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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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사도광산 지면기사
사도(佐渡)광산, 일제의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17세기부터 금을 생산하다가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구리·철 등 전쟁 물자를 조달했다. 1939년부터 조선인 1천500여명은 어둡고 숨 막히는 깊숙한 갱도 안에서 착암(鑿岩·바위에 구멍을 뚫음)·운반 작업에 혹사당했다.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돌아온 이들도 진폐증 등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일본 정부는 애초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16~19세기 중반으로 시기를 한정했다. 세계문화유산의 결격 사유인 '조선인 강제동원' 흑역사를 제외하려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지난 6월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전체 역사를 설명하라고 권고했다. 그래도 우리 정부가 반대하면 위원국 전체 동의 방식으로 결정되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불가능했다.일본을 경제·안보 협력 파트너로 인정해온 윤석열 정부는 강제노역 역사 전시물 설치와 매해 희생자 추도식 개최를 조건으로 동의했다. 결국 사도광산은 지난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유산위원회(WHC) 21개 위원국의 전원동의(consensus) 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화장실을 다녀온 일본의 태도가 돌변했다. 2015년 군함도(端島·하시마 탄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에도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파기했던 일본이다. 이번엔 전시장 꼼수로 뒤통수를 쳤다. 사도광산에서 2㎞나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에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을 설치했다. 전시물에는 '노동자 모집과 징용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에 투입된 비율이 높았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강제노역'이라는 단어는 없다. 국내 반일 여론을 무릅쓰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윤석열 정부만 바보가 됐다.전범 국가의 치부를 지우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집요하고 치밀하다. 전범의 역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둔갑시키려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한국 정부와의 약속을 조롱했다.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역사관에 치가 떨린다. 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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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한국 여자양궁 올림픽 10연패 지면기사
한국 여자양궁이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여자양궁 대표팀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에서 슛오프 끝에 중국에 5대 4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올림픽 10연패의 대업을 달성했다. 한국양궁의 적수는 이제 한국양궁 자신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양궁은 인간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양궁 사상 최초로 3관왕을 달성한 안산도 국내 선발전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정도로 한국양궁은 선수층이 두텁고 선수들 간의 실력도 백지장보다 더 얇은 나노미터급 차이에 불과하다. 이로 미루어보면 우리에게는 남다른 활쏘기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우리 활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국조오례의', '무예도보통지',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의 국내 사료와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국외 자료가 전부다. 활에 대한 연구도 1929년에 나온 이중화의 '조선의 궁술'이 최초다. 이는 일제강점의 상황에서 활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고취하고자 한 민족주의적 연구다.우리나라 활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고산리 유적과 서포항유적 1기층, 오산 제1문화층 등에서 석촉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반구대 암각화와 경주 금장대 암각화 그리고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에서 말을 탄 무사가 호랑이와 사슴을 활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으니 우리 활의 역사는 최소 기원전 1만~7천년 사이부터 본격화했음을 알 수 있다.이처럼 오랜 활의 역사만큼 역대급 명궁들도 많았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신궁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고, 조선의 22대왕 정조 또한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양궁의 10연패 뒤에는 이런 찬란한 역사가 바탕에 깔려 있다.양궁은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됐고 공교롭게도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가 창설되자마자 한국양궁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4년 서향순의 LA올림픽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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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무너진 국가정보기관 지면기사
독일 통일 후 드러난 구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정보전 실체에 구 서독 사회는 경악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동독 정보원들이 서독 정계·재계·학계·종교계·언론계와 학생운동권에서 암약했다. 첩자로 포섭된 서독 연방의원들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의 비서 귄터 기욤을 비롯해 서독과 나토의 주요 요인 주변에 수천명의 정보원을 심었다.정보전은 국가의 운명과 사활을 결정한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에서 정보전의 기초가 확립된 이유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편에서 정보원을 적국의 일반인과 관리와 간첩을 포섭한 향간(鄕間)·내관(內間)·반간(反間)과, 적지에 정착했거나 적지를 오가는 사간(死間)·생간(生間)으로 구분했다. 향관·내관과 이중간첩인 반간은 적지에 심어 놓은 현지 정보원이라면, 사간과 생간은 적지에 거주하거나 오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자국 비밀 정보원이다. 모두 신상이 극비인 현대판 '블랙요원'들이다.1992년 KGB 요원 바실리 미트로킨이 KGB공작파일을 들고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87세 영국 할머니 멜리타 노우드가 KGB 고정간첩으로 밝혀졌다. 핵무기 정보를 수집한 공로로 소련 정부의 훈장까지 받고 60세에 은퇴한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인정했다. 첩보전의 성패는 기밀 유지에 달렸다. 요원들의 신상 공개는 최악이다. 정보망이 무너지고, 복구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정보 공백은 국가 안위에 치명적이다.국군 대북 정보기관인 정보사령부 소속 해외 요원들의 신상과 개인정보가 북한 등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교관으로 위장한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위장한 블랙요원의 신상이 다 털렸단다. 우리가 파견한 사간·생간은 물론,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향간·내관·반간 등 휴민트 자원들이 일거에 노출됐다면 대북 정보전의 일선이 붕괴된 셈이다.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전당포를 운영할 정도로 정보사 요원의 신상은 퇴직 후에도 국가 기밀이다. 정보전에 목숨을 건 무명 용사들을 수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무너졌다. 올해부터 대공수사가 박탈된 국정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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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대졸 백수 400만명 지면기사
대졸 백수들이 400만명을 넘는단다. 대졸 백수라는 단어의 어감이 최근 졸업자를 말하는 듯 착시를 불러와 당혹스러운 수치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대학(전문대 포함)을 갓 졸업한 청년부터 60세 이상까지 포함된 통계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올 상반기 월평균 405만7천833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천명 늘어,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상반기 최고점을 찍었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는 올해 상반기 총 1천616만6천명인데 대졸 이상 비율이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대학 진학률이 이미 70%를 넘어선 마당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백수 입학'이다.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시작해도 그렇다. 재학생들은 백수가 두려워 졸업을 미루니, 휴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올 5월 기준으로 휴학한 적이 있다는 비율은 46.8%, 대학 졸업 소요 기간도 4년 3.8개월로 역대 최장이다.청년들은 첫 직장을 잡기까지 평균 11.5개월을 백수로 지낸다. 지난해보다 1.1개월 또 늘었다. 대졸 이상은 8.3개월, 고졸 이하는 1년 5.6개월이다. 이중 3년 이상 걸린 '취업 삼수생'이 9.7%나 된다니 취업의 벽을 실감하게 된다. 어렵게 취업에 골인해도 10명 중 3명은 1년 이하 계약직이다. 시간제 근로 비율도 23.4%로 최고 수준이다. 60%는 첫 월급이 200만원 미만으로 박봉에 쪼들린다. 월 200만~300만원은 35.2%, 300만원 이상은 5.1%뿐이다. 첫 일터에서 사표를 던지는 이유 중 45.5%가 열정페이·근로조건 불만족이라니 수긍이 간다.대졸 청년들은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느라 백수 생활을 감수한다. 실력과 운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행복은 잠시뿐이다. 정년을 한참 남겨둔 선배들이 등 떠밀려 은퇴하는 모습에서 불안한 미래를 직감한다. 조기 퇴직자 앞에 열린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악몽이다. 정년퇴직의 행운을 누려도 100세를 누리려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사람이 태반이다. 올해 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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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캔돈'(CAN豚) 열풍 지면기사
삼겹살이 포장만으로 MZ들이 열광하는 신상품으로 변신했다. 국내 1위 돈육 브랜드 '도드람한돈'이 이달 초 출시한 '캔돈'이다. 캔에 담은 돼지(豚)고기라니, 상품명 자체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최초의 자부심이 담겼다. 전 국민이 삼겹살 소믈리에인 삼겹살의 나라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포장 방식에 소비자들이 홀딱 빠졌다.캔 모양의 페트(PET) 용기에 생삼겹살을 담은 '캔돈'의 장점이 대단하다. 기존의 사각형 합성수지 용기는 유통과 소비 과정에서 구겨지거나 포장 랩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마트에서 대용량으로 포장 판매하는 삼겹살은 소비하지 못해 냉동실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캔에 담으니 모든 불편이 해소됐다. 한 캔에 삼겹살 300g이니 캠핑장과 가정에서 필요한 만큼 구매해 당일 소비하기 쉽고, 이동시 보관도 간편해졌다. 포장만으로 유통과 소비에 혁신을 일으킨 셈이다.각종 SNS 커뮤니티에 MZ들의 캔돈 체험 영상이 즐비하다. 반응은 열광적이다. 1, 2인 가구가 대다수인 MZ세대 주거 형태와 찰떡 궁합인 신상이란다. 나홀로 캠퍼들은 '캔돈'으로 캠핑의 신세계가 열렸다고 호들갑이다. 삼겹살이 가능하니, 모든 육류와 부위가 캔으로 포장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제 고기 구매 기준이 중량에서 캔 단위로 바뀔 수도 있다.캔돈을 히트 시킨 '도드람한돈'은 이천에서 시작한 경기도 향토 기업이다. 1990년 이천의 13개 양돈 농가가 도드람양돈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사료업체와 유통업체의 횡포에 지친 양돈 농가들이 생산·도축·가공·유통 전 과정을 직영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조합 이름은 이천 도드람산에서 따왔고, 정관 3조에 조합 주 사무소를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1931'로 명기했다. 조합 경영에 이천 축산인의 명예를 걸었다.13개 양돈 농가의 독립 선언 30여년 만에 조합은 3조원을 훌쩍 넘는 연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역의 명예가 걸린 '도드람' 브랜드의 가치에 걸맞은 품질 유지에 정성을 바친 결과일 테다. MZ세대를 사로잡은 '캔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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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시대의 상징, 김민기 지면기사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김민기는 서울미대 2학년 재학 중이던 1971년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의 작곡가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슬'과 함께 '상록수'는 반독재 집회와 시위 때마다 광장에 울려 퍼졌다. 김민기는 천재적 감수성으로 삶을 은유했건만, 투쟁의 상징이 됐다. 군부 독재정권은 그의 노래에 반정부 딱지를 붙였다. '아침이슬'을 포함해 '친구', '꽃피우는 아이', '저 부는 바람' 등 총 10곡의 자작곡이 수록된 한국 최초 싱어송라이터 음반 1집은 판매금지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김민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념의 경계에서 추앙과 박해를 동시에 받았다.1973년에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극음악을 작곡했고, 1977년 군 만기제대 후에는 부평의 한 봉제공장에 취업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담은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발표했다. 1984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내기도 했다. '운동권 노래의 대부'라는 수식을 어느 순간 운명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30대의 김민기는 민통선 소작농으로, 탄광 광부로, 김 양식장 잡역부로 살았다. 세상 낮은 곳에서 '앞것' 뒤에서 일하는 묵묵한 '뒷것'의 책임을 다했다.1991년 40세부터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고 공연 연출가로서 혼을 쏟았다. 전 배역 공개 오디션이라는 파격 시스템은 '학전'을 실력파 배우의 산실로 만들었다. 김윤석·황정민·설경구·조승우·장현성은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기도 했다. 1994년 초연해 15년 동안 4천회 이상 무대에 올린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됐다. 돈 안되는 아동·청소년극에도 소명을 이어간 '학전'은 재정난으로 33년 만인 올해 3월 폐업했다. 학전에 대한 '책임 있는 미련함'은 김민기 정신으로 영원히 회자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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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칠월의 문학 지면기사
칠월이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육사(1904~1944)의 절창 '청포도'가 그러하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화자가 고대하며 기다리는 청포를 입은 손님이 육사의 정치적 멘토이자 독립투사였던 윤세주(1900~1942)임을 밝히는 연구도 있다. '청포도'는 당시와 고전에 해박했던 이육사의 소양을 고려하면 당시의 영향이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두보의 시 중에 "맑고 푸른 강 위를 나는 새는 더욱 희고/푸른 산의 꽃이 타는 듯이 붉구나/이 봄이 가는 것을 또 보게 되니/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리오"라는 오언절구가 있다. "강벽조유백(江碧鳥逾白)"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기와 승에서는 푸른색과 흰색 그리고 푸른 산과 붉은 꽃을 등장시켜 색조가 선명하게 대비되도록 하는 기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당시는 처음 기와 승에서 풍경을 제시하고 전과 결 부분에서 화자의 감정과 의도를 드러내는 경정(景情)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육사의 '청포도' 또한 푸른 청포도와 청포(靑袍) 그리고 은쟁반과 하얀 모시 수건처럼 색조를 대비시켜 둔 다음, 정치적 동지를 기다리는 시인의 속마음과 의도를 드러내고 있어 역시 당시의 '경정 구조'를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육사의 '청포도'와 호응을 이루는 시가 한 편 더 있으니 김달진(1907~1989)의 '청시(靑 枾)'가 그것이다. '청시'는 푸른 감이라는 뜻인데, 그가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1940년에 펴낸 같은 제목의 시집도 있다. '청시'에서 말하는 6월은 음력일 가능성이 높아 양력 7월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푸른색이 보여주는 청량함과 짙푸른 생명력이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배수아의 소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1995) 역시 색채 이미지를 잘 활용한 문제작이다.푸른색은 칠월의 색이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폭우와 장마 속에 간간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난폭한 더위는 칠월의 푸르름과 계절의 낭만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위협요인이다. 충남의 수박 재배 산지가 60% 이상 침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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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천시 '상상플랫폼' 지면기사
파리 올림픽의 최대 화제는 센(Seine)강이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수상 개막식 무대이자, 일부 수상종목 경기장인데 최악의 수질로 국제적인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강물에선 악취가 나지만 강변엔 문화의 향기가 그윽하다. 오르세미술관 덕분이다. 파리 3대 미술관으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을 비롯해 신고전주의와 인상파 대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센강의 경기장보다 미술관을 찾는 올림픽 관광객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1973년 문 닫은 기차역이 1986년 미술관으로 부활했다.서구에선 용도와 수명이 다한 공공시설이 세계적인 문화시설로 재탄생한 사례가 허다하다. 영국 브리스톨 대영제국박물관 역시 철도역사였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변신은 더욱 극적이다. 템즈강변의 낡은 화력발전소 내부를 리모델링했다. 피카소부터 백남준까지 근현대 작가 작품을 한데 모아 놓으니, 단번에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성지가 됐다.우리에게도 철거와 보전 사이에서 고민이 깊은 근현대건축물이 즐비한데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는 빈약하다. 국회의사당,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인 조선총독부 건물은 결국 철거됐다. 서울 한복판에 일제의 상징을 리모델링해 유지할 수 없었다. 반면에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에 저항한 순국선열의 얼을 되새길 역사관으로 태어났다. 구서울역사는 복합문화시설로 보전됐지만 유무형 문화콘텐츠는 부실하다.인천시가 지난 19일 상상플랫폼을 개관했다. 1978년 인천내항 8부두에 건설된 아시아 최대의 곡물창고(폭 45m, 길이 270m)를 인천시가 복합문화 관광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인천시가 2016년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결정한 이유는 도시재생이었다. 기능이 축소된 인천내항과 인근 지역 쇠퇴를 막을 문화부흥의 중심에 상상플랫폼이 있다.문화의 힘은 강력하다. 오르세미술관과 테이트 모던은 쇠락한 지역을 세계적 핫플레이스로 변신시켰고, 광명시는 폐광산을 리모델링해 도시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상상플랫폼이 인천 구도심 재생의 중심이 되려면 대표적인 문화콘텐츠가 있거나, 상상플랫폼 자체가 문화적 잠재력을 발휘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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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여성 청소년의 월경권 지면기사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임기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인 월경을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처럼 인식했다. 생리대 광고 카피에서조차 월경을 '그날' 또는 '마법'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이유다. 비단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플로(flow·흐르다)이모가 찾아왔어', 프랑스에서는 영국군이 붉은 군복을 입었다는데서 유래해 '영국 군대가 상륙했네', 네덜란드에서는 '토마토 수프가 너무 익었어'라고 표현한다. 이외에도 딸기주간, 체리데이, 대자연의 날, 안네, 달의 꽃, 달의 은혜 등등 나라별로 월경을 일컫는 별칭이 5천개가 넘는단다.2016년 사회적 충격을 던진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월경이라는 단어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황급히 생리대 지원사업을 내놨다. 그해 여성가족부에서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을 위해 생리용품을 지원했다. 낙인효과 우려에 2019년부터는 바우처 지원사업으로 전환했다.전국 광역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가 2021년 최초로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을 시작했다. 지난해 17만4천여명에 이어 올해부터는 외국인 여성 청소년까지 총 22만3천여명에 월 1만3천원(최대 연 15만6천원)이 경기지역화폐로 지급된다. 도내 21개 시·군 11~18세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접수 중이다. 인천광역시도 지난 2022년부터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3년째 18세로 한정하고 있다보니 "보편 지원이 아니라 차별 지원"이라는 지적이다. 시의 당초 계획대로 2025년까지 인천지역 11~18세 여성 청소년이 경기지역과 동등한 월경권을 보장받아야 마땅하다.여성은 13세 전후 초경 후 약 30~40년 동안 월경을 한다. 초경이 시작되고 평균 한 달에 5일 40년간 월경을 한다고 볼때, 여성 한명이 평생 동안 사용하는 생리대는 1만개에 달한다. 그만큼 생리대는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필수불가결한 생필품이다. 특히 여성 청소년기에 '월경 빈곤'에 처한다면 학습권과 행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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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절대퇴사맨'의 비애 지면기사
지난해 한 일본 샐러리맨이 온라인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발단은 X(옛 트위터)에서 '절대퇴사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45세 남성이 '오늘의 저녁식사'라며 올린 사진 한 장. 김 가루를 뿌린 밥 한공기에 반찬은 매실장아찌 1개와 계란말이뿐인 사진에 "달걀은 사치품"이라고 썼다. 이어진 글이 대박급 반전이었다. "20년 이상 이런 생활로 저금이 9천300만엔을 넘었다. 이젠 뭘 먹어도 맛있다."절대퇴사맨은 50세 이전 은퇴를 인생 목표로 정하고 안정적인 은퇴 생활 자금 1억엔을 모으기 위해 자린고비가 됐다. 의·식·주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저축과 투자에 전념했다. 파이어족은 전세계 월급쟁이들의 꿈이지만, 각박한 현실 때문에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절대퇴사맨은 그 꿈을 이루려 은퇴 전 인생을 포기했다. 절박한 집념으로 이룰 수 없는 꿈에 접근한 그에게, 그처럼 할 수 없었던 샐러리맨들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엔저가 지속되면 파이어족은 무리가 아닌가 한다. 21년간 무엇을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해왔는지, 정말 무의미한 삶이었다." 절대퇴사맨이 1년 만에 우울한 심정을 X에 올렸다. 1억엔으로는 파이어족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자조인데 애처롭다. 엔화 가치는 역대 최저다. 1억엔의 가치가 떨어졌다. 물가도 올랐고 오를 것이다. 그가 20년 넘게 통장에 입금한 돈을 자본주의 경제가 야금야금 훔쳐갔다. 50세에 은퇴해 1억엔으로 평균수명을 살려면 평생 밥 한 공기에 장아찌만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그도 모자라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절대퇴사맨의 우울증은 자본주의 사회 임금노동자들의 절망을 대변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한편에 몰린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모아 노후를 준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의 잉여 자본은 물가가 다 잡아 먹는다. 자본과 자원을 독점한 거대 금융·기술 플랫폼의 노동 착취는 집요하다. 공산주의는 빈곤의 평등으로 망했다면, 자본주의는 빈부의 양극화로 위기에 처했다. 인류의 역사는 배부른 소수와 배고픈 다수의 동거를 용인하지 않았다.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