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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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어우동' 대민지원 지면기사
군인의 본분은 국토방위다. 전·후방 구분 없이 전선을 이탈해선 안 되고 위수지역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협하는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국민을 지원한다. 대민지원이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의 위기 대응 능력은 민간을 압도한다. 미국은 허리케인 수해가 심각하면 군을 동원한다. 9·11테러 때는 주 방위군에 비상을 걸었다. 중국은 1976년 탕산,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군대가 민간인 구조의 선봉에 섰다. 쓰촨성 지진 때 군인에게 구조된 3세 아이는 지난 6월 중국 대입시험에서 전국 30등 안에 들어 화제가 됐다. 일본도 대형 지진, 태풍 재난이 발생하면 자위대를 동원한다.우리 군도 대민지원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장병들이 대민지원을 학수고대했던 배고팠던 시절도 있었다. 모내기, 추수 대민지원에 동원되면 모처럼 '사제 밥'을 맛볼 수 있었고, 살벌한 영내를 벗어나는 해방감도 컸다. 그래도 대민지원의 단골 레퍼토리는 태풍, 대설 등 자연재해다. 가난한 나라에서 군은 재해를 가장 효과적이고 유능하게 수습할 조직이었고, 게다가 무상이었다.나라가 부유해지고 어려움 없이 성장한 신세대 장병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명분 없는 대민지원이 도마에 올랐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현역병을 마스크 공장과 물류센터에 파견했다. 군은 대민지원이라 우겼지만, 사기업을 위한 강제노역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 7월 해병대 채수근 일병 사망 사건이 대민지원에 결정타를 날렸다. 폭우 피해 현장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도 없이 전우의 손을 잡고 일렬로 급류에 투입됐다.강원도 인제군이 최근 지역행사인 '마의태자축제'를 앞세워 인근 부대에 대민지원을 요청했다. 분개한 부대 간부가 온라인에 제보한 대민지원 내용이 가관이다. 군 간부들에게 어우동, 내시, 왕 등으로 분장한 '움직이는 포토존'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해당 부대는 간부 50명 지원에 동의했단다. 제보 간부는 지자체가 알바생을 뽑아 맡길 일에 군 간부를 동원하는 현실에 절망한다.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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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선배시민 지면기사
인간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4만3천200여 일로 이를 환산하면 120세가 된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700세 동안 살았고, 100세가 넘은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민간에 전설처럼 떠도는 신화적 도인으로 개운조사 김대성 스님이 있는데, 무려 182세까지 장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이러한 이야기들은 검증이 어려운 것으로 개인의 믿음과 신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수명이 크게 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소 드물긴 해도 경로당이나 지역사회에서 백세 상수(上壽)를 넘긴 어르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느새 우리도 백세시대,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을 실감하는 장수사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나이가 들면 근육량도 줄어들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크게 저하되지만, 오히려 뇌 기능과 판단력 만큼은 60~70세에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뇌세포, 이른바 뉴런들의 감소로 인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도 오랜 인생의 경험이 뉴런들 사이의 연결망을 촘촘하게 만들어줘 판단력이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과연 이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인류 사회의 리더들은 대개 60~70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그런데 이제 노인이나 어르신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퇴출되고 국어사전에나 나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숙 의원이 '경기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노인을 복지나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보고 이 '선배시민'들이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자연적 나이보다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능력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그 경험을 펼 수 있도록 사회 제도와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그러고 보면 영조는 83세까지 국사를 관장했고,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은 83세 고령에 사마시, 즉 진사시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톨스토이는 1899년 79세가 되던 해 장편소설 '부활'을 펴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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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트럼프 머그샷과 굿즈 정치학 지면기사
통상 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을 뜻하는 '굿즈'가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끈 사례로 '스타벅스 굿즈 대란'을 꼽을 수 있다.2020년 5월 스타벅스가 여름마다 진행하는 e-프리퀀시 이벤트 기간이었다. 음료 17잔을 구매하면 스타벅스 로고가 찍힌 굿즈를 사은품으로 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때 서울 여의도의 스타벅스 매장에 한 고객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커피 300잔을 한꺼번에 주문하고는 굿즈(서머 레디백)만 챙기고 사라졌다. 커피 300잔은 하수구로 흘러들어갔다. 최소 120만원어치였다. 이후 '비정상적인 팬덤현상'이라는 진단에서부터 '고객의 충성도를 높인 성공적인 마케팅'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의 사회·경제학적 분석이 쏟아졌다.굿즈에 특정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 지도자 '체 게바라'가 원조일 듯싶다. 의사, 쿠바 국립은행 총재, 혁명전사 등 이색 이력의 소유자인 그를 두고 철학자 사르트르는 '지성과 저항정신을 두루 갖춘 완전한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사진 속 그의 이미지다. 검은 베레모에 긴 머리칼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굳게 입술을 다문 그의 모습은 '혁명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이 남미 사내는 1990년대 말쯤부터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체 게바라 평전 읽기 열풍이 거세졌는데 대학가 술집 벽면에서도 베레모를 쓴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 커피잔 등 굿즈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도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그의 모습을 담은 티셔츠나 에코백을 구할 수 있다.또 하나의 굿즈가 지구촌 이슈로 떠올랐다. 이른바 '트럼프 굿즈'다. 전·현직 미국 대통령 최초로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머그샷을 넣은 티셔츠와 모자, 머그잔 등을 굿즈로 내놓아 판매한 것이다. 그 결과, 이틀만에 710만달러(약 94억2천200만원) 어치가 팔렸는데 2024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24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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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탕후루' 쓰레기 지면기사
설탕은 소금 못지 않게 음식물 보관에 유용하다.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은 고농도의 설탕 용액에서 번식하기 힘들다. 설탕물, 즉 시럽이 미생물 세포의 수분을 빼앗아 죽이기 때문이다.설탕의 이런 효능은 동서양에서 두루 활용됐다. 과일을 설탕에 재서 발효시킨 청(淸)은 우리의 전통 식재료로 지금은 매실, 유자뿐 아니라 오렌지, 레몬, 딸기 등 거의 모든 과일을 청으로 숙성시켜 각종 식음료 재료로 활용한다. 인삼 등 식물을 설탕에 졸여 만든 정과(正果)는 명절 선물용으로 인기다. 서양에서도 과일을 설탕에 졸여 잼으로 만들어 먹거나, 설탕시럽에 과일을 보관했다 요리에 활용하기도 한다.탕후루(糖葫蘆)는 달디 단 설탕과 새콤달콤한 과일을 가장 직관적으로 조합한 중국 전통 당과다. 원래는 시큼한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일렬로 꽂은 후 설탕 시럽을 발라 굳혀 만들었다. 거란족의 간식이 중국 전역에 퍼졌다는데, 굳어 반짝반짝 빛나는 시럽이 생명이라 겨울 간식으로 자리잡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딸기, 체리, 포도 등 한 입거리 단 과일을 가리지 않고 재료로 활용한다. 시럽이 부서지는 식감과 극강의 단맛 덕분에 국내에서도 길거리 간식으로 대유행 중이다.최근 인파가 붐비는 거리들이 탕후루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먹다 버린 탕후루 쓰레기가 곳곳에서 사람들을 괴롭혀서다. 탕후루 꼬치가 미화원의 손을 찌르고, 먹다 남기거나 버린 탕후루의 끈적끈적한 시럽이 길거리와 다른 가게의 미관을 해치고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결한 이미지가 생명인 카페들은 탕후루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반입을 저지하고, 탕후루 점포 주인들은 공공의 적이 될까봐 전전긍긍이란다.음식은 문화다. 아무리 맛있어도 문화권에 따라 금기로 여기고 기피하는 음식이 있으니 이를 존중하는 건 국제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맛과 취향을 초월해 먹은 자리를 깨끗이 하는 일이야말로 만국 공통의 음식문화이다.'맛'과 '맛집'은 대중문화의 키워드다. 각종 영상매체가 쏟아내는 맛집을 찾아 국내는 물론 해외를 순례하는 세상에서 맛은 양극화의 상징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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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음악가와 이데올로기 지면기사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바그너란 이름이 또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바그너그룹'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음악가 '바그너'가 왜 용병 조직의 이름이 됐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바그너를 특히 좋아하는 클래식애호가를 '바그네리안'이라고 부르는데, 바그너그룹 공동창업자인 드미트리 웃킨이 바로 바그네리안이다. 그의 호출부호마저 '바그너'일 정도였다. 그가 조직 이름을 짓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리 심오할 것 없는 작명 배경이다.문제는 웃킨이 히틀러를 숭배하는 '네오나치'라는 점이다. 히틀러 또한 바그너의 '광팬'으로, '발퀴레의 비행' 등 바그너 음악을 선전 선동의 도구로 쓰곤 했다. 바그너가 반 유대주의적 성향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자신의 음악이 이런 식으로 악용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연유로 유대인들에게 바그너 음악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음악이다. 바그너 음악이 금기시 된 이스라엘에서 그의 음악이 한 대목 연주된 적이 있는데 국회에서 지휘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일기도 했다.이처럼 음악가가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재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다.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는데 연루자 명단에 윤이상이 포함됐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최대 규모의 간첩조작사건이었다. '정치와 음악'의 저자 김은경씨는 "박정희는 동백림사건을 이용해 3선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1967년 6·8선거에 대한 학생과 야당의 규탄운동을 침묵시킴으로써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했다.최근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키로 하면서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불붙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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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김남국 의원의 불출마 선언 지면기사
40세 싱글 국회의원이 보유한 60억원 대 비공개 코인 자산. 5월 5일 터진 김남국 의원의 코인 보유 의혹이 일으킨 정치적 파장은 심각했다. 김 의원은 코인 거래와 코인 자산 비공개가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불법은 아닌 게 맞았다. '참성단'(5월 7일자 '코인 부자 김남국')은 코인시장에 발을 디딘 김 의원을 책망하면서도, 암호화폐 재산공개에 앞장설 것을 조언하는 선에서 비판 수위를 정리했다.하지만 이후 여론과 언론의 추적으로 밝혀진 김 의원의 코인 행각은 충격적이었다. 코인 전문가들이 김 의원의 코인 지갑을 찾아내고 거래내역을 탈탈 털었다. 하루 평균 10~50회 실시간 매매를 할 정도로 코인 거래에 열중한 사실도 드러났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잡 코인에 수억, 수십억원을 '몰빵'한 이상 거래도 밝혀냈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 당시 '이모(姨母)' 발언 때도 코인 거래에 열중했다. 국회의원 김남국은 사라지고 전업 코인 투자자 김남국만 남았다.김 의원이 22일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산 시민을 위해 임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위원회가 김 의원 제명안을 표결하기 직전이었다. 민주당 소위 위원들이 요청해 표결은 연기됐다. 국민의힘은 총선불출마 선언이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한 꼼수라 비판한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감싸는 친명계와 제명을 주장하는 반명계로 갈렸다.김 의원을 동정하는 국회의원들은 "불법은 없었다"고 감싼다. 암호화폐거래소는 관련법이 없다. 맞다. 무법이니 불법도 없다. 카지노는 입장객들의 도박자금만으로 운영된다. 한 사람이 터트린 잭팟은 수 천명이 잃은 잔돈이거나 목돈이다. 딴 돈과 잃은 돈이 0에 수렴하는 제로섬 게임장이다. 암호화폐거래소는 철저히 카지노 경제규칙을 따른다. 김 의원은 의정활동 대신 카지노에서 도박에 몰두한 셈이나 같다.그가 취득한 코인 수익은 600만 코인 국민의 피눈물이다. 정부도 600만 국민이 얽혀있으니 함부로 규제 못하고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의원 김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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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오펜하이머 지면기사
종전을 앞당긴 천재 물리학자인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의 서막을 연 죽음의 사신인가. 조국을 배신한 공산당원인가, 누명을 쓴 학자인가. 크리스토퍼 놀런(1970~)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계기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진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도 주목받고 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란 별칭을 지닌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1945년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했다. 그는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쳐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교수들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결국 그는 괴팅겐 대학으로 학적을 옮기고 이곳에서 양자물리학을 공부하여 192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그는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앞길이 막힌 동생을 보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1936년 캘리포니아 공산당 활동에 잠깐 참여했는데, 그의 아내 캐서린 퓨닝 해리슨은 공산당원으로 학생 운동에 가담한 실천가였다.그는 1942년 이른바 '맨해튼 계획'이라는 원자탄 개발을 총괄하여 마침내 원자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폭 투하 이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1945년 10월 연구소 소장에서 사임했으나 1946년 대통령 직속 기구인 '원자력 자문위원회'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1953년 11월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라고 고발하는 편지가 FBI에 접수됐고, 이를 계기로 청문회가 열렸다. 놀런의 영화는 크게 네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억 삼부작으로 분류되는 '인셉션', '메멘토', '인썸니아', 둘째는 우주를 다룬 '인터스텔라', 셋째는 물리학을 소재로 한 '테넷', '오펜하이머', 넷째는 '다크 나이트'를 포함한 배트맨 시리즈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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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로켓 제트스키 지면기사
자전거나 마차 등 사람이나 동물을 동력원으로 하는 탈것을 제외하고, 이동수단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은 연료다. 따라서 자동차, 비행기 할 것 없이 연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이동수단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관건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연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로 차량에 연료를 가득 채우지 말 것을 권한다. 연료를 가득 채우면 그만큼 차량이 무거워져 연료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승객의 몸무게를 측정키로 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대한항공은 다음 달 인천국제공항에서 승객을 대상으로 휴대용 수하물과 함께 몸무게를 측정한다. 항공기의 경우, 운항에 필요한 연료보다 1% 정도 더 많은 연료를 싣고 비행하는데 승객의 무게와 관련한 데이터가 정확할수록 추가로 싣는 연료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기술적으로 연료의 효율적 사용과 관련해 정점을 찍는 이동수단은 로켓이 아닐까 싶다. 로켓이 추력을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연료가 필요하다. 당연히 로켓 몸체 대부분을 연료와 연료탱크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 로켓의 구조가 1단, 2단, 3단 식으로 나뉘어진 것은 연료를 다 쓴 추진체를 분리해 로켓의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다.이러한 로켓의 원리를 제트스키에 적용해 중국과 한국 사이 서해바다를 횡단한 중국인이 있다. 인천해양경찰서가 최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30대 남성 A씨다. A씨는 지난 16일 중국 산둥지역에서 구명조끼와 망원경, 나침반, 헬멧 등을 챙긴 뒤 1천800㏄ 제트스키를 타고 인천을 향해 출발했다. 기름 70ℓ가 가득 채워진 그의 제트스키에는 마치 보조로켓처럼 25ℓ 기름통 5개가 장착돼 있었다. 그는 연료가 떨어지면 기름통의 연료로 보충하고 빈 통은 바다에 버리는 식으로 제트스키를 몰며 인천에 왔다.이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14시간 동안 300㎞가 넘는 바다를 건넜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제트스키가 인천항 크루즈터미널 인근 갯벌에 좌초한 것이다. A씨는 갯벌에 갇혀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스스로 한국 소방 당국에 구조를 요청했다. 제트스키로 밀입국을 시도한 사례는 이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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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팁(tip)과 인지상정 지면기사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시행됐다. 이전까진 해외여행을 하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권은 한 번의 출국만 가능한 단수여권이었다. 억눌렸던 해외여행 열기가 폭발했다. 냉전 종식과 91년 소련 붕괴 및 동구권 자유화, 92년 한·중수교는 해외여행 붐에 날개를 달았다.당시 현지 가이드들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에 '팁'을 놓아두라고 당부했다. 팁 문화를 몰랐던 한국 관광객들에겐 생소한 경험이었다. 물가가 싼 동남아는 1달러가 공인 팁이었고, 유럽 선진국이라도 5달러면 됐다. 공산품이 귀했던 러시아에선 스타킹이 달러 보다 대접받는다는 소문에 스타킹을 한 묶음 챙겨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분파 한국인들이 팁을 마구 과하게 뿌려대는 코리안 인플레 때문에 다른 나라 여행객들이 짜증냈다는 일화도 이때의 얘기다.팁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친절한 봉사에 대한 금전 보상 문화는 동서양 없는 인지상정에 가깝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에선 서비스업 노동자에게 팁을 주는 것이 관습법으로 정착했다. 미국은 아예 팁을 공식 수입으로 인정해, 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팁'을 글로벌 관행처럼 착각하지만, 정작 팁을 강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달부터 앱에 택시기사에게 팁을 줄 수 있는 기능을 시범 운영 중이다. 그런데 20일 발표된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 여론조사 결과 소비자 71.7%가 팁 도입에 반대했다. 서빙 직원의 친절에 팁을 부탁한 한 카페가 논란이 되자 실시된 온라인 여론조사(더 폴)에서도 61%가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뿌리 깊은 체면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의 팁 문화도 낯설지 않다. 카드가 흔치 않던 시절엔 택시기사에게 남은 잔돈을 안받았고, 각종 노동현장에서 정해진 품삯에 막걸리 값이라도 얹어줘야 인정에 맞았다. 고급음식점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이모'에게 수고비를 미리 찔러주는 장면도 흔해졌다.국민이 택시기사 팁에 놀란 이유는, 팁이 강제적으로 자리잡을까봐서다. 팁으로 포장된 물가인상도 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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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허준 사후 드라마 지면기사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삶은 사극의 단골 소재다. '집념'(1975년), '동의보감'(1991년), '허준'(1999년), '구암 허준'(2013년)은 모두 허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다. 그만큼 허준의 삶이 드라마틱했다는 방증이다. 흥미롭게도 허준의 극적인 삶이 그의 사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묘를 찾기까지의 과정 또한 한 편의 드라마다.허준의 묘를 찾아낸 주역은 고문서연구가인 이양재씨다. 그는 1981년 우연한 기회에 허준의 이름이 적힌 고문서(편지) 1점을 사게 된다.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문서의 작성자가 허준임을 확신한 그는 허준의 자손들이 해방 전에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살고 있었고, 남쪽에는 자손이 한 명도 없으며, 묘소의 위치도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 때부터 그는 드라마 제목처럼 허준의 묘를 찾는데 '집념'을 불태웠다. 양천 허씨 족보에서 허준 묘소가 '장단하포광암동'(長湍下浦廣岩洞)에 있다는 기록을 찾아낸 후 경기도 옛 장단 땅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나 장단 땅이 DMZ(민통선)에 속한지라 어디가 어디인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해외에서 허준의 후손을 수소문하면 나을까 싶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후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귀국 후 토지대장을 비롯 자그마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고 추적을 하던 그는 드디어 1991년 9월27일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묘비가 두 동강이 난 채 방치된 허준의 묘와 맞닥뜨렸다. 과거의 명의와 현재의 고문서연구가가 편지 한 장을 통해 운명적으로 만난 지 10년만이었다. 이씨는 회고글에서 "묘소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이 강력한 기(氣)가 통하는 충격을 받아 저절로 '여깁니다. 여기가 맞습니다'라고 소리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허준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128호로 지정됐고, 지난 3월 파주시는 '허준 선생 묘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했다. 또 한 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린 셈이다. 엄밀하게는 에필로그를 남겨두고 있다. 묘 발견 당시, 현장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