에 따른 것이라 한다. 대표적인 추석 명절의 음식이다.송편은 대표적인 세시풍속 음식답게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김매순의 '열양세시기'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를 보면 '쌀로 만두 모양으로 빚는다'는 기록이 나오며, 허균의 '성소부부고'와 '도문대작'에도 송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제목도 재미있지만, 1611년 유배를 간 허균이 적소(謫所)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먹게 되자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예전에 먹었던 조선 팔도의 좋은 음식에 대해 기록한 음식 기행이라 할 수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0일 기준 참깨 · 녹두 · 팥 · 서리태 · 밤 등 송편에 들어가는 소 가격이 품목에 따라 각기 3~42%로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송편값이 예년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여기에 쌀과 설탕도 각각 27%, 23%가량 뛰어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아무리 국내외 기상이변과 작황 및 공급량

  • [참성단] 국밥집 영업정지와 법의 정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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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국밥집 영업정지와 법의 정의(正義) 지면기사

    법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최소한의 도덕률이다. 민주사회 시민들이 법을 존중하는 이유이다. 늘 그렇듯 현실은 다르다. 법이 시민의 상식과 사회적 공정에 어긋날 때가 많아서다. 급발진 사고로 차량 제조사와 소송을 벌이면 급발진 피해자들은 100전 100패다. 피해자가 급발진을 증명해야 한다는 판례는 금강석 같다. 급발진 피해자들은 차량 메이커보다 법을 더 원망한다.전국의 선생님들이 교권회복을 주장하며 교육을 멈추었던 것도 법의 정의가 일으킨 착오 때문이다. 아동보호법,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이라는 정의를 지키는 방패였다. 하지만 교사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양이 앞의 쥐로 만들었다. 아동보호법의 정서적 학대 금지 조항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사를 법적으로 희롱할 여의봉이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편파적인 법의 정의가 교사를 죽이는 불의를 낳았다.지난주 군포시 한 국밥집의 영업정지 사연에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분노했다. 지난해 11월 갓 제대한 군인이라고 속인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가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한다. 안내문엔 "거짓말을 하고 처벌도 받지 않은 미성년자들"을 향해 "너희 덕분에 5명의 가장이 생계를 잃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진짜 어른이 된 후에 너희가 저지를 잘못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적어 놓았다.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한 자영업자는 식품위생법과 담배사업법에 의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미성년을 가려야 할 의무는 전적으로 점주에게 있다.의도적으로 법의 경계를 넘어 점주들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미성년자들이 적지 않다. 미성년자에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주는 위조범들이 호황이란다. 업주들은 관심법과 위조신분증 검사기로 대응한다. 신분증 검사로 실랑이가 벌어질 때마다 자영업자의 감정노동은 한계에 이른다. 청소년의 의도적 범법이라도 책임은 최종적으로 업주에게 전가된다. 법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동안, 청소년 악당들은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법이 불의를 방치해 발생하는 비극은 파국적이다. 교

  • [참성단]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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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 지면기사

    인천 앞바다의 섬 덕적도에 처음 발을 딛는 여행객은 '최분도'라는 이름부터 듣게 될지 모른다. 한 여행객은 섬이 예쁘다는 소릴 듣고 덕적도를 방문했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최분도 신부 얘기를 하는 바람에 문화해설사를 찾아 나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1966년 4월의 어느날 벽안의 신부가 덕적도에 발을 디뎠다.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전등, 병원, 상수도, 가난…모두 급한 일입니다. 동족끼리 전쟁을 한 가난한 이들이 이곳 주민입니다. 마음이 아파요. 어렵고 헐벗고 사는 게…게다가 아픈 이들이 많아요." 최분도(Benedict Zweber·1932~2001) 신부의 섬 생활은 이처럼 간절한 기도로 시작됐다.그는 덕적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섬 개발에 나섰다. 먼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부터 세웠다. 이어 미군 쾌속정을 병원선으로 개조, 낙도를 순회하며 숱한 생명을 구했다. 병원선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호칭 가운데 하나인 '바다의 별'이었다. 덕적도에 처음 전기를 끌어온 이도 최분도 신부다. 부산에 있는 미군레이더 기지에서 발전기를 구입, 섬에 전기를 공급한 그는 당시 직접 전주를 메고 800m의 산을 넘기도 했다. 지금도 덕적도에는 그때 만들어진 사각 모양의 전신주가 몇 개 남아있다. 서포1리 해수욕장 하천복개공사 때는 돌을 깨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어민소득증대사업에도 손을 대, 주민들에게 김 양식기술을 보급했다. 김 양식을 배우던 주민들이 해변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간첩으로 오인 받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섬 구석구석에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지금도 덕적도에는 1976년 최분도 신부가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섬을 떠나던 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나를 이 섬의 한 주민으로 기억하고 기도해 달라"는 그의 말에 섬은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의 '한국 사랑'을 보여주듯 2001년 3월 미국 뉴욕 메리놀 신학대학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미사에서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최분도 신부를

  • [참성단] '윤석열 커피'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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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윤석열 커피'와 언론 지면기사

    1989년 11월 9일 동독은 여행자유화 정책 기자회견을 갖는다. 예정된 발표 내용은 '10일부터 비자 발급 개시'였다. 국경개방 시점을 묻는 이탈리아 ANSA 통신 기자 리카르도 에르만의 질문에, 동독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지체 없이, 즉시.(Sofort, unverzuglich.)"라 답한다. 에르만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타전했다. 오답(誤答)에 오보(誤報)였다. 오보에 운집한 동서독 시민들이 9일 밤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오보가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를 만들었다. 독일 정부는 2008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에르만의 행운은 예외적 사례이다. 1986년 국내 한 신문은 '김일성 사망' 호외를 뿌렸다. 이틀 뒤 김일성이 평양비행장에 등장하면서 세계적 특종은 초대형 오보로 전락했다. 1946년 시카고 트리뷴은 토마스 듀이의 대선 승리를 보도했다. 예측 보도였다. 당선자는 해리 트루먼이었다. 트루먼은 오보가 실린 시카고 트리뷴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남겼다. 오보는 기자에게 치욕이고 언론사에겐 악몽이다.교육과 윤리로 전승된 기자들의 취재 관행의 목적은 오보 방지다. 오보는 사회와 개인에게 불가역적 피해를 발생시킨다. 지루한 팩트 체크 과정을 거쳐 주장을 사실로 객관화하고, 당사자의 반론까지 실어야 한 꼭지 기사가 지면과 방송에 나간다.최악은 기사 조작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날조된 기사는 윤리 차원을 넘어 범죄이다. 날조의 목적에 따라 죄의 경중은 땅에서 하늘 사이일 테다.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조작 의혹이 정국을 강타 중이다. 의심받는 조작의 핵심 내용은 부산지검 검사 윤석열이 부산저축은행 피의자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김만배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전달했다. 2021년 9월 인터뷰가 '뉴스타파'에 전달돼 대선 3일 전 공개됐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이재명의 주장을 증거하는 보도로 대선 막판을 달구었다. 정치적 공방은 생략하고 언론만 보자. 신학림도, 뉴스타파도,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 보도한 언론도 당사자

  • [참성단] 신종코로나 변이 '피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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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신종코로나 변이 '피롤라' 지면기사

    전염병은 확장성을 가진 질병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염병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세상과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곤 했다. 인구 감소·전쟁의 승패·권력 교체·종교에 대한 의존 심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에 간여하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전염병이 퍼지는 이유는 전쟁·가뭄과 홍수·국제교류·동물로 인한 전파 등을 꼽을 수 있는 바, 전염병이 유행하면 국왕이나 통치자들은 천벌이라는 인식을 갖고 더욱 근신하면서 죄수들을 석방하는 등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염병은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으로 1360~1375년 당시 영국에서만 해도 인구의 40%가 사망했을 정도다. 이 페스트로 인해 사람과 일손이 귀해지는 바람에 인권 신장이 촉진되고 중산층과 하층민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사회구조에 일대의 변화를 겪게 됐다. 페스트는 1331년 중국, 1346년 크림반도에 이르는 등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다.우리의 경우에 가장 흔한 전염병은 천연두·홍역·이질 등이었고, 조공·전쟁·무역 등 주로 교역 과정에서 많이 발생했다. 집에서 소를 키우는 것 역시 홍역과 천연두 대유행의 원인이었다. 당시에는 홍역은 창(瘡), 천연두는 천화(天花), 콜레라를 곽난(亂)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세종 29년(1447) 황해도에 번진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숙종 33년(1707) 평안도에서 1만명 이상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전염병은 많은 희생자와 함께 사회적 공포와 불안 등을 일으키며 인류의 역사와 사회에 커다란 재앙을 몰고 왔다.지난달 말 코로나19 새 변이 '피롤라(Pirola)'가 발생해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피롤라는 오미크론의 변이인 BA.2의 하위 변이라는데, 스파이크 단백질의 돌연변이 수가 BA.2보다 36개 이상이나 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보건당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변이인 BA.2.86도 미국과 영국 등 6개국으로 늘었다고 한다.코로나19 감염병 법정 등급이 2급에서 4급으로 낮아졌고, 국민들의 면역력이나 의료역량이 높

  • [참성단] 조업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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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조업한계선 지면기사

    조업한계선 너머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이유로 어민들이 순시선에 잡혀가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던 시절이 있었다. 조업한계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1960년대 말 얘기다. 우리 어선은 실수로, 또는 고기떼를 쫓다 조업한계선을 넘곤 했는데 순시선에 걸리면 이 같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자국민 보호 차원'이라는 명분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현재의 인권의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던 당시 접경해역의 상황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실제로 조업한계선은 동·서해에서 북한이 우리나라 어선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면서 생긴 법적 기준선이다. 조업한계선은 우리 어선의 피랍예방 및 안전조업을 위해 규정한 선박출입 통제선을 말한다.한국전쟁 후 접경해역에서는 1958년 4월 우리 어선 다복호가 북한의 경비정에 납치된 데 이어 1959년 7월에는 대창호 등 7척이 납치되는 등 북한에 의한 어선 피랍사건이 잇따랐다. 이에 북방한계선(NLL) 접근을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게 됐고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1964년 6월 농림부가 조업한계선을 설정했다. 그러나 피랍사건은 조업한계선이 그어진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어선은 물론이고 1968년 1월에는 미 해군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1967년과 1969년 두 차례에 걸쳐 조업한계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조업한계선은 인천 앞바다 어민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의 저자 김용구 박사는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연평도에서 조기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로 '조업한계선'을 꼽기도 했다. 또 조업한계선이 남하하면서 많은 어민들이 백령도, 대청도 등 삶의 터전을 등져야 했다. 일부 어민들은 전남 흑산도로 이주해 홍어잡이로 생업을 이어나갔다. 당시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어민들에게 몽둥이로 엉덩이 맞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이처럼 어민들의 애환이 깃들어있는 조업한계선이 일부 상향 조정된다고 한다. '어선안전조업법 시행령 개정

  • [참성단] '공교육 멈춤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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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공교육 멈춤의 날' 지면기사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다. 일제가 세계사에서 가장 악랄한 식민정책으로 조선을 유린했을 때도 독립투쟁의 바탕은 학교였다. 우당 이회영 6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 독립운동가를 육성했다. 김약연은 이보다 앞서 북간도에 '명동서숙'을 세웠다. 식민 본토 곳곳에선 민족의 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야학운동이 이어졌고, 식민지 학생들은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다.6·25 전쟁 중에도 학교는 쉬지 않았다. 전시 수도인 부산에 모인 학교들은 피난학교와 천막교실을 세웠다. 산업화 기적도 교육이 뒤를 받쳐 가능했다. 식민과 전쟁을 겪은 부모들은 죽기 살기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가난한 나라에 인재가 쏟아졌다. 나라가 궁핍을 면하자 교육 받은 대중들은 민주주의 결핍을 참지 않고 민주화마저 성취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멈춘 적 없었고, 교사들은 교단을 지켰다. 교육이 근현대 세계사에 유례 없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오늘은 전국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한 날이다. 진보적인 교원단체의 장외투쟁이 빈번했던 시절에도 대다수 교사들은 교단을 지켰다. 그 어떤 명분도 교육 중단을 거부하는 선생님들의 사명감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랬던 선생님들이 교권회복을 위해 공교육을 멈춰 세우겠다고 나섰다.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이 공교육의 제방에 구멍을 뚫었다. 무너진 교권을 인내했던 교사들의 절망이 한꺼번에 분출됐고, 학교·교사·학생·학부모 갈등으로 금이 간 공교육 제방이 붕괴됐다. 유명 웹툰 작가와 특수교사의 법정소송이 드러났고, 의정부 한 초등학교에서 두 교사가 차례로 사망한 사건은 2년 만에 억울한 사연이 밝혀졌다. 고양시와 군산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날이다. 교사들이 공교육 시계를 하루 멈춘다. 법으로 집회의 불법 여부를 다투는 정부의 태도는 협량하다. 교단을 박차고 나올 정도로 상처받은 교사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위로하는 것이 먼저다. 선생님들께도 당부한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 정치 세력과 이념의 무리들이 올라타 교사들

  • [참성단] 간토대지진 100년, 일본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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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간토대지진 100년, 일본의 침묵 지면기사

    '집단 광기'로 인한 비극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중세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만행 등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지금까지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집단 광기로 인해 벌어진 비극 중 대표적인 사례가 '간토대지진 학살'이 아닐까 싶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대지진을 말한다. 이 지진으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특히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약 6천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간토대지진 발생 100주년을 맞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벌어진 무차별한 학살을 소재로 삼은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일본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1923년 9월 6일 일본 지바현 후쿠다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의 줄기다. 간토대지진이 터지고 5일 뒤, 이 마을에 일본인 보따리상 15명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조선인이라고 착각하고는 유아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을 살해했다. 보따리상들은 자신들은 일본인이라며 기미가요까지 불렀는데 시코쿠 사투리를 듣고는 그들을 조선인으로 오인해 살해했다. 영화는 이처럼 간토대지진 당시의 집단 광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이나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일본인 감독이 간토대지진 학살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감독은 "개인일 때는 선량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서는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 일본 관객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재일 터이다. 간토대지진 대학살의 최대 피해자인 조선인이 조연급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간토대지진을 통해 집단 광기의 실체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국내 개봉을 기다려 본다.집단 광기는 후쿠다 마을의 사례처럼 과거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비롯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