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MZ노조' 지면기사
산업혁명 시기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악랄하게 착취했다. 중세의 봉건 영주와 중산층은 산업자본가로 변신했고 농노들은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1905년 제정 러시아 도시 노동자 수십만명이 황제에게 임금 인상을 청원하는 행진을 벌이다가 총탄에 쓰러졌다. 러시아 혁명을 잉태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서구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단결을 모색했다. 노동조합 결성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렸다.순식간에 독립과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에선 노동조합도 민주주의 제도에 매달려 시작됐다. 해방공간의 좌우익 노동운동 충돌을 거쳐 1948년 대한노동총연맹이 출범하고 1953년엔 근로기준법이 제정 시행됐다. 하지만 대한노총의 후신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현 한국노총)은 어용노조로 조롱받을 만큼 역할이 미미했고, 1970년 전태일 열사는 자신을 불살라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을 화형시켰다. 대한민국 노동운동 역사는 새로 시작됐다.1980년대 한국노총과 결을 달리하는 노동단체 설립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고, 전두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시민세력이 호응했다. 1990년 출범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전환된 뒤 복수노조 합법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민주노총의 약진에 자극받은 한국노총도 투쟁력을 끌어올리며 양대 노총이 노동운동을 독점한 세월이 한 세대를 넘겼다. 두 노조는 각각 100만명이 넘는 조합원으로 노동현장의 권력이 됐다. 권력부패의 법칙엔 예외가 없는 것인가. 요즘 독과점 노조에 향한 정부의 비판이 거세다. 타워크레인 월례비 등 건설 노조 현장 비리와 부조리, 부실 회계 등 노조가 빌미를 줬다. 정부의 공세가 정치적일 수도 있으나, 노조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진 것 또한 현실이다.양대 노총에게는 정부보다 MZ세대의 이탈이 훨씬 뼈아프다. 청년 노동자들이 한노총, 민노총 투쟁 방식을 거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비정규직의 무차별적 정규직화에 반발하던 '인국공' 세대들이 전교조를 이탈하고, 양대 노총의 편파적인 정치파업과 불투명한 회계를 비판한다. 급기야 지난 21일엔
-
[참성단] '소아 집중치료실' 지면기사
PICU(perinatal intensive care unit)는 태어난 지 며칠 안 되는 주산기(周産期) 영아와 어린이를 전담 치료하는 의료시설을 말한다. 출산 전후기는 모체와 태아, 신생아의 특이한 생리 상황이 나타나는데, 이를 주산기라 한다. 주산기 산모·영아 사망률은 특정 국가의 의료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지난해 일본 후지TV가 출시한 드라마 'PICU'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성장기다.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시코타 타케시로(요시자와 료)는 27살 의사다. 어느 날 타케시로는 소속 병원에 신설된 소아 집중 치료실로 자리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는다. 눈물 많고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철부지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으면서 유능한 전문의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첫회부터 시청률 10%를 가볍게 넘어섰고, 올 초엔 국내 IPTV 채널에서도 방영됐다.정부가 아픈 아이의 증상을 의사와 24시간 전화로 상담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과 평가에 소아 진료 부분을 강화한다. 야간·휴일에 소아를 외래 진료하는 '달빛 어린이병원'의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높이고, 운영 병원 수를 100개까지 확대한다. 엊그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의 뼈대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를 조속히 마련해 시행하라"고 지시했다.정부가 정책 보강에 나선 배경은 소아 진료 체계가 붕괴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지난해 수도권 종합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모집했으나 지원자가 없어 진료를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에 위기감이 커졌다. 부모들은 심야와 주말 등 취약 시간대 의료 공백을 걱정하는 상황이다.소아청소년과의 암울한 미래를 예시하는 소식이 또 나왔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졌다는 통계청 발표다.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6년째 꼴찌라고 한다.저출산과 소아·청소년과 기피는 인과가 명징하다.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선과(善果)를 장담할 수 없다. 저출산
-
[참성단] 러-우크라이나 전쟁 1년과 핵무장 지면기사
'지구종말시계'(The Doomsday Clock)는 핵무기로 인류가 멸망할 위기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아인슈타인 등 미국 핵과학자들이 1947년 자정 7분 전으로 발표한 데서 유래했다. 핵무기의 패륜적 위력에 죄책감을 느껴 시작한 반핵 캠페인이다.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 자정이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사라진다. 해마다 미국 핵과학자회(BAS)가 분침을 조정해 발표한다.20세기엔 미국·소련 냉전과 미국·러시아 데탕트 사이에서 분침이 요동쳤다. 미·소가 수소폭탄 실험을 한 1949년엔 자정 2분 전에 육박했다가, 미·러가 핵전력 감축협정을 체결한 1991년에 자정 17분 전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탓에 20세기는 자정 9분 전으로 마감했다.21세기 들어 분침은 자정을 향해 돌진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패권주의가 충돌했고, 기후 위기가 현실화한 데다 핵보유국이 늘었다. 북한은 노골적인 핵무장 공언으로 2018년 분침을 자정 2분 전으로 밀어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3년은 자정 100초 전이었다.지난달 BAS가 발표한 지구종말시계의 분침이 충격적이다. 지구 종말까지 90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고전 중인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란다. 러시아는 1주일 전쟁을 공언했지만 내일이면 개전 1년이다. 초조한 러시아의 전술핵 위협은 허세가 아니다.러시아뿐 아니다. 미국과 패권 경쟁에 나선 중국은 핵무기 확충을 추진한다. 북한은 ICBM 시험발사로 미국을 도발하고, 대한민국엔 전술핵 공격을 공개적으로 겁박한다. 일본 원폭 투하 이후 70여년 간 전쟁 억지용이던 핵무기가 최근 몇년 사이 실전용으로 돌변했다.소련 붕괴로 1991년 독립할 당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보유량이 1천800기였다. 이를 미국·영국·러시아로부터 영토보전과 정치독립을 보장받기로 하고 폐기했다. 하지만 핵보유국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빼앗은데 이어 본토를 침공했다. 강대국의 영토보전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고, 고통은 온전히 우크라이나 몫이다. 핵무기 18개만 남겨두었다
-
[참성단] 소주 6천원 시대 지면기사
술은 음료요, 생활문화이며, 역사다. 프랑스 와인, 영국 위스키, 독일 맥주, 중국 고량주, 일본 청주, 중남미 럼주 등은 나라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다. 우리는 막걸리와 소주의 나라다. 이 중에서도 소주는 한국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서민들의 동반자다.우리의 소주는 고려 때 시작됐다. 원 황제 쿠빌라이(1274~1281)가 일본 정벌을 위해 개성에 본대를 두고, 안동과 제주에 전진기지를 만들었는데 이때 몽골의 소주 제조법이 전래됐다 한다. 그런데 소주의 원조는 몽골이 아니라 중동지역이며, 기원전 3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의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다. '구약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수메르의 홍수설화와 일치하며, 수메르의 종교와 신화는 기독교 등 후대의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종수 박사의 논문을 보면 수메르의 증류주는 중동지역에서 '아라끄'라는 이름으로 전승돼 왔는데, 몽골의 이슬람 제국 정복전쟁 당시 소주 양조법이 몽골로 다시 몽골을 통해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는 것이다.소주(燒酒)는 '불사르다'란 뜻을 지닌 소(燒)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불로 태워 증류한 술이란 뜻이다. 아랍어로는 '아라끄'(Arag)라 한다. 아라끄는 알코올을 의미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아자길(阿刺吉), 아리걸(阿里乞)이라 번역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소주를 내릴 때 나는 냄새를 가리켜 '아라기'라 하고, 개성지역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 부른다고 한다. 안동소주와 개성의 송악소주는 이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이 같은 전통을 잇고 있는 유서 깊은 대중주다.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소주 소매가도 곳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한데 1천900원으로 올랐다. 식당에서는 6천원으로 올랐고, 맥주도 8천원으로 뛰었다. 서민과 함께 울고 웃었던 소주가 이제는 서민들을 울리는 원흉(?)이 됐다. 국민들은 고금리에 오를 대로 오른 가스 요금과 점심값과 아파트 관리비마저 부담스러운데 정치권은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
-
[참성단] AI 바둑의 한계 지면기사
인공지능(AI) 바둑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5번기에서 알파고는 인간계 초고수 이세돌에 4대 1로 쾌승했다. 세 판을 내리 뺏긴 이세돌은 4국에서 기발한 착상으로 전세를 엎었으나 최종전은 다시 내주고 말았다. 세상을 놀라게 한 알파고는 이후 폐기됐다.인공지능 대국 프로그램 '카타고'는 중국 '절예(絶藝)'와 함께 알파고를 개량한 세계 최강 AI다. 바둑에 특화된 신경망을 추가 장착했다. 국내 최정상급 프로기사들이 2점 정도를 접어야 호각일 정도로 막강 실력을 갖췄다. 프로기사들도 수년 전부터 카타고와 대국하며 기력을 연마한다. 절예로 학습한 리쉬안하오(李軒豪·26) 9단이 세계랭킹 1위 신진서(24) 9단을 꺾으면서 치팅(cheating)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아마추어 기사가 카타고에 연승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아마추어 기사 '켈린 펠린'이 카타고와 15판 승부를 해 그중 14판을 이겼다고 보도했다. 인간이 AI를 상대로 호선(互先)으로 이긴 건 이세돌 이후 7년 만이다.아마 6단 기력인 펠린의 승리 비결은 변칙이다. 초반부터 대마 두세 개가 죽어 전세가 불리해진다. 2, 3선을 기며 집을 짓지만, 중반 시점엔 100집 이상 밀리기도 한다. 종반 순식간에 전세가 바뀌면서 역전한다. 죽은 돌을 포위한 상대 돌을 포획하고 자신의 돌을 살려내는 것이다. 죽은 돌에 집착하는 무모한 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최선의 수만을 찾는 AI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프로기사라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가일수할 텐데, 인공지능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필린에 도움을 준 프로그램 설계자 애덤 들리브는 "AI 약점을 파고드는 작업은 놀라울 만큼 쉬웠다"고 한다. 들리브가 파악한 카타고의 맹점을 표적으로 펠린은 100판 넘는 실전을 거쳤다고 한다.정공법이 아닌 꼼수이나 AI의 약점을 증명해냈다. AI는 지식은 많이 축적했으나 이해도는 떨어지는 한계를 드러냈다. 지능형 AI와 ChatGPT 등장으로
-
[참성단] '조지 산토스' 지면기사
지난 연말 미국 정계에서 기상천외한 뉴스가 발생했다. 그해 11월 8일 실시된 미국 하원 선거에서 당선된 한 공화당 의원의 전력이 완전히 날조됐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의 주인공은 뉴욕 제3선거구에서 당선된 조지 산토스. 뉴욕주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산토스는 단번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우리로 치면 국민의힘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된 이변이니 당연했다.진실의 문이 열리면서 유권자의 환호는 경멸과 혐오로 바뀌었다. 산토스의 생애와 경력이 모두 허위라는 의혹이 일고 사실로 드러나서다. 뉴욕 버룩칼리지 졸업과 뉴욕대 대학원 MBA 취득 학력이 거짓이었다.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 근무 경력도 허위였다. 조부모가 홀로코스트 피해자이고 어머니는 9·11테러 생존자라는 주장은 창작이었다. 동성애자라더니 여성과 결혼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브라질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추가됐다.진보 성향이 우세한 뉴욕 유권자를 겨냥해 맞춤형 가상인물을 창조한 셈이다. 미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처음 뉴스를 접할 때만 해도 희한하지만 곧 정리되겠다 싶었다. 미국의 양심이 산토스를 그대로 둘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산토스의 하원의원 취임을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러나 산토스는 하원 의원 취임 선서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의사당에 출근 중이다. 최근엔 대통령 국정연설에 참석한 산토스를 향해 같은 당 중진인 미트 롬니 의원이 "부끄럽지 않나.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며 면박을 주었다는 외신이 화제였다.미국 하원도 재적의원의 3분의 2 동의로 의원 제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후안무치한 선거 사기꾼 산토스는 자리를 지킨다. 공화당의 속사정 때문이다. 하원 정원 435석 중 공화당은 과반수에서 4석 많은 222석이다. 하원 주도권을 쥐려니 한석 한석이 중요하다. 산토스를 날리면 뉴욕주 재선거는 민주당 승리가 뻔하다. 산토스를 추방해야 할 명분과 과반 의석을 지켜야 할 실리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정치적 배경이다.유권자들이 산토스의 불법 회계 의혹을 제보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2년 임기 내에 법원 판결이 나
-
[참성단] '노란봉투법' 지면기사
쌍용자동차 노조가 지난 2009년 5월 22일 평택공장 정문을 봉쇄하고 전면파업에 나섰다. 앞서 사측은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전체 인력의 36%인 2천646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조원들의 격한 투쟁은 8월 6일까지 77일간 이어졌다.옥쇄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인적·물적 피해가 컸다. 공권력이 대거 투입되면서 파업은 종료됐으나 후유증이 남았다. 회사와 정부는 노조를 상대로 파업에 따른 손실금액을 보상하라고 소를 제기했다. 수년 뒤 법원은 사측에 33억원, 경찰에 14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한 시민이 성금 4만7천원을 전하면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10만명이 되면 47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노조원들을 돕자는 사회적 연대 캠페인이 전개됐다. 월급을 직접 받던 시절, 노란색 봉투는 급여를 상징했다. '노란봉투' 모금운동은 '노란봉투법' 추진운동으로 진화했다.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를 통과했다. 여당 의원들은 전원 반대했으나 다수인 야당이 주도하면서 어렵지 않게 문턱을 넘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고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노동계는 오랜 숙제가 풀리게 됐다며 반색한다. 노동 3권과 헌법상 기본권 행사를 막는 수단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악용됐다며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원 손배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들어 진작 개정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반면 재계는 불법파업이 합법으로 치환돼 생산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부정적인 입장이다. 모호한 규정 때문에 해석에 따라 누구나 사용자가 될 수 있기에 노사 간 갈등만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한다.영국과 독일 등 노동 선진국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이 실제 소를 제기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한다. 노사 모두에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경험칙이 작동하는 것이다. 복잡한 노사관계와 특수상황을 노사관계법에 묶
-
[참성단] '노인을 위한 나라' 지면기사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TV 영화채널의 단골 재방 레퍼토리이다.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이 원전이다. 작가는 아일랜드 국민시인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저기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네.'(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시의 첫 구절이다. 유희처럼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노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도 적응도 할 수 없는 세상을 은유한다.최근 고령사회문제 해법으로 노령층의 집단 할복을 주장한 30대 경제학자 때문에 일본이 발칵 뒤집어졌단다. 예일대 교수인 나리타 유스케가 지난해 말 온라인 TV에서 한 발언인데 뉴욕타임스 보도로 난리가 났다. 나리타는 과거에도 안락사 의무화를 주장하는 등 노인을 사회적 기생 계층으로 폄하한 전력 때문에 "문맥과 관계없이 인용됐다"는 항변이 무색해졌다.일본계라지만 미국 명문대 교수가 군국주의의 망령인 '집단 할복'을 노인문제 해소 방안이랍시고 내놓았으니, 학자의 소양을 따지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실격 판정을 받아 마땅하다. 뉴욕타임스가 뒤늦게 보도한 배경일 테다. 충격적인 건 나리타를 지지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경제 침체의 원인이 고령사회로 믿는다고 한다.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며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발언했다가 제대로 역풍을 맞았다. 열우당은 의석 수십 개를 날려먹었다고 자탄했다.정치인의 노인 폄하 발언은 여전히 금기이지만, 정치권의 득표 전략은 청·장년 세대에 집중한다. 고령사회에 부담을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된 결과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논의가 자연스러워진 것도 고령화 사회 유지비용에 대한 세대별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고령층에 속속 합류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장수시대가 본격화하고, 고령사회 유지비용이
-
[참성단] 챗GPT 지면기사
챗GPT가 화제다.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 계열사인 오픈 AI가 만든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으로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칭이다. 굳이 옮기자면 '사전에 훈련된 생성적 변환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챗GPT가 만만치 않다. 어떤 질문이든 알아서 척척 대답해준다. 에세이와 신문기사 작성도 가능하고, 경제정책에 법률 상담과 의료적인 판단에 심지어 간단한 프로그램 코딩도 가능하다. 또 이미지 생성기인 DALL-E는 어떤 그림이든 단번에 만들어내니 화가, 삽화가 못지않다. 아직 일부 실수와 불완전함도 속속 발견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자 현재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을 놓고 두 개 입장이 팽팽하게 경합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거대한 부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모든 인간적 한계와 제약을 넘어 행복한 미래사회를 열어갈 수 있다는 기술낙관주의 이른바 테크놀로지 유토피아론과 기술의 발전이 표절, 환경의 파괴, 인문적 가치의 훼손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관주의, 이른바 테크놀로지 디스토피아론이 있다.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대해 낙관적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지도 모를 재앙에 대해 우려하는 이중적인 상태에 처해있다.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저서 '인에비터블'을 통해서 기술의 발전과 사회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공진화할 것이라는 절충적인 입장, 곧 프로토피아(protopia)를 제시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낙관적으로 보는 디지털 낭만주의나 모든 신기술의 발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비관주의를 넘어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교육 현장과 예술에서 챗GPT를 이용한 표절을 막을 장치도 필요하고, 고도의 법적 판단이나 의료적 진단에서 AI기술은 적정한 사회적 견제 장치와 함께 구속력 없는 제한적인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사람이 내리도록 해야 한다. AI에 대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와 윤리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이와
-
[참성단] '김창수 위스키' 지면기사
상품 출시도 전, 네티즌이 들뜨고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극성을 넘어선 성화에 예정된 숙성기간을 수개월 앞당겨 판매대에 올린다. 한정 수량에 즉시 품절이라, 판매점 앞에는 수일 전부터 줄이 선다. 애주가 선물로 이만한 게 없고, 정상가 10배 웃돈이 붙어 리셀(resell)될 정도다. 대체 뭣이기에, 이 난리인가.토종 브랜드 '김창수 위스키' 얘기다. 지난해 상반기 1호, 하반기 2호 위스키가 잇따라 출시됐다. 입소문을 들은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았을 땐 이미 늦었다. 얼마 전, 목마른 애주가들을 설레게 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김포 통진 소재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가 3호 위스키를 판매한다고 알렸다.원래 2년 넘게 숙성하려던 것을 1년8개월 만에 꺼냈다고 한다. 위스키 애호가들의 재촉을 견뎌내지 못했다. 알코올 50.5도에 판매가 24만원. 물로 희석해 도수를 낮추는 것이 아닌 원액 그대로 병에 담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방식이다.400병도 안 되는 물량에 시중에 절반만 유통되면서 쟁탈전이 심했다. 서른 병 가까이 확보한 GS25 매장에는 어김없이 줄이 섰다. 1·2호엔 한글로 '김창수'라 했는데, 영문 표기와 함께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김창수(37) 대표가 직접 도안했다고 한다.주류 전문 유튜브 채널 '주토피아' 운영자가 3호 위스키를 시음하면서 전문가적 소견을 내놨다. 길지 않은 숙성기간에도 불구, 기분 좋은 단맛에 안정적인 향이라고 평했다. 1·2호와 비교하면 '거칠지 않고 한층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벌써 후속 제품이 기다려진다고 전했다.'사람도 물건도 쉽게 묻혀버리는 세상에서는 완성품이 아닌 '과정'을 판매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 베스트셀러 '프로세스 이코노미(오바라 가즈히로 저)'의 핵심 내용이다. 위스키 불모지에서 새 역사를 쓰는 김창수의 지난 역정이 다르지 않다. NHK 방송은 명품 위스키를 향한 그의 열정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다.김창수 위스키는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바꿨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