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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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10년 후 평화의 꿈을 꾼다 지면기사
나의 소박한 꿈은 부모님 고향인황해도 배천서 어머니와 거니는 것제재상황이라도 지금 '왕래' 원해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우선 허용하면서 남북문제 풀어야십(1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십이라는 수는 완성, 충만의 숫자로 인식되어왔다. 손가락으로 개수를 셀 때 열 개가 되면 꽉 차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십이 가진 '이상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힘은 우리의 심리적 힘이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 십계명, 십장생 등 십이라는 숫자를 빌려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볼 수 있다. 십은 완성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큰 계획을 세울 때 10년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020년 올해는 십 단위의 해인데 희망과 시작의 힘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불완전 수라는 의미가 있는 9의 기운이 아직도 우리의 심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혼란의 시대였지만, 한시대의 마감이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할 것이다. 난장판 국회였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법이 만들어졌다.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다 드러내 보이며 치열한 갈등을 유발시켰지만, 사람들의 윤리적 기준을 높였고,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되어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폐지되었다. 4월에 새로운 선거법하에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고, 7월에 공수처가 설치되면, 작년 한 해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시기였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 희망은 다양성, 견제와 균형이 우리 사회에 더 공고히 정착되어 공정성과 공평함을 더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국내 정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일정표가 제시되었는데, 아직도 희망의 일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남북관계가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2018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2019년 북미회담까지 이어지게 하였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둬들이고, 섭섭했던 마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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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2019년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 지면기사
조국사태·한일관계등 주류 이룬 10대 뉴스유난히 많았던 '가족의 비극' 도 다시 봐야국민·기업에 걷은 세금 선심쓰듯 뿌리는데한 가정 속절없이 무너진 이유 설명해줘야2019년 10대 뉴스가 일제히 발표됐다. 언론사의 성향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국사태, 지소미아 파기로 인한 한일관계, 부동산값 폭등, 청와대 하명수사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뉴스에 빠져 무심코 지나친 게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하나의 유형으로 고착돼버린 '가족의 비극'이 그것이다. 2019년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에서 '살해 후 자살'로 명칭 되는 '가족 동반 자살'이 올해는 유난히 많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일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건 흔치 않은 경우다. 통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빈곤층이 늘어나면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도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통계에서 밝혀졌다. 문제는 이들이 판단력이 없는 어린 자식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비록 부모일지언정 자식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고 더구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그 시간, 그 공간을 상상해 보자. 아이들은 곧 있을 자기 죽음을 눈치채고 있을까. 평소와는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부모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부모의 뜻이라면"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러는 살려달라고 저항하는 아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올해 이런 비극이 너무 많았다.1월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40대 부부와 딸(18)과 아들(10)의 극단적 선택을 시작으로 공식적으로만 전국적으로 20여 건이 발생했다. 그중 3월에만 4건, 10월에 4건, 11월에 3건이 발생했다. 모두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시흥의 한 농로에 세워 둔 렌터카 안에서 젊은 부부와 아들(4), 딸(2) 등 4명이 숨진 사건이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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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마음의 유익균 지면기사
비만 큰영향 미치는 장내 유해균유익균 많으면 날씬함 유지 쉬워우리 마음 속도 마찬가지로 작용고독을 택하면 유해균 키우는 것몰두할 수 있는 즐거운일 찾아야'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시대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비만은 건강을 해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아침방송만 해도 비만 탈출 비법을 종종 소개합니다.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일단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니, 비만의 원인이 단지 과식에만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식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장내에 있는 유해균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안에는 수많은 균이 존재하는데,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으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익균이 더 많은 사람은 설사 과식을 좀 하더라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비만을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장내에 유익균을 키워야 하고, 운동이나 식이조절은 그다음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유익균과 유해균은 장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백성사를 하러 성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년에 범한 죄를 또 짓고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어느 꼬맹이는 고백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동생에게 욕도 했고, 서로 백 번도 넘게 싸웠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청년은 직장동료가 너무 미워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년의 주부는 "남편만 없으면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불안과 분노를 안고 살다 보면 불면증도 쉽게 찾아오고 마음의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저 우울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같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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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북한 문제에 관해 생각한다 지면기사
'강대국만 핵을 가질수 있다' 발상美 불평등체제 어떤 도전도 용납못해北 여전히 핵무장 포기 않는 정황자신들 뜻대로 안 움직이는 美 대신'말리는 시누이' 한국에 불만 쏟아내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아주 악화된 듯한 인상이다. 지난 두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반면, 최근의 남북 관계 악화는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금 핵 문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은 포즈를 취하지만 가슴속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문제 삼고 있는데, 북한은 어떻게든 완전한 핵무장 해제는 피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물론 강대국들만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특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불평등' 체제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쪽에서는 핵이야말로 현재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완전하게 들어줄 생각은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시선이 집중된 길주 풍계리 같은 곳의 핵시설은 폐기하는 포즈를 취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정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과연 북한과 미국의 '대타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극히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곤란은 특히 한국 정부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 평화 안착을 추진해 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제3자적 위치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안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각종 경제 제재 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풀어줄 수 있는 실질적 힘은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북한 쪽과 '주체적인' 대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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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세대의 지배, 전근대의 지배 지면기사
'신분제 해체·서로 존중 사회…''자유로운 개인·독립의 개체…'두 주장 틀렸다고 탓하기보다우리사회 어떤 결핍 보았는지동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불평등의 세대'란 책이 올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주로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지만,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세대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계급적 시각에서 불평등을 바라보던 진보진영에서는 사회적 균열에 대한 세대적 시각에 동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의 근간이었던 민주주의연대가 오히려 다른 세대에 대한 독점적 지배의 자원이 되었다는 점에 매우 부당해 한다.저자인 이철승 교수는 세대의 정치가 어떻게 불평등의 구조를 낳게 되었는가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는 386세대의 '네트워크 위계'가 '한국형 위계 구조'로 진화했다고 본다. 여기에서 위계구조는 첫째, 나이에 기반한 '연공구조'를 한편으로 하고 둘째, 세계화로 인한 노동시장 유연화 기제, 대·중·소기업 간 지배종속 관계,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3중으로 중첩된다. 이 우연적 결합의 중심에 386세대의 네트워크가 최대의 수혜자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른바 민주주의연대를 매개로 자본주의 하의 시민사회를 처음으로 조직한 세대였다. 또한 그들은 이전 산업화세대가 퇴출된 공간을 차지하고 후세대의 편입을 선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과대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약속했던 민주주의의 확장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반일종족주의'란 책은 역사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운동권에 두루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문학 도서로는 보기 드물게 1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한다. 독자들은 자신의 역사관이나 정치관에 따라 격분하기도 하고, 합리적 정당화의 지적 자원을 찾았다고 득의만만하기도 한다.이영훈 교수 등의 주장도 기존 역사학계의 통념을 뿌리째 흔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년기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성장한 국민들의 민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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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책 도둑 지면기사
30년전 '논어 완질' 훔쳐갔던 청년새삼 그 일이 떠오른 까닭은얼마전 논어 번역서 탈고하며올바로 읽고 풀이했는지 두려움과그에게 뭘 훔치진 않았나 의심 때문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 양현재(養賢齋)라는 곳에서 조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금속활자본 고서가 소장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7책으로 구성된 논어 완질도 있었다. 그 책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논어 완질을 훔쳐간 것이다.그날 아침 출근해서도 도둑이 든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와 이 책이 여기 있던 물건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비로소 서가의 한 곳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였다. 이야기인즉은 그날 도둑이 이곳에 들어와 책을 훔쳐 가지고 나가다가 경비의 눈에 띄어 붙잡혔다는 것이다. 이어 나에게 경찰서로 가서 참고인 진술을 하고 책을 도로 찾아가라고 했다.밖에 나갔더니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쪽에는 경비 아저씨가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는데 뒷좌석에는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유식한 도둑인가 봅니다. 아니 어떻게 그 책이 귀한지 알아보고…."대꾸가 없어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살피려던 나는 흠칫 말꼬리를 흐렸다. 경찰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던 그 사내의 손목에 채워진 금속물질이 어두운 차 안에서도 차갑게 반짝거렸던 때문이다.그제야 그의 초라한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피의자는 대략 20대 후반으로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낡은 청바지에 때 묻은 운동화, 항공점퍼 비슷한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몸에서 다소 불쾌한 냄새도 났다.그는 이미 모든 걸 체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숨소리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문적인 고문서 도둑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일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훔치다 잡힌 것으로 보였다. 차를 타고 경찰서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도둑이 도둑다워 보이지 않는 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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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나의 시대는 끝났다 지면기사
김동길 교수의 '3김 낚시론' 떠오르는 요즘민주 '586'·한국당 '3선' 퇴진론 '내홍' 때문모두 고민하는척 하지만 진정성 보이지않아정부에서도 호기롭게 떠나려는 사람 안보여1985년 4월로 기억된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한 일간지에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 낚시나 해라"며 퇴진을 주장하는 '3김 낚시론'을 기고했다. 세 사람이 싸우다가 '서울의 봄'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고, 앞으로도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도 어려울 테니 이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낚시나 가라는 것이었다. 좋은 낚시터도 알아봐 주겠다고 덧붙였다.이 글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렀다. 서정적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당시 한국 정치를 호령하는 3김에 직격탄을 날렸기에 더욱 그랬다. 민주화의 열망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였다. 그런데 "정치의 판도가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이때에 이들 세 김씨의 재등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김씨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라고 했으니 시끄러운 건 당연했다.김 교수는 3김 퇴진을 주장하면서 하버드 대학 네이던 퓨지 총장의 예를 들었다. 60년대 미국의 대학은 월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학내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버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찰 투입을 두고 교수들 간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하지만 퓨지 총장은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학내에 불러들여 학내 데모를 진압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킨 후 임기 2년을 남기고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과 맞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던 법과대학의 젊은 교수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다. 그때 퓨지 총장이 떠나면서 발표한 성명문 제목이 그 유명한 '나의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3김에게 필요한 건 퓨지 총장 같은 결단이라고 주장했다.80년의 봄 3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화를 이뤘다면 전두환 군부독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광주의 아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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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꼰대와 멘토 감별법 지면기사
기성세대, 자리떠나면 능력부족 자책조직 발휘력 '자신의 힘'으로 착각도젊은세대에게 실력있는 멘토 되려면목표 정해주고 수단 자율에 맡기고다양한 방식 시도하도록 격려해야꼰대라는 말이 들리면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름 젊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도 '꼰대'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식하게 된다. 수 천년 전에 건축된 이집트 피라미드에 '요즘 세상과 젊은이들 보면 난세'라는 글이 기록돼 있다고 하니 세대 간의 차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세월과 함께 따라오는 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안일한 것 같기도 하다. 꼰대가 아닌 멘토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얼마 전 여럿이서 기업의 변화에 대해 토론을 하다 갑자기 꼰대라는 말이 나오면서 세대 간 차이를 목격했다. 저런 말 하면 꼰대라고 할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저런 '조언'도 수용 못하면 그것도 문제지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선배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고, 팀을 만들고, 같이 일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90년대 이상의 Z세대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함께 일하거나 동료 경험을 하지 못한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오죽하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그냥 다르다가 아니라 왜 달라졌는가에 대한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이 세대들은 스마트폰과 같이 성장한 세대이다. 옆의 친구와도 밥 먹으면서 카톡하는 세대이다. 대화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꼰대와 일하기 싫어한다. 윗사람들을 다 꼰대로 본다. 자기가 의견을 냈는데 팀장이 반대하면 팀장이 생각이 막혀서 자기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세대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의 '좋아요'만 받은 세대이다. 거부당하지 않고 늘 칭찬만 받아왔다. 그래서 회사 등 조직에 들어가서 비판을 들으면 감당을 못한다. 이 세대들이 40대가 돼서 사회의 주력 인사가 됐을 때, 후배와 조직을 어떻게 이끌고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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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친절할 준비 지면기사
내 기분 상관없이 누굴 만나든지무조건 '친절, 친절, 친절!' 외친후억지로라도 환한 미소 짓기로 결심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울감 횟수가점점 줄어드는 '작은 기적'을 체험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랍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일까요? 휴대전화를 열고 최근 문자를 나눈 열 사람을 차례차례 떠올리면서 점수를 한번 매겨 보십시오. 과연 이 사람이 나를 친절하다고 생각할지 따져보는 겁니다. '그렇다'는 1점, '잘 모르겠다'는 0점, '아닐 것 같다'는 -1점으로 정하고 총점을 산출해보십시오. 상대가 아닌 내 생각이 기준이다 보니 이 점수는 십중팔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그 점수에서 50%는 삭감해야 객관적인 점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늘 다니던 체육관에 회원 등록을 다시 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늘 친절하던 직원이 그날따라 너무 신경질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사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내 돈 내고 이용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욱이 그 사람의 월급은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텐데 말입니다. 다행히 잘 참고 등록을 마쳤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서비스 데스크에서 그분을 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처럼 또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가서는 당시 전후 과정을 설명하고 그땐 왜 그랬는지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되레 "제가 그랬었나요?"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수차례에 걸쳐 사과를 거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두고, 적어도 업무에 임할 때만큼은 친절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자부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마음속 기분이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족 간에 다툼이 있거나, 병에 걸렸거나, 경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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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반드시 밝혀야 할 '세월호' 진실 지면기사
해경청장 헬기로 이동하는 사이배로 옮겨다니다 희생된 학생이야기일부 구조담당자 책임으로 축소 우려중추·하위 권력이 무슨일 벌였는지왜 구하지 않았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세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홍콩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맞은 사람이 위독상태라고 한다. 시위 중 추락사 한 대학생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을 향해 또다시 국가적 폭력이 행사된 것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중국 정부에서는 의도적으로 '비상사태'를 방치 내지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홍콩 사태는 당장 1989년 4월에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이 주축을 이룬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을, 이번에는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새로운 '반복'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홍콩 사태에 관해 채널 티브이들은 숨 가쁜 어조로 그 심각성을 전달한다. 그러나 좀처럼 이 사태를 한국의 과거에 오버랩시키는 것은 자제하고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느끼는 사람은 느낀다.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다는 것, 그것은 1980년에 우리 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향해 참혹한 폭력을 행사했던 사실에 직접 연결된다. 헬리콥터에서 기총 소사가 있었다는 최근의 '전언'은 '5·18'이 사십 년 가까운 지금에까지 아직도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국가 또는 국가의 특정한 중심 세력이 국민, 시민을 향해 살상 무기를 드는 행위는 현대 국가가 결코 문명적으로만 운영되고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문명이 진보하는 만큼이나 야만도 훨씬 더 큰 규모로 증대하고 있는 것이 이 현대 국가의 커다란 모순 중 하나다. 프랑스 현대비평가 미셸 푸코는 현대 이전에 '국가'는 그 구성원들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살게 하는 반면, 현대 '국가'는 그들을 살게 하거나 죽게 내버려 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지오 아감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예증을 들어, 이제 이 현대국가는 '생명 정치'만큼이나 '죽음의 정치'를 행한다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