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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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복잡한 아파트 이름들 지면기사
우리에게 언어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이 오고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또 말과 글이 있다 해도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언어가 부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말과 언어는 그렇게 친절한 도구가 아니다. 말과 언어로 내 생각을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철학자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언어는 사실을 표현하며 세계를 그림 그리듯 보여주는 것인데, 만일 언어로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그릴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고 했다.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황과 규칙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론과 사용이론의 핵심은 바로 언어의 쓰임에 있다. 그는 세계의 구조와 언어의 구조가 서로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언어가 잘못 사용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았다. 언어는 게임처럼 사용 규칙을 잘 지켜야 하며, 그것을 잘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언어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이득', '넘사벽', '듣보잡', '갑툭튀' 등 성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의 신조어나 줄임말도 문제지만, 성인들의 언어도 이에 못지않다. 청소년들이야 재미 삼아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만들어 소통하고 또 기성의 언어 질서에 대한 치기 어린 도전의 의미라도 있지만, 어른들의 언어는 너무 속물적이고 영악하다. 가령 최근의 아파트 이름들과 아파트 이름 개명 사태가 그렇다.백설마을, 청솔마을 등 멀쩡하고 고운 한글 이름을 에듀 파크·센트럴 파크·리버 파크·타운·빌·스카이 뷰 등 너무 복잡하게 바꿔서 '길도우미'가 아니면 찾아가기 힘들다는 택시 기사님들의 하소연도 들려온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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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코인 부자 김남국 지면기사
암호(暗號)화폐는 디지털 가상자산이다. 일본의 법정 용어는 '가상(가想)통화'이고, 중국은 '허의(虛 )화폐'라 부르고, 우리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2019년부터 '가상(假想)자산'으로 법정용어를 통일하는 중이다. 가짜, 허구를 뜻하는 명칭에 담긴 부정적 의미는 직관적이다. 한·일이 거래는 인정하면서 화폐의 기능을 부정하고, 중국은 아예 거래마저 불법으로 규정한 배경이다.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이 원조인 암호화폐의 작동 원리는 난해하다. 카지노에 비유하자면 현금 대신 사용하는 칩 자체가 도박 수단이 된 셈이다. 카지노 밖에선 의미 없는 플라스틱 쪼가리에 현금을 쏟아붓고, 알 수 없는 등락구조에 따라 어떤 이는 대박을 치고 다른 이는 쪽박을 차니 요령부득이다.암호화폐 통화 구조가 캄캄한 가상공간이다 보니 악당들에겐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지난해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북한이 해킹으로 10억 달러의 암호화폐를 탈취했다고 밝혔다. 테러단체와 마약밀매 등 각종 범죄 조직들의 단골 거래수단도 암호화폐다. 검은 돈의 은신처와 세탁기가 됐다.정상적인 화폐가 아니다 보니 암호화폐 시장은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비트코인 광풍을 타고 떼부자도 속출했지만, 테라·루나 사태는 코인 거지를 양산했다. 정보의 비대칭이 지배하는 코인시장에서 서민들은 소수 정보 독점 세력들의 현금지급기로 전락한다. 철폐하기엔 비대해진 암호화폐 시장의 거래질서 투명화와 연착륙 입법은 정부와 국회의 현안이다.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무법천지 암호화폐 시장에서 단단히 한 몫 챙긴 모양이다. 60억원 규모의 위믹스 코인을 작년 초에 처분했다고 한다. 재산공개 대상이 아닌 암호화폐 보유 규모가 드러나자 민심이 깜짝 놀랐다. 김 의원은 코인 거래와 코인 누락 재산공개가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민주당 논객 유시민이 "허황된 신기루"라 했던 암호화폐 시장이다.서민 피해를 방지할 입법에 힘써야 할 국회의원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코인 투자에 전념했다니 허무하다. 김 의원의 대박은 정보 약자인 수많은 서민들이 쪽박을 찬 결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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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스타라이트' 스토리 지면기사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때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긴자의 노포(老鋪)로 안내했다. 스키야기 식당 '요시자와'에서 부부 만찬을 하고 정상들만 2차로 '렌카테이'에서 독대했다. 두 식당 모두 유서 깊은 노포였다. 오래된 가게, 노포엔 시간이 축적한 정서가 있다. 노포 만찬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두 정상의 정서적 연대와 공유로 해석된 배경이다.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44번가의 노포 '스타라이트'가 감동적인 뉴스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샌드위치 등 간편식을 파는 식당인데 1984년 재미교포 김정민씨가 개업했다. 김씨가 폐업하고 은퇴한다는 소식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깜짝 폐업식을 열었다. 노래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모금한 퇴직금을 김씨에게 전달했다.'스타'가 되기 전 배고픈 현실은 미국 문화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가난한 배우들과 지망생들이 '스타라이트'의 샌드위치를 씹으며 '스타'를 꿈꾼 세월이 어언 40년이다. 성공한 사람들 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을 테지만, 스타라이트는 브로드웨이의 사연이 고이면서 역사가 됐다. 그 역사를 함께한 브로드웨이 사람들이 '스타라이트'의 마지막 또한 역사로 만들었다. 뮤지컬로 만들어도 손색 없는 스토리다.지난해 6월 냉면 노포 '을지면옥'이 문을 닫자 37년 단골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맛이 아니라 추억과의 이별이 아쉬워 눈물 흘리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을지면옥처럼 전국 대도시의 미로 마다 촘촘이 박혀있던 노포들이 개발의 삽날에 속절 없이 사라지면서, 세대를 이어오던 정서적 연대와 추억도 흩어진다.그 자리에 SNS 미디어가 지배하는 푸드 포르노가 판을 친다. 인플루언서들이 쏟아내는 맛집을 순례하는 행렬로 주말마다 전국의 노포들은 뜨내기 손님들 차지가 됐다. 폭식과 괴식을 일삼는 먹방 유튜버들이 방문한 식당은 성지가 된다. 배달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식당 주인과 손님은 '별점'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백종원의 예산시장'은 몰려든 인파로 난장판이 됐다. 노포의 역사는 단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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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샤워실의 바보들 지면기사
앨프리드 조셉 히치콕은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로 무성, 유성영화 시대를 거치면서 53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히치콕의 영화 중에서도 '현기증'·'이창'·'싸이코' 등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싸이코'(1960)는 시점도 독특하고 결말의 반전이 압권이다. 예컨대 여주인공 마리온이 샤워 도중에 살해되는 '샤워실 살인' 시퀀스는 영화팬들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잔인한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샤워실의 배수구로 핏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려가는 신은 히치콕 영화의 창의성과 묘사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히치콕의 샤워실 살인 장면이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시퀀스라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샤워실의 바보 이론'은 정치권력의 이해에 따라 경제가 타격을 받는 상황에 관한 경제학이론으로 유명하다. 샤워실에 들어간 성질 급한 바보가 샤워 꼭지를 틀었는데 찬물이 나오자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온수 방향으로 끝까지 돌린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지니 놀란 바보가 다시 급하게 꼭지를 냉수 쪽으로 튼다. 이번에는 물이 너무 차가워진다. 바보는 다시 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며 샤워 꼭지를 돌리는 일을 반복한다.현실에서 경험했을 법한 일이고, 그에 대한 비유지만 요즘 정치권력자들의 경제정책이 마치 샤워실의 바보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재임 기간 중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왕창 푼다. 돈을 너무 푸니 주식에 돈이 몰리고 금융시장에 교란이 일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온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테이퍼링(tapering)을 시도한다. 그러자 경기가 침체되고 유동성의 위기에 뱅크런이 일어나고 은행이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다시 돈을 풀어 사태 수습에 나선다. 돈을 풀었다 죄는 스톱 앤 고(stop and go)를 반복하는 사이에 개미들과 영끌족들과 서민들이 큰 피해를 본다.실리콘밸리은행에 이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마저 파산했다. 상업 부동산 관련 나쁜 대출과 저리 장기 모기지 등이 많아 불안 요인이 여전하고 정치권력자들의 '스톱 앤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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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백악관 기자단' 만찬 지면기사
"8년 전 저는 젊었죠. 이상을 꿈꿨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허옇고 사망선고만 기다리고 있죠."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조크로 좌중을 흔들었다. "내년 이 자리엔 그녀(She)가 서 있을지도…"라며 민주당 힐러리 대선 후보를 들어올렸다 "방금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고모를 보는 듯하다"고 패대기쳤다.연설을 마친다더니 "아차 했다"며 죄송하다고 정색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트럼프가 싸구려 저녁이라 오지 않았다면서도 "(트럼프가) 외교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고 했다. 당시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를 치켜세우는 듯하나 당연히 아니다. "(트럼프가 만난 리더들을 꼽자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스웨덴, 미스 아제르바이잔…."123년 역사의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현직 대통령은 만신창이에 바보가 된다. 자기 폄하는 양념이고, 권위는 발아래로 내려놓아야 한다. 정적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에 측근들마저 깎아내린다. 수모를 당한 당사자들도 이날만은 대통령의 허언과 무례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표현의 자유가 이보다 더할 수 없다."폭스뉴스 기자분들 많이 보이네요. 지금 공짜 식사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겠죠. 폭스뉴스는 이제 도미니언 소유죠?" 지난달 30일 기자단 만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폭스뉴스를 안주 삼았다. 지난 대선결과가 조작됐다는 가짜 뉴스로 투·개표기 제작사 도미니언에 1조원을 배상하게 된 처지를 비꼰 것이다.만찬은 유쾌하나 그렇다고 아무 말 대잔치가 아니다. 7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억류됐다 풀려난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를 거론하며 "미국 언론의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우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바이든도 이날 심각한 어조로 저널리즘의 역할을 강조했다. 간첩 혐의로 러시아에 구금 중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 시리아에 11년째 구금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의 석방을 촉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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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한미 정상회담과 민주당 지면기사
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 미국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유쾌한 에피소드가 만발했던 정상외교였다. 미국 국민가수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국빈 만찬장을 뒤집어놨다. 유려한 영어 연설에 미 상하원 의원들의 기립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정상외교에서 노래한 정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 의회 연설을 위해 10번 이상 연설문을 수정하고 악센트와 발음 연습에 집중했단다. 미국을 감동시킬 작정을 했나 싶다. 목적이 있었다. 워싱턴 선언이다. 북한 핵을 미국 핵으로 응징한다는 최초의 확장억제 합의 문서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21세기 들어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십이 쇠퇴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발하면서 신냉전 시대가 고착되는 형세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서방, 반서방 동맹이 대립했던 구냉전 시대의 이념 대립 구조와 양상이 다르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는 경제 혈관으로 한 몸이 됐다. 신냉전 시대의 약소국들은 안보와 경제 중 우선순위를 가려야 할 국제질서에 갇혔다.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한 '멜로스의 대화'는 냉전의 틈에서 약소국의 중립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의 항복 요구에 약소 중립국 멜로스는 외교적 수사로 대응하지만, 외교는 무력(武力) 앞에서 무력(無力)하다. 멜로스는 항복을 거부해 아테네에 도륙당했고, 믿었던 스파르타는 외면했다.핵보유국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동맹의 한 축이다. 역대 정권이 멜로스식 언변으로 달래고 어르는 사이 핵무장국이 됐다. 전략핵으로 미국을, 전술핵으로 대한민국을 겁박한다. 북한의 핵 미사일 한 발은, 대한민국 국력 전부를 능가한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의 한미 핵 공유로 강조하는 배경이다.윤 대통령 귀국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성명이 거칠다. "독자 핵개발이나 한반도 핵무기 재배치가 불발된 워싱턴 선언"이라며 "대국민 사기 외교"란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민국 핵무장 방안이 포함됐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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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수원 왕갈비'의 변심 지면기사
수원 왕갈비는 뼈대가 크고 살이 실했다. 곡반정동 우시장에서 가져오는 최상급 한우 갈비에 맛깔난 양념을 입혔다. 자타공인 원조는 1945년 해방둥이 '화춘옥'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팔달문 인근 영동시장에 터를 잡았는데, 점심·저녁엔 줄을 섰다고 한다. 해장국, 갈비탕, 설렁탕을 함께 팔았다.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경기도청 순시나 지방 출장길에 들르면서 전국구가 됐다. 창업주 손자가 3대째 가업을 잇는 중이다.1980년대 우시장이 폐장하면서 점차 수입산으로 대체됐다. 대신 갈빗대가 더 커지고, 양이 늘면서 이름대로 왕갈비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우만동 '본수원갈비' 본점은 갈비 1인분이 450g이나 된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도 포만감을 느낄만한 양이다. 200~250g짜리만 받아본 외지인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한다. '가보정', '신라갈비', '삼부자갈비' 등 관내 대형업소들도 대동소이하다. 감칠맛 양념이 배어든 독창적 비법에, 배를 두드리게 하는 후한 인심이 더해져 외국인 손님들도 엄지 척이다.수원 왕갈비 인심이 사나워졌다. 가보정의 한우 생갈비(1인분 250g)는 9만7천원이다. 신라갈비는 한우 생갈비(250g)를 8만7천원, 양념갈비(270g)는 6만7천원에 판다. 재료·인건비가 워낙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1인당 10만원은 가져야 하는 부담에 서민들이 자주 찾기는 어렵게 됐다.일부 업소는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식사시간까지 제한하고 나섰다. 테이블당 이용시간을 1시간 40분에서 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적용시간대 역시 평일 저녁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이어지는 추세다. 해당 업소는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독립된 방에 한해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한 팀이라도 더 받으려고 손님들에게 '카운트다운'을 강요한다"는 볼멘소리가 커진다."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노포(老鋪)들의 위대한 장사 내공은 기세(氣勢), 일품(一品), 지속(持續)으로 요약된다". 박찬일 셰프의 '노포(老鋪)의 장사법'이란 책에서다. 여기에 덤을 내어주는 인심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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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돈 봉투'와 '말 폭탄' 지면기사
200년 전만 해도 영국 선거판에선 온갖 형태의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압권은 표 매매다. 유권자들이 '미스터 모스트(Mr. Most)', 즉 값을 최고로 쳐주는 출마자에게 표를 통째로 넘겼다고 한다. 부패 선거로 악명이 높았던 선거구의 목사가 "표를 파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경고했단다. 설교 직후 푯값이 급등했다. 푯값에 지옥수당이 붙은 것이다.영국 의회 'Parliament'의 어원은 '연설과 교섭'의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초창기 영국 의회는 살벌했다. 칼을 차고 출석한 의원들 사이에서 정쟁이 격해지면 칼을 뽑아들었다. 유혈 사태를 방지하려 본회의장 바닥에 칼이 맞닿지 않는 간격으로 두 줄을 그어 놓았다. 의사당 폭력 금지를 상징하는 '소드 라인(Sword Lines)'의 유래다. 영국 의회 발전사는 돈과 폭력을 금하고 말을 푸는 과정이었다.해방과 함께 이식된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도 압축적일 뿐 과정은 영국 의회와 다르지 않다. 정부 수립 이후 선거는 온갖 형태의 부정선거가 난무했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로 평생 이룬 업적을 반납했다. 60~70년대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판, 70~ 80년대 체육관 선거, 80년대 대규모 장외집회 선거의 동력은 돈이었다. 2002년 대선 때 발생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과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자금 10분의 1 발언'을 계기로 2004년 '오세훈 법'이 통과되면서 한국 선거판은 금권과 작별할 수 있었다.돈은 묶고 말을 푼 지 20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터졌다. 선거 흑역사의 원점으로 회귀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재명 대표가 사과하고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다. 당 간판을 내릴 수도 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성화에 송영길 전 대표가 서둘러 귀국했다.갑자기 기류가 변했다. 송 전 대표를 엄호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더니, 김의겸 의원이 언론 대응을 전담한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섰다. 이 대표는 "박순자 의원은요?"라며 물을 탄다. 급기야 '넷플릭스에 투자한다(양이원영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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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글쓰기와 '책의 날' 지면기사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다. 글쓰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 유명작가들의 강의를 찾아 듣고 글쓰기 관련 책도 읽어보지만, 별무신통인지라 글 쓰는 능력은 그저 타고나는 것이려니 하고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 능력은 타고나는 측면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계발, 발전할 수 있다.글쓰기에 왕도나 비법 같은 것은 없으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송 시대 문인이자 서예가로 널리 알려진 구양수(1007~1072)가 제시한 삼다법(三多法)이 그렇다. 이를 위문삼다(爲文三多)라고 하는데 요즘 식으로 풀어 말하면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이다. 즉 많이 읽고 써보고 사색하라는 것이다. 다상량은 많이 생각하라는 뜻도 되지만, 많이 고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문자인야(文者人也)란 말은 어의 그대로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생김새와 성격이 다르듯 같은 주제를 주고 글을 써보라고 하면 백이면 백 글이 모두 다르다. 글에서는 그 사람의 개성과 실력과 생각이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 글은 그 사람을 가리키는 영혼의 지문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AI가 나와서 어떤 주제의 글이든 척척 써내는 첨단기술시대라 하지만 내가 최소한의 역량도 갖추지 못한 채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제 아무리 AI시대가 온다 해도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언어능력과 글쓰기와 소통 능력은 필수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데는 책과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글쓰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글쓰기 관련 서적을 읽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꾸준히 읽고 쓰다 보면 문리가 나게 돼 있다.지난 23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책의 날'이었다. '책의 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요즘 대형서점과 출판사들이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지 않으니 책값은 더 올라가고, 책값이 오르니 책을 더 읽지 않게 된다. 여기에 영상매체와 유튜브에 AI까지 나와 사람들이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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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텃새' 가마우지 지면기사
가마우지는 피라미 붕어 등 민물 어종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일본엔 천 년 전통의 '가마우지 낚시'가 전해진다. 가마우지의 목 부분을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다. 대신 고기잡이 전후에 먹이를 줘 집착을 덜어준다. 예닐곱 마리를 잡으면 한 마리를 보상으로 주기도 한다. 10여 년 전, 북한 어부가 신의주 근처 압록강에서 나룻배에 가마우지를 싣고 가는 모습이 촬영됐다.인간은 배고프지 않아도 사냥하는 습성을 생계로 활용했다. 가축처럼 기르며 하루 서너 시간 물 작업을 시키는데, 어획량이 상당하다. 30㎝ 넘는 잉어도 척척 잡아올린다. 집에 돌아와 묶어두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는다. 잡아올린 물고기를 내어주는 대신 주인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먹으며 산다.'중국 계림에 가마우지와 사는 어부가 있었다. 새벽녘이면 배를 저어 강으로 향했다. 가마우지는 능숙한 솜씨로 물고기를 쫓아다녔다. 가끔은 목을 풀어 잡은 물고기를 먹게 했다. 배를 채운 가마우지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했다. 세월이 흘러 쇠약해진 가마우지는 더는 물질을 하지 못했다. 화창한 날 해질 무렵, 어부는 정든 친구를 품에 안고 언덕에 올랐다.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루에 돗자리를 폈다. 조그만 상에 잘 빚은 술병을 올려놓고는 가마우지와 마주 앉았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어부의 눈이 흔들렸다. 이윽고 정성스레 술을 따라 가마우지 입에 넣어주었다. 늙은 새는 술에 취해 눈물을 흘리면서 긴 목을 땅에 뉘었다. 평생을 의지한 동반자를 쓰다듬으며 슬피 우는 어부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 있었다'. 수백 년 이어온 어부와 가마우지 이야기다.현실 속 야생 가마우지는 인간과 공존하기 힘들다. 매일 500g 넘게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탐으로 민물고기 씨를 말린다. 번식 철이면 중앙아시아 어민들이 둥지를 찾아내 몽둥이로 새끼들을 때려죽이는 까닭이다. 하루 20~30g 쏟아내는 배설물도 골치다. 수목과 토지를 하얗게 변색시키는 '백화현상'을 일으켜 생태계를 교란한다.겨울에만 한반도에 머물다 슬그머니 눌러앉았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생태 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