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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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법과 눈물 지면기사
법이 인정(人情)에 휘둘리면 법 앞의 평등이 깨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와 같이 법이 사람을 가리면 법치가 무너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 모양이다. 법은 모름지기 추상(秋霜) 같아야 권위가 선다. 하지만 가을서리처럼 냉랭한 법에도 눈물이 있다. 눈물은 사람이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 인지상정이다. 솔로몬은 자식을 포기할지언정 죽일 수 없었던 어미의 인지상정으로 명판결을 남겼다.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법원의 노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는 자비로운 판결로 감동을 주는 법정 영상으로 유튜브 유명인사가 됐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선처하는 재판 과정은 법적 정의와 형평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일말의 인지상정 없이 수많은 장발장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법적 정의는 아닐 테다.인천지방검찰청이 최근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한 어머니의 1심 판결의 항소를 포기했다. 지난 19일 인천지방법원은 검찰이 징역 12년을 구형한 이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파격적인 선처였지만, 1주일 시한인 26일을 넘겨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것이다.딸을 사망케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연에 법원과 검찰이 공감한 결과다. 날 때부터 몸이 불편했던 딸을 38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오롯이 보살폈던 어머니다. 그 딸이 대장암에 걸려 항암치료로 고통받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나 홀로 죽으면 끝날 형벌 같은 삶이지만, 남겨진 딸을 누가 돌보나 싶어 여기서 같이 끝내자며 무너졌고,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혼자 깨어났다. 그런 어머니가 불쌍해 아들은 장문의 탄원서로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판사는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가족들이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본인을 탓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선처했고, 어머니는 법정을 나와 한 없이 오열했다. 최종적으로 검찰이 재판부의 판결과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항소 포기를 결단했다. 딸의 생명을 빼앗은 죄는 무겁다. 법의 선처에도 어머니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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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성폭행범과 인권 지면기사
박병화(39)는 2000년대 초 수원에서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15년을 복역했다. 빌라에 침입해 혼자 사는 20대 여성을 노렸으나 좀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잽싼 몸놀림으로 '수원 발발이'라 불리면서 수년간 젊은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지난해 10월 만기출소한 그가 화성의 한 원룸에 거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이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이 퇴거를 요구하며 연일 집회에 나섰고, 시장과 지역 정치인들이 가세했다. 퇴출 움직임이 거세자 집주인은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연쇄 성폭행범은 문을 잠근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박병화가 며칠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주거지를 방문한 보호관찰관이 "생체반응이 없어 문을 열어야 할 것 같다"고 112에 신고해 화를 면했다. 발견 당시 항우울제를 다량 복용해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생명에 지장이 없고, 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얼마 전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한 사실도 전해졌다.성폭력 전과자는 재범 가능성이 높아 출소 뒤에도 관리를 받는다. 미성년자를 노린 흉악범이거나 누범일 경우 경찰이 거주지에 전담 인력을 배치해 관찰한다. 그런데도 초등생을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의 거주지 인근 주민들은 그의 퇴거를 요구하며 2년째 투쟁 중이다. 지난해 출소한 김근식은 의정부시 소재 갱생시설에 입소하려다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시장이 도로를 막고 농성하는 모습이 생중계될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받았는데, 추가 성추행 혐의로 재수감돼 충돌을 면했다.정부가 성폭력범의 재발을 막기 위한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소아성애 아동 성범죄자의 치료감호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의결됐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성범죄자 다큐멘터리 두 편을 간부들에게 소개하며 정책 방향에 참고하라고 권했다. 출소한 성범죄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형기를 마친 성범죄자들이 별도로 격리된 시설을 다룬 작품이다.출소자의 거주지를 강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흉악범이라도 만기 출소했다면 거주지를 택할 자유가 있다. '자유인'이 된 성폭행범의 인권과 자녀를 걱정하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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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마이크 폼페이오 회고록 지면기사
영국 해리 왕자의 회고록 '스페어(Spare)'가 지난 11일 발매 하루 만에 140만권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스페어는 왕가와 귀족 집안의 차남을 뜻한다. 고명딸은 '고명'일 뿐이라는 드라마 대사와 비슷한 맥락의 은유이다. '스페어'는 출간 전부터 해리가 형인 윌리엄 왕세자에게 폭행당했다거나, 아버지 찰스 국왕의 재혼을 반대했다는 등의 일부 에피소드가 언론을 타면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왕실의 민낯을 예고한 노이즈 마케팅이 베스트셀러의 원동력이 됐다.유명인들이 세속적 회고록으로 떼돈을 버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역사의 현장에서 주역이었던 인물들의 회고록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료가 된다. 사건의 배경과 이면을 밝힌 회고록으로 역사적 장면은 명징해지고, 때로는 새롭게 정의된다. 북한은 지금도 6·25전쟁을 북침이라 우기지만, 구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김일성을 전쟁의 장본인으로 증언했다. 덕분에 북한의 억지는 역사에서 추방됐다.최근 역사적인 미·북, 남·북·미 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지휘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이 화제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비화는 충격적이다. 폼페이오가 "중국 공산당은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김 위원장이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고 전하자, 김 위원장은 손으로 탁자를 치면서 "중국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단다. 김 위원장은 오히려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며 "중국은 한반도를 티베트와 신장처럼 다룰 수 있도록 미군 철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문재인 전 대통령도 등장한다. 2019년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때 문 전 대통령이 몇 번이나 전화해 회동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미·북 정상만 만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내줄 시간도 존경심도 없었다"고 회고했다.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실리적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문 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장 밖에서 대기했던 어색한 상황과 하노이 노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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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세배와 절 지면기사
절은 가장 정중한 인사법이요, 예절이다. 절은 혼례·설 명절·수연(壽宴)·제사나 성묘·조문·예불 등의 다양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사예절이다. 통상 절은 윗사람에게는 한 번,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두 번, 신에게는 세 번, 왕에게는 네 번, 황제에게는 다섯 번을 한다.절과 관련하여 잘못 알려진 사례도 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행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고 한 번 절 할 때마다 세 번씩 모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를 역사적 굴욕의 상징으로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린 말이다. 이는 청이 특별히 우리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황제를 만날 때 표하는 예법이었던 것이다. 즉 황제를 만날 때 행해야 하는 청나라의 예절이었다.이 같은 청의 전 근대적 예법으로 인해 청-영국의 통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희진 박사의 '옆으로 읽는 동아시아삼국지'(2013)에 따르면, 이 같은 예법을 영국이 외교적 관례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청과 영국의 통상이 백년 가량 늦어졌다는 것이다. 황제 앞까지 무릎으로 기어가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전 근대적 예법을 영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여러 유형의 절 중에서 새해 첫날 집안 어른들께 드리는 인사가 바로 세배다. 세배도 유형과 등급이 있다. 신하가 임금에게 드리는 새해인사는 조정하례(朝庭賀禮)요, 임금이 천지일월성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올리는 세배는 기곡축년(祈穀祝年)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밖에는 장유유간(長幼有間)의 인사다. 그리고 절과 관련하여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이라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보통 남자는 1번, 여자는 2번을 절하는데 큰 의식 때는 여기에 각각 두 곱씩을 더하였으나 요즘에는 남녀차별이라 하여 폐지됐다.세배는 차례를 마치고 차례에 참여했던 가족들이 집안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며 몸과 마음을 다잡는 신일(愼日) 의례다. 관점에 따라 이를 전통문화로 또는 전 근대적 예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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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복조리'의 추억 지면기사
정월 초하루, 동도 트기 전인데 누군가 '복조리요'하고 어둠을 가른다. 뜀박질이 점차 멀어지고, 집 마당엔 그가 떨군 복조리 묶음이 엎어져 있다. 1970년대, 시골 마을의 설날 아침은 복조리를 돌리는 청년의 외침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복조리를 던지고 떠난 청년은 같은 마을 이웃이다. 그냥 갔다고 공짜는 아니다. 다음날 혹은 수일이 지나 수금하러 오는데, 정가(定價)는 따로 없다. 물리거나 흥정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집마다 형편에 따라 일정 금액을 손에 쥐어준다. 청년도, 주민도 서로가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사이 아닌가. 이렇게 모인 돈은 마을 청년회나 부녀회 공동기금으로 쓰인다. 복을 받고, 답례하는 미풍양속이다.조리(조籬)는 쌀을 이는 기구다. 뜨물을 이리저리 휘저어 돌과 이물질을 걸러낸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드는데,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수공품이다. 정초에 새로 장만하는 것을 특별히 복조리라 하였다.'그 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습으로 보인다. 설날에 조리를 1년 동안 사용할 수량만큼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귀퉁이에 걸어놓고 사용하면 그 해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조리 속에 돈과 엿을 넣어두면 더 좋다고 한다'.(두산백과 참조)설 명절을 앞두고 안성 구메농사마을 주민들이 복조리를 만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연세 지긋한 아낙 셋이 조리를 엮고 있는데, 작업에 몰두한 표정이 덤덤하다. 수북하게 쌓인 조리 더미를 만드느라 지친 듯한 얼굴이다. 몸은 고되나 며칠 지나면 동네 집마다 정성 가득한 복이 전해질 터이다.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엔 차례를 지낸다. 설빔으로 단장하고 웃어른을 찾아 세배를 드린다. 만두를 빚고 떡국을 함께 먹으며 이웃과 정을 나눈다. 설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풍습들이 있는데, 맥이 끊기면서 점차 잊히고 있다. 윷놀이, 널뛰기는 봤으나 문안비, 설그림, 야광귀 쫓기, 청참은 다 뭔가.온라인 쇼핑몰에 복조리 판매대가 즐비하다. 복주머니, 소코뚜레 등을 묶은 패키지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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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5·18 피해자들의 역사적인 화해 지면기사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쿠데타 정권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빚어진 현대사의 비극이자 분수령이다. 유혈이 낭자했던 현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 전두환 정권의 통제와 감시에도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사진과 동영상에서 총검과 진압봉으로 무장한 계엄군은 군사 정권의 분신으로 깊이 각인됐다. 광주 시민들의 자위적 대응에 희생된 군·경은 거대한 분노에 묻혀 잊혔다.지난 17일 국립현충원 특전사 묘역. 5·18 3대 단체인 부상자회·유족회·공로자회 대표들이 특전사동지회 간부들과 함께 광주현장에서 희생된 계엄군과 경찰 묘소를 참배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생사의 경계를 넘어 43년 만에 화해하는 자리였다. 5·18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육군 중위 최연안의 묘'를 어루만지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군인의 숙명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엄군으로 광주에 동원된 군·경 사망자들을 5·18 희생자로 품어 준 것이다.87민주화 이후 광주를 치유하려는 국가와 국민의 노력이 멈춘 적이 없었다. 국가와 정부는 법으로 5·18 정신을 기렸고 피해 보상에 만전을 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와 인권의 시발점으로 5·18을 격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는 네 번이나 광주를 찾아 아버지 대신 사죄했고, 5·18 유공자인 박남선씨는 노 전 대통령을 문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민들과 함께 제창했다. 5·18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로 진영을 초월해 국민의 역사로 승화되고 있다.5월 단체들의 계엄군 묘소 참배는 권력의 흉칙한 폭력으로 갈라졌던 국민이 용서와 화해로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지만원식 시대착오자들이 헛소리를 해대고, 5·18을 독점하려는 진영의 소유욕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불행했던 역사 앞에 희생자였던 국민들이 써내려가는 역사적 화해 앞에선 가소로울 뿐이다. 사과 없이 떠난 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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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신의 직장'이 어쩌다 지면기사
대학 교직원은 고연봉에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다. 퇴직해서도 두둑한 교원연금이 보장돼 노후 걱정이 덜하다. 2000년대 초 IMF 여파로 극심한 취업난에, 정년 보장 관행이 깨지면서 교직원 자리가 인기 직종으로 급부상했다. 공기업과 함께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취업 경쟁률이 치솟았다.서울대 교직원 공채에 응시하려면 토익점수가 900점은 돼야 했고, 때론 영어회화 면접을 봤다. 전문직종 자격증을 가진 응시자들이 탈락할 정도였다. 대학 조교수가 지방대 교직원 채용에 응시하기도 했다. 지방대를 노크한 명문대 출신들이 많았으나 성적표는 초라했다. 모집 인원이 열 명도 안 되는 데다 모교 출신을 우대한 때문이다.교직원들 위상이 말이 아니게 됐다.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돼 대학들 재정사정이 나빠지면서다. 학령 인구의 감소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면서 급여와 복지 등 근무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임금 수준은 수년째 제자리인 데다 장래마저 불투명해지자 자발적인 이직이 늘고 있다고 한다.수도권 대학에서 100명 넘는 교직원을 감축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신안산대'는 지난주 정리해고 사실을 전하며 대상자들에 공문으로 통보했다. 전임교원과 교직원 140여 명이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신입생 충원율이 떨어져 재정 상황이 악화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입학전형 등록률은 2020년 96.4%에서 2021년 56.6%, 2022년 60.4%로 집계됐다. 2023학년도 현재 60%에 불과하다.신안산대는 '대학 기본역량진단'에서 낙제점을 받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다. 같은 처지인 화성의과학대(구 신경대), 웅지세무대, 김포대, 장안대 등도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방대뿐 아니라 수도권 소재 대학들도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나 타개책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순서대로 망한다'는 벚꽃 피는 시기가 수도권 대학들 차례까지 왔다. 학령 인구 감소로 신입생 충원율이 낮아지고 있다. 경영난이 심각한 대학들의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교직원은 더 이상 '신의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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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AI 중매(仲媒)와 '적과 흑' 지면기사
스탕달의 '적과 흑'(1830)은 격동의 프랑스 왕정복고기 야심찬 청년 줄리앙 소렐의 사랑과 야망과 좌절을 다룬 작품이다. 고전적 명작으로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조선의 23대왕 순조의 재위기간(1800~1834)에 발표된 소설이다. 소설은 본명이 앙리 베일(Henry Beyle)인 스탕달 자신의 정치적 이념 즉 나폴레옹 숭배와 혁명적 열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는 나폴레옹을 우상으로 여기며 계급적 한계를 넘어 출세와 입신양명을 꿈꾸는 인물인 주인공 줄리앙 소렐의 모습을 통해서 표출된다. '적과 흑'을 발표하기 이전인 1816~1818년 사이 스탕달은 이미 '나폴레옹의 생애'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의 나폴레옹 전기는 스탕달의 사후에 출판된다.'적과 흑'은 1827년 실제로 벌어진 치정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이를 소설화한 것인데, 이 작품은 1830년 7월 혁명의 와중에 발표되었다. 작품은 신분제 사회의 질곡을 뚫고 자아실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사랑마저 이용하는 평민(그는 제재소 목수의 아들이다) 청년의 실패가 예정된 도전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자신이 가정교사로 있던 레날 시장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다시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하다 그의 딸 마틸드와 정을 통하고 임신을 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줄리앙은 마틸드의 환심을 사고 질투심을 일으키기 위해 페르바크 원수의 부인에게 거짓 편지를 보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데 여기서 묘사된 심리묘사나 연애의 전술과 책략이 실로 압권이다. 연애의 지침, 정석으로 삼아도 될 정도다.그런데 이제 이런 연애 교과서와 소설이 더 이상 필요하지도 읽히지도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AI 기술 때문이다. 올해는 한층 더 발전된 딥 러닝 AI모델(GPT4)이 출시될 것이라 한다. 1조개가 넘는 신경망 회로로 신의 경지에 이르는 특이점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의 한 중소도시에서 AI를 통해 중매를 했는데 그 효과가 매우 좋아 5년간 845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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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고물가 시대의 설 대목 풍경 지면기사
조선시대 민담 한토막이다. 미복잠행에 나선 임금이 한 고을을 지나던 중 제사상 앞에서 상주가 노래하고 여승은 춤추며 노인이 탄식하는(喪歌僧舞老人嘆) 기괴한 광경을 목격했다. 임금이 노인에게 연유를 물었다. 노인이 답하길 오늘이 죽은 아내 제삿날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며느리가 머리카락을 팔아 제수를 마련해 면목없어 탄식하니, 아들이 노래하고 며느리가 춤을 추며 자신을 위로하는 중이라 했다.임금이 크게 감동해 아들에게 곧 치러질 과거시험 응시를 권했다. 아들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시제(試題)가 '상가승무노인탄', 즉 자기 집 제삿날 풍경이었다. 당연히 장원으로 급제했고 높은 벼슬에 올라 잘 살았다고 한다.제사를 통치 수단으로 삼은 유교의 나라 조선의 전형적인 효행설화인데, 옛날 옛적 이야기다. 제수 마련을 위해 머리카락 자를 며느리가 있을 리 없고, 있어도 이상한 시대이다.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던 여성들도 구세대가 됐다. 2017년 청와대 홈페이지엔 제사를 법으로 폐지하자는 국민청원이 올랐다. 무엇보다 제사를 전승하려는 세대간의 의지에 격차가 크다. MZ세대의 2, 3세 시대에는 제사가 돈 주고 체험하는 전통행사가 될지도 모른다.베이비붐 세대까지는 제사 문화에 진중한 편이지만, 형식의 파괴는 과감하다. 4대 제사가 3대 제사로 간소화되고, 아들이 없는 집에선 딸이 제주(祭主)를 맡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추석 때 성균관이 파격적인 '차례상 표준안'을 공표한 것도, 제사 문화를 전승하려 격식을 포기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였다.그래도 축적된 문화의 저력은 여전하다. 오는 주말 설 연휴를 앞두고 제수와 명절 선물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의 발길로 전통시장과 쇼핑몰이 붐빈다. 추석과 설 명절엔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모처럼 모이는 가족들의 상차림을 위해 전 국민이 지갑을 연다. 일 년에 두 번 전 국민이 물가 체험을 통해 살 만한 시절인지 판단한다. 정부가 명절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런데 현장에서 곡소리가 난다. 올라도 너무 오른 물가 탓이다.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이 전통시장 25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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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점심시간 문 닫는 은행 지면기사
2020년 상반기,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영업시간을 조정했다. 오전 9시~오후 4시에서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1시간 단축됐다. 코로나 19 여파로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자 대면 접촉 기회를 줄이는 사회 분위기에 동참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해제된 지 수개월이 지났어도 영업시간은 복원되지 않는다. 불편함을 참다못한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은행 노사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이후 단축 여부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다.원성이 높아지자 금융위원장이 나섰다. 지난 5일 "방역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마당에 영업시간도 정상 복원하는 게 은행권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와 기대에 부합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은행연합회장은 "은행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 불편에 공감한다"면서도 "코로나 극복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영업시간 정상화에 대한 협의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불편·불만은 알겠으나 당장은 어렵다는 게다. 금융 노사는 TF를 구성해 정상화 여부와 시기를 논의할 예정이나 진통이 예상된다.고객들 불만지수를 높일 악재가 또 터졌다. KB국민은행이 점심시간에 1시간 동안 영업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군부대와 행정기관 출장소 등 일부 점포에 한정된 고육책이라고 하나 역풍이 만만치 않다. 직원이 달랑 두 명인 점포의 교대근무가 어렵다는 해명엔 고객 불편은 안중에도 없느냐고 한다.지난해 국내 금융권은 사상 최대 이익을 실현했다. 고금리 행진과 예·대마진 확대에 따른 반사다. 직원들에게 평균 300% 넘는 성과급이 주어졌고, 희망 퇴직자에 수억 원씩 위로금이 지급되면서 자발적인 퇴직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유례없는 물가 상승에 고금리로 경제가 가라앉고 서민들 고통이 커지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진풍경이다.점심에 짬을 내 은행을 찾았던 직장인들은 연차를 내야 할 처지가 됐다고 푸념을 한다. 점포를 줄여 대기 줄이 길어진 마당에 단축된 영업시간은 그대로 두고, 점심에도 문을 잠그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고연봉을 받는 '신의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