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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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정보민주주의? 정보포퓰리즘! 지면기사
조국이어 코로나19 사태 사회 쟁점인터넷이 '해법 공론장' 기대했으나국가·자본의 네트워크 개입 사유화개개인은 의견 취합전에 편식·잡식집단간 대화·토론부정 반민주공간최근 두 가지의 정치사회적 쟁점이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하나는 소강상태에 이른 '조국사태'이고 다른 하나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 '우한폐렴 사태'이다. 두 사건 모두 국민의 일상적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사안인 만큼 국민들은 이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내려 한다. 이미 국민들은 자신들이 모두 발언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두 사안의 의미를 진단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나 해법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도 국민들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입장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미 국민들은 사안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서로 확신한다. 또한 으레 그렇듯이 두 사안 모두 정치세력들간의 결사항전의 메뉴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국민들을 대표하는지 아니면 동원하는지 알 수 없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물론 두 사안 다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외적 상황에 의해 봉합될 수도 있지만, 여진이 가시지 않은 휴화산일 뿐 언젠가 다른 쟁점으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하고 중층적인 변화를 겪었다.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화된 직후부터 지구화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화 자체도 지구화의 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흐름은 정보화였다.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인들은 정보화에 대해서도 진보적 낙관론을 가질 수 있었다. 권위주의체제의 폐쇄성,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결정적 장애였다고 생각하고, 정보화는 이러한 장애를 넘어서 정보로 무장한 민주적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양할 거라고 기대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성도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면 완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민주주의와 미디어 간의 관계를 갈파한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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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빛난다 지면기사
'9.11 테러' 수습한 줄리아니 前 뉴욕시장항암제 먹어가며 안간힘… 전 세계 '감동'첫 단추 잘못 끼운 코로나 사태 악화일로정치 논리 싹 빼고 국민 생명부터 살려야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107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2001년은 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충 시간을 보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재임 중 뉴욕의 범죄조직을 소탕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이미 등재된 그였다. 한밤중 뉴욕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한때 우범지역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업적은 충분했다.9월 11일 아침.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뉴욕시민들의 눈앞에서 무너졌다. 뉴욕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순간,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뉴욕지역 방송사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별로 기자회견을 계속하면서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시민 곁에 있었다. 뉴욕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줄리아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었고, 항암제까지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임기 마지막 해, 온 힘을 다해 사태수습을 하려는 그의 모습은 뉴욕을 넘어, 미국 아니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태를 수습하는 줄리아니를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솔선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코로나 19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발생 한 달 만에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을 넘어서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 일상으로 돌아가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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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우한(武漢)과 우정 지면기사
코로나19로 봉쇄 한 달 지난 '우한''지음' 백아·종자기 우정 자리한 곳인류가 만나보지 못했던 바이러스감염 우려로 인한 '혐오'를 멈추고최선 다해 싸우는 이들을 응원해야나는 2009년 여름에 우한(武漢)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우한은 내게 중국이 혼돈의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고색창연한 고대의 유적과 현대식 마천루가 마주 보고 있었고 화려한 백화점과 이웃한 곳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불가사의한 도시라 하겠지만, 또한 내가 아는 우한은 가장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깃든 고금대(古琴臺)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동아시아에서 벗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거문고를 타면 말들이 춤을 출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가 산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종자기가 듣고는 "훌륭하구나, 거문고 연주여! 태산처럼 높고 높구나!"라고 했다. 잠시 뒤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자, 종자기가 또 말하길 "참으로 훌륭한 연주다. 넘실대는 것이 흐르는 물 같구나!"라고 했다. 백아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알아듣는 벗을 만난 것이다.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림)이라고 한다. 백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씨춘추》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이고 우한의 고금대는 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백아가 연주한 두 곡이 고산곡(高山曲)과 유수곡(流水曲)이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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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전염병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 지면기사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감염공포안전에 대비하는 것은 좋지만통제·봉쇄·인종차별 과도한 조치 언론보도도 두려움만 키워 역효과과학적 상식 기반한 현명 대처를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우리 인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인류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전염병은 국가의 쇠락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례가 많다. 기원전 431~404년 아테네를 강타한 전염병은 아테네 인구의 25%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도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아테네는 전쟁에서 패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로마 제국도 서기 165년 외국에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확산된 전염병으로 6천만~7천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기를 겪은 로마는 하수 시스템과 목욕탕 같은 위생시설뿐만 아니라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을 만들어내면서 도시 위생시설의 건설자로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는 로마가 번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전염병은 계속해서 인류의 존망까지 위협했다.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의 90%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잉카와 아즈텍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흑사병은 역사적으로 세 번의 판데믹(대유행 전염병)이 있었고,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흑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19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인도와 아시아 대륙에서 1천5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40년대 들어서야 페니실린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성 질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18년에는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2천만명이 사망하였지만, 지금은 타미플루 치료제가 개발되어 바이러스성 독감은 완치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종류도 많고 쉽게 변형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사스나 메르스 치료제를 개발하여도 다음에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이번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것이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의 특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고 야생동물에서 유래했다는 특징이 있다. 야생 서식지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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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좋은 친구 지면기사
나이 들수록 '내 주변 관계 유지얼마나 잘하나'가 행복지수 가늠깊은 고독·우울증에 시달린다면친구관계 돌아보라고 말해줘주저말고 서로 사랑나누길 바라얼마 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요즘에는 회갑이라고 해도 친지나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지 않고 부부 동반, 혹은 친구끼리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여행 경비를 드리는 것으로 회갑 선물을 대신합니다. 간혹 누가 회갑연을 한다고 하면 웬 구시대 유물이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지인을 모두 불러다 잔치를 벌였습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가난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성직자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회갑잔치를 벌이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장까지 만들어 보냈습니다. 다만 초대장엔 '선물은 사절, 회비만 받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회갑연이라고 해도 각자 회비 내고 밥 먹자는 얘기였죠.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수명이 늘어서라고 합니다. 회갑을 맞는 게 전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장수를 축하하려면 칠순, 아니 팔순은 돼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부터 내려오는 이런 잔치들이 꼭 장수만을 축하하는 의미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갑, 칠순, 팔순은 물론이고 모든 생일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일은 나와 사랑을 나눈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되었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요즘의 생일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의 끈을 돈독히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일마저 혼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SNS만 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생일을 보낸다는 사연이 종종 눈에 띕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번거로워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혹시 나를 사랑해주는,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요? 중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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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인구 문제와 물질주의 지면기사
국가가 신생아 미래 책임 못지고경제는 산모 배려 못해 출산 회피젊은세대들 부모세대 가치관 수용'비혼·독거주의' 실행으로 옮겨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폭 넓혀야중국 우한에서 발원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기는 무섭다. 하지만 한국의 놀라운 자살률, 인구 감소세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무서운 것만은 아니다. 프레시안에 실린 한 칼럼은 한국의 출산이 매년 1만 내지 5만씩 감소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쓰신 이상이라는 분은 인구 통계를 상세하게 인용했다. 보통 합계 출산율이 2.1은 되어야 인구의 현상 유지가 가능하고, 1.7 이하가 되면 저출산, 1.3 이하가 되면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1985년부터 저출산 상태였고, 2002년부터는 초저출산 상태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 총재를 지낸 사람이 이 인구 감소 추세를 들어 한국을 '집단자살 사회'라고 했다고도 한다. 어째서 이런 '비극적 현상'이 연출되기에 이른 것일까? 요즘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하는 대통령 시대에 지도자들은 근대화만이 살길이라고들 외쳤다. 그 근대화는 '수출 백억 불 달성' 같이 물량적인 수치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급증하는 인구는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되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1970년대의 표어는 근대화와 인구 사이의 부조화 또는 반비례 관계를 압축적으로 가르쳐 주는 표어였다. 물질주의적 근대화 전략은 생명의 탄생을 가난을 불러들이는 '저주'처럼 인식하여 출산을 강력하게 억제하려 했다. 이 물질주의적 근대화 전략은 1970년대 내내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노동을 행하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생명들인데 이 생명이 근대화라는 예정 지향적인 전략에 의해 억압, 훼손되는 일들이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을 이념적으로 '완성한' 1980년대의 마르크시즘 운동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물질주의였다. 물량적 팽창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근대화주의에 계급적 갈등을 중심으로 한 물질주의적 치유 전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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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지면기사
설 밥상에 올라온 '조국사태'·'윤석열의 검찰'생각 다르면 언쟁 '두개의 국민'으로 갈려분열된 사회보다 더 무서운건 무너진 법치靑, 하명수사 거부 등 민주주의 근간 부정법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벌써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많은 언론인과 학자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할 때마다 인용됐던 그 책이다. 2018년 12월 국내 초판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이들은 '포퓰리즘과 손을 잡는 정치인과 정당'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의회를 패싱하고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대통령' '국가기관을 여당인사로 채우고 비판적 언론을 명예훼손 소송으로 입을 막는 권력' 등을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 신호로 제시한다. 명쾌하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놀랍다. 민주주의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우리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다.연휴 기간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특히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4+1 협의체를 앞세워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무소처럼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현 정권의 모습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들은 처방도 제시한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선 확고한 3권분립, 여기에 언론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된 후, 전통의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구분해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을 보거든 두들겨 패라. 소송비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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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식 칼럼]인공육의 시대 지면기사
現 축산규모로 늘어나는 육류수요대안없이는 문제해결 쉽지않을 듯국내 바이오시밀러산업 성장한만큼반도체처럼 초기에 거대자본 투입새로운 기회 미래 먹거리 선점 필요매년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끄는 소비자가전전시회(Consumer Electronic Show·CES)에서 인공지능 못지않게 화두가 된 것이 바로 인공육(artificial meat)이다.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진짜 햄버거와 맛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임파서블버거 2.0'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식문화를 열게 하고 있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의 생활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발전하면서 기아로부터 해방되고 안정적인 생활을 통하여 인구의 증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목축과 양식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대량으로 공급하므로 전 인류의 영양 상태는 급격하게 개선되었고 수명도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전 지구의 인구가 76억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10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동물성 단백질의 늘어나는 수요를 현재와 같은 방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목축의 심각한 문제는 매년 560억 마리의 가축과 가금류가 도살되며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물의 70%, 사용되는 토지의 40%, 그리고 온실가스의 15%가 목축과 양계에서 발생된다는 점이다. 또한 반추동물의 경우 메탄가스를 많이 배출하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동물을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에 비하여 고기를 얻게 되는 효율도 매우 낮아서 10㎏의 사료를 먹이며 500g정도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단백질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공육은 크게 동물의 세포조직을 실험실에서 배양해서 만드는 배양육과 식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고기와 유사하게 만드는 유사육이 있다. 2013년에 최초로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된 고기로 만든 배양육 패티는 무려 3만2천500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나 현재는 100g당 8달러 수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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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청년, 여성, 그리고 광장민주주의? 지면기사
젊은 학자들 비정규직 미래 불투명남성중심 기득권체제서 女 더 열악직접민주주의 목청 포퓰리즘 양상과도할땐 특수이익만 배타적 반영공화주의, 민주주의적 독재 처방전지난주에 한 학회의 워크숍에 참석했다. 토론의 주제는 '갈라진 진보, 세대와 광장의 정치'였다. '진보'라는 말이나 좌파·우파의 구분은 정치세력들의 자의적 개념 사용으로 인해 그 '정명(正名)'이 어렵기는 하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논의를 대략 정리하면, 현집권세력은 한국의 정치 지형상 좌파로 규정할 수 있고, 집권 전까지 단일한 대오로 뭉쳐 있던 좌파세력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이른바 '조국사태'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분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에 친화적이었던 청년, 여성 세력들이 점차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문제 제기는 자유민주주의의 통치형태인 의회민주주의가 그 정치적 효용성과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광장민주주의 등의 직접민주주의를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른바 '86세대' 남성엘리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의회와 정당체제가 여성이나 청년들의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학계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학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교수 및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젊은 학자들은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르는 대학구조개혁의 찬바람을 맞으면서 비정규직 강사와 연구원으로서 열악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미래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국가발전의 토대인 지식생산자들을 국가와 사회가 여전히 유한계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취업절벽 앞에서 헬조선을 부르짖기는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예비연구자들의 성비나 여성들의 연구역량 등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기득권적 대학교원체제는 요지부동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압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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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탕임금의 목욕통 지면기사
통에 '날마다 자신 새롭게한다'는 뜻'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글귀새겨세상이 변함없이 진부하게 느껴질때자신이 낡은건 아닌지 되돌아보고주관 새롭게하면 객관세계 새로워져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목욕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욕통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를 탕지반명(湯之盤銘, 탕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진 글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그 내용이 유학의 고전 '대학'에 전해온다. 완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문장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고대의 한문은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뜻을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어나 목적어까지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그렇다.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날마다 새로워진다면'이라고 옮길 수 있는데, 원문 어디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읽으면 누가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되기 십상이다.번역하는 이들은 이런 경우를 만나면 앞뒤의 맥락을 더듬어 주어와 목적어를 찾아 넣어서 문장을 완성한다. '대학'의 앞뒤 문장을 참고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나'이고 목적어는 '나 자신', 정확하게는 내 안에 있는 '덕(德)'이다. 그러니까 '구일신(苟日新)'은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으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어지는 '일일신(日日新)'의 뜻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일일(日日)'은 하루하루, 그러니까 매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