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정권 맞춤형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지면기사
독립 초기 미국 정치는 '연방 대 반연방'으로 갈라졌었다. 연방당은 말 그대로 강력한 연방정부를 강조했고, 민주공화당은 연방정부의 독재를 우려해 주(州)정부 중심의 공화제를 앞세웠다. 연방당 출신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1801년 3월 퇴임 하루 전, 당이 장악한 상·하원을 통해 사법부법을 제정한다. 법관의 수를 2배로 늘려 연방당 지지자로 채우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취임한 민주공화당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국무장관 제임스 매디슨에게 법관 임명장 송달 보류를 지시했다.연방대법원 송사로 번졌다. 존 마셜 대법원장은 '연방대법원이 매디슨에게 판사 임명장 발부를 강제하는 것'을 반헌법적 월권으로 판결했다. 미 연방대법원이 법률의 위헌 여부를 최초로 판결한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이다. 존 마셜은 연방주의자였다. 정파를 떠나 역사적 판결을 남겼다.미 대법원은 2021년 6월 '오바마 케어' 위헌 소송 판결에서 7대2로 기각했다. 3명의 진보성향 대법관들과,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4명의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의견을 같이한 결과였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의 연방대법관 임명 기준도 철저히 정파적이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정파 초월 전통 또한 존 마셜 시절 만큼이나 굳세다.지난 20일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 심판을 둘러싼 여론의 여진이 거세다. 민형배의 꼼수 탈당 등 민주당의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검수완박 법률은 유효라 했다. 검수완박법 자체의 위헌성은 아예 심판하지 않았다. 국회 다수당의 위법·편법 입법의 자유를 허용했다. 진보 대 보수·중도 재판관 비율 5:4에서 열외는 없었다.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친형 강제입원을 부인한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최종심에서 1, 2심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활발한 선거 토론을 위해 거짓말을 일일이 법으로 따지면 안 된다'는 취지로, 최고 법원이 거짓말 선거 토론을 묵인했다. 7:5 판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대법관 권순일은 사법거래와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을 받고 있다.대법원 판결로 이재명의 대권 도전이 가능했고, 헌재가 심
-
[참성단] 국회의원 막말 지면기사
"국회를 뭘로 보나, 국회를 이렇게 무시하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상임위에서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에 한 말이다. 행정안전위원장인 장 의원은 의원들 질의 도중 사무총장이 자리를 뜨자 "의원 12년 하면서 위원장 허락 없이 이석(離席)하는 피감기관장은 처음 본다"고 질책했다.장 의원은 이어 "누구 허락을 맡고 이석했나, 어디서 배워 먹었나"라고 고함을 쳤다. 사무총장과 선관위 관계자를 질타하면서 책상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한 장 의원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선관위 직원을 불러 "앞으로 국회 출입 안된다"고 했다. 3분 분량 동영상이 공개되고, 언론에도 보도되자 비난 댓글이 잇따랐다. 물의를 빚은 장 의원 아들을 겨냥해 "자식 교육이나 잘 시켜라"는 대목도 있다.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국회사무처 전문위원에 막말을 했다. "어디 법 있어? 보자 보자 하니까 웃기고 있네"라며 "어디서 이따위 소리를 하고 있어, 똑바로들 해 진짜" 등의 발언을 했다.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천공의 유튜브 영상 재생과 관련한 여야 다툼의 와중에서다.우 의원은 동료 의원도 무시하는 발언을 해 사과요구를 받았다. 영상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에 "초선의원은 가만히 있으라, 뭐하는 짓이야, 에이 씨 진짜"라고 했다. 태 의원은 몰상식한 행태라며 "민주당의 꼰대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여의도 막말은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지난해 여당의원은 전 정부 인사에 "혀 깨물고 죽지, 뭐하러 그런 짓거리를 하냐"고 했다. 여성 의원이 동료 의원에 '조선 시대 후궁 같다'고 해 고소를 당했다. 국감장에선 막말과 욕설, 인격 모독 발언이 쏟아진다. 초법적 권위의식으로 무장한 갑질 행태가 도를 넘었다.국회의원은 입법권, 불체포, 면책, 조사·감사, 예산 심의권한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막말을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올해 초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 열 중 여덟(81%)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
[참성단] 학교는 아프다 지면기사
2012년 미국에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1년 이상 가해자의 폭력에 시달렸다. 플로리다주 칼리어 카운티 법원의 판사는 정당방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미국에서도 학교폭력은 골치 아픈 사회문제다. 툭하면 발생하는 학교 총기난사사건으로 교사의 총기 휴대론이 나올 정도다. 총기의 나라 미국에서나 가능한 판결이고, 여론이다.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문제도 심각하지만 미국식 해법은 제도적, 문화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가해자를 응징하는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응징하는 조리돌림이 만연한다. 학폭 시비에 휘말려 미디어에서 사라진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고,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 부자는 국회 청문회 대상이 됐다.하지만 성공한 가해자를 매장하는 사회적 응징이 통쾌할진 몰라도, 무너진 학교의 현실을 개선할 대책일 수는 없다. 최근 교육부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은데 이어 '교육활동 침해행위 및 조치 기준 고시'를 개정했다. 학폭 대책의 골자는 가해 학생의 처벌 기록을 학생부에 철저하게 기록하고, 대입 전형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학폭 가해 학생은 대학 갈 엄두를 내지 말라는 얘기다. 정순신 사태가 제도 개혁의 기폭제가 됐다.오늘부터 시행되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 고시의 핵심은 교권 강화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고 수업을 방해하면, 최악의 경우 퇴학 조치까지도 가능하다. 미디어가 고발한 교권 붕괴 현장은 참혹하다. 희롱하는 학생들에 둘러싸인 여교사, 학생의 폭행에 쓰러지는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니다. 학생인권으로 무장한 악동들이 선생님을 유령 취급하며 교실을 지배해도 대응할 수단이 없다.대학 진학 장벽과 교권 강화로 학교 폭력을 막고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는 교육부의 구상은 가상하다. 그런데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흘렀다. 경기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도 10년이 넘었고,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가 넘친다. 모두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처
-
[참성단] 국익 우선 주판알 외교 지면기사
계산이 빠르거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을 가리켜 '주판알을 잘 튕긴다'라고 한다. 비속어에 가까운 말이지만,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적절하게 주판알을 튕기지 못해도 인생이 고달파진다. 지금은 전자계산기에 컴퓨터까지 있어 주판을 쓰는 일이 없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주판은 유용한 도구였다.주판은 수판, 산판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부터 3천~4천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에서 널빤지에 모래나 분말을 놓고 사용하는 토사 주판이 있었다. 로마에서도 널빤지에 홈을 파고 여러 개의 줄을 긋고 사용하는 형태의 주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판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하여 중국의 발명품으로 오해하기도 한다.중국에서 주판을 언제부터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후한 시대 서악(徐岳)이 쓴 '수술기유(數術記遺)'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후한 시대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명 만력 20년(1592)에는 정대위의 '산법통종'이 출판되어 이 무렵(선조 26년, 1593) 전후에 우리에게 수입되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산법통종' 이전에는 남송의 양휘가 저술한 '승제통변산보'(1274), 주세걸의 '산학계몽'(1299) 등 주산과 관련한 책들이 있었다.우리의 주판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전해졌으나 근대에 와서는 거꾸로 윗알 1개와 아래알 4개를 사용하는 일본식 주판이 퍼졌다. 1920년 조선주산보급회가 생기고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서 1936년 주산경기대회를 열면서 학교의 교육현장으로도 널리 퍼져나갔다.요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어려운 경제 여건과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미숙하여 내줄 것 다 내주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아서다. '다만 얻은 것은 오므라이스와 G7 정상회의 초대장이요, 잃은 것은 국익과 역사 인식'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주판알을 잘 튕기는 외교적 능숙함을 발휘해야 한다. 외교의 최
-
[참성단] 농촌 계절노동자 지면기사
1990년대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했다 국내 기업에 취업해 눌러앉는 외국인들이 급증했다. 내국인들이 3D 업종 취업을 꺼리는 사회현상과 맞물려 심각한 골칫거리가 됐다. 중소업체 인력난이 심화하자 외국인노동력을 합법적으로 확보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했다. 1992년 하반기 시행된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제도가 대표적이다.연수생들은 일정 기간 취업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용허가기간이 지났는데도 국내에 남는 근로자들이 많았다. 2003년엔 무려 6만명을 넘었다. 관계 부처 합동 단속에 나선 정부는 적발된 불법 체류자를 강제 출국시켰다. 이후 도피, 단속, 강제 출국, 재입국의 악순환 고리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재입국을 위한 방법이 넘쳐난다.여주지역 농민단체들이 지난주 기자들 앞에서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과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이충우 시장과 정병관 시의회의장, 시의원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은 정부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 단속으로 관내에서 130명이 연행돼 농민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구마, 감자, 인삼, 도라지, 대파, 시설채소는 이제 누가 키우느냐고 한다.농번기, 외국인 근로자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청년들이 씨가 마른 농촌에 이들이 없다면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한다. 고용주에 대한 처벌수위가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 계절노동자 10명이 연행된 고용주에 벌금 3천만 원이 부과됐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농심(農心)이 온전할 리 없다.자구에 나선 지자체도 있다. 연천군은 베트남 동탑성과 협약을 맺고 올해 계절노동자 300명을 관내 농가에 배치하기로 했다. 지난해엔 160명의 베트남 계절노동자들이 5개월 동안 농가 일을 도왔다. 농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근면해 일손이 절대 부족한 농가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다.고된 노동에 주거환경이 열악한 농촌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꺼리는 게 현실이다. 농촌의 일손 부족은 법의 잣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단속과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외국인 계절노동자에 대한 정책
-
[참성단] 전두환 일가의 업보 지면기사
기독교 교리의 원점은 원죄설이다. 뱀의 유혹에 걸린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는다. 하느님을 배신한 첫 조상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 최소한 기독교적 인류들은 죄의 대물림에 갇혔다. 원죄설은 죄 짓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하느님의 증언이니 증명할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나라를 위협하는 인간을 원죄설 없이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래야 속죄하는 인간들의 종교적 공동체가 가능해진다.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오이디푸스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게 복수하는 햄릿의 비극은 신화가 아니다. 당 현종은 며느리 양귀비를 후궁으로 삼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장 범죄는 즐비하다. 당장 우리 현실에서도 패륜적인 가족 범죄가 끊일 날이 없다.원죄론의 실용성은 참회를 통한 실존의 회복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원죄로 인정한 독일은 철저한 국가적 참회를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반면 제국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경제적 지위에도 퇴행적 사무라이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끼리 친일·반일로 싸워대봐야, 죄의식 없는 일본 앞에서, 우리 스스로 식민시대에 갇힐 뿐이다.기독교 원죄론이 없었던 동양에선 불교의 '업'(業) 개념으로 죄 짓는 삶을 경계했다. '업'은 원인이고 '업보'(業報)는 결과다. 조상이 지은 업의 선악이 자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언행에 신중을 기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손자 전우원씨의 기행(?)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별안간 SNS를 통해 "할아버지는 학살자"라고 했다. 아버지 전재용은 검은 돈으로 살고 있고, 숙부 전재만은 검은 돈으로 미국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 중이란다. 검은 돈으로 유학한 자신도 범죄자라 했고, 검은 돈 세탁 과정도 밝혔다.급기야 지난 17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마약 추정 물질을 복용해 횡설수설하던 중 미국 경찰에 강제 구인되는 소동을 벌였다. 아버지 전씨는 "아들이 많이 아프다"며 사죄했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치욕적인 처지가 됐고, 전두환 비자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재발했다.
-
[참성단] 봄꽃축제 지면기사
고창에서 나고 자란 서정주(1915~2000)는 선운사 동백을 아꼈다. 스물여덟 봄날에 꽃망울이 아른거려 급히 사찰로 향했다. 때를 놓쳤나 조바심을 냈는데, 막상 마주하니 봉우리를 열기엔 한 참 멀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주막에 들러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는데, 어여쁜 주모의 육자배기 가락에 그만 취하고 말았다. 지난해 피었던 동백을 소리로 접하며 서운함을 달랜다.동백 군락지는 남해안이다. 1~2월 엄동에 홀로 붉게 물든다. 선운사는 동백이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내륙지방 북방한계선이다. 봄바람을 맞아 분분히 흩어지는 여느 꽃잎과 달리 동백은 단칼에 베인 것처럼 수북이 쌓여 땅에서도 다시 피어난다. 미당(未堂)은 남녘 마을마다 동백으로 붉게 물들었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너무 이른 때라 낭패를 본 것이다. '선운사 동구'란 절창은 미욱함을 탓하는 청년 시인의 자탄이다.선운사에 동백이 있다면 구례 화엄사엔 홍매(紅梅)가 있다. 양산 통도사 자장매(慈藏梅)와 더불어 국내 사찰을 대표하는 홍매화이다. 붉은색이 과해 흑매(黑梅)로도 불리는데, 아름다운 사진 명소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 뜰 무렵 홍매를 두고 음양이 갈리는 장면이 경이롭다. 절 뒤쪽 백매화와 언덕배기 산수유가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이다. 이번 주말에 만개할 것이란 소식이다.광양 매화마을은 벌써 축제가 시작됐다. 섬진강 매화로 일원에서 19일까지 이어진다. 매화단지는 울긋불긋 꽃 잔치가 요란하다. 희고 붉은 기운이 서로를 시기하며 다툼하는데, 노란 산수유가 끼어들어 지루할 틈이 없다. 팔각정자에 올라 별천지를 내려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인파에 치이고, 고갯마루에 가빴던 숨이 조금도 수고롭지 않은 까닭이다.남녘 봄바람이 빠르게 북상 중이다. 경기도 내 지자체들도 봄꽃축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이천시 '백사 산수유꽃 축제(3월 24~26일)', 양평군 '산수유 한우축제(4월 1~2일)', '군포 철쭉축제(4월 28일)'가 이어진다. 경기도청 봄꽃축제와 고양국제꽃박람회(4월 27일~5월 8일)를 빼놓을 수
-
[참성단] 섬마을 약사님 지면기사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총각 선생님이 부임했다. 19살 섬 색시는 한 눈에 반해 순정을 바쳐 사랑한다. 짝사랑일테다. 선생님은 뭍을 그리워하며 바닷가에서 시름을 달랠 뿐이고, 섬 색시는 그가 훌쩍 떠날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간절히 외친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미자의 '총각 선생님'이다. 한 장의 스틸 컷 같은 서사에 담긴 섬 마을의 그리움과 결핍이 강렬하다.해당화의 섬 백령도에 총각 선생님보다 훨씬 반가운 사람이 찾아온다. 주민들이 학수고대했던 약사님이다. 지난해 8월 하나뿐인 약국이 문을 닫자 주민들의 불편이 말도 못했다. 병원과 보건소가 있지만 약국이 없으니, 진료와 처방이 무의미해졌다. 5천여 명의 주민들이 편의점 상비약으로 근근이 버텨왔다.지방자치의 힘인가, 옹진군이 나섰다. 민간약국 운영비용 지원 조례를 만들어 옹진군 섬 마을에 약국을 개업할 약사를 모집했다. 다행히 최영덕 약사가 백령도 개업을 지원해 이달 안에 약국이 개업할 예정이란다. 옹진군이 약국과 주거지 임차료의 80%를 지원해준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섬 마을 약국 개업은 최 약사 말대로 "의료봉사를 한다는 생각"이 아니면 감행하기 힘들었을 테다.하지만 약국 개업의 행운은 서해5도 중에 백령도에만 그쳤다.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는 약국 개업 지원 약사가 전무하단다. 뭍과 가까운 덕적도, 자월도 역시 사정은 같다. 옹진군은 약사회를 통해 약사들을 수소문하는 모양이지만, 이문이 없는 약국 운영을 감수할 약사가 흔할리 없다. 백령도 최 약사도 일흔을 넘긴 고령이라 경제적 고려 없이 결심했을 테다.병원과 약국이 없는 읍·면과 도서지역은 의약분업에서 제외된다. 약국이 없으면 병원에서 약을 주고, 병원이 없으면 약국이 처방전 없이 약을 판매해도 된다. 옹진군 도서지역도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다. 하지만 보건소 운영시간은 짧고, 돈 안되는 약국을 차릴 약사도 없다. 결국 행정의 적극 개입 외에는 답이 없다는 얘기다.중앙정부처럼 지방정부도 약사를 약무직 공무원으로 채용해 공공약국을 운영
-
[참성단] 오에 겐자부로 지면기사
일본 문학의 큰 별이 졌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높은 문학정신을 보여준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2023)가 13일 88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은 1958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사육(飼育)'을 비롯해서 '만엔 원년의 풋볼', '개인적 체험' 등을 꼽을 수 있다.흔히 '개인적 체험'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알고 있으나 노벨상은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므로 '개인적 체험'을 수상작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적 오해이며, 출판사의 상술로 보면 된다. '개인적 체험'은 1964년 발표되자마자 신쵸사(新潮社)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 술에 의지한 채 학원강사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은 막 태어난 아들이 머리에 기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를 기를 것인지 안락사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깊은 고민과 갈등에 빠진다. '버드', 즉 새라는 "유치한 별명"을 지닌 주인공은 번민 끝에 아기를 수술시키기로 결심하고, 수술을 결행한다. 수술 결과 희귀병이 아닌 단순 혹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자신의 실제 가족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압권이다. 주인공 '버드'와 '기쿠히코'는 단편 '불만족'에서 이미 나온 인물들을 재등장시킨 것으로 정신적 '성장' 또한 그의 중요한 문학적 주제다.'만엔 원년의 풋볼'은 갈 길을 잃은 청춘들의 방황을 다루고 있는 듯하나 실상은 사회파 소설이다. 안보 투쟁에 참가했다 진압대에 맞아 정신이상자가 돼 자살한 친구를 부러워하는 주인공 네도코로가 동생 다카시의 권유로 만엔 원년에 농민 봉기를 일으킨 증조부의 전설이 살아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버무리는 원숙함도 일품이지만, 재일조선인문제·알코올 중독·안보 투쟁·근친상간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결말 부분의 반전이 작품의 백미다.불
-
[참성단] 한국 야구의 몰락 지면기사
지난주 개막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우승 배당은 16배였다. 미국 방송사가 예측한 전망에서다. 100원을 걸면 1천600원을 준다는 것으로, 우승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주최국인 미국 3.6배, 도미니카공화국 3.75배, 일본 5.5배 순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팀 전력이 출전국 중 10위에 랭크됐다고 밝혔다.1·2회 대회 4강과 준우승을 수확한 우리 대표팀을 향한 박한 평가가 현실이 됐다. 첫 경기에서 호주에 8대7로 역전패해 충격을 줬다. 숙적 일본과는 콜드게임 위기에 몰리며 13대 4로 대패했다. 약체 체코에 승리했으나 소방공무원, 회사원으로 꾸려진 사회인야구 선수들에 석 점을 내주는 졸전이었다.투·타 모두 기대 이하였다. 노장과 신예가 동반 부진했다. 투수진 전원이 난조에 빠진듯한 경기력이 아쉬웠다. 일본전에 선발로 나선 김광현은 1·2회를 틀어막았으나 순번이 한 차례 돌면서 난타당했다. 뒤를 이은 구원진은 단타에 홈런까지 돌아가며 뭇매를 맞았다. 타자 셋에 연달아 볼넷을 내주는 등 사사구를 9개나 남발했다. 중·고교 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실망스런 장면이다.선수들 기량부족에 더해 감독의 전략 부재와 용병술도 불쏘시개가 됐다는 비판이다. 8강을 위해선 첫 상대인 호주전이 중요했으나 에이스를 내지 않았다. 일본전에 대비한 것이나, 반드시 1승을 챙겨야 하는 절실함을 망각한 오판이었다. 예상과 달리 첫 경기를 내주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일본전에서 침몰했다. 가벼운 몸놀림을 보인 선수들이 출전기회를 잡지 못한 점도 아쉽다는 반응들이다.그간 잊고 살았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우리 대표팀이 예선에서 짐을 쌌던 쓰라림을. 경쟁력을 잃은 한국야구는 어느새 변방이 됐고, 잔칫상을 기웃하는 들러리가 됐다. 배팅볼을 던지고, 헛스윙을 하며 민낯을 드러냈다. 고작 동네북 전력으로 '목표는 4강'이라며 호기를 부렸다.KBO 리그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도쿄 참사에 팬심이 차갑게 식었다. 날씨마저 외면해 관중석이 허전했다. 방송인 양준혁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