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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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리며
오는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1950년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분의 희생이 있었다.22개국 195만명의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은 한 번도 와보지도 못한 이름도 낯선 대한민국의 땅에서 피와 땀을 바쳤다. 정부는 그분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전 60주년이 되던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여 매해 국가보훈처 주관의 정부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6·25전쟁은 발발한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뺏길 만큼 우리의 전력이 열세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남침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유엔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회원국 중 16개국이 우리나라에 전투병력을 보내왔고 6개국이 의료지원을 보내왔다. 열세했던 한국전쟁은 유엔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뒤바뀌었다. 우리가 38선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등 우세를 보였다가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는 등의 교착상태가 반복되는 와중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3년여간의 전쟁은 휴전을 맞이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휴전 이후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6·25전쟁 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던 기념비 문구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엔군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 번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정전이 된지 66년이 흐른 지금 꽃다운 희생의 피가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최근 남북정상 및 북미정상 간의 만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안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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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왜(倭)의 경제침탈에 한 목소리로 대처해야
선조 23년(1590년) 조선 조정은 왜국(倭國)에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다. 이듬해 귀국한 정사 황윤길(黃允吉, 서인)은 왜병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하자, 부사 김성일(金誠一, 동인)은 왜군의 침략 징후를 보았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안보를 해친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92년 조선은 왜(倭)의 침략을 받아 백성들의 생명과 국토가 유린당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런데도 조선은 당파싸움 속에서 국론이 분열되어 그로부터 300여 년 만에 또다시 왜국에 나라가 병합되는 수모를 당했다. 과거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은 망각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에는 땅을 지배해야 식민지였지만 현대에는 경제로 지배해도 식민지가 될 수 있다.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독도 영공과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뒤 러시아는 영공침범을 부인하고 한국 조종사가 오히려 위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왜국은 3개 반도체 소재에 대해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가운데 화이트리스트(White List) 국가에서 제외하는 경제 보복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3개 소재에서 1천여 개 품목 규제로 확대된다. 왜는 타국을 침탈하는 습성에 따라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동시에 과거의 불법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수출규제와 외교적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왜의 DNA는 원천적으로 타국을 침략하게 돼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찰총국 소속의 간첩을 남파하고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국제적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 정치권에서는 상대 탓만 하고 있다. 차제에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정부는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 선동 형 대책보다 대왜(對倭) 경제의존도를 줄이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소재에 관한 한 러시아가 불화수소 등 일부 소재를 제공할 의향을 밝혀온 점을 고려, 일본의 1천여 개 규제품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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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한일 산업생태계의 '식민지' 전쟁 지면기사
일본 정부의 '경제 규제' 이면에는'한국, 여전히 경제적 식민지' 인식반도체등 韓산업생태계 약점 공격부품·소재 경쟁력 뒤돌아봐야할때대기업·협력기업 '상생 관계' 필요식민지 시대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 규제 이면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 경쟁이 깔려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을 넘는 '30-50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되었다.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 중에서는 유일하다. 다른 6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은 모두 식민지를 착취한 제국주의 전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더구나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일본과 대등한 정도로 성장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나라이다. IMF 2019년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명목 GDP가 한국이 3만2천달러로 일본의 4만1천달러 대비 78% 수준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1인당 GDP는 일본이 933달러, 한국이 108달러로 9배 차이가 났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1% 수준의 일본에 비해 2배에 달하기 때문에 2022년에는 한국이 1인당 GDP에서 일본을 따라잡거나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일본이 1억2천600만명으로 한국의 5천200만명의 2배가 넘는다. 그러나 향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7천700만명이 만들어낼 역동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일본의 반응은 바로 한국의 성장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위기의식과 조급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동안 일본은 한국이 여전히 일본이 만들어 논 경제적 틀 속에서 움직이는 나라로 보았다. 아베와 보수적인 인사들의 "한국이 전후 체계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한일관계 구축의 기초가 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하는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유감"이라는 언사는 바로 한국을 여전히 경제적 식민지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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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부부 지면기사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일방적일땐 상처… 공감능력 필요인격은 물론 '마음'까지 보살펴야이혼위기 왔을 때 이혼은 답 아냐부부의 인연 지속위해 '사랑이 답'부부로 인연을 맺고 사는 일은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둘을 연결하기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부부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부부 사랑은 서로 주고 나누는 것이어서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주고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받는다면 반드시 한 편에 상처가 남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랑을 유지하려면 공감능력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살피고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부족해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결국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때로 돌아서는 부부가 많습니다. 연애 감정도 사라지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지치면서 어느새 부부의 알맹이인 사랑은 사라지고 결혼 전 솔로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알맹이를 잃고 거죽만 남은 채 홀로 된 사람들은 가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알맹이를 채워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패한 부부 생활을 다시 시작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전에 맺은 부부의 인연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식어버린 자기감정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랑에 있어 감정은 일부일 뿐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부 사랑은 두 인격이 진지하게 나누는 보다 책임 있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한 축구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공을 차도록 기회를 주는 심판은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의 알맹이를 누군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사별이나 사기 결혼 외에 재혼을 반대합니다. 최근 저명한 인사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며 지금 배우자와의 이혼을 법정 다툼으로 몰고 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가도 다양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신성함을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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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트럼프 대통령 지면기사
우방 관계 해친다는 비판 '아랑곳'김정은 치켜올리면서도 대북제재 사업가 출신… 협상 성공법 '자신'평화 유지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아기대·우려 함께 품고 기다려 볼 뿐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쪽 지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지역에 발을 디딘 첫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말들이 아주 많았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 당선은 무슨 재앙이라도 만난 듯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미국의 언론 주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신종 '독립' 매체를 통한 직접 호소 방식을 즐겨 활용한다. 그가 한국인들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그의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었던 것 같지 않다. TV 화면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것 같았다.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바다 건너에서 보기에도 어째서 미국인들이 저렇게 안정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걸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원래 미국 공화당은 우파, 보수파라 하고, 민주당은 좌파도 더러 섞인 진보파라 생각하는 게 통상적이다. 당연히 미국 공화당은 한국으로 보면 현재의 야당에 가까운 정강 정책들을 가졌을 법하다. 민주당은 또 우리의 여당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그런 통념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민주당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인 존 바이든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맹렬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의 대북 유화 제스처가 일본과 한국 같은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정은과 자신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한이나 김정은에게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TV 앞에서 한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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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식 칼럼]디즈니의 매직 지면기사
새로운 콘텐츠 트렌드 '실사 영화' 잘 알려진 스토리·제작비 절감 장점특수컴퓨터 힘으로 화면 편집 '마법''황금종려상' 쾌거 이어가기 위해선전세계적인 변화에 주목해볼 필요 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또 하나의 트럼프 매직이 이루어졌다. G20 회담 후 1박2일 여정으로 불과 24시간여 한국에 체류하면서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북미 핵 협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트위터와 미디어가 이루어낸 새로운 정치 매직이다. 매년 발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IT기업을 제외하고 항상 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기업은 코카콜라, 맥도널드 그리고 디즈니다. 월트디즈니는 1923년 월트와 로이 디즈니가 창업한 디즈니브라더즈만화스튜디오로 출발하여 미키마우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50년대부터 테마파크 사업을 확장하여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를 구축하였으며, 전 세계에 14개의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M&A를 통하여 픽사, 마블 스튜디오, 루카스 필름, 20세기폭스, 폭스서치라이트 픽처스, 그리고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ABC방송 네트워크, 내셔널 지오그래픽 네트워크 및 A&E를 소유하여 세계 최대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되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만들어내는 콘텐츠 중 새로운 트렌드가 바로 실사영화 (Live-action movie)라는 장르이다. 이번 여름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못지않은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알라딘'은 이미 1992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최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동원하여 실제 배우들과 컴퓨터로 그리는 원숭이, 호랑이, 마법양탄자가 등장하는 리메이크영화로 사실성이 높은 일종의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영화라 할 수 있다. '정글 북', '미녀와 야수'로 시작하여 '알라딘'에 이어 앞으로 '라이온 킹', '잠자는 숲속의 공주', '레이디와 트램프', '뮬란' 등의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영화로 등장할 예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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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한가? 지면기사
서구 민주화 과정보면 값을 치러야반복할 필요 없지만 건너뛸 수 없어한국사회, 방향·내용 합의 쉽지않아재사회화된 시민, 자유 실현할 주체가치 지탱할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지난 주말에는 컴퓨터 앞에서 폭력예방교육을 받으며 보냈다. 양성평등기본법 등 여러 법률에 따르는 법적 의무로서 대학 교직원 모두가 연 1회를 이수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내용은 양성평등,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 5개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과목당 2시간 이상 지속되는 교육을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하고 결국 비이수자로 남게 되었다. 교육을 받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유용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별로 와 닿지도 않는 내용으로 국가예산 낭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판단하기 전에 국가주도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방식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합의의 과정이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고, 더러 다른 사안들과 충돌하는 윤리적, 정치적 내용들을 국가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파하는 방식이 자못 불편하다. 대부분 사회학적으로 재사회화에 해당되는 내용들이어서 더 조심스럽다.서구의 민주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민주주의정치야말로 그만큼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진민주주의의 동요와 내파를 보면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나아가 양성평등의 쟁점들까지도 시민들의 의식 속에 쉽게 내장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무슨 방안이 가능할까? 우리가 어떻게 인류보편적 가치에 동의해갈 수 있을까? 세계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서구의 과거 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건너뛸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압축적 정치시민교육을 주장한다. 정치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살기 위해서도 정치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고 및 정파, 그리고 그 집단적 극화가 심각하고, 정치적 가십을 정치로 혼동하고, 정치인들을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사회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정치와 종교, 그리고 젠더를 금기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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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6·25 아침에 지면기사
해마다 이날 슬픈 이야기 주고 받았는데언제부턴가 의미가 점점 빛 바래'잊혀진 전쟁'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오늘은 '호국영령 이야기' 귀 기울이는 날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로 듣는 편이었다. 이제는 잊을 만한 한 평안도 사투리가 '방언'처럼 쏟아져 나왔다. 너무 생생해서 그 아비규환의 현장이 또 눈앞에 펼쳐졌다. 묘하다. 달달 외울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로 이야기는 끝났다.밥상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자랐던 아이는 이제 제 자식에게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그 날의 슬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최첨단 아이맥스 돌비 서라운드로 영화를 감상하는 신세대 아이에게, 그것도 전해 들은 전쟁 이야기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얽힌 그 숱한 사연을 담은 비극의 가족사와 남북 분단사를 두부 모처럼 잘라내지는 못할 것이다.그해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너무도 평온했다고 한다. 딸기를 씹는 것 같은 싱싱한 6월. 투명한 6월의 태양이 비치는 강물은 해조처럼 싱싱하게 흔들렸고, 붉은 장미처럼 생명의 열정이 만방에 꽃을 피운 6월이었다. 살살 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때로 소낙비를 몰고 오기도 하다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햇빛을 뿌리기도 했다. 해방을 성취한 젊은이의 터질 것 같은 마음은 춘향이가 그네를 타듯이 한없이 펄럭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화단에 핀 붉은 장미가, 딸기를 담은 투명한 유리컵이, 어린이들이 타던 그네가 있던 놀이터의 평화가 순식간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미국에선 6·25전쟁을 '역사의 고아'라고도 부른다. 3년 1개월 2일 동안 연인원 178만9천명의 미군이 참전해 3만6천여명이 전사했으나 역사적인 평가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어서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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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아버지의 아버지생각 지면기사
커다란 고무신 물끄러미 바라보며할아버지 그리워하던 아버지 얼굴그후로 기억에서나마 만날수 있어공광규 시인 '소주병' 뜻밖에 읽고초라해진 나의 부친 초상과 같았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손때(手澤)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입때(口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유학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왜 아버지의 경우에는 '책'이고 어머니의 경우에는 하필 '그릇'을 예로 들었는지 다소 유감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문제를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말은 지금 곁에 없는 어떤 사람을 추억하는 데 평소 그가 애용하던 사물이 때로 긴요한 역할을 한다는 작은 진실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나에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있다.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로 지금껏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서울에 오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이라도 하게 되면 아버지가 올라와서 선생님을 만나곤 했고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는 생전에 서울 땅을 밟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아무튼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적 진학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아버지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둘이서 시장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문득 아버지가 보이지 않기에 뒤돌아보았더니 아버지는 어느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뭘 보시나 했더니 아버지의 눈길은 신발 가게에 진열된 커다란 고무신에 멈춰 있었다. 그리곤 혼자 말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저 고무신을 사다 드릴텐데…" 하셨다.어촌의 농사꾼이었던 할아버지는 발이 유난히 컸다. 그 때문에 꼭 맞는 신을 구할 수 없어서 고무신 뒤축을 가위로 잘라서 신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큰 고무신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지만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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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파란하늘은 계속돼야 한다 지면기사
1만년 이상 변함없던 지구 평균기온불과 300년도 안된 사이 1℃ 상승인류, 핵전쟁보다 큰 위험에 직면 한국 1인당 에너지 소비, OECD 5위많은 비용 들기 전 '재생' 투자해야며칠째 맑고 청명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찬 기온과 바람이 만든 파란 하늘과 구름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은 것 같다. 미세먼지(오염공기) 속에 마스크를 쓴 표정없던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맑은 날이 주는 공짜 행복이다. 아니 지구가 주는 공짜 행복이다. 지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공기, 물, 땅…. 원래 지구의 것인데 땅은 공짜가 아닌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다. 물도 더 이상 공짜가 아니고 사야 한다. 아직 공기는 공짜다. 그런데 땅과 물과 같이 공기도 공짜가 아닌 날이 올 것이다. 사실 지금도 맑은 공기는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맑은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내가 직접 지불하지는 않지만, 인류 전체가 지불하고 있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의한 공기 오염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비용이다. 현재 지구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평균 온도가 1℃ 올라갔다. 작년 인천에서 열렸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서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2040년에 1.5℃ 상승할 것이고 2℃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위험하니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얼마 전 호주의 과학자들은 30년 뒤인 오는 2050년에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가뭄, 해수면 상승, 식량·물 부족, 아마존 열대우림과 북극 빙하 등 생태계 파괴로 수십억 명의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찜통 지구(Hothouse Earth) 효과로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 해안도시가 범람할 것으로 전망했다. 찜통 지구란 지구가 그동안 흡수해왔던 온실가스를