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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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임계점 넘은 중국 전랑외교 지면기사
1980년대 중국은 서방의 자본과 기술에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자존심을 감추고 실력을 기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대이다. 도광양회의 수모는 찰나에 불과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의 생산공장이자 소비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은 미국의 세기를 종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국으로 등극했다.중국이 21세기 외교전략을 전랑외교(戰狼外交)로 전환한 배경이다. 중화제일주의 외교다. 중국과 척을 지면 호전적인 늑대로 돌변해 물고 뜯고 할퀸다. 홍콩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돈으로 서남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원과 사회간접자본을 약탈해 일대일로로 연결 중이다. 대만 무력통일 의사를 감추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 비밀경찰서를 설치하고 운영한다.국수적 중화주의에 고무된 중국인들도 전랑의 대열에 합류했다.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전 세계 청년들에게 중국 유학생들이 떼로 덤볐다. 석탄분쟁으로 사이가 벌어진 호주에선 중국 유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장악하고 현지 학생들을 폭행했다. 국내 대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중국 유학생들이 철거하는 일도 있었다.그래도 세계가 중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깨닫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중국이 '우한 폐렴'을 은폐하는 동안 바이러스는 세계로 퍼졌다. 6억7천만명이 감염됐고 670만명이 사망했다. 세계의 비난에 중국은 시치미를 뗐고, 세계가 백신 방역에 전념하는 동안 '제로 코로나' 봉쇄정책으로 나라 문을 닫았다. 당시 중국에 체류하던 한국인과 중국 방문자들이 겪었던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중국이 지난해 말 인민 봉기에 백기를 들고 하루아침에 봉쇄를 풀고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세계 각국 공항에 보복 관광에 나선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발 제2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다. 방역에 성공한 세계를 향한 2차 바이러스 테러에 가깝다.많은 나라가 중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우리도 중국인의 단기입국을 불허했다. 당연한 자위권 발동이다. 적반하장, 중국이 한국인 단기 비자 발행 중단으로 맞불을 놓았다. 중국은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은 안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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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노자안지(老者安之)와 연금 인상 지면기사
초고령 사회라 해도 90세, 100세는 드물다. 초고령인 91세를 망백(望百), 99세를 백수(白壽)라 한다. 한자 일백 백(百)에서 한 획을 뺀 흰 백(白)자를 써서 백수라 한 것이다. 100세는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고 해서 상수(上壽)라 불렀다. 조선시대와 1900년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5세였고, 최고의 케어를 받는 왕들조차 평균수명이 46세였다. 아무리 장수를 한다고 해도 돌아보면 지나온 세월은 순식간이고,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다. 그러하기에 생일을 귀하게 여기고 환갑에 고희연과 팔순 잔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령사회가 되다 보니 요즘에는 환갑잔치가 사문화(死文化) 돼가고 있다.조선시대에는 50세가 넘으면 노인으로 간주하고 궁궐 조성이나 성역(城役) 같은 부역에 동원하지 않았다. 60세가 되면 모든 국역(國役)에서 완전히 면제되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관리가 60세가 넘으면 지방관으로 보내거나 변방으로 배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70세가 넘으면 자녀들을 공역에서 면제해 주고, 정2품 이상의 관리들은 나라에서 기로연(耆老宴)을 베풀어주었다. 심지어 80세가 넘으면 양인과 천인을 막론하고 관계(官階)를 부여해 주었다고 한다. 공자가 말한 효와 노인 우대 정책, 이른바 노인을 편하게 모시는 노자안지(老者安之)를 실천한 것이다.'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왕이 고령자들에게 하사품을 내리고 양로연을 베풀었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온다. 인망이 두터운 70세 이상의 고위 관료들은 기로소(耆老所)라고 해서 국가 공인 경로당에 들어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렸던 것이다. 또 70세 이상의 퇴직한 관리들에게는 나라에서 궤장(궤杖)이라고 해서 자리에 앉아 팔뚝을 기대는 일종의 안석(案席)인 받침상 곧 궤(궤)와 함께 지팡이(杖)를 내려주었고, 궤장을 받은 관리의 자녀들은 시험 없이 관리로 특채될 수 있었다.이번 달부터 물가인상분 등을 반영하여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5.1% 인상해 지급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노령연금을 받는 523만명이 수혜를 받는다.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 생계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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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천의 건축자산 지면기사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경성 중심가에 백화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포목과 잡화를 팔던 오복점(吳服店)이 대형 쇼핑점으로 변신한 것이다. 미쓰코시(三越), 조지야(丁子屋), 미나카이(三中井), 히라타(平田) 백화점이 각축을 벌였는데, 죄다 일본 자본이었다. 그중 미쓰이(三井) 재벌의 미쓰코시는 일본 동경 긴자거리에 본점을 둔 출장소로, 일본인과 조선인 상류층만 드나드는 명품점이었다. 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이다.미쓰코시는 1930년대 후반 인천에도 진출했다. 2층 건물인 야마모토 포목점을 확장한 것으로, 국내 출장소는 인천이 유일했다. 위치는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인이 밀집해 살던 지역의 중심상가 사거리였다. 경성 상류층이 백화점을 드나들며 부(富)를 과시했던 것처럼, 인천에서도 일본인과 내국인 상류층의 소비 해방구가 됐을 터이다. 해방 후 서울 미쓰코시가 동화백화점으로 바뀌면서 인천출장소도 동화백화점이 됐다. 현주소는 중구 중앙동 3가 2-2로, 마트와 통닭집이 입점해 있다.인천시가 미쓰코시 백화점 등 중·동구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 4개소를 기록화한다. 오랜 역사를 품은 건축자산의 가치와 의미를 기록화하고 소멸을 막아 후세에 보전하자는 취지에서다. 건축자산이란 문화재는 아니나 사회·경제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말한다. '가와바타 창고', '이십세기 약방', 해안성당 교육관이 함께 선정됐다.시는 건축물의 재료와 구조, 설계를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상세조사는 오는 6월께 마무리된다. 3D 스캔 기법을 활용한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건축자산에 담긴 이야기와 가치를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원형을 살리되, 카페나 개인미술관 등으로 활용하도록 도와 건물주들의 자발적인 보전 노력을 유인한다는 구상이다.인천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 도시다. 열강에 처음 문을 연 인천항은 수탈과 교역이 맞물리는 영욕의 산증인이다. 붉은 벽돌로 무장한 가와바타 창고는 철물점 용도로, 중구청 앞 적산가옥 거리의 대표 건축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마름모 창문 등 독특한 양식으로 눈길을 끈다. 차이나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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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만약 지금 DJ라면?' 지면기사
이주민들의 나라 미국은 건국 신화가 없다. 원주민인 인디언의 신화는 있지만 다인종 다문화 이주민이 수용할 리 없다. 대신 미국을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시킨 13개 주 대표 147명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기린다.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등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미국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반신(半神)의 반열에 올려놓고 추앙하며, 국가적 위기 때마다 소환해 미합중국의 초심을 되새긴다.우리 현대사에도 국민의 뇌리에 박제돼 늘 현실로 소환되는 정치인들이 있다. 박정희, 김대중이 으뜸이다. 정치적 적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한 시대의 두 상징으로 현대사를 완성한 역사적 커플이자 콤비였다. 박정희는 오천년 빈곤을 타파한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다. 김대중은 인동초의 세월을 인내하며 민주주의의 마침표를 찍은 민주화의 표상이다.두 사람을 바라보는 진영과 지역의 시선의 차이는 여전하다. 박정희는 보수의 연인이고 김대중은 진보의 애인이다. 그래도 산업화와 민주화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두 영웅의 역사적 업적은 진영을 초월한다.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는 2013년 '달빛동맹'을 맺고 두 상징의 화해를 선언했다. 두 도시를 잇는 내륙철도 건설에 힘을 모은다. 역사는 이렇게 긴 호흡으로 시대를 통합한다.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7일 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만약 지금 DJ라면?'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초청강연에서 "지금 DJ(김대중)가 있었다면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쳐서 싸워라'고 했을 이야기가 저는 들리는데 여러분 귀에는 안 들리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5일 출연한 한 유튜브에선 "이재명이 김대중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송에선 '김대중의 고초와 이재명의 고초를 동급'으로 설명했다.반응이 싸늘하다. 광주 시민들은 '김대중 격하'이자 'DJ 모독'이라고 격분한다. 이재명만을 위한 박지원의 DJ 소환은 패착이다. 목숨 걸고 민주화를 완성한 김대중의 고난과 다양한 개인 비리 및 범죄 의혹으로 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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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지면기사
LA 다저스 간판 투수 클래이턴 커쇼(34)는 경이로운 궤적의 커브볼을 구사한다. 칼날 제구력으로 상하좌우 구석을 찌른다. 폭포수 같은 낙차와 빼어난 컨트롤에, 타자들은 알면서도 당한다. 다저스 프랜차이즈 스타로, 2011~2014년 4년 연속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 세 차례 사이영상과 월드시리즈 우승, 리그 최우수선수상(MVP) 등 이미 전설이 됐다.LA 에인절스 투수이자 타자인 오타니 쇼헤이(28)는 투·타 겸업이란 불가능을 넘어선 초인(超人)이다. 선발 투수 겸 지명타자, 외야수로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정상을 모두 밟았다. 2021년 아메리칸리그 MVP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지난해 베이브루스 이후 104년 만의 10승-10홈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15승-30홈런 및 규정 이닝+규정 타석 동시 달성 등 진기록을 달성했다.오는 3월 개막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에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커쇼와 일본 대표팀 오타니가 나란히 출전할 전망이다. 벌써 야구팬 가슴을 뛰게 하는 충분하고 당연한 이유다. 미·일이 예선을 거쳐 4강에 오르면 인간계를 넘어선 두 거인(巨人)의 투타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WBC에 참가하는 우리 대표팀 선수 명단이 발표됐다. 최지만(피츠버그), 김하성(샌디에이고) 등 현역 메이저리거 3명이 포함됐다. 2루 부문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한국계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도 합류해 내야의 안정감을 더했다. 재활 중인 류현진(토론토)이 빠져 아쉽지만, 메이저리거 김광현(SSG)과 마무리 고우석(LG) 등 최강 전력을 선발했다는 평이다.2007년 출범한 WBC는 최강 미국과 일본이 최정예가 아닌 유망주 위주로 대표단을 꾸리면서 김빠진 축제가 됐다. 하지만 올해는 각국이 최상 전력으로 출전하게 돼 야구 월드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대다. 20개국이 예선리그에 참가하는데, 미·일 외에도 쿠바, 베네수엘라, 캐나다 등 전통의 강호들이 총출동한다.한국은 첫 대회 4강에 올랐으나 지난 대회 예선 탈락했다. 전력도 예전만 못하다고 하나, 이강철 감독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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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하대 '논문 없는 석사학위' 지면기사
인천의 인하대학교가 올해 1학기부터 논문 대체 창업트랙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창업활동을 평가해 석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이다. 석사 학위에 한해 학칙에 따라 학위논문을 대체할 수 있는 법을 적용한 국내 최초 사례라 한다.논문은 학문의 세계에서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볼 수 있는가 내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학자는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논문으로 인정받고 유지하고 전수한다. 논문의 생명은 정직이다. 표절과 조작은 죄악이다. 학자에게 논문은 성경만큼이나 신성하다.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논문은 표절과 조작의 상징이 됐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사태가 결정적 계기였다. 줄기세포 연구로 젖소 영롱이를 복제했다는 황씨를 나라와 국민은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확신하며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2005년 인간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황우석 사태로 대학과 학계는 논문 표절, 조작에 대한 검증을 강화했다. 전문적인 논문 표절 검사 프로그램(카피 킬러)도 등장했다. 유탄이 엉뚱하게 정치권으로 튀었다. 표절로 얼룩진 석·박사 정치인들의 논문들이 속속 적발된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시비를 피해 간 후보자들이 드물 정도였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김명수 전 사회부총리도 표절 시비에 걸려 취임 직후 사퇴했다. 논문 표절로 망신을 당한 정치인, 공직자, 학자들을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다.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2005년 행정학 석사 논문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이 후보는 표절을 인정하며 해당 대학에 "제발 (논문을) 취소해 달라"고 사정했다. 민주당은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부인 김건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으로 맞불을 놓았고, 논란은 진행형이다.인하대의 '논문 대체 창업트랙'은 엄격한 심사를 통과할 정도의 창업계획이라면, 해당 분야의 석사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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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현대판 환곡 아파트 대출금 지면기사
아파트는 공동주택의 대명사다. 오늘날 아파트 같은 대형 공동 주택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슐라(insula)라고 해서 다층 다세대 주택이 있었던 것이다. 인슐라는 1층에는 상점이 들어섰으며, 2층에는 귀족 등의 부유층이 그리고 3층과 4층에는 돈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살았다. 심지어 인슐라보다 앞선 공동주택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가 그것이다. 신전인 지구라트는 거대한 계단형 탑으로 조성되었는데, 여기에도 주거형태가 있기에 지구라트를 아파트의 기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아파트의 활성화는 도시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1839년 미국 뉴욕에 이민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지은 테너먼트(tenement) 같은 다층 다세대 임대 주택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1932년 일제강점기 때인데, 서울 충정로에 5층 규모로 지어진 유림아파트가 이 땅에 들어선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 목조아파트도 있었는데, 총독부가 지은 4층짜리 목조건물인 풍전아파트도 있었다.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 을지로 4가와 청계천 4가 사이에 들어선 중앙아파트다.주택으로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서울이 62.4%로 가장 높고, 전국적으로는 우리 국민 61.4%가 아파트에서 산다. 아파트는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대도시 중심의 현대사회에 최적화한 주거 방식이다. 편리성과 보안 그리고 관리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고금리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아파트 시세가 급락하고 있다. 연말 기준 세종시가 16.74%, 대구시가 11.91%, 인천시가 11.81%, 경기도가 9. 61%, 서울시가 7.2% 떨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파트가 재산의 거의 전부인 서민들 입장에서는 아파트값이 폭등해도 문제고, 너무 떨어져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어느 때보다 정부의 세심하고 적극적인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 삼정이 문란하던 시대 옛날 우리 조상들은 환곡(還穀)으로 평생을 시달렸다.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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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작심삼일(作心三日) 지면기사
작심삼일은 맹자(孟子) 등문공(騰文公) 하편, '작어기심(作於其心)'이란 말에서 유래됐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문헌엔 작어기심, 작어기사(作於其事)란 표현은 있으나 삼일(三日)이란 말이 없다. 후대에 '어떤 연유로 무엇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수일이 지나면서 돌연 (마음이) 바뀌게 됐다'는 의미로 변환됐다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조선 선조 때 좌의정 류성룡이 역리(驛吏)에 명해 전국 고을에 공문을 보내라 했다. 역리는 며칠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류성룡은 이를 꾸짖으며 이유를 물었다. 역리가 답했다. "우리 속담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위에서 저희에게 많은 업무를 지시합니다. 그리고는 며칠이 안 돼 취소하곤 했습니다. (중략) 이번에도 저희는 사흘 후에 고칠 것을 예상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 유몽인(1559~1623)이 지은 민담서 '어우야담'에 실린 일화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도 작심삼일과 같은 의미다.새해가 되면 누구나 마음을 새롭게 한다. 지난해를 허비했다고 자책하면서 올해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헬스클럽, 필라테스, 다이어트, 금연, 금주, 건강관련 업종이 정월에 반짝 특수를 누리는 배경이다.'연초 랠리'는 주식시장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해당연도의 시작이기도 하고 제도가 달라지기도 해 주가변동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1월엔 대체로 제약사들의 주가 흐름이 양호한 까닭도 다르지 않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만큼 건강을 더 챙기겠다는 심리가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새해를 맞아 헬스클럽에 다녀보자고 결심했다면 얼마간 미뤄야 한다. 처음 며칠은 열심히 오가겠으나 보름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단 1개월만 등록하기를 권한다. 덜컥 3개월이나 연간 회원증을 끊는다면 후회만 더 키울지 모른다.작심삼일은 인간의 나약한 의지를 꼬집는다. 중국 일본에도 비슷한 속담과 경구가 있다. 설계도가 거창하면 부담만 커지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법이다.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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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펠레' 지면기사
베이비붐 세대가 악동이던 시절, 축구공 하나면 아이들은 행복했다. 가죽 공이 귀했던 시절 고무 공을 차면서도 축구엔 진심이었다. 발 재간이 좋은 아이들은 펠레와 유세비오(에우제비오) 시늉을 내며 단독 드리블에 열중했고, 골키퍼를 보던 아이들은 야신을 흉내냈다. 브라질, 포르투갈, 소련이라는 나라는 몰라도 이름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축구 전설들이다. 그 중에서도 펠레는 차원이 달랐다. 축구가 펠레였고, 펠레가 축구였다.축구 황제 펠레가 별세했다. 예고된 임종이었지만 조국 브라질은 슬픔에 잠겼다.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도 국가색인 황금빛 조명으로 갈아입었다. 상징이 상징을 추모하는 야경은 숙연하고 장엄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는 브라질 자체였던 펠레를 보여준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17세 펠레가 조국에 우승컵을 안기자, 브라질은 잡종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비로소 브라질이 됐다고 한다. 펠레 자체가 국가를 상징한 기관이었다는 증언도 인상적이다.비판도 있었다. 펠레가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동안 브라질은 군부 독재로 신음했다. 인종탄압에 저항하고 반전 운동에 앞장섰던 무하마드 알리처럼 펠레가 군부 독재에 맞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세력에게 펠레는 독재 정권이 두려워한 유일한 문민권력이었다. 하지만 펠레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고, 독재자는 펠레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펠레와 갈등했던 감독을 교체한 것도 독재 정권이었다. 그래도 브라질 국민은 펠레의 침묵을 비판하면서도 펠레의 축구는 열렬하게 사랑했다.축구사에 숫자로 남긴 펠레의 업적 보다도, 지구촌을 축구로 묶어 낸 펠레의 시대가 더 위대하다. 조국 브라질은 축구로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로, 세계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인으로 펠레를 기억하고 추모한다.1974년 은퇴 경기 직후 펠레가 관객들과 함께 연호한 "러브 러브 러브(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가 인스타그램에 그의 유언으로 올랐다. 1940년 브라질 사람으로 태어난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가 2023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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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케렌시아(Querencia)' 지면기사
500㎏ 넘는 황소가 미친 듯 날뛴다. 날렵한 투우사의 하체가 리듬을 타고, 흥분한 관중은 괴성을 지른다. 피로 얼룩진 광기(狂氣)는 절정으로 치닫고, 창칼에 찔린 등은 검붉게 물든다. 성난 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우사를 향해 재돌진한다. 목표물은 희미해지고, 본능적 공포에 몸서리친다. 기진(氣盡)한 숨, 풀 죽은 기색에 투우사는 더 맹렬해진다. 예봉을 꺾고 희롱하며 쉴새 없이 찌르고 헤집는다.한발 물러선 소는 숨을 고르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생과 사를 가를 마지막 합을 잠시 미루고 휴식을 취한다. 대개는 자신이 뛰쳐나온 출입구 주변 공간에서다. 벽을 등지고 다시 상대를 노려본다. 짧은 안식으로 힘을 낸 투우는 앞발을 박차고 맹렬한 기세로 나아간다. 그리고 최후를 맞는다. 안식처(安息處) 또는 피난처를 뜻하는 스페인어 '케렌시아'는 죽음을 앞둔 투우의 슬픈 노래다.젊은 시절 스페인을 찾았던 작가 헤밍웨이는 투우에 푹 빠졌다. 전역을 돌며 경기를 보고, 유명 투우사와 교유했다. 어느 날 칼에 급소를 맞은 소가 죽기 전,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정한 공간을 찾아 숨을 고르는 것이다. 그의 작품 '오후의 죽음'은 투우, 투우사, 그리고 투우마니아(Mania)의 세계다.시간을 쪼개는 건 인간만이다. 연말, 연시는 본디 다를 게 없는데 자못 비장한 얼굴들을 하고 제야를 맞는다. 전날은 일몰을 보고, 다음날엔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빈다. 마치 다른 태양신을 영접하는 것처럼.연말엔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한해 고생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번잡해도 고향 마을, 휴양·관광지를 찾아 나서는 까닭이다. 심신(心身)을 내려놓을 안식처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빼어난 경치는 눈을 맑게 하고, 낯선 땅에서의 조우(遭遇)는 마음을 들뜨게 한다. 뭉친 근육,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야 새해가 가볍다.임인년을 보내고 계묘년을 맞는다. 유례없는 물가 폭등, 고금리, 한파로 겨우살이가 힘겹다. 동트기 전, 가장 어둡다. 섣달 냉기가 한여름 폭염(暴炎)을 잉태한다. 겨울 한파는 삼복더위가 뱉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