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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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초복 더위와 냉방 온도 지면기사
연중 가장 더운 날을 가리켜 삼복(三伏)이라 한다. 삼복은 여름철의 중요한 세시풍속인데, 복날은 하지와 입추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요, 중복은 네 번째 경일이며, 말복은 입추로부터 따져 첫 번째 경일이다. 그런데 보통 10일 간격이어야 하는 말복이 중복으로부터 20일 간격으로 벌어질 때 이를 월복(越伏)이라 한다.여기서 말하는 경일은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육십갑자 가운데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등 10개 천간의 하나인 경을 말하는 것이니 보통은 복날이 열흘 간격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10개의 천간(天干) 중에서 경일을 복날로 정했는가. 이것은 동아시아인들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음양오행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세계를 음과 양, 그리고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 기운으로 파악하는 것이 음양오행인데 이 다섯 가지의 기운은 서로 상생(相生) 혹은 상극(相剋)의 관계를 이룬다. 가령 목생화(木生火) 즉 나무의 기운은 불 기운을 살려주니 나무와 불은 상생관계다. 반면 화극금(火克金) 즉 불기운은 금 기운을 이기니 불과 금은 상극 관계에 있다. 경일을 복날로 정한 것은 불 기운이 가장 왕성한 여름철, 불과 상극 관계에 있는 양금(陽金)인 경이 불 기운에 눌리는 날이기에 복날로 정해진 것이다.삼복의 세시풍속으로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전승되어 오던 충재(蟲災)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해충을 방제할 목적으로 개를 잡아 4대문에 걸어두었다고 하며, 복날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했다. 요즘은 개고기 대신 삼계탕이나 오리탕·민어탕이 대세이며, 제호탕은 복날의 대표적인 음료로 꼽힌다. 1주일 뒤면 초복이다. 초복 전인데도 기록적 폭염으로 전국이 가마솥이다.수도권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등 벌써부터 폭염이 기승인데 여름철 보양식인 오리·닭 등의 가격이 많이 올라 걱정이다. 또 전력난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 냉방온도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공무원 등 공공기관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질뿐더러 시민들의 불편도 크다. 기온이 높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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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독립유공자 재검증 지면기사
죽산 조봉암(1899~1959)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다.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해 제헌 국회의원과 2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이승만 정권 당시 국가변란과 간첩죄로 사형선고를 받아, 1959년 처형됐다.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과 경제체제의 틀을 닦았다.2007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죽산의 처형을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구제,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대법원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으나, 친일 혐의로 독립유공자 서훈은 받지 못했다. 근거는 '인천 서경정 조봉암이 휼병금 150원을 냈다'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국방헌금 관련 기사. '조봉암'의 주소가 죽산 선생 주소나 연고지와 다른 등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보훈처는 인정하지 않았다.동농(東農) 김가진(1846~1922)은 조선말 문신으로, 초대 주일공사를 지내고 갑오개혁에 참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했고, 대한협회장으로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일진회와 대립했다.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하고 명석하며 한학에 정통했다. 서예로도 명성이 높은데, 독립문 현판도 그가 썼을 것이란 가설이다.3·1 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최익환 등과 제2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비밀조직 '대동단'을 결성해 총재로 추대됐다. 그해 10월 아들(김의한)과 상하이로 망명해 김좌진 장군 고문으로 활동했다. 아들과 며느리(정정화)는 독립 유공자 서훈을 받았으나 동농은 보류됐다. 남작 작위를 일제에 '공식적으로' 반납하지 않았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에서다.정부가 문서 조작이나 친북 논란이 있는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재검증해 '가짜 유공자'의 서훈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면 저평가된 인사나 단체의 공적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재평가하기로 했다. 공적 심사는 2심제에서 3심제로 개편해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독립유공자 선정을 두고 허위공적 논란에, 친일엔 엄격하고 친북엔 관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 부모는 공적 가로채기 의혹을 받았다. 손혜원 전 의원 부친은 6차례 탈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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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보호출산제 지면기사
인구 석학 데이비드 콜먼이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을 "저출산으로 사라지는 세계 최초의 국가"로 지목했을 때가 2006년이다.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 1.132명은 전년(1.085명)에 비해 미미하나마 증가했다. 그런데도 제1호 인구소멸국가로 지목됐으니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 즈음부터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려 막대한 재정을 편성했다. 지난 16년간 쏟아부은 돈이 280조원이란다. 그 결과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 마침내 세계 꼴찌를 달성했다.콜먼 교수가 보다 못했는지 지난 5월 한국을 직접 찾아 경고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 강연에서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2750년에 국가가 소멸되고, 일본은 3000년까지 사라진다"고 했다. 콜먼은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했는데 특히 비혼 출산의 포용을 강조했다. 출산의 30% 이상을 비혼 출산으로 채우지 않았다면 어떤 선진국도 (합계출산율) 1.6 이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출생통보제 관련법이 재적의원 반대 없이 통과됐다. 출생신고 안 된 영아 2명의 사체가 냉장고에서 발견된 사건이 발생하자, 계류 중이던 법을 허겁지겁 서둘러 통과시켰다. 감사원 조사로 드러난 출생 미신고 영아 2천여명 중 1%인 23명 아기의 안전을 현장 확인한 결과 드러난 충격적 사건이었다. 병원 출산 기록과 행정기관 출생신고를 연동시키는 당연한 법안이 지체된 이유를 몰라 화가 치민다.하지만 출생통보제가 복지사각지대의 유령아기를 다 구할 수 없다. 출생신고가 부담스러운 산모가 병원 출산을 기피할 수 있어서다. 보호출산제 입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산모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고 아기는 국가가 양육하는 제도다.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부모의 양육포기를 조장하고, 아동의 친부모 확인 권리를 박탈하는 인권유린이라는 반대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아기의 안전한 출생과 성장보다 우선할 수 없다. 섬세한 보완을 거쳐 서둘러 입법해야 한다. 모든 신생아는 사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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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장미란 문체부 차관 지면기사
장미란(40)은 여자 역도 최중량급(75㎏+)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을 모두 석권한 '그랜드슬래머(grand slammer)'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실패 논란을 빚은 중국 선수에 뒤져 은메달에 그쳤으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140㎏, 용상 186㎏, 합계 326㎏을 들어 올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2위 선수와 49㎏이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기록이다. 2005~2009년 세계선수권을 4차례 석권해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초등생 때 엄마 권유로 바벨을 잡았다. 아버지는 역도, 어머니는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입문해 3남매가 역도 선수생활을 했다. 여자아이가 바벨을 드는 게 창피해 일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버텼으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원주에서 나고 자란 장미란은 2007년 고양시청 역도부에 입단하면서 경기도와 인연을 맺었다. 든든한 재정 지원으로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하면서 이듬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세계 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2007년 광주 전국체전 도 대표로 출전해 3관왕에 오르면서 경인일보 체육 대상을 받았다. 2009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를 유치한 고양시는 한국 역도의 메카가 됐다.이름을 딴 애칭 '로즈란(장미(Rose)란)'이라 불리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정신력이 강하고 명석하며 말도 잘해, 여러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현역 시절엔 국위를 선양했고, 은퇴해서는 꾸준한 선행으로 존경받는다. 2012년 '장미란 재단'을 설립해 비인기 종목 선수와 스포츠 꿈나무를 후원하고 사회 배려 계층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힘센 누나'가 공부도 열심히 해 용인대 체육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장미란이 29일 단행된 인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깜짝 발탁됐다. 정책홍보와 체육·관광을 담당하는 자리다. 엘리트 스포츠인 출신으로는 2013년 '사격의 전설' 박종길과 2019년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수영)에 이어 3번째다. 이날 하태경 의원은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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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민통선 초병과 오토바이족 지면기사
고성 통일전망대는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북단 관광지다. 관광객들은 군의 허가를 받고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통과해야 갈 수 있다. 까다로운 출입절차로 새삼 분단국의 현실을 깨닫지만, 일단 전망대에 오르면 선계(仙界)의 비경에 넋을 잃는다. 외금강과 명사십리의 전경이 푸른바다와 펼쳐진 압도적 풍경은, 북한 금강산 관광 때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지난 25일 고성 제진 검문소 초병들이 통일전망대를 방문하려던 오토바이족 3명을 제지했다. 이 과정에서 초병들은 공포탄까지 발사했다. 상황은 오토바이족들의 경찰 신고로 알려진 모양이다. 초병들의 공포탄 발사를 과잉대응이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방송 인터뷰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초병들을 두둔하는 여론이 커지면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형국이다.오토바이족들이 초병과 벌인 시비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이들은 정상적인 통일전망대 출입 절차를 밟지 않았다. 검문소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 무조건 통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오토바이 진입금지라는 경고문도 무시했다. 현장 동영상에는 초병들에게 욕설하며 저항한 정황도 나온다. 공포탄을 쏘자 총기에 손을 댄 장면은 어처구니 없다. 경계근무 중인 군인에게 저잣거리의 생떼와 시비를 벌인 것이다.군형법은 초병에 대한 폭행과 협박, 초소 침범을 엄하게 처벌한다. 경계에 실패한 군인, 군대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시라면 훨씬 가혹한 장면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군형법이 아니더라도 군사작전지역 검문소 초병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 이하의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방송 인터뷰에 등장해 억울하다 호소하는 적반하장에 여론이 등을 돌렸다.독재정권 시절 각인된 제복 트라우마 때문인가, 민주화 이후 수십년 동안 제복의 권위는 추락일로였다. 경찰은 주취자와 시위대에 시달리고,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모욕당한다. 이젠 하다못해 민통선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경계근무 중인 정복 초병에게 욕설하고 시비를 건 것도 모자라 피해자인양 여론전을 펴는 무개념 민간인까지 등장했다. 초병들을 지지하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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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지면기사
인류의 문명사는 문자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진정한 역사 시대가 열렸고, 문자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고 또 그것들을 비약적으로 발전, 확장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는 3천 종 정도의 언어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중에서 문자를 가진 언어는 10% 남짓이다.문자는 문명의 핵심이며 꽃이다. 문명의 발상지마다 한결같이 문자가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갑골문자, 인도의 그림문자 등이다. 문자는 인간의 소통 능력은 물론 지식과 정보의 교류와 확장과 발전을 주도하거나 촉진했다. 또 문자는 문화와 예술의 바탕이기도 했다. 문학은 문자에 기반한 예술의 대표주자이며,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자체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최근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AI도 컴퓨터 코드, 코딩이란 새로운 문자이자 기계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널리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나 픽토그램 그리고 악보 같은 기호체계도 문자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한자·아랍어 등과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영어의 알파벳은 페니키아문자의 후손이며, 페니키아문자는 북부 셈문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서부 셈문자에 파생된 것이다. 히브리와 아랍문자는 아람문자에서 갈려 나온 것인데, 아람문자도 셈문자에서 나왔다 한다.동아시아 문명권의 중심에 있는 한자는 창힐이 만들었다 하며, '여씨춘추'·'한비자'·'회남자' 등에 등장한다. 중국 산둥성에서는 창힐이 한자를 발명했다는 비석도 있으나 이는 전설로 봐야 할 것 같고, 한자는 갑골문자와 상형문자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본래 문자는 소수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군주나 그 주변의 사제·귀족·서기 등 소규모 지배집단이 장악했던 권력의 도구였다. 문자가 개방되고 나서야 지식과 정보의 대중화는 물론 인권의 발전도 가능해졌다.그런 문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29일 인천 송도에서 문을 연다. 개관을 축하하며 '국립'과 '세계'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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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그리드플레이션' 지면기사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 관련 제품 가격에서 원유가와 수송·운영비 등 부가 비용을 뺀 금액을 말한다.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지표로, 액수가 클수록 좋다. 업계에선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한때 마이너스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정유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구세주가 됐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석유제품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코로나 종식으로 수요가 늘 것이란 예상에 정제마진이 5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8.67달러로, 전년 동기(2.8달러)보다 6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영국과 미국의 다국적 정유사들이 역대 최고치 실적을 달성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국내 정유업계도 유례없는 흑자 규모로, 2020년 5조 원대 손실이 급반전됐다. 정유업계가 호황을 누리는 사이 소비자들 사이에 비판여론이 비등했다. 전쟁과 팬데믹이란 불안정 심리를 노려 기업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정유업체들에 '황제 세'를 거둬 부당한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란 낯선 용어가 주목받고 있다. 탐욕을 뜻하는 영어 단어(gree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신조어라고 한다. 기업이 물가 상승을 명분으로 폭리를 취하기 위해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을 과하게 인상하는 것을 뜻한다.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을 소비자에 떠넘기려 가격을 올린다는 비판적 시각이 담겼다. 국제정세에 민감한 정유 등 에너지, 식량 산업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국내에선 라면 업계에 불똥이 튄 양상이다. 정부는 1년 새 13%나 오른 라면값이 과했다고 본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국제 밀 가격이 많이 내렸으니 라면값도 인하하면 좋겠다"고 압박했다. 값을 너무 올렸다는 비판에,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해 시장을 비튼다는 반론이 맞선다.유럽은 밥상물가와 전쟁 중이다. 유통업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이란 인식이 깔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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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사라지는 6·25 참전용사 지면기사
어제가 6·25 전쟁 73주년이었다. 민주진영과 공산진영 국가들이 벌인 최초의 국제전이, 독립한 지 5년밖에 안된 한반도에서 발생했다. 하마터면 대한민국이 정부수립 2년만에 지도에서 사라질 뻔 했다. 전세 역전의 발판이 됐던 백선엽의 다부동 전투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6·25 전사(戰史)의 백미로 꼽히는 이유다.전쟁의 서사는 이처럼 위대한 작전과 전투와 영웅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이름 모를 장병들과 민중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서사이다. 수많은 전선의 참호들이 장병들의 무덤이 됐다. 군번 없는 학도병, 탄약을 보급했던 지게부대 민간인들의 희생도 헤아릴 수 없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선에서 유골로 귀환하는 참전용사들로, 6·25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국가가 국가답고, 국민이 국민다우려면 참전용사를 극진하게 예우해야 하다. 6·25 참전용사가 지켜낸 대한민국에서 호사를 누리는 정부와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다. 현실은 다르다.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도 무례해졌다. 참전 유공자에게 지급되는 명예수당이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르다. 사는 곳에 따라 명예의 금전적 가치를 차별하다니 말이 안된다.그래도 올해 참전용사들에게 큰 선물이 배달됐다. 국가보훈부가 참전용사들을 위해 제작한 '영웅의 제복'이다. 그동안 참전용사들은 6·25참전용사회에서 만든 조끼를 사비로 구입해 착용했다. 명예의 복식으로는 터무니 없는 디자인이었다. 영웅의 제복을 입은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근사하다. 제복 하나로 보훈정책이 날개를 달았다.국가보훈부에 등록된 6·25 참전유공자는 4만7천996명이다. 대부분 90대이다. 이들의 한결 같은 소원이 있다. 참전 유공자회 회원 자격을 후손까지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5년 내에서 참전유공자들이 자연 소멸하면서, 나라를 지켜낸 참전의 기억도 사라질까 걱정한다.관련 법이 국회에서 계류된 채 통과될 기미가 없단다. 참전유공자에 대한 보훈 혜택은 유공자 본인에게만 제공하고, 후손들은 참전유공자의 명예를 계속 기릴 수 있도록 한다면 큰 무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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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스타 강사' 지면기사
과외를 금지한 전두환 정권은 대안으로 TV 강의에 공을 들였다. EBS 수능방송의 모태다. 이때 국어 과목 서한샘(1944~2019) 강사가 친근한 화법으로 깜짝 스타가 됐다. 수강생들의 몰입도를 올리려 반복하는 '밑줄 쫙, 돼지 꼬리 땡~'은 단박에 유행어가 됐다. 개그맨 최형만이 그를 흉내 낸 '랄랄라 선생님'이란 개그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강의기법을 이어받은 유명강사가 여럿이다.1990년대 후반 이름을 알린 '손 사탐' 손주은(62)은 사회탐구영역의 독보적 존재로 추앙받는다. 서울대를 나와 10여 년 고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학원계에 입문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그룹과외를 하다 보습학원을 열면서 강남의 '1타 강사'로 떠올랐다.열정적인 성격과 빼어난 말솜씨, 수능 맞춤형 강좌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열광했다. 통합 수능 사회탐구 영역 강좌를 개설한 강남 대일학원 일대 도로는 심야시간대에도 차량이 정체됐을 정도란 일화가 전한다. 학원이 소재한 대치동이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가 된 데는 '손 사탐'의 역할이 컸다는 후일담도 있다. 어학 사전에 '손 사탐'을 치면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관련 내용이 뜬다.연봉 수백억대라는 강남 '1타 강사'들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킬러 문항'을 강하게 비판하자 이를 반박하면서다. 수학 1타로 알려진 강사는 SNS에 '애들만 불쌍하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혼란인데 정확한 가이드를 주시길'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전했다. 국어 강사는 '수능 비문학을 무력화 하면(중략)… 한국 엘리트들은 국가 경쟁력을 잃고 뒤처지게 된다"고 주장했다.수능 개선에 대한 찬반과 별도로 여론은 스타 강사들에 우호적이지 않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키웠고, 학원가와 강사들이 이에 편승해 거액의 돈을 챙겼다는 시각에서다. 1년 소득세가 100억원을 넘는다는 일부 강사의 '플렉스(flex) 행태'가 소환됐다.선망의 대상인 스타 강사는 사교육 카르텔의 수혜자들이다. 킬러 문항에 청춘이 좌절하고, 사교육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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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청소년 국회 방청 제한 지면기사
예전 국회 출입 시절을 떠올리면, 국회 대정부 질문 때면 늘 한산했던 본회의장 방청석이 만원사례였다. 질문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구 유권자들을 초청했던 것이다. 의원들은 장관을 몰아붙이며 의정활동을 과시하고, 유권자들은 웅장한 국회 본회의장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리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청문화였달까.19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 20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본회의장 방청석엔 견학차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있었단다. 그 앞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상대당 대표의 연설을 막말과 야유로 방해하는 추태를 부렸다.이 대표를 향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장동 수사해서 몇명이나 죽였느냐"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분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다음날 작정하고 김 대표의 연설을 시종일관 방해했다. 야당의원들의 "일본 대변인이냐", "오염수나 마셔라", "땅 땅 땅" 등 야유와 이에 반발하는 여당의원들의 고성에 김 대표의 연설이 묻혔다.국회법 153조는 흉기를 지닌 사람, 술기운이 있는 사람,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 등은 국회 방청을 허가하지 않도록 했다. 또 국회의장은 154조에 따라 회의장 내 질서를 방해하는 방청인은 물론, 방청석이 소란할 때는 방청인 전원을 퇴장시킬 수 있다. 이틀 동안 본회의장을 방청한 초등학생들에겐 여야 국회의원들이 술 취했거나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을 테다. 회의장 질서는 국회의원들이 무너뜨렸다. 본회의장에서 퇴장당할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었다.초등학생들이 경청과 존중이 없는 저질 국회 풍경을 민주주의 정치로 견학하고 수학했을까봐 겁이 난다.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은 청소년 유해매체물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금지한다. 청소년 이용불가, 이른바 '청불' 규제다.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 장면은 폭력적, 반사회적, 무자비한 표현방식, 차별과 비하, 증오심 유발과 선동, 저속한 언어 등 청불 기준에 모자람이 없다. 국회 본회의장을 이런 식으로 더럽힐 거면, 청소년의 국회 방청을 제한해야 한다. 보고 배우고 모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